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는 이제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겸비해졌고 따라서 더 이상 질문하는 일도 없이, 한 때는 참지 못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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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 21:17
이 폐부를 찌르는 질문이 베드로의 경우에 필요했었고
오늘 우리의 경우에도 필요하다.
회복사업은 악의 뿌리에까지 도달하기 전에는 완성될 수 없다.
쓰라린 악의 뿌리가 남아있는 한
그 싹이 거듭 거듭 다시 솟아 나와서 많은 사람을 더럽힌다.
그러므로 감추인 악의 바로 밑뿌리까지 도달해야만 한다. …
그리스도께서 세 번째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 질문은 베드로의 심령 중심에 도달하였다.
스스로를 비판하고 베드로는 반석 위에 떨어져 말하기를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며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했다.
이것은 진리와 의를 부인함으로써 하나님께 욕을 돌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슬프게 한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
어떤 사람은 만일 한 사람이 실수하여 넘어졌다면
그를 다시는 그 위치에 앉힐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 앞에 있는 예들은 그와는 정반대이다. …
그가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바치신 그 영혼들에 대한 청직이 직분을 위임함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로의 회복에 대하여 그가 확신한다는 강한 증거를 베드로에게 주셨다. (5 주석 1152)
베드로는 이제 그리스도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겸비해졌고
따라서 더 이상 질문하는 일도 없이,
한 때는 참지 못하고 자만하며 자신에 차있던 그 제자가 지금은 부드러워졌고 통회하였다.
그는 참으로 그의 주님-그가 부인했던 그 주님을 따랐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부인하거나 거절하지 아니하셨다는 바로 그 생각이 베드로에겐 빛과 위안과 축복이 되었다. (5 주석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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