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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께서는 자기에게 매달려서 심히 필요한 것을 간청하는 영혼을 물리치실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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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 4:28


그 신하에게 하신 구주의 말씀은 

섬광처럼 그의 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는 예수를 찾는 자기의 동기가 이기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흔들리는 믿음이

그 정체를 자기 앞에 드러내었다. 


심한 비탄 속에서 

그는 자기의 의심이 

아들의 생명을 희생시킬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기가 모든 생각을 통찰하시며 

모든 것을 능히 하실 수 있는 분의 앞에 나와 있다는 것을 알았다. …


그는 야곱처럼 승리하였다. 


구주께서는 

자기에게 매달려서 

심히 필요한 것을 간청하는 

영혼을 물리치실 수 없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고. 


그 신하는 전에 결코 맛보지 못하던

화평함과 기쁨을 가지고 구주가 계신 곳을 떠났다. 


그는 자기의 아들이 나으리라는 것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튼튼한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께서 구속주가 되심을 믿었다. …

귀로는 얼마나 유쾌하였던가! 


그가 예수를 찾으러 갔을 때에는 

그의 마음은 슬픔으로 무거웠었다. 


햇빛은 자기에게 무자비하게 보였고 

새의 울음소리는 비웃는 듯했다. 


지금은 그의 기분은 얼마나 다른가! 


모든 천연계가 새로운 모습을 차린듯하다. …


그가 조용한 이른 아침 여행할 때에 

모든 천연계가 자기와 더불어 하나님을 찬송하는 듯하였다. …

가버나움에서 신하를 축복하시던 그분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그 고민하던 아버지와 같이 

우리는 어떤 세상의 유익에 대한 욕망으로 말미암아 

예수를 구하게 되는 때가 종종 있다. (1 소망 261-263)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람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 17:9)


시편 기자는 이렇게 묻는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치 아니하며 

그 이웃을 참소치 아니하고.”


어떤 사람이

이웃에 관한 이야기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올 때, 듣기를 거절해야 한다. 


이렇게 물어야 한다. 


“당신은 당사자에게 이 문제에 관하여 이야기했는가?”라고.


그에게 성경적 규칙을 순종하여, 


먼저 그 형제에게 가서 

그의 실수를 내밀하게 사랑 가운데서 말하라고 일러 주라.


만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사항들이 수행되면 험담의 문은 닫힐 것이다.

형제나 이웃들이 여러분을 보러 오거든,

예수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해서 말하라. 


잃어버린 사람을 위한 

그분의 중보 사역을 인해 즐거워하라. 


친구들에게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산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있다고 말해 주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곤비한 다른 여행자들의 실수들을 침소봉대(針小棒大)하고

그들의 행동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음으로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을 금하신다. 


외롭고, 낙심하고 그릇 행하는 자들의 생애를 격려하기 위해 

우리가 위로와 소망과 용기의 말을 해 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신다. (리뷰 앤드 헤랄드, 1888년 8월 28일자)

경솔하게 말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을 때,

조심하라. 


다른 누군가가

하나님의 자녀들 중 한 사람에 관한 비평의 말을 가지고 접근할 때, 

이런 모든 말에 대해서 귀를 닫아라. 


누군가 그대에게 대해서 거친 말을 했을 때에 

결코 보복하지 말라. 


한마디 말도 하지 말라. 


도발을 받을 때에는 “침묵이 곧 웅변”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침묵은 

흠을 찾는 사람이나 

성난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의 견책이다. (원고 95, 1906년)

들어올 수 있는 온갖 쾌활함을 

우리 생활 속에 들여오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온갖 친절을 베푸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친절한 말은 결코 허사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그것이 마치 자신에게 한 말인 것처럼 그 말들을 기록하신다. 


친절과 사랑과 자애로움의 씨앗들을 뿌려라. 


그러면 그 씨앗들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재림교 성경주석 6권, 1118)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계시하십니다. 


그들은 갈보리에서 피조물의 죄 때문에 죽어 가시는 그분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신이 왜 하나님의 율법으로 정죄받아야 하는지 깨닫습니다. 


성령께서 양심에 역사하셔서 깨어진 율법의 요구를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율법을 무시하고 구주를 거절할 것인지, 

아니면 그 요구에 굴복하고 그리스도를 구속주로 받아들여야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섬김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그들의 의무를 드러내고 

거룩한 율법의 요구를 보여 주면서 

선택의 결과를 앞에 제시하십니다. 


순종의 결과는 삶이고 불순종의 결과는 멸망입니다.

하늘은 명령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지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 요구가 힘 있게 다가올 때 양심은 각성되고 죄인은 죄를 깨닫습니다. 


육욕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지 않고 복종할 수도 없으며 율법의 거룩한 요구에 반기를 듭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 달려 그들의 죄 때문에 고난 당하시는 것을 볼 때

죄인은 더 깊은 확신에 사로잡히며 죄의 비열한 성질을 발견합니다.


하나님 율법의 

영적 권위와 신성성을 올바르게 이해할 때

죄인은 유죄를 실감합니다. 


그들의 죄는 본 모습을 드러내며 그들 앞에 나열됩니다.


율법에 의해 죄를 깨닫습니다. 


율법의 빛 가운데 그들은 비밀스런 생각과 음흉한 행동의 사악함을 이해합니다. …

품성이 검증받고 하늘에 등록되는 것은 

외양보다

내면의 정신과 숨은 동기에 의해서입니다. 


사람들은 

유쾌한 외모를 지니고 

겉으로는 뛰어나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부패하고 더러운 것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성화되지 않고 거룩하지 않다고 등록됩니다. 


그들의 기도와 사역에는 그리스도의 의가 빠졌습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로 상달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눈앞에 그들은 역겨운 존재입니다. 


밝은 눈을 지니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율법은 영혼의 참모습, 

내면의 완벽한 사진을 제시합니다. 


이 그림이 공개될 때 

죄인들은 자신이 죄 아래 팔렸으며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영문 <시조>, 1890년 1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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