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간도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주님께서 그를 지켜 주지 않는 한 계속 회심한 상태로 남아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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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7-29)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의사들, 법관들, 제사장들, 관원들, 서기관들, 그리고 신학자들은 못 배우고 천한 이들의 지혜와 능력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 현명한 사람들은 비천한 제자들의 성공에 경탄했고,
그들은 나중에 가서야 제자들이 예수님과 같이 지냈고, 그분으로부터 배웠다는 사실에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것으로 그 기적과 같은 일들을 이해했다.
그들의 품성과 그들이 가르치는 것의 단순함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품성을 닮아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겸손하게 해주시기를 바라기 전에 그대 스스로 겸손해지는 것이 그대의 할 일이다.
하나님의 손은 때때로 인간들을 겸허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무거운 짐을 지우시기도 하시며 당신께서 보시기에 나은 위치로 이끄시려고 무거운 짐을 지우신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날마다 우리 마음을 겸손케 하는 것이 얼마나 좋으랴!
우리는 스스로를 겸손하게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교만해지게 되므로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실 것이다.
그대의 생애는 살아 있는 설교다.
책상머리에서 하는 강의보다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설교인 것이다.
그대는 그대 안에 있는 무아적인 심령과 자아 부정의 인자함과 순결한 헌신을 가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것들은 그대가, 다른 이들이 살아가면서 실천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는 것들이다.
계속해서 영적 지식을 높이고 더욱 더 능률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그대는 그대가 걸어가는 길에 놓여 있는 작은 의무에 있어서도 유익한 습관을 계발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큰일을 하고자 하는 기회들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아주 하찮은 일에 그대 스스로의 성실성을 입증할 최초의 기회를 잡을 필요는 있다.
그리하여 그대는 신뢰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가는 그대의 길을 걸을 수도 있을 것이다. (4증언, 378-380)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
그대의 어려움을 인간에게 가져가지 말고 주님께 가져가라.
그대가 시련을 당하는 때에 다른 사람들이 그대를 동정해주리라 생각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대는 종종 실망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도움을 얻기 위하여 당신께 나오는 자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신다.
그는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오늘 그대에게 말씀하신다.
그는 당신 안에서 그대에게 안식을 주실 것이다.
그에게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예수님께서 그대의 짐을 짊어지실 것을 믿는 가운데 그대의 짐을 지시는 그 거룩한 분에게 가져가서 그분께 맡기라.
축복을 받기 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하는 바 그대 자신을 돕는 일에 그대의 몫을 행하라.
그리스도인 생활의 고생되는 면에 골똘하지 말라.
그대의 시련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말라.…
한마디라도 실망을 주는 말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이러한 말은 사단을 기쁘게 한다.
그리스도의 선량하심과 그의 능력에 대하여 이야기하라.
희망과 신뢰와 용기의 말도 불평의 말처럼 쉽게 발해질 수 있다.
주께서 그대를 버리셨다고 원수가 말하거든
주께서 버리지 않으셨음을 그대가 알고 있다고 그에게 말하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히 13:5)
원수를 내어 쫓으라.
그대는 예수님의 사랑을 의심함으로 주를 욕되게 하지 않겠다고 사단에게 이야기하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즐겨 주시고자 하는 도움에는 제한이 없다.
그는 우리의 생애에 죄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은혜를 가져가도록 우리에게 요청하신다.
갈바리의 십자가로부터 우리에게 자유와 소망과 능력이 이르러 온다.
우리 구주의 능력을 의심함으로 우리 구세주를 욕되게 하지 말자.(RH 1904. 4. 7)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골 4:6
자녀들에게 올바른 언어 습관을 가르쳐 주는 것이 부모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러한 수양에 가장 좋은 학교는 가정 생활이다.
자녀들은 매우 어릴 때부터 저희 부모와 서로간에 존경하고 사랑하는 말을 하도록 배워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온순하고, 참되고, 순결한 말만이 저희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도록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고, 부모 자신이 날마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저희는 저희 자녀들에게 교훈과 모본으로서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딛 2:8)을 하도록 가르쳐 줄 수 있다.
이것이 부모들의 의무 중에 가장 크고 중요한 책임이다.
언어의 재능은 부지런히 수련해야 할 달란트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께 받은 우리의 모든 달란트 가운데 언어의 달란트보다 더 큰 축복이 되는 것은 없다.
우리는 말로써 사람의 마음을 각성시키기도 하고, 설득시키기도 한다.
언어로써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을 올릴 수 있으며, 언어로 다른 사람들에게 구세주의 사랑을 이야기해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선을 위하여 가장 효과적인 것이 되도록 언어를 수련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누구나 다 부지런히 노력함으로써,
남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낭독하며 똑똑하고 거침이 없는 목소리로 분명하게 말하고 깊은 인상을 줄 수 있게 하는 재간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의 우리의 유용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마다, 다른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부요함을 알게 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
언어를 옳게 수련하고 사용하는 일은 그리스도인 활동의 모든 방면에 크게 관계가 되는 일이다.
이것은 가정 생애와 우리가 피차 나누는 교제와도 관계가 있다.
우리는 말할 때에 쾌활하게 말하고, 순결하고 정확한 말과, 친절하고 예절 있는 말을 하도록 습관을 길러야 한다. -실물교훈, 335~337.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눅 22:31, 32)
사단은 인간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 끼어 들고 있다.
그는 인간 대리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의 제안들을 말하도록 만들려고 항상 애쓰고 있다.…
베드로는 자신의 연약함을 얼마나 적게 이해했던가.
그는 그들(제자들)에게,
그분과 그들 모두에게 슬픔과 고난으로 가득찬 미래를 공개하신 그리스도의 엄숙한 말씀을 허지로 돌아가게 노력할 때
그가 가졌던 정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간파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의 정신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의 주님의 배척, 굴욕, 정죄 그리고 죽음의 시련과 시험을 견딜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아셨다.
주님의 경고를 받자
그는,“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가라사대 베드로야 내가 제게 말하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인간 본성이 어떻게 속임을 당할 수 있는지, 어떻게 인간 본성이 그릇된 길로 인도될 수 있는지를 본다.
왜냐하면 사단이 인간 영혼과 예수님 사이에 끼어들도록 허락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권위 있는 어조로 되풀이할 필요가 있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나의 종들이 정복당하지 않도록, 그들이 기만자의 말이 아니라 나의 말을 믿을 수 있도록 나로 그들에게 가까이 가게 하라.
이는 내가 말하는 것은 진리와 의이기 때문이다.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불 가운데서 건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죄를 의식하고 있으며, 마음이 겸비하게 되고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보시고 인정하시며, 그들 스스로는 제거하거나 취소시킬 수 없는 죄에 대한 슬픔을 주목하신다.
그러나 그들이 기도할 때에, 그 기도는 들으신 바 된다.
사단이 그리스도를 저항하기 위하여 곁에 서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는 회개하고 믿는 영혼과 그리스도 사이에 끼어 든다.
그는 믿음의 기를 꺾고 하나님의 말씀을 효력이 없게 만들기 위해 그의 사악한 그림자를 그 영혼 앞에 드리우려고 애쓴다. …
만일 사단이 그 영혼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끼어 든다면, 그리스도의 사랑과 가납하심과 용서가 가려진다.
남녀들은 그들의 기형과 죄를 가릴 의의 두루마기를 준비하려고 끊임없이 애쓸 반면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있는 그대로 그분께 나아와서 그분을 그들의 개인의 구주로 믿기를 원하신다.
자애로운 사랑으로 용서를 베푸시는 아버지께서는 돌아오는 그분의 자녀를 입히실 가장 좋은 두루마기를 꺼내 오신다. (서신 65, 1894)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 35:28).
내가 잉글랜드에 있을 때에 어느 날 큰 시가 행렬이 있었다.
바로 그날은 영국 여왕의 축제일이었다.
모든 사람은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으며 상점의 창문들에는 여왕의 사진으로 가득 찼으며 모든 사람들은 영국 여왕을 칭찬하고 있었다.
만일 우리가 그 상점의 창문들로부터 여왕의 사진들이나 또는 그의 영광에 대한 표식들을 제거해 버리고
그 대신에 예수님의 영광과 존엄하심을 나타내 보일 수 있다면 사람들은 우리를 신앙의 광신자들이라고 취급하지 않았겠는가.
그들은 우리가 신앙을 너무나 멀리까지 보급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께서는 그의 왕복과 영광의 면류관을 벗어버리시지 않으셨는가.
그는 그의 신성을 인성으로 옷 입으시고 사람 대신에 돌아가시기 위하여 우리의 세상에 오시지 않으셨는가.
어찌하여 우리가 이것에 대하여 이야기 하지 않겠는가.
어찌하여 우리가 그의 무한한 사랑에 관하여 숙고하지 않겠는가?
오! 우리가 그리스도를 찬양하기 위하여 우리의 혀가 마비된 것을 벗어버렸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식별하기 위하여 우리의 심령에 임한 영적 마비를 제거해 버렸으면!
우리는 지상에서 주님의 대표자가 되어야 한다.…
그는 그대를 통하여 하늘의 빛을 흑암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주를 안다고 주장하는 그대들, 주의 선하심을 맛보고 보았다고 주장하는 그대들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타내라.
그대를 어두움에서 불러 기이한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자의 영광을 나타내 보이라.…
우리는 거의 본향에 이르렀다.
피곤해진 십자가의 정병들에게 용기를 이야기하자.(RH Feb. 11, 1890)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 1:29
침례 요한이 국민에게 미친 영향은 한 때는 관원들, 제사장들 방백들의 감화보다 더 컸다.
만일 그가 자신이 메시야라고 선언하고 로마에게 항거하는 반란을 일으켰다면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그의 깃발 아래로 뭉쳤을 것이다.
사단은 온갖 수단으로 세상의 정복자들의 야심에 호소하는 것처럼 침례 요한에게도 이러한 자극을 주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능력이 있다는 증거를 안전에 보면서도 그 훌륭한 것으로 하는 매수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는 자기에 집중된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분 곧 예수에게로 향하게 하였다. …
요한의 제자들은 불평하면서 그에게로 와서 말하기를 “랍비여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침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하였다.
사단은 이러한 말을 통하여 요한에게 시험을 가져다주었다.
요한의 사명이 비록 거의 끝나는 것처럼 보였을 지라도 그가 아직도 능히 그리스도의 사업을 방해할 수는 있었던 것이다. …
요한은 선천적으로 인간에게 공통되는 결함과 약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하늘의 사랑에 접촉하자 변화함을 받았다.
그는 이기심과 야심에 물들지 아니한 분위기 속에서 살았으며 시기의 독기에는 초연한 사람이었다. …
요한은 믿음으로 구속주를 바라봄으로 자기희생의 높이에까지 자라났다.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자기 자신에게 이끌려 하지 아니하고 저들의 생각을 높고 높은 수준에 올려 하나님의 어린양을 주시하기에 이르기까지 힘썼다.
요한 자신은 목소리, 곧 광야의 외치는 소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1 소망 231-233)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요일 2:16)
의복에 대한 자랑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아주 심각한 악이다.
그것은 시간과 생각과 돈을 몸을 단장하는 데 쓰도록 만드는 반면에, 하늘의 덕성들을 계발하는 일은 소홀히 하게 만든다.
우리 구주께서 기도와 성경 연구에 쓰도록 당부하신 귀중한 시간들이 외적인 과시를 위하여 불필요하게 의복을 준비하는 데 쓰이고 있다.
(리뷰 앤드 헤랄드, 1958년 3월 20일자)
사단이 그 배후에 서 있다.
그는 사치로 이끄는 유행을 고안해서 자금을 지출하게 하고 있다.
오늘날의 유행들을 만들어 내는 일에 있어서 그는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는 유행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된 시간과 돈은 더 높고 거룩한 목적들에 사용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항상 변화하고 결코 만족을 주지 못하는 유행과 보조를 맞추느라 귀중한 시간이 허비된다.
한 스타일이 소개되자마자 새 스타일들이 고안된다.
그리고 유행을 따르는 사람들이 계속 유행을 따르도록 의복은 새롭게 개조되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지만 두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시간을 낭비하고 세상에게 자신들의 에너지를 거의 다 주고 만다.…
입을 옷을 고를 때 바른 취향을 무시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된다.…
질 나쁜 옷감을 구입하여 돈을 아끼려고 애씀으로는 얻는 것이 없다.
의복이 단순하고 말쑥하고 사치나 과시가 없도록 하라.
유행의 종살이를 떨쳐버리고 나오는 젊은 여성들은 사회에서 광채를 더해주는 사람이 될 것이다.
입는 의복과 태도가 단순하고 허세부리지 않는 여성은 참된 여성의 특징은 도덕적 가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아름다움이 들의 꽃에 비교될 수 있는 의복의 단순성은 얼마나 매력적이며 얼마나 흥미로운가!…
의복에서 단순성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고난당하는 자를 방문할 시간이 없으며, 그들과 함께, 또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준비가 더 잘 갖추어진다.
모든 그리스도인 남녀들의 어깨에는 개인적 경비를 규제하고 줄일 엄숙한 의무가 지워져 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궁핍한 자들을 돕고, 배고픈 자를 먹이고, 벌거벗은 자를 입힐 수 있을 것이다. (리뷰 앤드 헤랄드, 1958년 3월 20일자)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엡 3:20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통하여 은혜와 권능을 나타내시려고 기다리고 계신다.
그러나 그분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당신의 봉사하는 자가 저희 마음을 그분께 항상 복종시키기를 요구하신다.
저들은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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