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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옳은 일이기 때문에 바른 길을 택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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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준수의 근거

사람들의 주의가 안식일 개혁 문제로 쏠리게 되자 

일반 목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켜 의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잘 진정시키는 방향으로 성경의 증언을 해석하였다. 


그러자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에 맞는 그 결론을 받아들이는 데 만족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이론, 궤변, 교부들의 유전, 교회의 권위 등으로 그 진리를 뒤집어 버리고자 애를 썼다. 



그러나 안식일 진리를 옹호하는 자들은 오직 성경만으로 넷째 계명의 진실성을 수호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비천한 사람들이었으나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학자들의 공격을 대항하였다.



그런데 학자들은 그들의 웅변적인 궤변을 가지고서는


학계의 교묘한 이론보다는 성경에 정통한 그 사람들의 솔직하고 기탄없는 논증에 대항할 힘이 없음을 깨닫고 화를 내면서도 한편으로 경탄해 마지아니하였다.



그들에게 유리한 성경의 증언이 없음을 깨닫자 많은 사람들은 


일찍이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에게 똑같은 논법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를 잊어버리고 완고한 태도로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다. 


“왜 우리 편의 큰 인물들이 이 안식일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너희와 같이 믿는 자는 극히 소수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바르고 세상의 모든 학자들이 다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와 같은 말을 반박하는 데는 


성경의 교훈과 주님께서 각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을 취급하신 역사를 언급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들, 


필요하다면 세상이 싫어하는 진리라도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


세상에 보편화되어 있는 죄악을 견책하기를 꺼리지 않는 자들을 통하여 일하신다. 456 



흔히 하나님께서 학자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자를 개혁 운동의 지도자로 택하지 아니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저희의 신조와 이론과 신학적 체계 등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을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지혜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과 개인적 교제를 나누는 사람들만이 성경을 이해하고 그것을 설명할 수 있다. 


그다지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자가 때때로 진리를 전파할 사명을 받는 것은 


그들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겸비하게 하여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쁘게 받은 연고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게 되므로 그들의 겸손과 순종이 그들을 위대하게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진리의 지식을 그들에게 맡길 때 그들에게 영광을 주셔서 세상의 어떠한 명예와 인간적 위대함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해주신다.



그런데 재림신자들의 대다수는 


성소와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진리를 거절하였으며, 


다른 많은 사람들도 재림운동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버리고 그 사업에 적용되는 예언에 대하여 근거가 불충분할 뿐 아니라 모순되는 견해를 받아들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일을 거듭해서 정하는 잘못을 범하였다.


이제 성소 문제를 비추어 주고 있는 빛이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미치는 예언적 기간은 전혀 없으며 


이 사건에 관한 정확한 시일도 예언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알려 주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빛에서 돌아서서 주님의 오시는 날을 계속해서 정하였으며 그 때마다 그들은 거듭거듭 실망을 당하였다.



재림신앙의 기초 데살로니가 교회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그릇된 견해를 받아들였을 때


사도 바울은 그들의 희망과 기대를 하나님의 말씀을 기초로 엄밀히 검토하라고 권고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일어날 사건들을 알려 주는 예언들을 인용하여 


그들의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을 그들에게 밝히 알려 주었다.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살후 2:3)는 말씀이 그의 경고였다. 


만일 그들이 성경에 의하여 인정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한다면 


그들의 행동은 그릇된 데로 이끌려가게 되고,


실망으로 불신자들의 조소를 사게 되고 


낙담하는 위험에 빠져 


결국에는 그들의 구원에 필수적인 진리까지도 의심하도록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457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준 사도의 권고에는 


말세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중요한 교훈이 포함되어 있다. 



많은 재림신자들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분명한 시간에 그들의 신앙을 두지 아니하면 


준비하는 일에 열렬해지거나 부지런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희망이 아무리 여러 번 생겨날지라도


그 때마다 그것이 무너져 버린다면 


그들의 믿음은 결국 예언의 큰 진리를 거의 깨달을 수 없으리 만큼 타격을 받게 된다.



첫째 천사의 기별을 전하면서 심판에 대한 분명한 시기를 전파한 것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었다. 


이 첫째 천사의 기별의 근거가 되는 예언적 기간의 계산, 곧 1844년 가을에 2300주야가 마친다는 사실은 아무 의심 없이 입증된다. 



그러나 예언적 기간의 시작과 끝에 관한 새로운 날짜를 발견하고자 거듭거듭 노력하고 


그와 같은 입장을 지지하기 위하여 부당한 이론을 세우는 일은 


사람들의 마음을 현대 진리에서 떠나가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예언의 해석을 위하여 기울인 모든 노력을 모독하는 일이다.



재림에 대한 분명한 시간을 정하는 일은 하면 할수록 또한 그와 같은 가르침이 널리 보급되면 될수록 더욱 사단의 목적에 잘 부합될 뿐이다. 



그 시기가 지나가자 사단은 재림을 주장하던 사람들을 조롱하고 모독하도록 자극하여 1843년과 1844년에 있은 큰 재림운동에 치욕을 끼친다. 



그리하여 그 오류를 고집하던 사람들은 마침내 그리스도의 재림을 지나치게 먼 장래에 속한 일로 결정할 것이다. 



그들은 그릇된 안일에 빠지게 되고 많은 사람들은 기회가 다 지나갈지라도 깨닫지 못하게 될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재림신도들의 과거의 경험을 설명해 주는 좋은 실례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처럼 재림운동에 있어서도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셨다. 


큰 실망 가운데서 그들의 믿음은 옛날 홍해에서 히브리 사람들처럼 시험을 당하였다. 


과거의 경험에 그들과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손을 신뢰했었더라면 그들은 정녕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458



 1844년의 운동에 일치 합력하여 활동했던 사람들이 


셋째 천사의 기별을 받아들이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 기별을 전파하였을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노력을 통하여 크게 역사하셨을 것이다. 


빛이 흘러나와서 온 세계를 환하게 비췄을 것이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벌써 여러 해 전에 지상 거민들에게 대한 경고는 끝나고


마지막 사업은 완성되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시러 이 세상에 오셨을 것이다.



진리의 옹호자들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그들을 똑바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거기서 그들이 거룩하고 행복한 백성으로 정착하게 하시고자 바라셨다. 



그러나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히 3:19)하였다. 


배반하고 배교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광야에서 죽고 그 대신 다른 사람들이 일어나서 허락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재림이 그처럼 지체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와 슬픔의 세상에 그처럼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나 불신은 그들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가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일을 거절하였으므로 다른 사람들이 그 기별을 전파하기 위하여 일으킴을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대한 자비로써 


죄인들에게 경고를 받을 기회를 주어 


그들이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기 전에 당신 앞에서 피할 곳을 찾게 하시고자 당신의 오심을 지연시키신다.



지나간 시대에서처럼 오늘날도 이 시대의 죄와 오류를 책망하는 진리를 증거하면 반대를 당할 것이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요 3:20). 



사람들이 성경으로 그들의 입장을 지탱할 수 없음을 알게 되자 


많은 사람들은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그것을 지탱하기로 결심하고 


인기가 없는 진리를 옹호하는 자들에 대하여 


악의로써 그 인격과 동기를 공격한다.



이러한 일은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있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는 말을 들었고


예레미야는 배반자라는 욕을 들었고 


바울은 성전을 더럽히는 자라는 무고를 당하였다. 


그 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리에 충성하는 자들은 


치안을 문란케 하는 자, 이단자, 분열을 좋아하는 자라는 등의 비난을 받아왔다. 459 



예언의 확실한 말씀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유행을 따르는 죄를 담대하게 책망하는 자들에게 대한 비난과 공격을 의심 없이 믿어 버린다. 


이런 정신은 더욱더 증가될 것이다. 



성경은 


장차 국가의 법령과 하나님의 율법이 서로 상치되고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순종하는 자는 


누구든지 악을 행하는 자처럼 비난받고 벌을 받을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밝히 알려 주고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진리를 전하는 자의 의무가 무엇인가? 


진리를 전하는 결과로 사람들이 그 진리의 명령을 거절하거나 회피하게 할 뿐이므로 차라리 전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것인가?


아니다. 


우리가 초기의 개혁자들이 당한 것과 같은 반대나 그 이상의 반대를 당한다 할지라도 거룩한 말씀을 증거하는 일을 중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성도와 순교자들이 한 신앙 고백은 후세를 위하여 기록되었다. 



성결과 확고한 충성의 산 모본들은 


오늘날 하나님의 증인으로 서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용기를 고취시키기 위하여 전해 내려왔다. 




그들은 저희 자신들을 위해서가 아니고 


그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온 세상에 밝혀 주기 위하여 은혜와 진리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이 시대의 종들에게도 빛을 주셨는가? 


그렇다면 빛을 받은 자들은 반드시 그 빛을 이 세상에 비추어야 할 것이다.



빛을 받은 자의 책임

옛적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기별을 전한 사람에게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겔 3:7)고 선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겔 2:7)고 말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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