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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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같은 행동은
그 정부의 원칙과
자유 제도의 정신과
또한 엄숙하고 명백한 독립 선언과 헌법에 배치되는 일이다.
미국의 건국자들은 교회의 일에 세속적 권력을 사용할 때 필연적으로 초래되는 편협과 박해를 일으키지 않기 위하여 현명하게 노력하였다.
그 나라의 헌법에는
“국회는 종교의 설립이나 종교의 자유로운 행사를 금지하지 못하며”,
“합중국의 어떤 공직의 관리에 속한 자격으로 종교적 조건을 요구하지 못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어떠한 경우에든지 국권으로 종교의 신봉을 강요하는 것은 국민의 자유에 대한 안전책을 무시하고 유린하는 데 불과하다.
그러나 그 표상에 있어서는 가장 큰 모순이 나타나 있다.
이 새끼양 같이 두 뿔을 가진 짐승, 곧 순결하고 온순하고 해를 끼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그 짐승이 실상은 용처럼 말한다.
443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여기에 입법권이 국민에게 있는 정부의 형태가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그것은 북미 합중국이 예언에 나타난 바로 그 나라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러면 “짐승의 우상”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질 것인가?
그것은 두 뿔 가진 짐승이 만들게 되며, 처음 짐승에 대한 우상이 된다.
그것은 또한 “짐승의 우상”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이 우상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그 짐승 자체, 곧 법왕권의 특징에 대하여 연구하여야 한다.
초대 교회가 복음의 단순함에서 떠나
이교의 의식과 풍습을 받아들임으로 부패하여지자
그 교회는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되자 그 교회는 사람의 양심을 지배하기 위하여 세속적 권력의 도움을 구하였다.
그 결과로 국권을 지배함과 동시에 그 권력을 자기의 목적, 곧 이른바 이단 박멸을 위하여 사용한 교회인 법왕권이 설립되었다.
합중국이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려면 반드시 종교적 세력이 정부를 지배하고
교회가 그 자체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국가의 권력을 또한 사용하게 되어야 한다.
교회가 세속적 권세를 잡을 때에는 언제나 그 권세를 자기 교리를 반대하는 자를 처벌하는 데 사용하였다.
세상의 권력과 야합하여 로마교가 간 길을 따라간 개신교회들은 양심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유사한 욕망을 나타내 왔다.
영국 국교회가 오랫동안 계속하여 자기 교회를 반대하는 자들을 박해한 것은 그것에 대한 한 가지 실례가 된다.
실로 16, 17세기 동안에 국교도가 아닌 무수한 전도자들은 그들의 소속 교회를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으며,
목사나 일반 신도를 막론하고 과료, 투옥, 고문, 순교를 당하게 되었다.
초대 교회가 세상 정부의 도움을 구한 것은 배교였으며 그것이 짐승, 곧 법왕권이 발전되는 길을 마련하였다.
바울은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살후 2:3)라고 말하였다. 444
그와 같이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배도가 짐승의 우상을 만드는 길을 준비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1세기에 나타났던 것과 똑같은 교회의 타락 상태가 주님의 재림 전에 나타날 것을 말한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딤후 3:1~5)라.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게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딤전 4:1).
사단은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을 행할 것이다.
그리고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하는 모든 자는 “거짓 것을 믿게 하”는 미혹에 빠지도록 버려둔 바 될 것이다(살후 2:9~11).
이와 같이 불경건한 상태에 이르게 되면 1세기에 나타났던 것과 동일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개신교 각 교회 간에 존재하는 신조의 큰 차이야말로
강요된 통일성을 이룩하려는 노력이 결코 경주될 수 없으리라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보았다.
그러나 지나간 여러 해 동안 개신교 각 교회에서는 공통적인 교리를 근거로 한 일치 연합을 원하는 여론이 강하게 자라났다.
그와 같은 연합을 이루려면,
그것이 설혹 성경상 관점에서 아무리 중요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합의하지 아니한 문제들에 관한 토의는 필연적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찰스 비처는 1846년에 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신교 각 교파의 성직자들은 인간적 두려움에 속한 심한 압력에 눌려 있을 뿐 아니라 완전히 부패한 상태에서 살아가고, 움직이고, 숨 쉬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온갖 비열한 성질에 끌려서 진리에 대하여는 침묵하고, 배교의 세력에게는 무릎을 꿇어 절하고 있다. 445
이것이 로마교회가 간 길이 아니었던가?
우리는 그의 간 길을 다시 걷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바로 앞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것은 전체적 회의요,
세계적 대회의 개최이다!
선교 동맹이요, 일반적인 신조의 제정이다”(Sermon on “The Bibble a Sufficient Creed”, delivered at Fort Wayne, Indiana, Feb.22, 1846).
이 일이 성취되면, 완전한 연합을 이루기 위한 단계로서 취할 유일한 방법은 강제 수단이다.
합중국의 주요한 교회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교리에 의하여 서로 연합하여
그 국가로 하여금 자기들의 교령(敎令)을 강제로 실시하게 하고,
그들의 제도를 강압적으로 유지하려는 때가 이르면,
그 때에 개신교 미국은 로마교적 교권 정치의 우상을 만들게 되고,
그 필연적 결과로서 이에 반대하는 자들에게는 법률적 형벌을 과하게 될 것이다.
그 두 뿔 가진 짐승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계 13:16, 17) 한다.
그런데 셋째 천사의 기별은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 기별에서 말한 짐승,
곧 두 뿔 가진 짐승이 경배하라고 강요하는 그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의 첫째 짐승,
곧 표범같은 짐승인 법왕권이다. 446
그러므로 “짐승의 우상”은
자기의 교리를 강요하기 위하여
국권의 도움을 구함으로 생겨나게 될
배교한 개신교도들의 단체를 나타낸다.
“짐승의 표”는 해명되어야 할 여지가 여전히 있다.
예언은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경고한 후,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와 짐승과 그 우상을 경배하고 그 표를 받는 자를 대조적으로 기록한 것을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와 짐승을 경배하는 자의 구별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범하는 데 있는 것이 분명하다.
짐승의 특징과, 동시에 그 우상의 특징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깨뜨리는 것이다.
다니엘은
작은 뿔 곧 법왕권에 대하여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라”(단 7:25)고 말한다.
바울은 그 동일한 세력을 하나님보다 자기를 높이고자 한 “불법의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 두 예언은 서로 보완해 준다.
법왕권은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킴으로써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일 수 있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와 같이 변경된 율법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준수하는 자는 그 율법을 변경시킨 자에게 최상의 영광을 돌리는 셈이다.
이와 같이 법왕권의 율법을 순종하는 행위는 하나님 대신에 법왕에게 순종하는 표가 되는 것이다.
법왕권은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시키고자 하였다.
우상 예배를 금지하는 둘째 계명은 율법에서 제하여 버리고,
넷째 계명은 안식일을 제칠일 대신에 제일일의 준수를 인정하는 것처럼 고쳐 버렸다.
그러나 법왕교도들은 둘째 계명을 삭제한 이유에 대하여
그것이 첫째 계명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불필요하다는 것과
그들이 하나님께서 이해시키고자 원하시는 그대로 율법을 마련해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것은 선지자가 예언한 변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계획적이요 고의적으로 변경하는 일이 있을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라.
넷째 계명의 변경은 바로 이 예언이 정확하게 성취된 것이다.
이러한 변경에 대하여 그들이 주장하는 유일의 권위는 교회의 권위이다.
이 점에서 법왕의 권세는 그 자신을 하나님보다 공공연하게 더 높이고 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는
하나님의 창조력의 표징이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존경과 경배를 요구하시는 증거가 되는
넷째 계명을 존중히 여기는 태도로써 그들의 특징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반면에,
짐승을 경배하는 자들은
창조의 기념일인 안식일을 짓밟고
로마교가 만든 제도를 높이고자 노력함으로 그 특징을 나타내게 될 것이다.
법왕이 처음으로 자기의 그 거만한 주장을 하게 된 것은
일요일을 위함이었고(부록 33 참조),
또한 국가의 권력에 의뢰한 것도
사실은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도록 강요하기 위함이었다. 447
그러나 성경에 주일이라고 한 것은 제칠일을 가리킨 것이요, 제일일을 가리킨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넷째 계명에는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그날을 “내 성일”이라고 하신다(막 2:28; 사 58:3).
안식일을 그리스도께서 변경하신 것처럼 흔히 주장하는데, 그러한 주장의 그릇됨은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으로 증명된다.
주 그리스도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7~19).
안식일의 변경에 관하여 성경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것은 개신교도들이 일반적으로 시인하는 사실이다.
미국 전도 문서 협회와 미국 주일 학교 연맹에서 발행한 출판물들에는 그 사실이 분명히 밝혀져 있다.
그 중의 한 책은 “신약 성경에는 안식일 [일요일, 주일 중 첫째 날]에 대하여 아무런 분명한 명령이 없고,
그날을 지키는 일에 대하여 확실한 규정도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다”(George Elliott, The Abiding Sabbath, p.184)고 말하였다.
또 다른 한 책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기까지는 그날(안식일을 가리킴)에 관하여 아무런 변경도 없었다.
또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사도들이 제칠일 안식일을 폐지하고, 그 대신에 주일 중 첫째 날을 지키라고 명령한 아무 확실한 말도 한 일이 없다”
(A.E.Waffle, The Lord’s Day, pp.186~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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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글이 기별을 받아들인 결과가 다음의 말씀에 주어져 있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여기 있나니. 1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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