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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그리스도를 성심 성의껏 찾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그분의 선물입니다.그분은 권능의 치료자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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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egw.or.kr     egw  9월 29일 기도력에서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 16:33)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1)고 구주께서 말씀하셨다. '



승리하는 사업은 기쁨이 없는 사업이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아니하다. 


그것은 하늘과 더불어의 교통을 의미한다. 


그대는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있다. 



대는 구하고 받을 수 있다. 


그대는 무력한 심령을 그리스도께 올려놓으면서 신뢰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뜻과 방법들을 이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성과 신성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해 결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누가 시험을 받을 때에 충실하게 설 수 있는지를 입증하기 위하여 시련들을 보내신다. 


그는 우리들이 우리 자신 이외에 있는 한 능력을 신뢰하는지를 보시기 위하여 우리를 시험하는 위치에 데려가신다. 


각 사람은 시련을 통하여 나타나야 할 발견되지 않는 품성의 특성들을 소유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족해하는 자들이 그들의 무력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 심한 시험을 받도록 허락하신다.… 



종종 우리는 우리의 심령이 이기심으로 어두워진 채 고난의 풀무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우리가 혹독한 시험가운데서 인내한다면 거룩한 품성을 반영하면서 나오게 될 것이다. 


고난 가운데서 당신의 목적이 성취되는 때에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시 37:6)라는 당신의 목적이 성취될 것이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막 14:38)… 


그대의 생각과 계획들이 자아를 중심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것들을 감시하라.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친 피로 사신 영혼들을 감시하라. 


그들에게 있는 선을 행할 수 있는 기회들을 주시리라(MS 126, 1907)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아 4:15)


개인적 접촉과 교제를 통하여 복음의 구원하는 능력이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그들은 단체로서가 아니요 개인적으로 구원을 얻는다. 

개인적 감화는 능력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고상하게 하신 곳을 높이고 올바른 원칙을 알리고 세상의부패가 번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감화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만 나누어주실 수 있는 은혜를 유포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열렬한 신앙과 사랑으로 연합된 순결한 모본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생애와 품성을 향상시키고 부드럽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마음은 증발하는 연못이나 그 저장물을 잃는 터진 웅덩이와 같지 아니하다. 

이것은 마르지 않는 샘에서 흘러나오는 산의 냇물, 

그 맑고 빛나는 물이 바위에서 바위로 흘러내려 피로한 사람들과 목마른 자들과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소생시키는 산수와 같다. 

이것은 끊임없이 흐르고 흘러내려감에 따라 점점 깊고 넓어져서 마침내 그 생기를 주는 물이 온 세계에 퍼지는 강과 같다. 

참 하나님의 자녀도 그렇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그 자체가 생기와 널리 퍼지는 원칙과, 활력 있고 활동적인 영적 힘임을 나타낸다.


진리와 사랑의 하늘 감화에 심령이 열릴 때에 

이 원칙들은 다시 사막에서 샘처럼 흘러, 지금은 열매를 맺지 못하고 기근이 있는 곳에 풍성한 결실을 가져오게 할 것이다.

성경 진리의 지식을 통하여 깨끗하고 성화된 사람들이 영혼 구원 사업에 종사할 때에 과연 그들은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날마다 은혜와 지식의 무진장한 샘에서 마실 때에 

그들은 저희 마음이 주님의 성령으로 넘쳐흐르고 그들의 무아의 봉사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육체적, 지적, 영적으로 이득을 얻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피로한 사람이 소생하고 병자가 건강을 회복하고 죄짐을 진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다. 


멀리 떨어진 지방에서도, 마음으로 죄를 섬기다가 의를 위하여 봉사하는 데로 돌아온 사람들의 입술에서 나오는 감사가 들린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인 까닭이다. (선지, 232, 234)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11


시간의 달란트는 귀중하다. 

그것은 매일 우리에게 위탁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회계하도록 부름을 받게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생명을 연장하고 하나님의 생명과 같은 수한(壽限)을 누리고자 할 것 같으면, 우리는 정신에 순수한 음식을 제공해야 한다. 


선한 일에 사용되었어야 할 어떤 시간도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적 시금석이시다. 

그분은 아버지를 계시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지력을 희미하게 하거나 흐리게 하는 것은 어떤 것도 식물로서 뇌에 공급되어서는 안 된다.

마음의 밭을 경작함에 있어서 어떤 부주의한 무관심도 나타나서는 안 된다. -1898년, 원고, 15.

지식과 지능을 습득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의 성공 여부는 우리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렸다.

지능을 계발시키는 데 있어서는 빈곤이나 신분의 비천 또는 역경으로 인하여 지장을 받을 필요는 없다.


일 분 일 초라도 소중히 여겨라. 

아무런 목적도 없는 이야기로 허비되는 시간이나, 

아침에 침상에서 공연히 지내 버리는 시간이나, 

전차나 기차로 여행하는 시간, 

대합실에서 기다리는 시간, 

식사를 기다리는 시간, 

약속한 시간에 늦는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

이런 부스러기 시간을 잘 붙잡아, 독서와 연구와 사색하는 일에 이용한다고 하면, 

어떠한 큰일을 성취하게 될는지! 


확고한 목적과 불요불굴의 근면함과 주의 깊은 시간의 절약이 

지식과 지능을 습득하게 해서 

그것이 그들로 하여금 어떠한 영향력 있고 유용한 지위라도 차지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해줄 것이다.

질서, 치밀, 민첩의 습관을 배우는 일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어떤 일정한 일을 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요구되는지를 먼저 결정하고 

그 결정한 시간 안으로 그 일을 마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실물교훈, 343-34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패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거민들과 다투고 계신다. 

사단은 그들에게 빛의 천사로 가장하고 다가왔으며, 그의 지시 아래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우상 숭배의 산당에서 절하며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긴다. … 


인간 가족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으며, 그분의 뜻에 반항했다. 


이 율법은 세상에게 하나님의 품성의 속성들을 계시해 주며, 그것의 일점 일획도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류에게 적응하기 위해 변경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과 공의가 그분의 보좌의 기초이며, 그분의 사랑의 증거라는 명백한 증거를 주셨다. 



그분은 범죄의 형벌을 집행하시지만 그 형벌이 대속주, 그분의 독생자에게 떨어지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분의 율법을 폐지시킬 수 없으셨는데, 

이는 그렇게 하는 것은 범죄를 영속시키고 온 세상을 사단의 통제 아래 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분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다.

이 놀라운 선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심의 깊이가 드러났다. 


그분은 죄된 사람들을 이처럼 사랑하시사 

그들이 순종을 보여줄 또 다른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그분의 아들 안에서 그분에게 아들을 주셨으며, 

이런 선물을 통하여 죄인들이 그들의 충성심을 회복할 길이 마련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고 부르고 계신다. 

그리스도 자신은 율법의 시여자의 정죄 아래 서시면서, 죄인에게서 죄책을 들어 올리신다. 

그분은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사단의 비난이 거짓으로 입증될 수 있도록 

인성을 쓰시고 율법을 실천하는 생애를 사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인성을 쓰시고 그 율법을 지키셨으며, 바리새인들로부터 거짓된 비난을 받으셨을 때에 

그들에게로 돌아서서 권위과 권세 있는 음성으로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분은 하늘의 우주에게, 타락하지 않은 세계들에게, 그리고 죄된 사람들에게 

인류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대비책을 마련해 주셨다는 것과 

그리스도의 입혀 주시는 의로 말미암마 믿음으로 그분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이 

율법을 지킴으로써 그들의 충성심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오셨다. 


회개하는 죄인이 그들의 개인의 구주로 그리스도를 붙잡을 때, 그들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원고 63, 1897)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하였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좀 더 가까이 이끄시기 위하여 시련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시편 기자는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견디시는도다” (시 34:19)고 말하였다. 


그는 우리들이 구름 아래 있기를 원치 않으시며 고민하는 마음으로 나아가기를 원치 않으신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 가운데서 가시들과 엉겅퀴들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정원으로 들어가서 그의 허락의 백합화와 장미와 향기 나는 패랭이꽃을 꺾어야 한다. 


그들의 경험 가운데 난관들만을 바라보는 자들은 의심과 낙담을 이야기 할 것인바 

이는 그들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는 까닭이다. 


우리의 마음은 우리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에 집착시켜야 한다.…



우리가 의심과 실망을 경험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을 중지하셨다는 표적은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조력자시며 

그 안에서 우리가 사랑과 위로함을 볼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고난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우리에게 이른다. 



우리는 은혜를 받음으로써 승리자가 되어 하나님의 생명의 수한과 같은 생명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이러한 경험을 가짐으로써 고난이 우리에게 임할 때에 우리는 믿음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



믿음의 손으로써 하나님의 허락들을 붙들고 유리한 장소에 서도록 하라. 


그때에 그대는 

사단이 

그대에게 가까이 와서 

“그대가 죄를 범하였으므로 허락들을 주장할 수 없는 까닭에 하나님이 그대를 도울 수 없다”고 말할 수 없는 위치에 놓이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늘에서 성도가 되기를 원한다면 지상에서 성도가 되어야 한다.(Letter 97, 1895)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마 10:28


침례 요한의 운명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매우 의아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왜 요한이 감방에서 신음하다가 죽도록 버림을 받았어야 하였던가 하고 저들은 의문을 일으킨다. 

우리 인간적인 통찰력으로는 이 어두운 섭리의 신비를 투시할 수 없다. 


그러나 요한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할 때에 그것이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흔들리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모두 희생의 관을 쓸 것이다. …


예수께서는 당신의 종을 구해내시려고 개입하지 아니하였다. 


예수께서는 요한이 그 시험을 견디어 낼 것을 아셨다. …



그러나 후년에 감방에서 죽음을 당할 수다한 사람들을 위하여 요한은 순교의 잔을 마시어야 하였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외로운 옥중에서 신음하고 칼이나 고문대나 나무다발에 죽임을 당하여 

겉으로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한 것처럼 보일 때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 충성을 증거하셨던 침례 요한도 그와 유사한 경험을 겪었다는 생각에 저들의 마음이 얼마나 든든함을 느낄 것인가!...

죽음 그 자체는 다만 요한을 영원히 시험의 권세의 피안(彼岸)에 두게 한 것에 지나지 아니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만일 처음부터 종말을 볼 수 있고 

하나님과의 동역자로서 저들이 성취하고 있는 그 목적의 영광을 식별할 수 있다면 

저들이 인도 받기를 선택하는 그 길 이외의 길로는 결코 저들을 인도하지 아니하신다. (1 소망 306-308)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배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잠 2:6, 7)


각 시대마다 사람들은 호기심에 이끌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찾아 나섰다. 


흔히 그들은 매우 필수적인 열매를 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연구 끝에 내린 솔로몬의 결론처럼, 그들은 참된 성결의 과학과 대조해 볼 때 그것이 한결 같이 헛되고 허무한 것임을 발견한다. 

(청년 지도자, 1898년 10월 27일자)


불신자의 펜에서 흘러나온 책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서재에 꽂혀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마음의 양식으로 삼기보다는 난로의 불쏘시개로 쓰는 편이 더 낫다.


불신자의 책은 많은 영혼을 파멸시키는 원인이 되어왔다. 


많은 사람들은 사단이 영감을 불어넣은 이 책들을 연구했으며, 그들은 진리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혼란스럽게 되었다. 


사단은 불신자의 책을 펼치는 사람 곁에 서서 이런 책을 정독하는 사람의 정신을 교육시킬 것이다. 


사단이 영혼을 너무도 마력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에 그 얼빠짐을 깨뜨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어떤 신자도 그의 산이 요동치 않고 든든히 서 있으며, 자신은 결코 신앙의 입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우쭐대지 않도록 하라.

(청년 지도자, 1893년 11월 23일자)

우리는 불신의 포위를 받고 있다.

우리가 숨쉬는 대기 자체가 불신으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인다. 


오로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서만 우리는 그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문둥병을 피하듯이 불신자들의 책들을 피해야 한다.


나는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읽는 일에 조심하라. 


정신이 부적절한 독서 경향으로 그릇되게 향하는 한, 그대가 하나님의 진리를 끊임없이 명상의 주제로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성경 지식이 어떤 때보다 더 중요한 때가 있다고 한다면 그 때는 지금이다.


나는 노소 모두에게, ‘성경을 그대의 교과서로 삼아라. 여기서 그대는 참된 품성의 표준을 발견할 것이다’라고 호소한다. 

(영문 시조, 1887년 5월 19일자)



귀중한 시각의 달란트를 그대에게 유익을 주지 못할…것을 읽는 데 바치지 말라.…


마음과 혼과 몸의 능력들을 그분의 보혈로 그대를 사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성별해야 한다. (서신 339, 19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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