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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늘 가나안의 언어를 말하고 시온의 노래를 부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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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egw.or.kr -9월 27일 기도력에서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5)


그대의 말은 그대의 품성을 재는 자가 된다. 


말을 골라 사용하는 일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이런 재능을 올바르게 사용할 경우 선을 위한 큰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있는 책망과 격려에 마음을 쏟다보면 

그분은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어서 힘을 얻게 하신다. 


이리하여 강건하게 된 이들은 머리를 아래로 숙이고 걷지 않을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 사 그의 사랑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노소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 하나님의 왕국에서 변화된 이들의 입에서 나온 말 속에서 회심하는 것을 배우지 않으려는가? 


하늘 아버지께서 들으시고 기뻐하시는 자들의 말처럼 우리의 말도 그렇게 되도록 하지 않으려는가?

그리스도인이라 주장하는 이들처럼 말로써 우리의 고백의 진실성을 드러내야 할 엄숙한 의무가 우리에게도 있다. 


혀는 몸의 작은 지체이나 마음이 정결하다면 그 작은 혀가 선한 일을 얼마나 많이 하던가! 



마음에 선한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그 마음속에는 그리스도와 같은 부드러움과 동정심과 예의 바름 등이 들어 있고 그런 것들은 입 밖에 내놓은 말과 실행한 행동으로 드러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비치는 빛은 우리의 안내자이다. 


말하는 재능을 잘못 사용한 것만큼 교회를 약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우리가 한 일의 특색은 우리가 한 말에 드러난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와 일치될 경우,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완전케 함으로써 우리가 그분께 바쳐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영혼과 몸과 심령을 그분께 드리면 그분께서는 기꺼이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 속에서 일하신다. (R & H, 1898. 1. 18)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고전 16:13)


그리스도인의 직무란 무위도식하는 사람을 위한 사업이 아님을 모든 사람은 명심하라. 


하나님께서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일을 행하는 사람들을 부르신다. 


사단과 더불어 회견하지 말고 “기록하였으되”라는 믿음으로 그를 대적하라.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거짓 없는 믿음만이 우리 행동의 기초가 될 수 있으며 

또한 깨끗하고 정결한 모범으로 활동적이며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롬 12:11)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 

이때에 상업적 모든 거래는 성경의 원칙 위에서 행하여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내 안에 거하라는 복된 초청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지울 수 없이 새겨질 때까지 누차 반복하기를 원하는 바이다. 


이 말씀을 읽고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라는 빛 가운데서 이 말씀을 명상하라. 


“안에 거한다”는 이 말씀의 의미와 교훈을 충분히 배우며 이 말씀의 주장과 이 말씀의 허락이 무엇임을 충분히 알 때까지 기도하라.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성령께서는 

당신의 요구가 망각되지 않고 등한시되지 않고 모든 것이 기억되게 하기 위하여 지금 우리의 세상에 거하고 계시다. 


그 말씀을 읽고 기도하라.


나약한 방법으로 구주께 나오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침례를 받았으나 품성의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날마다 품성의 완전함 가운데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라고 우리를 초청하는 바이다. 


그들이 이것을 행하는 때에 완전한 순종을 통하여서만 이르러 올 수 있는 안식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내가 그대에게 경고하는바 영계(靈界)와 이 세상 사이에 있는 중립적 노선 가운데 정착하고 있는지 조심하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MS 194, 1898)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잠 15:23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개인적인 노력의 결핍으로 영혼들은 죽어가고 있다.

매일 하나님께 헌신한 모든 자들을 통하여, 신앙의 밝고 유쾌한 측면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것처럼 보이는 시련들에 대하여 슬프게 말함으로 우리 주님께 불명예를 돌려서는 안 된다. 


모든 시련들을 교육자로서 받아들일 것 같으면, 기쁨을 가져 오게 될 것이다. 



모든 신앙 생애는 선한 말과 행위로써 향상되고, 고양되며, 고상해지고 향기롭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영혼들이 구주의 돌보시는 능력 안에서 승리하기를 바라신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은혜로운 축복들을 통해서, 

우리는 무한한 사랑과, 자기의 고집 센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능가하는 부드러운 동정심에 대하여 무수한 증거들을 식별하게 될 것이다. 


십자가의 빛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을 연구할 때, 우리는 자비와 친절과 용서와 공평과 정의가 뒤섞여 있음을 보게 된다. 


요한의 말을 빌어서, 우리는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라고 부르짖는다.


우리는 사람을 하나님께, 

그리고 하나님을 사람에게 화목시키기 위하여 당하신 고난의 표적을 손과 발과 옆구리에 가지신 한 분을 하나님의 보좌 가운데서 본다. 


비할 데 없는 자비가,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면서도 당신의 아들의 공로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께로 영접하시는 무한하신 하늘 아버지를 우리에게 계시한다. 



불행과 절망만을 으르대던 복수의 구름이 십자가에서 반사되는 빛을 통해서 


“살라, 죄인이여 살라. 너희 회개하고 믿는 영혼들이여 살라! 내가 속전을 치렀노라”는 하나님의 기록을 반사한다.


우리는 하늘 가나안의 언어를 말하고 시온의 노래를 부르는 법을 배워야 한다. -1905년 3월 7일, 서던 워치맨.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눅 23:33)


하나님의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추방되었다. 


우리의 대속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영문 밖에서 고통을 당하실 것이었다, 


그분은 중죄인들과 살인자들이 처형되는 문 밖에서 죽으셨다. 


“그리스도게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는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이다. (시대의 소망 74)


우리의 대속주요 보증인으로서 그리스도에게 우리 모두의 죄악이 놓여졌다. 


그분은 율법의 정죄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으셨다. 


아담의 모든 자손의 죄가 그분의 마음을 눌렀다. 


불법으로 인하여 생긴 죄에대한 하나님의 불쾌하심 곧 그분의 무서운 진노가 당신의 아들의 영혼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온 생애를 통하여 타락한 세상에 아버지의 자비와 용서하시는 사랑에 대한 좋은 소식을 전했다. 


죄인들의 괴수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 그분의 과제였다. 


그러나 이제 그분은 자신이 지신 죄의 엄청난 무게로 인하여 화해를 나타내는 하나님의얼굴을 볼 수 없었다. 


이 최대의 고민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구주께로부터 얼굴을 돌리심으로 인하여 인간이 결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슬픔이 그분의 마음을 찔렀다. 


이러한 고민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분은 육체적 고통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사단은 맹렬한 유혹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쥐어짜듯이 괴롭혔다. 


구주께서는 무덤의 문을 꿰뚫어 보실 수 없었다. 


그분이 정복자로서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희망이 주어지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자기의 희생을 가납하셨다는 말도 그분에게 들려 오지않았다. 


하나님게서는 죄를 심히 미워하시기 때문에 자기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지나 않을까 하여 두려워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범죄한 인류를 위하여 자비가 더 이상 탄원하지 않게 될 때에 죄인이 느끼게 될 고민을 느끼셨다. 


그분이 마신 잔을 그처럼 쓰게 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것은 

온 인류의 대속자인 그분에게 아버지의 진노가 쏟아지게 만든 죄에 대한 의식이었다. (시대의 소망 753)

표면상으로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 같은 그리스도께서는 무서운 암흑 가운데 인간이 마셔야 할 고통의 잔을 남김없이 마셨다. 


이 무서운 시간 동안 그분은 이제까지 그분에게 주셨던 아버지의 가납하심의 증거에 의지하였다. 


그분은 아버지의 품성을 잘 알고 계셨으며 그분의 공의와 자비와 크신 사랑을 이해하고 계셨다. 


또한 자신이 즐겨 순종하던 그 분을 믿음으로 의지하셨다. 


그분이 순종하는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 아버지의 은총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은 없어졌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승리자가 되셨다. (시대의 소망 756)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시 66:10).


시련을 받지 않은 품성은 의뢰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지혜를 구하고  

또한 환난의 때에 요새(要塞)로 피하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시련을 당해야만 한다. 


하나님에게서 도움과 은혜를 구하는 자만이 유혹을 대적하는데 있어서 성공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에 우리는 우리의 처음 부모들이 정신과 마음을 끄는 많은 유혹들을 직면했던 것과 같은 입장에 서 있다. 



온 하늘은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며 자신을 그의 뜻에 복종시키는지 그렇지 않으면 


타고난 마음의 경향을 따라가며 또한 악한 자의 유혹에 따라가는지를 보기 위하여 열렬한 흥미를 가지고 주시하고 있다.(YI Sep. 26, 1896)


시험으로 인하여 당황하는 자들은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께 나아가라. 


기도하는데 인내심을 가지며 의심하지 말고 깨어 있으라. 


그리하면 성령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작용하사 마음과 정신을 올바른 원칙에 복종케 할 것이다.(YI Sep. 19, 1895).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능으로써 보존함을 받는 자들은 선하고도 귀중한 것들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들은 지각에 넘치는 경험을 얻게 된다. 


유혹을 대적함으로써 그대는 사단과 더불어 동맹하는 것을 거절하게 되며 그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두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하늘의 주민들 앞에 승리자로서 자신을 전개시키는 것이다. 


또한 그대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타나게 된다.…


그대가 성령의 작용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그 비례대로 그대는 하늘의 은혜로써 채움을 받는다. 


그대는 영광을 위한 그릇으로 빚어지고 형성되며 한 통로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통하여 당신의 은혜를 세상에 나타내신다.(YI Sep. 26, 1895)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딛 2:10)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은 

잘 정돈된 삶과 경건한 대화로,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단장으로 우리 구주이신 그리스도의 교리를 단장해야 한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이것을 소유하면 그대는 하나님과 사람 모두에게서 은총을 얻을 것이다.

성급한 말은 영혼들에게 상처를 주고 상하게 하며, 말하는 사람의 영혼에도 매우 깊은 상처를 남긴다.


실수가 없는 분께서 그리스도의 선물인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단장은 매우 큰 가치가 있다고 권위 있게 선언하셨다. 

우리 각자는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여 스스로 그 가치를 발견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든지 간에, 우리가 이런 단장을 하고 있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는 징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존중을 받는다.


이는 우리가 지니고 있는 단장은 그분이 보실 때 매우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고귀한 보물을 얻기 위해 애써야 한다.…



모든 영혼에게 분노를 일으키고 자극시킬 일들이 이르러 올 것이다. 


그대가 하나님의 온전한 통제를 받고 있지 못하다면 이런 일들이 닥칠 때 화를 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온유함은 약이 오른 정신을 진정시키고 혀를 제어하고 존재 전체를 하나님께 복종시킨다. 


그렇게 하여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비난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를 배운다. 



우리는 그릇된 판단을 받을 것이지만,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고귀한 단장은 성급하고 분별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참아 주고 동정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누군가 불쾌한 정신을 나타내면 방심한 심령 속에 걱정이라는 “마귀”를 틀림없이 깨워 일으킬 것이다. 


거룩하지 못한 분노는 강화될 필요가 없고 재갈을 물려야 한다. 


제어되지 않은 인간 본성에 불을 붙이는 것은 작은 불꽃이다.


쟁투를 불러일으킬 말을 하지 않도록 하라. 


악을 행하기보다는 악을 참도록 하라.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 한 모든 사람과 평화스럽게 살려고 요구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삶, 

즉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의 향기가 가득하고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영이 충만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거룩한 포부로 가득 차고, 

그리스도의 형상의 아름다움이 풍성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자. (서신 117, 1899년)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라 함이니”(행 26:16).


아나니아와의 만남에서 바울에게 주어진 엄숙한 고소는 그의 마음에 머물러 점점 무게를 더해갔다. 

그 초청에 응답하여 바울이 처음으로 이 경건한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아나니아는 성령의 영감으로 이와 같이 그에게 말하였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행 22:13~16).

이 말들은 예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을 사로잡을 때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행 26:16~18) 하신 예수 자신의 말씀과도 조화되는 것이었다.

그가 마음속에서 이것들을 명상할 때에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됐다”(엡 1:1)는 부르심의 의미를 더욱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의 부르심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갈 1:1) 것이었다. 


그의 앞에 놓인 사업의 거대함은 

그로 “말의 지혜로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고전 1:27)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듣는 모든 사람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고전 2:4, 5)는 복음을 전하도록 하기 위해서 더 많은 성경 연구를 하게 하였다.―리뷰 앤드 헤랄드, 1911. 3.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침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마 11:11


무엇이 침례 요한을 그처럼 위대하게 만들었는가? 

그는 유대 나라의 교사들이 제시하는 무수한 전통들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위로부터 오는 지혜에 대하여 눈을 떴기 때문이다. (부모 445)

침례 요한은 예루살렘 학교에 있던 그 나라 위인들과 교제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선구자의 높은 부르심에 적합하게 된 것은 아니다. 

그는 인간의 관습과 교리들이 그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하나님과 막힘없는 교통을 할 수 있는 광야로 나아갔다. (FE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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