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은 구약(율법)을 거절함으로 사실상 신약(복음)도 거절하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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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굳게 섰으나
내가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벧후 1:12)
우리가 영생으로 나아가는 여행이 아무리 멀다 할지라도
우리는 종종
우리를 향한 하늘 아버지의 자비에 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으며
그의 허락의 말씀으로부터
소망과 용기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함의 가치를 인식하였으며
매일의 생애에 있어서
크게 주의해야 할 중요성을
신자들에게 권하도록
성령으로 말미암는 강권함을 느꼈다.…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하노라.”
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영원한 행복에
관계된 사물들만을 마음에 명심한다면
우리는 어리석거나 쓸데없는 한담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일생의 과업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포함되어 있는
명백한 교훈에 유의함으로써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실히 하는 일에 부지런해야 한다.
우리가 얻어야 할 하늘이 있고 피해야 할 지옥이 있다.
신자가 많은 교회에서는
표준이 낮추어질 특별한 위험이 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만일 어떤 사람이 고립되어
홀로 있는 것보다
부주의하고 무관심 상태로 자라날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역경 가운데서라도
깨어 기도할 수 있으며
경건한 담화로써
모본을 보일 수 있는바
그것이 선을 위한 강한 증거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행로에 있어서
우리와 동일한 순례자들을
실망시킬 말을 감히 발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이 영광 가운데서
당신과 더불어 살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의 생명을 주셨다.
영원한 세상을 통하여
그는 갈바리 십자가에 못 박힌
그 잔인한 못자국을
그의 손바닥에 간직할 것이다.(MS 23, 1910)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 5:46).
하나님의 말씀은
신약 성경뿐만 아니라 구약 성경도 포함한 것이다.
이 둘 중의 하나만이 분리되어서는 완전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구약의 진리도
신약의 진리보다 못지않게 가치 있다고 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에 있어서
사람의 구속자이신 것처럼
세상이 시작된 때에도 그러하였다.
그의 신성이
인성으로 옷 입고
이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복음의 기별은
아담, 셋, 에녹, 므두셀라, 노아로 말미암아 전하여졌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롯은 소돔에서 복음의 기별을 전하였고,
각 시대를 통하여 신실한 주의 사자들은
장차 오실 자를 선포하였다.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의 생애와 사망과 중보를
증거하기 위하여
사도들은 나아갔다.
굴욕을 받으신 그리스도,
순결하고 거룩 하사 무비한 사랑을 가지신 그리스도는
사도들이 증거한 주제가 되었다.
각 시대마다 진리는 새롭게 전개되어서
그 시대마다,
그 사람들에게 전하시려는 하나님의 기별이 있다.
옛 진리는 다 극히 요긴한 것들이다.
그리고 새 진리는
옛 진리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오히려 그것은 옛 진리를 풀어주는 것이 된다.
우리가 옛 진리를 잘 이해할 때에만 새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구약의 진리를 믿으며 가르치노라고 하나
신약을 거절하는 자들이 있다.
복음을
믿고 가르치노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도
그와 같은 오류에 빠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은 구약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아무 힘이 없다.
저들은 구약을 거절함으로
사실상 신약도 거절하는 것이 된다.
그것은 이 둘이 서로 분리될 때는
완전한 것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복음이 없이
하나님의 율법을 바로 소개할 수 없을 것이고
율법이 없이는
복음을 바로 소개할 수 없다.
율법은 구체화된 복음이요,
복음은 율법에서 전개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율법은 뿌리가 되고
복음은 향기 나는 꽃과 그 꽃이 맺는 열매이다.
구약은 신약에 빛을 비춰주고
신약도 구약에 빛을 준다.
이 둘이 다
간절히 진리를 찾는 자에게
항상 새롭고 깊은 뜻을 계시한다. (실물, 126-128)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5~7
유쾌하고 친절하고 점잖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위해 감화력을 나타낼 것이다.
하늘로부터 온 빛이
그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길에 그 밝은 광선을 비춤으로,
저들로 하여금,
“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힘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외치게 할 것이다.
우리가 하는 말과 우리의 매일의 태도는
나무에 달리는 열매이다.
만일, 열매가 시고 맛이 없을 것 같으면,
그것은 그 나무뿌리가
순결한 근원으로부터
자양분을 뽑아 올리지 못한 때문이다.
만일, 우리의 품성이 온유하고 겸손할 것 같으면,
우리의 애정이 구주와 화목할 것 같으면,
우리는 자신의 생애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음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우리의 생애는
믿지 않는 자들의 생애와
현저한 대조를 이루게 되어,
우리의 동료들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였으며,
그분을 배운 자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은둔해서 살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필요해서
세상과 어울리더라도,
세상에 속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공손함은 계발되고
날마다 실행에 옮겨져야 한다.
불친절한 말을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며,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서 무시하는 대신에
사려 깊은 동정심을 나타내야 한다.
진리와 정의가 섞인 참된 예의는
생애를 유용하게 만들 뿐 아니라
사랑과 선행으로 아름답고 향기나게 할 것이다.
덕행, 정직, 친절 및 성실함은
고상한 품성을 이루어 준다.
이와 같은 특성들을 소유한 사람들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서까지라도 높임을 받게 될 것이며,
교회 안에서 그들의 감화는 매우 귀중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중요한 문제에서
올바르게 행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그러나 사소한 일에 성실할 것 같으면,
책임 있는 보다
높은 지위에 적합한 자가 되게 해줄 것이다. -1886년 11월 11일, 영문 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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