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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도덕적 품성은 하나님 앞에서 검열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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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많은 사람은 

저들 스스로 무슨 일을 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저들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의지하였으나 

이제는 저희 자신의 힘으로 

옳은 생애를 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모두 실패될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은혜 가운데 자라나는 것이나 

우리의 기쁨이나 유용성은

모두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여부에 달렸다. 


우리가 은혜 가운데 자라는 것도 

날마다 시간마다 그와 함께 교통함으로, 

또 그 안에 거함으로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의 가는 길에 

처음과 나중에만 함께 하실 뿐 아니라 

우리의 가는 길의 발자국마다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뫼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 16:8)고 하셨다.

그대들은 혹 “내가 어떻게 하면 그리스도 안에 거할까”하고 묻는가? 


그대들이 처음에 그를 받아들인 그와 같은 방법으로 할 것이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 



그대들은 

온전히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 

그를 봉사하며 

순종하기 위하여 

자신을 바쳤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였다. 


그대들은

자신의 죄를 속할 수도 없고 

또 자신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도 없으나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리스도의 공로로 인하여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행하신 줄을 믿었으니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것이 되는 동시에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날 것이다. 


즉 바치고, 받음으로 자라날 것이다. 


그대들은 

모든 것-마음과 의지와 봉사-를 바칠 것이니 

그의 모든 요구를 응하기 위하여 

그대 자신을 그에게 바칠 것이다. 


모든 것-

그대의 마음 안에 계셔서 

그대의 힘과 

그대의 의와 

그대의 영원한 돕는 자가 되시는 

온갖 축복이 충만한 그리스도-

을 받아들여서

하나님께 순종할 힘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자신을 생각지 말고 

그리스도를 쳐다보라.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아름다운 품성에 대해 생각하라. (정로 165-169)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고후 6: 15


나는 지난밤 계시에서 

그대가 그대의 자녀들은 아무에게서도 꾸지람을 듣지 않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게 될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의 성령의 제어하시는 감화력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나 거의 효력이 없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공언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을 섬기지 않아야 하며, 

우리가 거룩하게 여기는 진리를 

거절하는 사람들과의 연합이나 교제를 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요한일서 2장 6절을 보게 되었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나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 4, 50).

그대는

세상이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의하여 

자신을 판단할 수 없다. 


그대의 유일한 안전책은 

그대가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주장한 이후로, 

그대의 노정이 

계속하여 앞으로 전진하고 위로 향하였더라면

꼴 지워졌을 그대의 모습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그대의 도덕적 품성은 

하나님 앞에서 검열을 받고 있다. 


그대는 하늘 성소의 저울에 달리고 있다. 


만일 

그대의 영성이 

그대가 받는 특권과 은혜와 부합되지 않는다면, 

그대는 달아보아 부족함이 나타날 것이다. 


그대의 행로는 더욱 밝게 빛났어야 하였고, 

그대는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열매들을 많이 맺었어야 하였다.

그대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그대는 아직도 무관심한 채로 머물러 있고, 

하나님의 은혜의 표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그대 앞을 지나간 것처럼 

매우 만족하고 있다. 


그대는 하나님의 택하신 특별한 백성 중에 있음을 자인(自認)한다. 


그러나 

그대는 끝까지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증거나 표를 갖고 있지 못하다. …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특성과 

거룩한 품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편지 9. 1861. 10. 12).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막 14:62)


그들(유대인 지도자)이 인자의 영광을 바라볼 때

그들의 마음속에는 

인간의 옷을 입고 계시던 그분에 대한 기억이 번쩍 떠오른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분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거절하고, 

어떻게 큰 배도의 편에 몰렸던가를 기억한다. 


그리스도의 생애의 장면들이 매우 뚜렷이 그들 앞에 나타난다.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일과 

하신 모든 말씀과 


그들을 죄의 오점으로부터 구하시고자 낮추셨던 겸손이

유죄 판결을 받을 때 그들 앞에 떠오른다. 

그들의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당신의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한 도성을 향하여 

눈물을 흘리시면서 괴로워하시던 그리스도를 본다. 


초청과 

간청과 

부드러운 염려의 어조 가운데서 들리는 

그분의 음성이 

다시 그들의 귀에 울리는 것 같다. 


그들 앞에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장면이 나타나며 

그들은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하시는 

놀라운 그리스도의 기도를 듣는다. 


그들은 다시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는 빌라도의 음성을 듣는다. 


그들은 바라바가 예수님 곁에 서 있고, 

그들에게 무죄한 한 사람을 택할 특권이 주어졌던

재판정의 수치스런 장면을 본다. 


그들은 다시

“너희는 내가 누구를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하는 빌라도의 말을 듣는다. 


그들은 “이 사람을 없이하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하는 대답을 듣는다. 


“그러면 예수를 어떻게 하랴”하는 빌라도의 질문에 

“십자가에 못박아 주소서”하는 대답이 나온다. 


그들은 다시 

치욕적인 십자가를 지시고 

그들의 희생 제물이 되신 분을 본다. 


그들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라고 

조롱하며 외치는 

크고도 의기양양한 목소리들을 듣는다. 


그들은 이제 

겟세마네 동산도, 재판정도, 갈바리의 십자가상도 아닌 곳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그분의 치욕의 흔적들은 사라졌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얼굴

곧 그들이 침을 뱉었던 얼굴,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뺨을 치던 얼굴을 바라본다. 


이제 진리는 그들에게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RH 1899. 9. 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눅 9 : 24, 25).


우리의 인생은 단 한 번만 허용되었다. 


모든 사람은
“어떻게 내 역량을 다해 가장 큰 유익을 가져올 수 있을까? 


하나님의 영광과 내 동료의 이익을 위해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인생은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할 때에만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동료 인간들을 위해 해야 할 첫 번째 의무는 자기 개발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재능은

온전함의 가장 높은 단계까지 개발되어야 하고, 


우리는 우리의 역량으로 굉장한 선행을 하게 된다.


그리하여 

시간은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는 일에 가치 있게 사용된다. 


우리는 신체나 정신의 어떤 기능도 

축소시키거나 쓸모없게 할 여유가 없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 결과의 아픔을 경험해야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든지 

스스로를 크게 만들 기회가 주어진다. 


이런 삶의 복과 

영원히 죽지 않는 상태 또한 닿을 만한 곳에 있다. 


그들은

매 단계 

새로운 힘을 얻으면서 

분명한 가치인 품성을 건설할 수 있다. 


그들은

덕에 덕을, 

은혜에 은혜를 더하여 진보함으로 

새로운 빛을 깨닫고,

지혜와 지식에서 날마다 향상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의 지성과 지식 그리고 덕이 

더 큰 능력과 더 완전한 균형을 이루기까지 개발될 것이다. 

반면에 

그들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아 

녹슬게 하고, 

나쁜 습관들과, 

자아 절제나 

도덕적·종교적 결핍으로 악용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들의 길은 아래로 향하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건강 법칙에 불순종한다. 


식욕이 그들을 지배한다. 


성향이 그들을 조절한다. 


그들은 

항상 

활동하는 악의 힘이 

자신들을 투쟁하게 하고 

앞으로 전진하게 하기보다는 

뒤로 끌어내리도록 허락하기 쉽다. 


방탕, 질병 그리고 죽음이 따른다. 


이것이 하나님과 인류를 위하여 크게 사용될 수 있었던 많은 인생들의 역사이다.

- 그리스도인 절제와 성경적 위생, 41, 4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총회를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민 20:12)


모세의 죄를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것으로 여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지 않으신다. 


가나안의 언덕들이 보이는 곳에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 친 곳을 흐르던 시내가 마르자

불평을 터뜨렸다. 


백성들의 아우성은 모세와 아론에게 집중되었다. 


두 사람은 저들을 광야로 끌어내 죽이려 한다는 비난을 들었다. 


지도자들이 성막 문에 다다라 땅에 엎드렸다.


그 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고 모세가 명령을 받았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으로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울지니라”(민 20:8).


두 형제가 회중 앞으로 나갔다. 


모세는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당시 저들은 노인이었다. 


저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과 완고함을 오랫동안 참아 왔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그것도 마지막에 모세는 참을성을 잃었다. 



그는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 외쳤다(10절). 


그는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반석을 향해 말을 하는 대신

지팡이로 그것을 두 번 내리쳤다.

물이 무리의 목을 흠뻑 축이고도 남을 만큼 솟아나왔다. 


그러나 엄청난 과오가 저질러졌다. 



모세는 성가신 듯 말했다.…


“우리가 물을 내랴?” 


그는 마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행치 않으실 것처럼 물었다. 



여호와께서는 

두 형제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했다고 선언하셨다(12절).


이에 더하여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만 속한 능력을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가장했다.… 


저들은 화를 내며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 소리칠 때 


그 능력이 자신들에게 있는 것처럼 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위치에 두었다. 


저들은 이렇게 말함으로 

저들의 보이지 않는 지도자이신 

그리스도께 큰 욕을 돌렸다(원고 169, 1903. 10. 12).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2, 13).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을 의지하는 것은 

진리와 의를 열렬히 구하는 모든 이들의 특권이다. 


주 예수께서는 

우리가 빛의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보화를 

완전히 

우리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그것들을 나누어 주고자 하는 갈망이 없이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마음에 간직할 때,

그것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특권으로 느끼게 된다.


하늘에서 빛나는 태양은 

인생의 모든 대로와 소로에 밝은 빛줄기를 쏟아 붓는다. 


그것은 우리에게서처럼, 

세상의 수천 명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충분한 빛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의의 태양되신 분께서도 이와 같으시다. 


치료와 기쁨의 환한 광선은 

우리의 조그만 세계를 구원하기에 넉넉하며, 

피조된 모든 세계를 안전하게 하는 데 효과적이다.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필요함을 깨닫는 사람들은 

영혼의 회오를 경험할 것이며, 


주님의 성령을 저항한 것을 회개할 것이다.


하늘이 

그들에게 그처럼 은혜롭게 보내 준 빛을 

거절한 것을 

그들은 회개할 것이며, 


주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고 

모욕한 죄를 내어 버릴 것이다. 


그들은 경고와 견책과 격려의 기별을 인정하면서, 

자아를 낮추고 

그리스도의 능력과 은혜를 받아들일 것이다. 


그 때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분명하게 될 것이며, 

그들은 속죄 희생을 의지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분을 필요로 하며, 

완전한 신뢰 가운데 

그분 안에서 쉴 것이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와 의를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현존하시는 구주가 되실 것이다. 


그들은 마르지 않는 신령한 샘에서 생명수를 마실 것이다. 


새롭고 축복된 경험 가운데 

그들은 자신을 그리스도께 던질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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