고백과 겸비와 회개와 열렬한 기도를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조건들을 성취하는 것은 우리의 일이다. > 엘렌의 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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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과 겸비와 회개와 열렬한 기도를 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조건들을 성취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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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egw.or.kr  10월 2일 기도력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안에서 찾은 완전함과 충만함을 당신의 교회를 통해 마땅히 세상에 나타내고자 하였다.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으며, 그 받은 만큼의 은혜를 세상에 나누어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나타낼 수 있다. 

지구 도처에 구속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기별자를 내보내는 등 전 하늘이 바쁘게 움직일 때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 역시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비하신 몸의 지체이다. 


그분은 몸의 각 부분을 통괄하시는 머리이시다.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하시며 자비를 베풀고 계시며 또 그 속에 영적 변화를 일으키게 하신다. 

그 일이 너무도 놀라워 천사들도 기쁨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본다. 


주님의 특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무아의 사랑이 주님의 참된 제자들의 생애 속에 나타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보여주신 거룩한 특징에 모든 사람들이 동참하게 될 것을 기대하셨다. 

또한 하나님을 찬양함에 있어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세상의 어두움을 하늘의 광채로 밝히기를 희망하신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은 이루어지게 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 자들이요”,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지식,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시간, 방법, 재능, 감화력 등과 같은 현세적 은사까지도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쓰여져야 하는데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위탁하신 것이다. 


이런 은사들을 혼자만 움켜쥐고서 하나님께 되돌릴 줄 모르는 자보다 더 하나님께 무엄한 자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은사를 끊임없이 부여하고 계시지 않는가. 

지금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하늘에다 거처를 준비하시고 계신다. 

그 거처뿐 아니라 우리 소유가 될 왕국이 있는 것이다. 


이 축복에 동참하게 될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축복을 위해 자신을 부정하고 스스로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5증언, 731-733)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더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엡 2:19, 20)



“주 예수님은 자비와 풍성한 은혜를 나타내심으로써 인간의 마음들을 실험하고 계시다. 


그는 너무나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시는 까닭에 사단은 그들을… 그의 궤변과 기만에 대하여 정복당할 수 없는 요새로 바라본다. 


그들은 그에게 있어서 이해될 수 없는 오묘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한 때 진노의 아들들로 타락한 인간이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훈련을 통하여 거룩한 모양대로 품성이 계발되어 

또한 하나님의 아들들과 딸들이 되어 하늘의 일들과 쾌락 가운데서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을 보고서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 찬다.(TM 18)


주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능력과 축복을 부여하셨는 바 이로써 그들은 세상에 당신의 충만한 형상을 나타내며 


그의 교회가 당신 안에서 완전함을 이루고 다른 세계 곧 영원한 세상까지도 끊임없이 나타내 보이며 


또한 지상의 율법보다 더욱 높은 율법들을 끊임없이 나타낼 수 있다. 



그의 교회는 거룩한 모양에 따라 세워진 성전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교회에게 풍성한 기능들을 주셨는데 

이는 그가 당신의 구속과 또는 값으로 산 바 된 그의 소유물로부터 큰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시다. 


그리스도의 의를 부여받은 교회는 그의 보고로서 그 안에서 당신의 자비와 사랑과 은혜의 부가 충만하고도 최종적인 모양으로 나타나야만 한다.… 


부요하고도 충만하여 풍성한 그의 성령의 선물은 

당신의 교회에 있어서 음부의 권세가 능히 대적할 수 없는 에워싸는 불벽이 되어야만 한다.

(TM 17, 18, 19)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 3:23, 24


참된 교육은 과학적 지식이나 재예(才藝)를 경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지식보다도 능력을, 능력보다도 선량을, 지적 재예보다도 품성을 중히 여긴다. 


세상은 큰 지식을 가진 사람보다도 고상한 품성을 가진 사람을 더욱 요구한다.

세상은 견고한 원칙에 의하여 그 재능이 지배되고 있는 인물을 요구한다.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잠 4:7).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잠 15:2). 


참된 교육은 이와 같은 지혜를 준다. 

그것은 우리의 능력과 재예의 한 가지뿐만 아니라 그 전부를 가장 잘 이용하도록 가르친다. 

이리하여, 참된 교육은 우리 자신과 세상과 하나님께 대한 의무의 전 범위를 망라한다.

품성을 건설하는 일은 인류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일로서, 이에 대한 부지런한 연구의 중요성이 오늘날처럼 고조되어야 할 시기는 일찍이 없었다. 

또한, 청년 남녀가 오늘날처럼 큰 위기에 직면한 일도 일찍이 없었다. …

참된 교육에 있어서는, 이기적 야심, 권세욕, 인간의 권리와 요구를 무시하는 일 같은, 세상의 저주가 되는 것은 다 역효과를 낸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 대하여 각각 개별적인 경영을 하고 계신다. 

각 사람은 그 받은 재능을 최대한 증진시켜야 하며, 

그 받은바 은사의 다과를 막론하고 그것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충실히 행함으로 존경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품성을 건설하는 데 있어서 그 참된 기초와 모범은 어떤 시대나 어떤 나라를 물론하고 동일한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 하신 하나님의 율법 


곧 우리 구세주의 생애와 품성에서 나타나신 바 된 이 대원칙이야말로 유일하고 견고한 기초요 또한 유일하고 안전한 도표인 것이다. -교육, 225~229.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짜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넘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마 27:58~60)


지식층의 사람들은 제사장들에게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제사장들은 거짓 답변을 꾸며내느라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성취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 

요셉은 그리스도의 제자였지만, 과거에는 유대인들이 두려워 예수님을 따른다고 고백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담대하게 빌라도에게 가서 그리스도의 시체를 달라고 했다. 

그는 부자였기 때문에 그 총독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 

그가 지체했다면 구주의 시체는 무덤 속 불명예스러운 도둑들의 시체 곁에 놓여졌을 것이다. 

관원이자 랍비였던 니고데모 또한 그리스도의 제자였다. 

그는 마음의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것이 두려워 밤을 이용해 구주께 온 사람이었다. 

그날 밤 그는 사람이 한 강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강연에 귀를 기울였다[요한복음 3장 참조]. 


말씀들은 그의 폐부를 찔렀다. 

그는 그 말씀을 듣고 마음이 밝아졌지만 여전히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라고는 공언하지 않았었다. 

그는 요한이 말한 다음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속해 있었다. 

"그러나 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회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그러나 니고데모는 할 수 있는 한 그리스도를 변호하려고 애썼다. 

언젠가 그는 제사장들에게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라고 질문한 적이 있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니고데모는 그리스도의 시체를 염하기 위하여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십자가로 왔다. 


그는 제사장들이 그분을 잔인하게 취급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굴욕적인 취급을 받을 때에 나타내신 그리스도의 인내와 하나님 같은 몸가짐을 주목했다. 


그는 이제 대제사장의 성격을 더욱 분명히 보게 되었다. 

이제 그는 범죄자의 시체로 일컬어지는 그의 구주의 상한 몸을 가지러 담대하게 나아왔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수치를 당하고 죽으신 그리스도의 제자임을 나타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제자들의 희망은 산산조각이 났었다 

그들은 자꾸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었노라"는 말을 되뇌었다. 

그들은 다락방에 함께 모여 문을 닫고 빗장을 단단히 질렀다. 

그들의 선생님처럼 언제 그들 자신들도 죽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원고 111, 1897)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호 10:12)


모든 교인들은 묵은 땅을 기경하며 주의 깊이 흙을 골라 씨를 심고 그것을 다시 써래로 매끈하게 함에 대해서 생각하라. 

이것은 농부가 행하는 고생스러운 일이다. 

또한 이것은 쓰라리고 면밀한 과정을 통과케 된다. 

씨(복음의 씨)를 뿌릴 때에 그것을 받는 자가 언제나 기뻐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그것은 그에게 손해를 끼치는 바 이는 그가 주의 말씀의 가치를 인식하지 못하며 

또한 영적 생애에 있어서 경작하는 과정에 자신을 복종시키지 않는 까닭이다.


범하여진 죄는 회개할 것이 없는 참다운 회개가 필요 된다. 

그러나 굳은 땅이 기경되고 완고한 흙덩어리가 부서질 때에 귀중한 씨는 심어 질 수 있으며 그 흙은 잘 골라 질 수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혹독한 훈련을 표상한다. 


종종 반역의 정신이 나타나나 하나님의 훈련은 굳은 의지가 부서져서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계속되어야만 한다.

자연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영적 사물에 있어서도 이 일이 행해져야만 한다. 

때때로 영적 수확을 가져오기 위하여 혹독함이 필요 된다. 

씨를 적절히 심지 않고, 땅을 경작함이 없이는 수확의 단을 거둬들일 수 없음이 하나님의 위대한 법칙이다.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 


생애의 모든 죄에서 깨끗함을 받기 위한 충만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자들과 

또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배우기 위하여 성경을 상고하는 모든 이들은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라는 진리의 말씀을 환영할 것이다.(Letter 291, 1903)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요 1:47


나다나엘은 침례 요한이 구주를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리양이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구속주의 외모에서 실망을 느꼈다. 

수고와 궁핍의 표적이 역력한 이 분이 메시야일 수 있을까?…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성격에 관해서는 결정적으로 규정해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무화과나무 아래에 꿇어 엎드려 이 사람이 참으로 메시야인지 하나님께 물었다. 

그가 거기에 있을 때 빌립이 와서…그 말을 한 것이다. 

그러나 나사렛이란 말이 그에게 불신을 일으켜 주었다.

그래서 그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편견에 대하여 그와 논쟁하려 하지 않고 단지 “와 보라”고 말했다. …

우리도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하나님께 탄원하기 위하여 무화과나무 아래로 나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1 기별 414, 415)

그의 불신은 깨끗이 사라지고 확고하고 강하며 지속적인 믿음이 그의 심령을 사로잡았다. 

예수께서는 그 나다나엘의 신뢰하는 믿음을 칭찬하셨다.

오늘날도 나다나엘과 같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한 특별한 진리나 그 진리를 가진 사람들과 접촉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불신에 빠지게 된다. …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공표하면 정직한 영혼들은 보고 듣고 스스로 확신을 가질 것이다. (6 증언 37, 38)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라리”(눅 9:26)


항상 그리스도를 위하여 서라. 


말과 정신과 행동에서 그분의 증인이 되라.. 



그분은 그대를 사랑하신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 있도록 그대에게 풍성한 은총을 나누어주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보혈로 그대를 사셨다. 


그럴진대, 언제,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서라. 


그렇게 한다면 그대가 교제하는 모든 사람에게 최선의 감화를 끼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만일 그대가 누릴 특권인 그리스도와의 달콤한 교제를 유지한다면, 


항상 은혜 안에서 자라나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사랑에서 진보하는 것이 그대의 특권이다. 



명철의 눈을 열어주셔서 그분의 말씀의 귀중한 것들을 분간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겸손하게 믿음의 단순성을 가지고 주님께 구하라. 


그렇게 함으로 그대는 은혜 안에서 자라고, 단순하고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자란다. 


그렇게 되면 그대의 빛은 그대가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쳐나갈 것이다. 



그대의 마음을 구주께 고정시켜라.…

그대의 영적 생활이 가련하고 병들고 무능하게 되지 않게 확실히 하라. 

그리스도인의 말과 본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연약과 우유부단은 원수의 공격을 불러일으킨다. 

영적 성장과 진리와 의의 지식에서 자라나는 데 실패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빈번히 원수에게 정복당할 것이다. (서신 36, 1901년)


그대의 용모가 주님의 기쁨을 반사토록 하라. 


그분의 선하심을 이야기하고 그분의 능력에 대해 말하라. 


그렇게 하면 그대의 빛은 더욱 더 분명하게 빛날 것이다. 


그대의 시련과 실망 그 위로 순결하고 건강한 종교적 생활이 반사되어 나타날 것이다. (서신 121, 1904년)

그리스도와 함께 멍에를 메는 사람의 감화력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날마다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명상하며 생애를 거룩한 본보기에 순응시킨다.…


우리가 예수와 함께 있었다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세상이 알게 되는 것은 

우리의 말과 행실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정신에 의해서이다.…


우리 종교의 참된 성격은…우리가 나타내는 온유한 정신과 친절과 평화에 있다. (서신 34, 1894년)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막 4:28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이가 바로 작은 씨를 만드시고 그 씨에 생명소를 주셨으며 그것의 자라남을 주관하는 법칙을 제정하셨다. 


그리고 비유로 가르친 진리가 당신 자신의 생애 가운데 현실적으로 나타났다. 


그분의 마음으로나 육체로나 식물에 의해 실증된 바의 자라나는 법칙을 친히 따르셨다. …


소년 시절에 그분은 하나의 유순한 소년으로 일하였다. …


자라나시는 각 단계에 있어서 그분은 죄 없는 생애를 사시고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미덕을 갖추어 완전무결하셨다. (실물 78, 79)

씨의 비유는 천연계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여준다. …



씨에는 생명이 있고 땅에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무한하신 능력이 밤낮으로 역사하지 않으면 씨는 아무런 수확도 내지 못할 것이다. …


모든 씨가 싹트고 모든 식물이 자라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다. …



씨가 눈을 뜨는 것은 영적 생애의 시작을 표상하고 곡식의 성장은 그리스도인의 장성에 대한 아름다운 표상이다. 


천연계에 있어서처럼 은혜의 세계에 있어서도 자라남이 없이는 생명이 있을 수 없다. 


그 자라남에는 소리도 없고 눈에도 보이지 않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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