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여인 어찌되나?!(3)
페이지 정보
본문
정말 좋은 봄 날씨이네요.
죄송합니다. 어제 프로리다 친지와 전화를 했는데 매우 더워서 힘들다는 예기 생각나는군요.
그래요. 세상은 만족할 곳도 없고 만족한 것도 없지요. 그래서 갈증의 인생길이라지요. 또 그래서 더
나은 본향을 찾는 것이지요.
예, 지난번 Carrolyn c.James의 하갈 묘사 이야기를 다시 계속하겠습니다.
꼭 읽어보실래요. 감사합니다. 바쁘신데 말입니다.
창세기 21장은 슬픈 이야기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갈의 슬픈 이야기이지요.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급 여인
하갈의 소생이 이삭을 희롱하는지라"(창 21:8-9)
이리하여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어쫓으라"(상동10절) 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자라면서 싸우는 법인데 말입니다. 속상하는 일이 많은 법이 자녀교육인데 말입니다.
그런데 그냥 큰 문제를 야기시키네요. 정처없는 곳으로 어머니와 아들을 내어쫓다니 말입니다.
좀 가혹하거든요. 하나님은 묵시적으로 나가는 것을 허락했습니다만 많은 원한의 씨앗이 싹트기 시
작하지 않겠어요. 이스마엘은 17살 난 철든 아이인데 가슴에 멍이 들었지 않나 싶습니다.
"하갈이 나가서 브얼세바 들에서 방황하더니"
들이라고 했지만 엄청난 더위의 사막길 80 킬로메터(200리 정도)를 남쪽으로 간 곳에서 방황하고 있
는 것입니다. 애급인이니까 정처없으면서도 자기 나라 있는 그쪽으로 간 것입니다.
길을 가다가 더 이상의 길이 없어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습니다."가죽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물론
먹을 것도 다 했습니다.
억울한 여인 졸지에 쫓겨나 어찌하나?! 살 길이 전혀 없습니다. 죽는 길 외에...
하갈은 "그 자식을 떨기나무 아래 두며 가로되 자식의 죽는 것을 참아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
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창 21:15-16) 정신을 거의 잃고 몸부림치는 마음으로 울어
댔습니다.
죽기전 일이지만 "외로웠다."(선지자와 왕 상 178)고 했습니다. 자기를 도와줄 아무도 없는 것이었습
니다. 몹씨 외로우면 나중엔 두려움이 업습하는 법입니다. 두려움은 외로움의 자식이라지요.
이때 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
리라....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
시웠더라"(창 21:18-19)
하갈이 기진 맥진해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밝은 시력이 돌아오더니 샘을 별견하고 ...했
을 때 그녀는 얼마나 하나님을 인해 감격했겠습니까! 그 하갈의 모습을 연상해 보시지요.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며 해결의 하나님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해결의 하나님이시며 약속의 하나
님이십니다. 이런 은혜의 한결같은 축복은 오늘날도 항상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이때로부터 여차여차 하여 꽤 오랜 후에 아브라함은 불레셋족속의 땅에서 아비멜렉과 이 우물 때문
에 맹세를 맺고 이곳을 브얼세바, 곧 "약속의 우물"의 뜻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얼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창
21:30) 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여기에서 하나님에게 헌정하기 위해 기념식수를 한 것입니다. 에셀나무는 성장이 느리
지만 오래 사는 나무입니다. 에셀나무는 소금을 내는 나무이고 그 밑에 있으면 아주 차겨울만치 서
늘하다고 합니다. 뜨거운 지방에서 나그네길 시원하게 지켜주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흔하지 않는 나무입니다. 아마도 하갈이 목마르고 무더워 죽어갈 때 바로 이 시원함이 긴하게
필요했을 것인데 당시에 거기에는 나무 한 그루가 없었습니다.그래서 하나님을 향한 그 기념식수는
하갈의 삶을 의미한 데도 큰 뜻이 있는듯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에셀나무 같으면 좋겠지요.
이후에 하갈이 애급을 다녀왔는지는 잘 모를 일이지만 하갈은 바란광야, 곧 네겝에서 자유인으로 머
물러 살았으며 아브라함의 약속된 땅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곳에서 부요하게 살았습
니다. 또한 하갈은 여기에서 부요함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번영과 존경에 쌓여 브얼세바에서 살고 있었다. ...수천의 양과 가축이 그의 장막 저편에
펼쳐진 광야들을 덮고 있었다. 사방에는 가신들의 장막 곧 수백명의 충실한 부하들의 집들이 있었다
...하늘은 지연된 소망 가운데서 참을성있게 기다리는 희생의 생활을 축복으로 관씌운 것처럼 보였다."
(부조와 선지자 상 181-182)
브얼세바는 현재 엄청나게 발전한 도시입니다. 미국의 도시나 다름없이 보이는데 놀라게 될 것입니
다. 유대하면 예루살렘, 텔아비브, 브얼세바, 이렇게 세 도시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브얼세바는 하
갈의 방성대곡으로 역사가 창조된 곳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브얼세바하면 하갈이 존경을 받습니다.
역사연구의 유의점은 그 시대의 시점에서 연구되고 평가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는 이후에의 변화과
정에서 연구되고 평가되어야 합니다. 아랍족의 주축은 물론 하갈민족이 주축이지만 에돔, 암몬, 모압
족속이 함께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무조건 이스마엘만을 저주하듯이 말하면 오도
되지 않겠습니까?! 또 한번 하갈이 억울해 하지 않겠습니까?!
긴 글 읽으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에 이 글을 조금 더 계속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안녕히 계십시요!!
- 이전글어머니 10.05.08
- 다음글2010년 미주 서부지역 영성수련회-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 10.05.05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