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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성명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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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명호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5.06 15:48 조회수 11,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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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성명 철학

한국에는 성명철학관이라는 것이 있다. 작명해 주는 일을 한다. 아기를 낳으면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하여 엄마들이 찾는 곳이다.
어떤 아이가 배가 아프다고 칭얼대서 집 가까이 있는 의원에게 갔더니 소화불량이라고 소화제 처방을 해줬다. 소화제를 먹어도 배 아픈 것이 낫지를 않는다. 의원에게 갔더니 역시 소화불량이라고 다른 소화제 처방을 해 주었다. 그래저래 여러 날을 지났다. 드디어 그 의원이 자기는 잘 모르겠으니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엄마는 앓아 끙끙대며 정신을 못 차리는 아이를 업고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진찰하던 의사가 엄마에게 말했다. “어째 아이가 이 지경이 되도록 있다가 이제야 오는 거요. 맹장염이 오래되어 터져서 복막염이 되었는데 이제 살 가망이 없소. 어째 이렇게 다 죽은 아이를 데리고 이제사 병원에 온다는 말이요.” 청천 벽력같은 소리였다. 엄마는 그 아이를 병원에 눕혀놓고 성명철학관을 찾아갔다. 그 아이 이름을 내 밀면서 점을 쳐달라고 했다. 성명철학자가 이름을 보더니 “아하, 이 이름은 배가 터져 죽을 이름인데”하는 것이 아닌가. 그 소리를 듣자마자 엄마는 고함을 지르며 그 철학자에게 대들었다. “당신이 왜 배가 터져죽을 이름을 지어줬소. 이 이름 당신이 지어준 이름이라는 말이요.”
그 성명철학관이 있는 골목이 난리가 났고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이것은 실화이다.
나는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이름을 보고 성명철학자가 뭘 알기는 아나보다. 그런데 이름을 지어줄 때는 아주 좋은 이름이라고 지어주었을 것 아닌가. 그 실상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름을 보고 그 아이가 배가 터져 죽을 이름이라고 한 것은 신기하기도 했다.
동양에서는 이름에 그 사람의 일생의 운명이 달렸다고 믿는 사상이 있는 것 같다. 이런 것을 성명철학이라고 말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성경에도 성명철학이 있다.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전7:1). 아름다운 이름을 얻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이름을 얻는 것은 존재를 얻는 것이고 이름을 잃는 것은 존재를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릇 산 자는 죽을 줄을 알되 죽은 자는 아무것도 모르며 다시는 상도 받지 못하는 것은 그 이름이 잊어버린 바 됨이라”(전9:5). 죽는 것은 이름이 잊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이름을 얻는 것은 아름다운 존재를 얻는 것이 된다. 이런 사상 때문에 이름을 짓는데 각별이 신경을 쓴 것이 분명하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할례의 언약을 하실 때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바꾸어주셨으며, 사래를 사라라고 바꾸어주셨다. 이제 아브람은 그 존재와 인격과 위상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이다. 사래는 공주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제 아브람은 많은 무리의 조상이 될 것이다. 사래는 열국의 주모가 될 것이다. 그래서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열국의 주모라는 뜻의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주신 것이다. 자녀가 하나도 없는 늙은 부부에게 이런 이름을 주시며 그런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도록 한 것은 그 이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요구되었다. 아브라함 부부는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이름을 믿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들 부부는 과연 많은 무리의 조상이 되었다.
이런 사실은 이름이 그 이름을 가진 존재와 동일하다는 사상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이름을 바르게 아는 것은 중요하다. 이런 사실에 기초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성경의 하나님은 그 이름으로 자신을 계시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과 자기의 이름을 동일시하였다.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원방에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붙듯 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나듯 하며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 혀는 맹렬한 불 같으며”(사30:27), 이 말씀은 여호와의 이름과 여호와 자신을 동일시한 사실을 계시하고 있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면 죄가 되는 것이다(출20:7). 왜냐하면 그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 자신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알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올바르게 만나면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고 호소하신다. 여호와라는 이름에는 엄청난 성경 이름 철학이 포함되어 있다. 그 이름을 올바르게 만나면 성경 전체를 아는 열쇠를 손에 쥐는 것과 같다. 나는 그렇게 체험한다. 여호와라는 이름에 계시된 여호와라 이름 하신 하나님을 차근차근 만나는 은혜를 함께 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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