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일곱 배나 연단된 정금같이 고난의 풀무에서 나올 것이다. > 엘렌의 글방

사이트 내 전체검색

엘렌의 글방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은 일곱 배나 연단된 정금같이 고난의 풀무에서 나올 것이다.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 4:1).


동정 많으신 구주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은혜로운 자비의 제안을 거절하고, 

그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고, 

생명의 길을 굳게 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주님께 속량받은 자들을 위해 마련된 길을 여행하다가 

의심과 불길한 예감으로 

그 길을 버리거나 

강요에 의해 

힘든 일을 

억지로 떠맡은 것처럼 

불평과 짜증 가운데 걷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그리스도의 길은 

유쾌한 길이며 

모든 경로에 

평화가 임합니다. 


이 땅의 보물을 비축하기 위해 

무거운 짐을 지고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면 

지금 당장 돌이켜 

주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따릅시다.


우리가 

늘 시험과 곤란을 

주님께 아뢰는 것은 아닙니다. 


종종 우리는 사람들을 찾아가 

고통을 호소하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에게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정작 모든 문제를 

예수께 털어놓는 일에는 

소홀합니다. 


그분이야말로 

슬픔의 길을 

기쁨과 평화의 길로 

바꿔 주십니다.


십자가가 

영광을 얻고 

승리하는 것은 

자기 부정과 자기희생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매우 소중합니다. 


그분의 뜻을 알려면 

그분의 말씀을 

연구해야 합니다. 


영감의 말씀을 

세심하게 연구하고 

삶에서 실천한다면 

우리의 발은 

평탄한 길을 걷고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목회자와 백성 모두 

무거운 짐과 고통을

예수께 가져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분은 

그 짐을 받고 

평화와 안식을 건네주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을 

신뢰하는 사람을 

그분은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이 

우리 의무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사랑을 요구할 권세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마음을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진정한 순종으로 

겸손의 길을 함께 걷기를 

그분은 요청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순결하고, 

거룩하고, 

행복한 삶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 삶은 

평화와 

안식의 삶, 

자유와 

사랑의 삶입니다. 


또 그분은 

장래의 풍요한 유업으로, 

영생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까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입니까, 

아니면 사탄의 압제와 속박입니까? 


자비의 초청과 

거룩하신 사랑을 

왜 거절해야 한단 말입니까? 


영원히 그리스도와 함께 살기로 선택한다면

왜 

지금 

그분을 

가장 사랑하고 

믿을 만한 친구로, 

최고의 상담자로 

택하지 않는 것입니까?

영문 <시조>, 1887년 5월 17일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나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하심이니라.”(엡 5:27)


그리스도께서는 

오래지 않아 

하늘 구름 가운데서 강림하실 것인바 

우리는 점과 주름 잡힘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그분을 만나기 위하여 준비되어야만 한다.… 


하나님의 회개시키는 능력이 

우리 마음에 있어야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연구하며 

거룩한 모본 되시는 분을 본받아야만 한다. 


우리는 그의 품성의 완전함을 숙고하는 가운데 

그의 형상으로 변화해야 한다. 


아무도 

그의 의지가 

그리스도의 의지에 사로잡히지 않는 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RH 1912. 12. 5)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칭하는 자들이 

지상의 낮은 땅에만 고착되어 있다. 


그들의 눈은 

평범한 사물들만 보는데 훈련되었고, 

그들의 눈이 바라보는 사물들만을 숙고한다. 


그들의 신앙적 경험은 

너무나 천박하며 불만족하고, 

또한 그들의 말은 가볍고 무가치하다. 


이러한 사람이 어떻게 그리스도의 형상을 반사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그들이 의의 태양의 광명한 광선을 발산할 수 있겠는가?

하늘은 

모든 죄와 더러움과 불결함에서 해방된 곳이다. 


우리가 하늘의 분위기에서 살기를 원한다면 

또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기를 원한다면 

마음이 정결해야만 하며 

그의 은혜와 의로 말미암아 품성이 완전해야 한다. 


우리는 쾌락과 오락에 도취되어서는 안 되며 

대신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러 가신 

영광스러운 하늘 집을 위해 

자격을 갖추어야만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으로 속히 강림하실 것이다. 


그의 위엄이 나타나는 때에 

세상 사람은 

그의 은총을 받았으면 하고 원할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모두 하늘 집의 한 거처를 갖기 바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말과 생애와 품성으로써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 앞에서 

그들을 시인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RH 1912. 12. 5)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사 60:1, 2)


모든 이들은 

하나님을 

최고의 중심으로 삼고 

화합과 사랑으로 일을 할 수 있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인간을 

뭇 사람들과 연합하게 하는 원리이다. 


오늘날 세상에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는 

반대가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모든 나라와 지역들, 그리고 개인들은

자기중심적인 것들을 갈망한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모든 장애물로부터 

떼어놓기 위하여 부르신다. 


사람을 하나님과 또 뭇 사람들과 연합시키는 것, 

이것이 바로 복음의 위대함이다. 


교회가 일어나 빛을 발하게 하라. 


왜냐하면 

그 빛은 

주님의 영광이 

교회 위에 임하게 하는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MS 78, 1901.).

그리스도교는 

죄를 사하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다. 


우리의 죄를 제거한 다음에 

그 빈자리를 

성령의 은혜로써 채우는 일이다. 


이는 신령한 빛으로 

밝아지게 하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심령을 다스릴 때에 

그 심령은 순결하고 죄에서 해방된다. 


그리하여 

복음의 경륜의 영광과 

충만함과 

완전함이 

생애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사람이 구주를 받아들일 때에 

완전한 화평과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보증의 빛을 

반영하게 된다. 


우리의 생애 가운데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움과 향기는 

하나님께서 

진실로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구주로서 

보내셨다는 것을 증거한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서 

당신이 

친히 가지신 

영광을 나타내심으로써 


하늘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아주 접근하게 하고 


그로 말미암아 

내적 성전을 단장하는 미가 

구세주께서 거하시는 

모든 심령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사람은 

그 안에서 하시는 

구세주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사로잡힐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구원받은 많은 영혼에게서 

흘러나오는 찬송과 감사의 조류는 


그것이 

다시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영광으로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실물, 419, 420)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잠 16:32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고상함에 대한 최고의 증거는 

자제이다. 


악습의 폭풍 가운데서 

요동하지 않고 설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웅들 가운데 하나이다.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자아를 훈련시키는 것이다. 


곧, 악을 저항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의의 표준에 따라 

모든 말과 해동을 규제하는 것이다.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는 법을 배운 자는 

우리가 

그것에 날마다 노출되고 있는 

경멸과 

좌절과 

괴로움을 딛고 일어설 것이며, 


이것들은 

그의 정신에 

어둠을 던지지 않을 것이다.

거룩한 은혜로 지배되는 

성화된 이성의 

당당한 힘이 


인간의 생애를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유년기와 청년기에, 

품성은 

가장 감수성이 강하다. 


자제력은 

이때 

습득되어야 한다. 


화롯가와 가족 식탁에서, 

그 결과가 

영원토록 계속되는 

감화력이 발해진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