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의 가장 가까이에는 일찍이 사단의 사업에 열심하였으나 지금은 마치 불 가운데서 끄집어낸 불타는 나무와 같이 구주를 열심히 따르고 신뢰하는 자들이 있다. > 엘렌의 글방

사이트 내 전체검색

엘렌의 글방

보좌의 가장 가까이에는 일찍이 사단의 사업에 열심하였으나 지금은 마치 불 가운데서 끄집어낸 불타는 나무와 같이 구주를 열심히 …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기력을 보하려고 마땅한 때에 먹는 이 나라여 복이 있도다” 전 10: 17


정한 시각에 음식을 먹어라. 


그릇된 식사습관으로 말미암아 

그대는 스스로 미래의 고통을 자초(自招)하고 있다. 


비록 그대에게 여러 가지 음식을 아낌없이 대접하고자 하는 그대의 형제나 친구의 초청이라 할지라도

식사 초대에 응하는 것이 반드시 안전하지는 않다. 


그대는 소화기관에 해를 주지 않고 

식사 때 두세 가지 정도의 음식은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대가 식사에 초대를 받아 가거던 그대는 

초청한 사람들이 그대 앞에 차려 놓은 여러 가지 다양한 음식들을 피하도록 하라. 


만일 그대가 충성스러운 파수꾼이 되려고 할 것 같으면 단연코 그와 같이 해야 한다.


만일 먹어서 여러 시간 동안 소화기관에 부담을 주게 될 음식물을 우리가 먹게 된다면 

우리는 그 결과에 대해서 우리에게 음식을 대접한 사람들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소화기관에 해를 끼치지 않을 음식물만을 먹도록 결심할 것을 바라신다. …

서로 맞지 않는 여러 종류의 음식물들이 자주 위를 채우게 되는데 그 결과 고통을 받게 된다. 


그것은 위장에 많은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식사는 정한 시각에 하도록 하며 건전한 음식물을 먹도록 하라. 


한 끼니에 많은 종류의 음식물로 위를 채우지 않도록 하라.

나는 그대나 다른 사람들에게 하루에 두 끼니만을 먹어야 한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한 번에 너무 많은 음식을 위에 넣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할 때 위는 그 기능을 정상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하루에 세 끼의 식사를 하는 것이 두 끼를 하는 것보다 더 좋다.

삼십 년 동안 나는 하루에 두 끼만을 먹었으며 간식을 하지 않았다.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고 

하루에 두 끼를 먹는 일에 매우 익숙하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자기의 입장을 다른 사람에 대한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각 사람은 몸을 현명하게 취급하는 방법과

먹는 일에 부절제하는 것은 

신체조직의 주요한 기능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도록 

신체의 구조를 세밀히 연구해야 한다. 서신 324. 190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있고…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20:12)


이때에 그리스도께서는 그 원수들 앞에 다시 나타나신다.


그 성위 높은 곳, 광휘 찬란한 순금 기초위에 보좌가 설치되고 

그 보좌 위에는 하나님의 아들이 앉으시는데 

그 주위로는 그의 나라의 시민들이 옹위한다. 


이때의 그리스도의 권능과 위엄은

우리의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것이요

우리의 붓으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영원한 아버지의 영광은 그 거룩한 아들을 둘러싼다. 


주의 영광은 

하나님의 성에 차고 

그 성 밖으로도 넘치어 온 세상은 그 광취로 가득하게 된다. 


보좌의 가장 가까이에는 일찍이 사단의 사업에 열심하였으나

지금은 마치 불 가운데서 끄집어낸 불타는 나무와 같이 구주를 열심히 따르고 신뢰하는 자들이 있다.


그 다음에는 속임과 불신 가운데 있어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완전히 지킨 자, 

그리스도교 사회가 하나님의 율법의 폐기를 주장하는 때에도

그 율법을 존중하여 환난을 만나고 고통을 당한 자, 

각 시대를 통하여 신앙을 위하여 그 생명을 초개와 같이 버린 순교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또한 그 밖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계 7:9)있다. 

이때에 구속을 얻은 자들이 일제히 다음과 같은 찬미를 부르는데 

그 소리는 하늘 천정에 반향 되고 또 반향 된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계 7:10)


천사들과 스랍들도 소리를 합하여 찬송한다.…

하나님의 아들의 최후의 대관식은 

천지간의 온 주민이 집합한 가운데서 거행된다. 


그리하여 이제 만왕의 왕께서는 

지극히 큰 위엄과 권세를 가지시고 

당신의 정부에 대하여 반역한 자에게 선고를 내리시고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그 백성을 박해한 자들에게 대하여 공의를 집행하신다.…

이렇게 책들은 펼쳐지고 

예수님의 눈은 악인들을 주목하신다.


그때에 그들은 자신들이 일찍이 범한 죄를 다 생각하게 된다. (각 시대의 대쟁투 665~66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