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성이나 생활에서 결점을 발견했다고 생각할 때, 그는 그것을 지적하기 위해 몹시 안달한다...침소봉대하는 것은 사랑과 용서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이처럼 스스로 판관과 비평가의 위치에 서는 자들은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살후 2:4)는 적(敵)그리스도 편에 자신을 두고 있다. > 엘렌의 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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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성이나 생활에서 결점을 발견했다고 생각할 때, 그는 그것을 지적하기 위해 몹시 안달한다...침소봉대하는 것은 사랑과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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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 119:11)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께 조언을 구하고 

그리스도께 의지하는 이들은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슬기롭게 행동할 수 있다. 


선한 원칙들은 실생활 속에서 입증된다. 


이 시대를 위한 진리는 

오직 진심으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품성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 


진리는 목적을 확고부동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확고한 종교적인 원칙들을 지탱하는 능력을 입증해왔다.


용감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서 얻었던 베들레헴의 물을, 

쇠잔한 다윗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마시지 않았다. 


굴속에서 입을 벌리고 있는 사자들도 

다니엘이 날마다 드리는 기도를 막을 수 없었고,

활활 타오르는 풀무불도 

사드락과 그의 친구들을 느부갓네살이 세운 우상 앞에 무릎 꿇게 만들지는 못했다. 


확고한 원칙을 가지고 있던 그 젊은이들은 

하나님께 진실치 못하게 되느니, 

차라리 쾌락을 멀리하고 

고난에 과감히 도전하였으며, 

사자굴과 이글거리는 풀무불 앞에서도 의연한 태도를 보였다. 


미덕은 혹독한 단련을 받으나 그 승리는 완전하다. 


이같이 고상하고 굴하지 않는 원칙이 모든 시련 속에서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법이다. 


그러한 확고부동함과 어디 한 군데 오점이 없는 원칙은,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연약함과 무능력과 대조를 이루며 밝게 빛난다. 

심술궂은 아이의 심술을 그대로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엘리사가 그의 사업을 처음 시작하였을 때,

베델의 어린아이들에 의해 조롱을 당한 적이 있다.


그는 친절한 정신의 소유자였으나 

전능한 영께서 그 나쁜 아이들을 저주하도록 명하셨다. 


그들은 엘리야의 승천 소식을 들었으나, 

그 엄숙한 사건을 악용하였다. 


엘리사는 자신의 거룩한 소명이 

아이들이나 노인들에 의해 조롱을 당하지 않아야 함을 증명하였다. 


그들이 엘리사 앞에서 “대머리여, 엘리야처럼 승천하라”고 그를 조롱하였을 때,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했다. 


그러자 장엄한 하나님의 심판이 그들에게 임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엘리사는 그의 사업을 행함에 더 이상의 고난을 겪지 않았다. (5증언, 43, 44)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는 충고라 할지라도, 

형제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의 죄의 과중함은 다 나타내지 못한다.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말씀은 타인의 결점을 잘 찾는 사람에 대한 설명이다. 


품성이나 생활에서 결점을 발견했다고 생각할 때, 

그는 그것을 지적하기 위해 몹시 안달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비 그리스도적인 행동을 통해 꼴 지어지는 품성의 특성은, 

비판의 대상이 된 결점과 비교할 때, 

마치 티에 대한 들보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신다. 


침소봉대하는 것은 사랑과 용서의 정신의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 완전히 굴복하는 회개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의 생애를 통해 구주의 사랑에서 나오는, 

마음을 여는 감화를 끼치지 못한다. 


이들은 복음의 따뜻하고 친절한 정신을 잘못 나타내어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귀한 영혼들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스도만이 품성의 유일한 표준이시다. 


그러므로 자신을 다른 사람들의 표준으로 삼는 자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위치에 놓게 된다. 


그리고 하늘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요 5:22)셨으므로, 

사람들의 동기를 비판하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의 특권을 다시 찬탈하는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 판관과 비평가의 위치에 서는 자들은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살후 2:4)는 적(敵)그리스도 편에 자신을 두고 있다. 

가장 불행한 결과로 이끌어가는 죄는 

바리새주의의 특성인, 

냉랭하고 비판적이고 용서를 모르는 정신을 가지는 것이다. 


신앙 경험에 사랑이 없으면 

예수님도 거기에 계시지 않으신다. 


즉, 타인의 결함을 찾아내는데 남다른 지각과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에 빠져 있는 각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고 말씀하신다. (산상보훈, 125,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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