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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주민들은 그대가 이 시험들을 통과하기를 열렬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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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egw.or.kr       egw  9월 28일 기도력에서 


“또 여러 형제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 12:11)


구주께서는 깊은 흥미를 가지시고 인간 가족을 살피신다. 


그가 아버지께 올라가셨을 때에 그의 수종자들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않는 채 그대로 버려두시지는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있어서 그들을 위해 승리하셨으므로 그들도 그의 능력으로 승리해야만 한다. 



모든 사람들은 대적해야할 시련들이 있다. 


우리에게는 투쟁해야 할 타고난 옛 성질이 있다. 


그러나 이 성질들은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유리한 지점에 서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되어야 한다.


영광의 면류관은 어린양의 피와 그들의 증거의 말씀으로 시험을 이기는 모든 사람의 이마에 놓일 것이다. 


우리의 증거에 대한 이 말씀은 큰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온 하늘 우주와 이 세상보다 더 귀중한 것이나 

말과 행위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며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인정하지 않는 영혼은 자신을 패배의 편에 놓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대의 조력자시다. 


그대의 품성의 특징들에 대하여 예수님만큼 잘 이해할 분은 아무도 없다. 

그는 그대를 감시하신다. 


그대가 즐겨 배우고자 한다면 그대로 하여금 그대를 위한 하나님의 모든 뜻을 능히 성취시키게 하는 선한 감화가 그대 주위를 에워쌀 것이다. 



오래지 않아 큰 검열이 있게 될 것인바 그때에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시키고자 애쓰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다음의 시금석을 통과해야만 할 것이다. 


그대는 다른 사람이 안전하게 따라올 수 있는 모범을 보였는가. 


그대는 설명해야 할 것처럼 영혼들을 감시하였는가. 



하늘의 주민들은 그대가 이 시험들을 통과하기를 열렬히 바라고 있다.(MS 11, 1911)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니라”(대하 32:36)


후회로 충만한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의 거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저희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악의 종자는 이미 심어졌으므로 때가 지나면 자라나 폐허와 비애를 거둘 것이다. 


그의 남은 세월 동안 유다 왕은 과거를 속하고 그가 섬긴 하나님의 성호를 영화롭게 하려는 그의 확고부동한 목적의 까닭에 

큰 번영을 누릴 수 있었으나 그의 믿음은 격렬하게 연단을 받아야 하였고 

그는 여호와를 완전히 의지함으로만 그의 파멸과 그의 백성의 완전한 멸망을 음모하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을 이길 수 있음을 배워야 하였다. 

사자들이 내방하였을 때에 그의 임무에 충실함을 증거하기에 실패한 히스기야의 이야기에는 모든 사람을 위한 중대한 교훈이 충만하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의 경험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자애와, 

비할 데 없이 깊은 구세주의 사랑에 대한 귀중한 장들을 말할 필요가 있다. 


정신과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할 때에는 영적 생애로 들어가는 것을 전하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사상, 고상한 포부, 진리에 대한 분명한 지각, 이기심 없는 목적, 경건과 신성에 대한 열망이 마음의 보물의 성격을 나타내는 말로 표현될 것이다. 

날마다의 생애는 우리가 져야 할 책임들을 실어온다. 

날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우리가 교제하는 자들에게 감명을 끼치고 있다. 

우리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고 우리의 발걸음을 주의 깊게 지켜야 할 필요가 얼마나 큰가! '


한 번의 무모한 움직임, 한 번의 경솔한 발걸음, 어떤 강한 유혹의 밀려오는 파도들은 영혼을 타락의 길로 휩쓸어갈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인간의 마음에 심은 사상들을 거두어들일 수 없다. 

만일 그 사상들이 악한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멈출 능력이 없는 악의 조수, 즉 환경이란 열차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참된 추종자는 접촉하는 모든 사람의 선한 목적을 굳게 한다. (선지, 347, 348)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시 69:30


음성은 놀라운 축복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하고, 하늘로 가는 길의 고난에 대하여 불평함으로 마귀를 찬양하지 않도록 하자.
만일, 불평을 하고 싶거든, 그것을 내뱉기 전에 죽여 버려라. 


그리고 그대의 목소리와 혀를 교육시켜라. 

그러면, 아침에 눈을 뜰 때, 맨 첫 마디는 “내가 주께 감사하오니 이는 주께서 밤 동안 나를 지키심이라. 

내 속에 있는 평안을 인하여 내가 예수 그리스도 당신께 감사하나이다”라는 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아침과 정오와 저녁에 감사의 예물을 드려라. 그것은 달콤한 향기처럼 하나님 앞에 상달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보혜사를 우리에게 보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보혜사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이다. 

성령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표자이다. 

그것은 우리 곁에 서서 당신의 공로와 더불어 우리의 탄원을 향기로운 예물로 하늘 아버지 앞에 제시하는 우리의 중보자시다. 


그분께서는 거기서 가장 겸손한 성도의 탄원을 받으신다. 

그분께서는 그대가 얼마나 많은 돈을 소유하고 있는지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지 묻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께 자신의 탄원을 아뢰는 가장 겸손한 바로 그 성도와 그의 감사의 예물은 그분의 은혜의 부요함과 더불어 향기가 된다. 


그리하여,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그대의 예물로 받으시며, 축복이 넘치는 은혜로써 그대에게 이르러 온다.


그대가 감사의 예물을 바칠 때,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며, 그분께서는 더 많은 것을 그대에게 주신다. 


그대가 감사를 돌릴 때, 그분께서는 더 많은 기쁨을 선사하신다. 


우리는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불평과 불만을 터뜨리고 결점을 찾는 일을 잊어버리며, 

그분의 자녀들 상호간에 예의바르고 사랑스러우며 동정적인 말과 부드러운 친절을 나타내도록 혀를 길들이는 일을 여기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1894년, 원고, 43.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흘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시 69:20)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그분의 살은 채찍에 맞아 찢어졌고, 

그처럼 자주 축복하기 위하여 펴시던 그분의 손은 나무 막대기에 못박히셨다. 

사랑의 봉사로 피곤할 줄 모르던 그분의 발도 나무 기둥에 못박히셨고, 그분의 고귀하신 머리는 가시관에 찔렸다. 

그분의 떨리는 입술은 비통의 부르짖음을 발했다. 

그분이 참으신 모든 것 곧 그분의 머리와 손과 발에서 흘러내린 핏방울과 

그분의 몸을 괴롭힌 고통과, 아버지께서 얼굴을 숨기심으로 그분의 영혼을 가득 채웠던 말할 수 없는 고민은 인류의 각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와 같은 죄악의 짐을 지기로 동의하신 것은 다 그대를 위함이다.


그리고 그대를 위해서 그분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낙원의 문을 여신다고 선언한다. (시대의 소망 755)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당하심으로 예언은 성취되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여러 세기 전에 구주께서는 당신이 어떠한 취급을 받으실지에 대하여 미리 예언하셨다. 


그분은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옷에 대한 예언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분의 친구들이나 원수들의 조언이나 관여 없이 성취되었다.

그리스도의 옷은 그분을 십자가에 매단 군병들에게 주어졌다 

그리스도께서는 군사들이 자기 옷을 나누어 가지면서 다투는 소리를 들으셨다. 

그분의 속옷은 이은 데가 없이 통으로 짠 것이었으므로 그들은 말하기를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고 하였다. …

십자가에 달려 죽음의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는 고통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기 위하여 마취약을 주는 것이 허용되어 있었다. 

예수님께도 그 마취약이 주어졌으나 맛보시고 그것을 거절하셨다. 


그분은 당신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어떤 것도 받지 않으셨다 

그분의 믿음은 하나님을 굳게 붙잡아야만 하였다.

그것이 그분의 유일한 힘이었다. 


그분의 감각을 흐리게 하는 것은 사단을 유리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예수님의 원수들은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분에게 그들의 분노를 쏟아 부었다. 

제사장들과 관원들과 서기관들은 폭도와 연합하여 막 숨을 거두려는 구주를 조롱하였다. 

침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와 변화산에서 변형되실 때에 그리스도를 당신의 아들이라고 선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그리스도께서 배반당하시기 바로 전에 또다시 그분의 신성을 증거하는 아버지의 말씀이 있었으나 지금은 하늘로부터 아무런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스도께 유리한 어떤 증언도 들리지 않았다. 그분은 홀로 악인에게서 모욕과 조롱을 받으셨다. (시대의 소망 746)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벧전 1:7).


우리가 비록 불로써 연단함을 받는다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으며 온전히 의지하자…


우리는 그의 사랑을 명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할 수 있고 또한 그를 사랑할 수 있는 우리의 용량(容量)을 더욱 증가시킬 수 있다. 


그대가 홀로 걸어가든가 일할 때에 구주와 더불어 이야기하는 습관을 배양하라. 


예수님이 그대를 사랑하고 그대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까닭에 감사와 찬송이 하나님께 상달되게 하라.…

주 예수께서는 우리를 위한 희생물로서 자신을 주시었다. 


그는 우리를 아시며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신다. 


시련은 잠깐 동안만 지속된다. 


믿음으로써 그대의 마음을 격려하라. 



우리는 시련을 형벌로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는 죄를 짊어지시는 자이시다. 

그는 우리의 구속자이시며 모든 더러움에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기를 원하신다. 

그는 우리 속에 의와 화평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가운데 우리로 거룩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도록 뜻하셨다. 


우리가 시련을 견디도록 부름을 받은 그 사실만 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속에서 그가 계발시키기를 원하시는 어떤 무엇을 보셨다는 증거이다. 

만일 그가 자기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무엇을 우리 속에서 보시지 않았다면 그는 우리를 세련시키는데 시간을 소비하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가시덤불을 전정하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가치 없는 보석을 용광로에 던지시지 않으신다. 


그가 시험하는 것은 다 귀중한 보석이다. 

그는 세련시키는 과정이 예수님의 친 형상을 반영시키게 할 것을 아신다.…


그는 그대를 사랑하신다.(Letter 113, 1898)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빌 1:29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전파한 제일인자임과 동시에 고난을 당한 제일인자이기도 하였다. …


요한은 이제 토굴 감방 벽속에 갇히는바 되었다. …

요한의 생애는 적극적인 활동의 생활이었으므로 그의 옥중 생활의 음침함과 무위(無爲)함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억눌렀다. 


변함없는 여러 주일이 지남에 따라서 낙담과 의심의 그림자가 그를 덮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저들은 감옥에 접근하도록 허용되었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의 사업에 대한 소식을 그에게 전하고 백성들이 어떻게 예수의 주위에 모여들고 있는지를 말하였다. …

구주의 제자들처럼 침례 요한도 그리스도의 왕국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는 예수께서 다윗의 위를 취하시리라고 예기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구주께서 왕으로서의 권위를 주장하시지 아니하시는 것을 보고 요한은 당황하여 근심하게 되었다. …


그는 버렸어야 할 인간적인 자만과 권력의 높은 지위들을 갈망하였다. …

요한은 자신의 의심과 염려를 자기 동료들과 함께 의논하려 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예수에게 물어보는 기별을 보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이 일을 자기 제자 중 두명에게 위탁하였다. …


그는 자신에게 직접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하였다.

제자들은 그 기별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


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자기가 메시야임을 선언하셨을 뿐 아니라 어떤 모양으로 그의 나라가 세워질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1 소망 289-295)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요구하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즐기느니라”(잠 15:14).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발견되는 교훈들을 이해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경을 제쳐놓고 소설과 신문과 잡지에서 발견되는 천박한 글들을 읽는데 온통 몰두해 있다. (원고 148, 1903)

잘못된 독서의 유해한 습관은 사단이 영혼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의 하나다. 


흥분을 일으키는 이야기들에 온통 사로잡힌 마음은 건실한 독서에 대한 입맛을 다 잃어버린다.…



나는 이런 해로운 습관이 끼치는 악한 영향에 대한 서글픈 예들을 많이 알고 있다.…


이런 종류의 정신적 음식에 입맛이 탐닉할수록 그런 음식을 달라는 요구는 더 커진다. 



술주정뱅이가 술이나 담배를 갈망하듯이, 상상력은 익숙하게 된 자극을 끊임없이 갈망한다. 


그들의 정신적 및 도덕적 능력들은 악화되고 왜곡되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한 흥미와 기도하고 싶은 의욕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주정뱅이나 골초들처럼 정신적, 영적으로 참으로 파멸되었다.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정신적 주정뱅이다. 


그들은 다른 형태의 부절제에 희생된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참으로 소설을 잃지 않겠다는 서약을 할 필요가 있다. (영문 시조, 1887년 5월 19일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에게 가장 좋은 독서 거리를 주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의 모든 방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라.

생명의 떡인 성경을 잘 보이는 곳에 두라.…


정선한, 향상시키는 책들을 식구들 앞에 항상 놓아두라. (오늘의 나의 생애, 89)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독서는 이야기책인 소설처럼 상상력을 매료시키고 정욕에 불을 붙이지는 않지만, 

심령을 부드럽게 하고 진정시키며 애정을 향상시키고 거룩하게 만든다. (일자 미상의 원고, 93)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 청년들의 특권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내게 시력과 청력을 주셨다.

나는 어리석고 천박한 것에 대해서 내 귀를 닫을 것이다. '

나는 진리에 순종하여 자신의 영혼을 거룩하게 해 온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준비하고 계신 집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일에 나를 적합하게 해 줄 저 말씀을 읽을 것이다.

내 음성은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것이다.


내 존재의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 성별될 것이다” (서신 288, 1908년)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니라” 잠 10:22


야곱이 고난 중에 천사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간청하였을 때에 

하늘의 사자도 그의 신앙을 시험하기 위하여 그의 죄를 회상시키시고 그를 피하려고 노력하셨다. 


그러나 야곱도 떨려나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알고 그분의 자비에 자기 자신을 의탁하였다. 


그는 자기가 죄를 회개한 사실을 지적하고 해방시켜 주시기를 탄원하였다. 


자기의 생애를 되돌아 볼 대에 그는 거의 절망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천사를 굳게 붙들고 

절실한 번민의 부르짖음으로 

승리를 얻을 때까지 

간청하였다.


악의 세력과의 저들의 최후 투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할 경험도 이와 같은 것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신앙과 저들의 인내와 저들을 구언하시는 그분의 능력에 대한 저들의 신뢰심을 시험하실 것이다. 


사단은 저들이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위협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저들은 저희 자신들의 결점들에 대하여 깊이 느낄 것이며 저들의 생애를 회고할 때에 저들의 희망은 꺼져갈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큰 것과 자신들의 성실한 회개를 기억하고 

저들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찌할 수 없는 회개하는 죄인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기를 간청할 것이다. 


저희 기도가 즉시 응답을 못 받는다고 하여 저희 믿음이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야곱이 천사를 붙잡는 것처럼 저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을 것이며 

저들의 영혼의 언어는 “당신의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 할 것이다.

야곱의 역사는, 죄에 빠졌다가도 참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들을 그분께서 간과하지 않으시리라는 보증이 된다. 


야곱이 자신의 힘으로 싸워서 얻으려고 하다가 놓쳤던 것을 얻은 것은 자신을 내 맡기고 신뢰하는 신앙으로 말미암았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가 갈망하던 축복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만이 그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의 종에게 가르치셨다. 


말세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이와 같을 것이다. 

우리는 무가치한 가운데서 구주의 공로를 의지해야 한다.

이렇게 하고도 멸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대사화 201-203)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가노라” 빌 3: 14


우리는 모두 상을 받은 경험과 훈장을 달아본 경험이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쾌락만을 구하고 우리 자신의 욕망과 기호만을 만족시키고자 할 것 같으면 우리는 심판과 보상의 날에 부족함이 드러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세상에 유익이 되고 

인간에게 축복이 되고자 할 것 같으면 

우리는 “잘 하였도다”라는 축복의 말씀을 주님께로부터 들을 것이다.

우리는 내세를 위하여 생애 해야 한다. 

되는 대로 목적 없이 인생을 산다는 것은 매우 불행하다. 

우리는 생애의 목적을 가져야 한다. 


곧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자아를 희생하며 

자아중심적인 사고를 버리고 

이기적인 생각과 자아를 더욱 더 잊도록 도와주시며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영예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생애의 목적이며 

마지막 날에 우리를 위한 답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선을 행하도록 도와주신다. 


우리의 기도가 날마다 하나님께 상달되도록 하자. 

그러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이기심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실 것이다. …

나는 목적을 가지고 살면서 

동료 인간에게 유익과 축복이 되며 저들의 구주께 영예와 영광을 돌리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이며, 

불안과 불만 가운데 이것을 찾아보기도 하고 저것을 시험해 보기도 하면서 

행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항상 실망을 당하여 불평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한 사람은 항상 부족한 가운데 결코 만족 할 줄을 모르는데 그것은 그가 자신만을 위해 생애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을 행하며 생애에서 성실하게 본분을 다하는 것이 그대의 목적이 되도록 하라.

성급함과 흥분이 만연되고 있다. 

사람들은 저들의 자본을 채권이나 증권에 열렬하게 투자하여 하루 만에 부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만족이 없다. 


그들이 주님의 청지기임을 생각하고 

주님의 자본을 취급하며, 

장차 그들이 그들의 청지기 직분에 대하여 회계하여야 할 것을 생각하면서 

돈을 사용할 때 돈은 축복이 된다(서신 17. 1872).




“그들은 밤중 순식간에 죽나니 백성은 떨며 없어지고 세력 있는 자도 사람의 손을 대지 않고 제함을 당하느니라” (욥 34:20)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활동으로부터 구원할 기회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때에는 언제나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시기 위해 극단책을 택하셨다. (증언 5권 714)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여 그 권능을 나타내시는 것은 한 밤중이다. 


갑자기 태양은 나타나서 혁혁히 빛나고 징조와 기적들은 연속하여 일어난다. 


의인들은 이것들이 그들의 구원의 표임을 깨닫고 엄숙히 기쁨을 느끼지마는 악한 자들은 그 광경을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바라볼 것이다. 

만상은 모두 그 진로를 거스리는 것 같다. 

시냇물은 흐르기를 그친다. 검은 구름은 솟아올라 서로 충돌한다. 

그러나 이렇게 암담한 광경 가운데서 

문득 장엄하고 형용할 수 없는 한 줄기의 영광이 방사되며 거기서 “되었다”(계 16:17)하는 많은 물소리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다.

(각 시대의 대쟁투 636)

하늘의 권능들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흔들릴 것이다. 

그 때 해와 달과 별들이 제 자리에서 옮겨질 것이다. 

그들은 없어지지는 않고 하나님의 음성으로 흔들릴 것이다. 

어둡고 무거운 구름들이 일어나 서로 충돌하였다. 

대기층은 갈라져 물러나갔다.

그 때 우리는 오리온좌의 열려진 구멍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이 울려 나오는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초기 41)

사람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에 개국 이래로 없던 낙담과 환난 가운데 빠지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가운데서 고통을 당할 것이다. 

하늘의 구름들이 서로 충돌할 것이며 흑암이 있을 것이다. 

그 때 하늘에서 음성이 울려 나오고 구름이 종이 축이 말리는 것처럼 말리며 인자의 밝고 뚜렷한 징조가 나타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구름의 의미를 안다. (원고 81. 1886)

과연 144,000은 승리하였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초기 37)

하나님의 목소리가 그의 백성을 사로잡힘에서 돌이키실 때 인생의 큰 싸움에서 실패한 자들은 무서운 각성을 할 것이다. (각 시대의 대쟁투 654)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사 40 : 3).


그대는 마음과 생활과 품성에서 거룩한 진리의 풍족한 능력을 느끼는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대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확신이 있는가? 

그대는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범죄로 인한 공허감으로 삶에 투쟁이 일지 않는가? 

그대는 친구들과 이웃을 위해 하나님께 자주 탄원하는가? 

그대가 하나님과 화평하고 모든 것을 단에 바친다면 영혼 구원의 직무에 적합하다고 보아도 된다.

진보하는 사업과 연관하여 현대진리와 놀라운 섭리에 대한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위한 어떤 계획을 세울 때 

먼저 우리가 드높이길 원하는 그분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리자.


또한 우리가 방문하려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존전으로 한 사람씩 이끌도록 간절히 기도를 드리자. 

주님은 우리의 생각과 목적을 아시며, 어떻게 우리를 용해할지를 아신다.

불과 같은 성령께서 완고한 우리 마음을 어떻게 녹이실는지! 

그분께서 사랑과 부드러움으로 어떻게 영혼을 채우실는지! 

어떻게 그분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를 주시며, 영혼을 위한 일에 적합한 사람으로 우리를 꼴 지으실는지…. 

압도하는 은혜의 능력을 오늘날 교회 전체가 경험해야 한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에게 하시는 그분의 권면에 우리가 귀 기울인다면 이를 경험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훈을 아름답게 하는 것을 배운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분명히 알 수 있으리라.

특별한 선교 사업에 주의를 기울이는 모두에게 내가 감히 말한다. 

부지런히 노력하라. 

성령의 지도하심으로 살라. 

매일 그리스도인 경험을 추가하라. 

특별한 재능을 지닌 자들에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해 일하게 하라. 

멸망해가는 영혼들을 부지런히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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