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한 번씩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종국의 사건들 곧 우주에서 죄와 죄인들을 최종적으로 제거하는 사건에 그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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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 자체뿐 아니라 제사장들의 봉사도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 8:5)의 구실을 해야 하였다. 352
이와 같이 그것은 매우 중대하였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 예표적 봉사의 하나하나에 대하여 매우 분명하고 자세한 지시를 주셨다.
성소의 봉사는 매일의 봉사와 연례적인 봉사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매일의 봉사는 성막의 뜰에 있는 번제단과 성소에서 수행되었고,
연례적인 봉사는 지성소에서 거행되었다.
대제사장 외에는 어떤 사람도 성소의 안쪽 칸을 들여다보아서는 안 되었다.
대제사장도 오직 일년에 단 한 번만 그 곳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것도 몹시 조심스럽고 엄숙하게 준비를 갖춘 후에 들어갈 수 있었다.
대제사장은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존전에 들어갔으며
백성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열심히 간구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엄숙한 침묵으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대제사장은 속죄소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구름 속에서 그와 만나셨다.
그가 보통 때보다 그 곳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백성들은 그들의 죄나 대제사장 자신의 죄로 인하여 그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죽임을 당하지나 않았을까 하는 염려와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매일의 봉사는
조석으로 드리는 번제와
금향단에 향기로운 향을 드리는 일과
개인들의 죄를 위한 특별한 제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외에 또 안식일과 월삭과 특별한 절기를 위하여 드리는 제사가 있었다.
조석마다 일년 된 어린양을 적당한 소제물과 함께 제단 위에서 불살랐다.
이것은 그 민족이 매일 여호와께 헌신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에 끊임없이 의지한다는 것을 상징하였다.
성소의 봉사를 위하여 드려지는 제물은 모두 “흠(이) 없”(출 12:5)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명백하게 명령하셨다.
제사장들은 희생 제물로 가져온 모든 짐승들을 검사하여 흠이 발견되는 것은 모두 거절해야 했다.
“흠 없”는 제물만이 자신을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벧전 1:19)으로 바치시기로 되어 있는 그분의 완전한 순결을 상징할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설명하는 실례로서 이 희생 제물들을 지적하였다.
그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자신들을 바쳐야 하며 될 수 있는 대로 거의 완전한 제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35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보다 못한 것은 무엇이든지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생애의 최선의 봉사를 그분께 드리고자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촉진시켜 주는
율법과 일치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그들의 모든 힘을 경주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제사장이 향을 드릴 때에
매일의 봉사 중
다른 어떤 행위에서 보다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하였다.
성소 내부의 휘장이 건물 천장에까지 닿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속죄소 위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부분적으로 첫째 칸에서도 볼 수 있었다.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분향할 때에 법궤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향연이 올라갈 때에
하나님의 영광은 속죄소 위에 내려와 지성소를 채웠으며
때로는 두 칸을 다 채웠으므로 제사장은 부득불 성막 문에까지 물러서야 하는 일도 있었다.
상징적 봉사에서
제사장이 그가 볼 수 없었던 속죄소를 믿음으로 본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하늘 성소에서 그들을 위하여 탄원하시는 대제사장 그리스도께 지금 저들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이스라엘의 기도와 함께 올라가는 향연은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 곧 그분의 완전한 의를 표상하며
그것은 믿음을 통하여 그분의 백성에게 전가(轉嫁)된다.
그것만이 죄 많은 인간들의 예배가 하나님께 가납될 수 있도록 한다.
지성소의 휘장 앞에는 끊임없는 중보의 제단이 있었다.
성소 앞에는 끊임없는 속죄의 제단이 있었다.
피와 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접근하게 되어 있었는데,
이것들은 크신 중보자를 가리키는 상징들이었다.
그분을 통해서
죄인들은
여호와 앞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으며
그분을 통해서만
자비와 구원이
회개하고 믿는 영혼에게 허락될 수 있다.
제사장들이 조석으로 분향할 시간에 성소에 들어갔을 때
매일 드리는 희생 제물이 바깥뜰에 있는 제단 위에 드려지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이 때는 성막에 모였던 예배자들이 가장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시간이었다.
그들이 제사장의 봉사를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전에
열심히 그들의 마음을 살피고 죄를 자복하는 일을 해야 하였다.
그들은 얼굴을 성소로 향하고 묵상함으로 연합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이 믿음으로
속죄의 희생으로 예표된 약속된 구주의 공로를 굳게 붙잡는 동안
그들의 탄원은 향연과 같이 올라갔다.
조석으로 드리는 제사를 위하여 정해진 시간들은
거룩하게 여겨져서
그 시간은 유대 민족 전체를 통하여 예배를 위한 정한 시간으로 지켜지게 되었다. 354
그리고 그 후에 유대인들이 포로가 되어 먼 지방으로 흩어졌을 때에도
그들은 여전히
그 정한 시간에
그들의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탄원을 올렸다.
이러한 관습은 그리스도인들이 본받아야 할 조석 예배의 표본이 된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에 대한 진정한 정신이 없이 단순히 의식만을 반복하는 것을 정죄하시지만
그들이 범한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필요한 축복을 간구하기 위하여
조석으로 머리 숙이는,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큰 기쁨으로 바라보신다.
진설병은
항상 드리는 제물로서
여호와 앞에 늘 놓여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 그것은 매일 드리는 제물의 일부가 되었다.
그것은 여호와의 면전에 항상 있으므로
“진설병”(차려 놓는 떡)이라고 불렸다(출 25:30 참고).
그 떡은
사람이 영적 양식과 육신의 양식 모두를 주께 의존한다는 것과
또 그리스도의 중보를 통해서만
그것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표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 하늘에서 떡을 내리사 그들을 먹이셨으며
그들은 영적 축복과 육신의 양식을
그분의 관대하심에 계속 의존하고 있었다.
만나와 진설병은 둘 다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항상 계시는 산 떡
곧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분은 친히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요 6:48~51)라고 말씀하셨다.
떡 위에는 유향이 있었다.
매 안식일 있던 떡을 물리고 새 떡을 차려놓을 때에 하나님 앞에 기념물로서 제단 위에서 유향을 태웠다.
매일의 봉사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개인들을 위하여 수행하는 봉사이었다.
회개하는 죄인은
자기의 제물을 성막 문으로 가져와서
그 희생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자기의 죄들을 고백하였다.
이 상징적인 행위에 의하여
죄는 그에게서 흠 없는 제물에게 옮겨갔다.
그는 자기의 손으로 그 짐승을 죽였고
제사장은 그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
죄인이 범한 신성한 율법이 들어 있는 법궤 앞에 있는 휘장 앞에 뿌렸다.
이 의식에 의하여 그 죄는 피를 통하여 상징적으로 성소에 옮겨졌다.
어떤 경우에는 피를 성소에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다.
그럴 때에는 모세가 아론의 아들들에게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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