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께서는 약속하신 것은 모두 지키신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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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egw.or.kr egw 10월 1일 기도력에서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승천하신 후
그리스도께서는 택하신 사자들에 의하여
지상에 있어서의 당신의 사업을 진전시키셨고
그들을 통하여 인간 자녀들에게 말씀하시고
그들의 필요에 봉사하신다.
교회의 머리되신 크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대표자로 일하도록 하나님에게서 임명을 받은 인간들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당신의 사업을 감독하신다.
그분의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말과 교리를 가지고 일하도록 하나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은 이들의 지위는 책임이 무거운 지위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남녀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탄원해야 하며, 저희가 위로부터 지혜와 능력을 받을 때에만 저들은 사명을 성취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은 그들이 돌보도록 위임된 백성들의 영적 수호자들이다.
파수꾼들은 충실하게 범죄의 분명한 결과에 대하여 경고해야 하며 충실히 교회의 이익을 보호하여야 한다.
어느 때라도 그들은 경계를 게을리 할 수 없다.
그들의 일은 전신의 기능을 모두 사용하기를 요구하는 일이다.
나팔의 음조로 그들의 음성은 높이 올라가야 하며, 결코 동요하거나 불확실한 음조를 발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삯을 받으려고 일하는 것이 아니요, 만일 저희가 복음을 전하지 못하면 그들에게 화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달리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헌신의 피로 인치심을 받은 그들은 남녀들을 임박한 멸망에서 구해야 한다.
임마누엘의 피 묻은 깃발 아래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영웅적 노력과 끈기 있는 인내를 요구하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군병은 싸움터의 맨 선두에 단호하게 선다.
원수가 그에게 공격을 가하여 그가 도움을 구하려고 성으로 향할 때와 그가 주께 말씀의 허락을 가져올 때에 그는 그 때의 의무를 위하여 힘을 얻는다.
그는 위에서 오는 능력에 대한 그의 필요를 깨닫는다.
영혼의 힘과 활력을 얻고 마음과 성품에 미치는 세상의 힘을 깨뜨리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말미암는다. (행적, 360-363)
“너희도 산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벧전 2:5)
지상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으로서 그곳은 세상 앞에 거룩한 균형을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
이 건물은 세상의 빛이 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서로 치밀하게 놓인 산돌로써 구성되며 돌과 돌이 서로 들어맞아 확고한 건물을 이루어야만 한다.
이 모든 돌들은 통일한 모양과 면을 갖지는 않았다.
어떤 것들은 크며 어떤 것들은 작다.
그러나 각 사람은 채워져야 할 자신들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그 온 건물 가운데 하나라도 잘못 형성된 돌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하나하나는 완전한 것이다.
각 돌은 산돌로써 빛을 발산한다.
이 돌들의 가치는 그것들이 세상에 반사하는 빛으로 결정된다.
지금이야말로 세상의 채석장으로부터 돌들을 취해내어 하나님의 작업장으로 운반되어 깎고 네모지게하고 닦아서 빛이 비치이도록 할 때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시다.
그는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시대를 위한 크고도 위대한 사업에 있어서 각각 그들의 위치들을 채우도록 바라신다.(RH 1900. 12. 4)
이 세상에서 우리는 선한 사업으로 빛을 비쳐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품성과 사랑의 빛을 반사하신 것처럼 당신의 백성들이 빛을 비추시기를 요구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우리의 모든 생애는 그 놀란 빛으로 환히 타오를 것이다.
우리의 각 부분은 빛이 되어야만 한다.
그때에 우리가 어느 길로 돌이키든지 빛은 우리에게서 남에게 반사되어 나갈 것이다.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그에게는 흑암이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면 우리 안엔 어두움이 없을 것이다.(Letter 43, 1899)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유대인들은 구원의 은혜를 자신의 국가에만 한정된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구원은 햇빛과 같다는 것을 저희에게 보이셨다.
구원은 온 세상에 속한다.
성경상 신앙을 책의 표지 사이나 교회의 벽 안에 한정시킬 것이 아니다.
또한,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가끔 끄집어냈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젖혀 놓을 것도 아니다.
성경상 신앙이란 곧 매일의 생애를 성결하게 하고 모든 사업상 거래와 사교 관계에서 이 신앙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참된 품성은 밖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속에서 밖으로 내뿜는다.
우리가 만일 다른 사람을 의의 길로 향하게 하기를 원한다면, 의의 원칙이 우리 마음에 먼저 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신앙의 고백으로 신앙의 이론을 선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마는 진리의 말씀을 보장하는 것은 실제적인 경건이다.
일관된 생애, 성결한 대화, 요동하지 않는 성실성, 능동적이고 동정이 많은 정신, 경건한 모본,
이런 것들은 빛이 세상에 전하여 들어가게 하는 매개물이다.” -시대의 소망 2권, 19.
태양이 밤의 음산함을 몰아내고 온 세상을 생명으로 깨우치면서 사랑의 사명을 다하는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허물과 죄로 암흑한 가운데 있는 자들 위에 하늘의 빛을 반사하며 각자의 생명을 다하기 위하여 전진할 것이다.
명랑한 아침 햇빛으로 인하여 그 주위에 있는 성들과 촌락들이 다 드러났다.
그 경치는 대단히 보기 좋았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마 5:14, 15).고 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무리의 대부분은 농부요 어부였다.
저들의 초라한 거처는 다만 방 하나이었나니, 거기는 등경 위에 등이 놓여 온 방안을 비추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고 하셨다. -산상 보훈, 39, 40.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마 27:51)
이튿날 성전 뜰은 예배자들로 인산 인해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처럼 착잡한 심정으로 성전 봉사가 행해진 적은 일찍이 없었다.
나팔과 악기들과 찬양대의 노래는 예전처럼 우렁차고 또렷했지만, 모든 행사에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앞서 발생한 그 이상한 사건에 관하여 물어보았다.
지금까지 지성소는 무단 침입을 못하도록 항상 가장 거룩하게 지켜져 왔었다. …
지성소에는 일 년에 단 한 번밖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그것도 오로지 대제사장만 들어갔다.
그러나 이제 많은 사람들의 얼굴에 호기심이 뒤섞인 공포감이 역력했다.
왜냐하면 지성소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열려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신 바로 그 순간
순수한 세마포로 짜여지고 무늬들이 새겨지고 홍색, 자색실로 수놓아진 무거운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
여호와께서 대제사장과 만나셔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셨던 곳, 하나님의 거룩한 알현실이었던 곳이 모든 사람이 볼수 있도록 개방되었다.
이제 지성소는 더 이상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는 장소가 되지 못했다.
그 당시 유월절 예식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결코 다시는 그 예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빛이 그들의 마음을 비춰 줄 것이었다.
제자들은 위대한 교사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지식을 그들에게 전해줄 것이었다.
그들의 관습에 따라, 백성들은 환자들과 아픈 자들을 성전 뜰로 데려 와서 나사렛 예수가 어디 계신지 좀 알려 달라고 물었다.
그분의 말씀을 듣기 해 먼 지방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발길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성전 뜰에서 쫓겨났다.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그날의 장면과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셨을 때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대조되는 것을 보았다.
도처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우리의 치료자 되시는 분을 원한다"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은 세상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 뿐이었다.
그것은 제자들과 병자들과 아픈 자들뿐 아니라 제사장들과 관원들에게 그러했다.
유대인의 지도자들과 심지어 로마 관원들까지도 살아 계신보다 죽은 예수님을 다루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발견했다.
백성들은 예수께서 제사장들에 의해 사형에 처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의 죽음에 관한 질문들이 발해졌다.
그분의 심문에 관한 세부 사항들은 가능한 한 비밀에 부쳐졌지만,
그분께서 무덤 속에 계셨을 때, '
예수님의 이름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며,
그분의 예비 심문과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잔인성에 대한 보고들이 도처에 유포되고 있었다. (원고 111, 1897)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건지시는 자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시 40:17)
그대의 심한 궁핍이 그대를 낙심케 하지 못하도록 하라.
죄인들의 구주가 되시며 친구 없는 자들에게 친구가 되시는 분께서는
자애심이 많은 어머니가 고생을 당하고 있는 자기의 사랑하는 아기를 위하여 동정하는 것보다 무한히 더 큰 동정심을 가지고서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사 45:22)고 초청하시고 계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그리스도의 교훈을 개인적인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위험이 있으며
또한 그 교훈들이 우리 개인들에게 말해진 것처럼 그것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위험이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교훈에서 나를 가리켜 말씀하셨다.
나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나 외에는 다른 죄인을 위하여 돌아가시지 아니하신 것처럼
그의 공로와 죽으심과 깨끗케 하시는 피를 내 자신을 위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수고와 투쟁과 극기가 있는바 아무도 이것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밟아 가아만 한다.
그 길은
눈물과 시련과 이별과 죄에 대한 슬픔 혹은 우리의 비열한 욕망과 균형 잡히지 않은 품성과 거룩하지 못한 성질들을
이기기 위한 노력 가운데 있을 수 있다.
그대가 세상에서 학대를 받고 멸시를 받으며 또한 조롱과 훼방을 받을 때에 그것들이 그대의 마음을 슬프게 만들 것인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이미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 까닭이다.(RH July 22, 1884)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요 1:45
나다나엘은 빌립이 불렀을 때에 조용한 숲 속에 물러가서 요한이 선포한 말과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을 명상하고 있었다.
그는 만일 요한이 선어한 그분이 구세주라면 자기도 알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였다. …
빌립은 자기 친구가 예언의 말씀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밑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에 빌립이 그의 은신처를 발견하였다.
저들은 무성한 나뭇잎으로 가리워진 이 격리된 장소에서 종종 함께 기도하였던 것이다. …
빌립은 논쟁을 하려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와 보라”고 말하였다. …
만일 나다나엘이 랍비들의 지도를 신뢰하였더라면 그는 결코 예수를 발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가 제자가 되었던 것은 스스로 보고 판단함으로 된 것이었다. …
요한은 자기 제자 중 두 명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였다.
그리고 그 중 하나인 안드레가 그의 형제를 찾아 그를 불러서 구주께로 인도하였다.
빌립은 부름을 받자 나다나엘을 찾으러 나갔다.
우리는 이러한 실례에서 개인 활동 곧 우리의 인척과 친고와 이웃에게 직접적인 호소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
만일 이웃의 남녀 평신자들이 개인적인 노력을 하였더라면 구원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길로 떨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전도를 듣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
사람이 회개하면 즉시로 예수가 자기의 귀중한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을 남에게 알려 주고 싶은 욕망이 마음속에 생긴다. (1 소망 176-178)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창 5:24).
매우 거룩해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에녹의 생애와 품성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에녹처럼 승천하려면 모든 사람들의 생애와 품성이 어떠해야 할지를 대표한다.
그의 생애는 하나님과 밀접하게 연결된다면 모든 사람이 달성할 수 있는 생애의 본이다.
우리는 에녹이 매우 부패한 영향들에 둘러싸여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거민들이 타락했기 때문에 그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세상에 홍수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우리의 천한 몸은 변화되어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될 것이다.
그러나 사악한 품성은 그때 거룩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품성의 변화는 그분의 강림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의 본성은 순결하고 거룩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형상이 우리 영혼에게 반사되는 것을 기쁨으로 바라보실 수 있도록 그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요셉은 죄와 신성모독과 타락시키는 감화들의 와중에서도, 애굽의 우상 숭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에도 자신의 충성과 정직을 유지했다.
덕성의 길에서 떠나려는 유혹을 받았을 때, 그는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라고 대답했다.
에녹과 요셉과 다니엘은 무한하신 능력을 의존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오늘날 따라야 할 안전한 길이다.…
이 유명한 인물들의 생애는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춰졌다.
그들은 불충성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충성하였고,
부패의 와중에서 순결하였으며,
무신론과 우상숭배와 접촉하게 되었을 때에 돈독하고 열렬하였다.
믿음으로 그들은 순결하고 거룩한 품성을 발달시키는 데 유리한 그런 특성들만을 자신에게로 모아들였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우리의 지위와 직임이 어떠하든지, 아무리 우리의 환경이 나쁘든지 아니면 매력적이든지 간에, 믿음은 모든 것을 초월하고 성령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도 에녹과 요셉과 다니엘이 가졌던 정신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같은 능력의 원천에서 능력을 끌어올 수 있으며, 동일한 자제력을 실현할 수 있다.
그러면 동일한 덕성들이 우리의 생애 가운데서 비춰 나올 수 있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85년 9월 1일자)
“아가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눅 2:40
하늘의 주재, 영광의 임금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베들레헴에 나셔서 얼마 동안은 그 어머니에게 보호를 받는 무력한 아기가 되셨다.
그는 어릴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행하면서 부모를 공경하고 유용한 방법으로 그 부모의 희망을 실행하였다.
그러나 지성이 한번 깨우쳐진 이후로는 계속하여 은혜와 진리에 대한 지식 가운데서 자라났다.
부모와 교사들은 청소년들이 인생의 각 단계에 있어서 들의 나무가 자연히 꽃을 피우고 그 시절에 알맞은 아름다움을 나타내듯이
저희의 가진 경향을 배양하는 일에 목적을 두어야 할 것이다. (교육 139)
예수께서는 유년 시대에 독특한 아름다운 기질을 나타내셨다.
자진하여 돕는 그의 손은 사람들을 섬기기에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침해할 수 없는 인내와 고결함을 희생시키지 아니하는 진실성을 나타내셨다.
원칙에는 반석과 같이 확고하였지만 그 생애는 이기심 없는 인정을 드러내셨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예수께서 능력을 발휘하시는 것을 매우 진지하게 주목하였으며 그의 품성에서 완전한 표적을 보게 되었다.
그는 기쁨으로 다 명랑하고 감수성이 많은 아이의 마음을 격려하기를 힘썼다.
그는 하나님만을 그의 아버지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 아이를 양육하는 일에 성령을 통하여 하늘 천사들과 협력하기 위한 지혜를 받았다. …
그는 그 어머니의 입술과 선지자들의 두루마리에서부터 하늘 사물에 대하여 배우셨다.
그가 친히 이스라엘을 위하여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바로 그 말씀을 이제는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서 배우셨다. …
그의 앞에서는 하나님의 창조하신 작품으로 된 큰 도서관이 펼쳐져 있었다.
만물을 만드신 그가 그의 손으로 친히 땅과 바다와 하늘에 쓰셨던 교훈을 연구하였다.
어떤 아이든지 예수께서 지식을 얻으신 것처럼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늘 아버지와 친숙하게 되려고 노력할 때에
천사들은 우리에게 접근하고 우리 마음은 굳세어지며 우리 성품은 고상해지고 세련될 것이다.
우리는 더욱 우리 구주와 같이 될 것이다. (1소망 72-76)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 12
그리스도께서는 참되고 고상한 표준을 제시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비록 공생애의 기간은 짧았을지라도, 그분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하시고자 한 일을 이루셨다.
그분께서 가르치신 진리는 얼마나 감동적이었으며, 그분께서 이루신 일생의 사업은 얼마나 완전하였던가!
심령에 굶주린 수천 명의 영혼들에게 생명의 떡을 소개하실 때, 그분께서는 매일 어떤 영적 양식을 제공하셨던가.
그분의 생애는 살아 있는 말씀이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가리키는 세상의 빛이셨다.
그분께서는 약속하신 것은 모두 지키신다고 하셨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 7).
생수의 물줄기를 따라 우거진 녹음(綠陰)을 보고 물길을 찾아내듯이, 우리는 예수님의 매 발자취에 새겨진 자비의 행위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질병이 없어지고, 그분께서 지나시는 곳마다 행복이 뒤따랐다.
영생의 말씀들이 아주 단순하게 제시되었으므로 아이라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남녀 어린 아이들 할 것 없이 성경을 풀어 주시는 그분의 태도에 너무나 감동을 받아,
그들은 그분의 음성의 어조(語調)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하였고, 그분의 말씀을 강조하고자 하였고, 그분의 몸짓을 모방하고자 하였다.
청년들은
그분의 봉사정신을 이어받아
그들이 보기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돕고자 함으로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행동을 본받고자 하였다.
소경과 귀머거리는 그분의 임재로 인하여 기뻐하였다.
소경의 눈이 열려서 제일 먼저 본 것은 그리스도의 얼굴이었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려서 처음으로 들은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이었다.
병 고침을 받은 그들은 할 수만 있으면 어디까지라도 그분을 따라갔다.
무식한 자에게는 그분의 말씀이 생명의 샘이 되었다.
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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