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늘을 굳게 붙들면 붙들수록 유용성을 위한 우리의 힘은 더욱 커질 것이다...우리는 내부로부터 오는 원수를 대적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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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예수님은 우리의 변호자이시며 우리의 대제사장이시며 우리의 중보자이시다.
우리의 처지는 대속죄일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지성소로 들어가셨는데,
현재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탄원하고 계신다.
그리고 속죄소에는 화목케 하는 피가 뿌려졌으며
피가 내포되지 않은 화목제물은
어떠한 것도 화목을 이룰 수 없다.
제사장이 하나님께 중재하는 동안
모든 심령은 범죄에 대한 용서를 빌면서
회개의 무릎을 꿇어야 한다.
세상 죄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어린양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원형과 표상이 만났다.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께서는
우리의 구원에 무한한 가치가 있는
그 희생을 단번에 치르셨다.
그분께서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놓으심으로
사람들의 죄에 대한 대속이 완전하게 이루어졌다.
우리는 지금 성전 바깥뜰에 서서,
복된 소망
곧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모습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어떤 희생 제물도 바칠 필요가 없다.
위대하신 대제사장께서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당신의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변호자로서
우리를 중보하시는 일에는
인간의 공로도, 중보도 필요가 없다.
그분만이 유일하신 죄의 담당자시요,
단 하나뿐인 속죄 제물이시다.
기도와 고백은
모든 인간을 위하여
단번에 지성소로 들어가신 그분께만 드려져야 한다.
그분께서는
믿음으로 당신께 오는 사람이면
한 사람도 빼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중보를 하고 계신다.
인간에게는 오로지 단 한 분의 변호자만이,
단 한 분의 중보자만이 있을 뿐이다.
그분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으시다.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로
예수님을 내놓으신 그분께 대한 감사를
우리 마음 가득히 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갈바리를 가리키는 것이고,
세상의 기초가 서던 날부터 죽음을 당한 어린양을 바라보는 것뿐이다.
죄인과 그리스도 사이에는 중보자가 필요 없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중보자이시다. (ST, 1899. 6. 2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요 17:18)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우리가 세상에서 분리되는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주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업을 행하는데
자격을 상실케 하는가.
그것은 우리 주위에 있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는 일을 방해할 것인가.
아니다.
우리가 하늘을 굳게 붙들면 붙들수록
유용성을 위한 우리의 힘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령이
우리 속에 거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우리는 모범되시는 분을 연구해야 한다.
구주께서는
세상의 높임을 받고 존경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세상의 안일과 쾌락을 추구하는 자들 가운데서
그의 시간을 소비하시지 않으셨다.
그는 도움이 필요되는 자를 도와주고
잃어버린 바되어 멸망해가는 자를 구원하며
상심한 자를 일으키고
속박된 자들에게서 압박의 멍에를 풀어주며
괴로움 당하는 자를 치료하며
실망과 슬픔을 당하는 자에게
동정과 위로의 말을 발하기 위하여 일하셨다.
우리는 이 모범을 따르도록 요구를 받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참여하면 할수록
우리의 동료를 위하여 더욱 일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궁핍한 자에게
축복을 주고 실망한 자를 위로할 것이다
은혜의 시기는 마치려 한다.
곧 죄인을 위한 마지막 기도는 울려질 것이고
마지막 눈물은 흘려질 것이며
마지막 경고는 주어지고
마지막 권면이 발하여지며
자비의 아름다운 음성이 다시는 더 들리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단은 남녀들을 그의 올무 속으로 넣으려고 이처럼 강렬하게 일하고 있다.
원수는 각 영혼을 위하여 생애의 게임을 전개하고 있다.…
우리는 내부로부터 오는
원수를 대적해서 방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깨어 기도하지 않는 한
이 원수들이 마음에 들어와
모든 선한 것들을 없이할 것이기 때문이다.(RH 1900,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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