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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을 조연 요압을 주연으로 보는 요압 이야기-교과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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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을 조연 요압을 주연으로 보는 요압이야기-교과공부


요압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다윗을 중심으로 기록되었다.

똑 같은 그 기록으로 요압을 중심으로 사건을 이해하면 

놀라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한번 시도해 보고자 한다.

긴 이야기를 최대한으로 줄였지만 능력부족으로 긴 글이 되었다.


1. 요압은 다윗의 충복이다.

   요압의 세 형제는 다윗의 조카로서 어려서 부터 다윗과 절친한 사이이다.

   다윗은 막내이기 때문에 삼촌이라기 보다 형과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들은 다윗의 용맹과 착함과 신앙에 매료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장군으로 훌륭하게 성장하는데 다윗의 공이 컷을 것이다.

   다윗은 그들의 롤 모델이었다.

   그들은 다윗과 쫓겨 다니면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배웠는데

   그것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결코 죽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윗을 위해 목숨을 내 놓았다.

   그들 형제는 죽을 때까지 결코 다윗을 배반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를 주군으로 섬기면서 그에게 칼을 겨눈 자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그 중에 압살롬과 아브넬과 아마사가 있다.


2. 요압이 그의 충복 우리아를 죽게 한 것은 그의 주군 다윗을 위한 것이다.

   요압은 전시에 우리아 장군을 궁으로 부르고 다시 전쟁에 보내면서

   밀서를 통하여 그를 죽게 하라고 명령을 받았을 때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감지했다.

   우리아는 그의 신복이었기 때문에 망설였지만

   그의 명령대로 하지 않으면 그의 주군인 다윗에게 큰 위기가 올 것을 알았다.

   우리아가 살아 있고 밧세바가 다윗의 아들을 낳는다면

   다윗에게는 이제 막 예루살렘으로 천도하여 왕권을 다지고 있는데 위기가 될 것이다.

   그는 군인으로 다윗의 충복으로 다윗을 보호하여야 했다.

   다윗이 밧세바의 사건으로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압살롬의 반란 시에 백성의 인심이 급속히 다윗에게서 압살롬에게 간 것은

   다윗의 왕권이 쇠약해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3. 요압은 철저한 군인이지만 생각하는 지장이며 덕망 있는 장군이기도 하다.

   다윗이 밧세바의 사건으로 위기에 처하여 있을 때

   그의 주군을 위해 마음을 쓰는 것은 침례 요한과 예수의 정신을 소유했다.

   그가 암몬 족속을 멸하고 랍바 성을 거의 함락했을 때 

   그는 다윗 왕에게 다음과 같은 전통을 보내 모든 전공을 다윗이 돌리게 하였다.

   그는 의도적으로 다윗 왕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랍바 곧 물들의 성을 쳐 취하게 되었으니

   이제 왕은 남은 군사를 모아 진치고 이 성을 쳐서 취하소서.

   내가 이 성을 쳐서 취하면 

   이 성이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을까 두려워하나이다."(삼하12:26-31)


  오늘날 우리가 본 받아야할 얼마나 훌륭한 생각인가


4. 압살롬, 아브넬, 아마샤를 죽인 것에 관하여...

   다윗은 요압의 죄악을 거론할 때 그의 유언에서

   특별히 태평시대에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것에 관해 이야기 한다.

   

   그런데 누구의 살인도 옹호되어야 하지 않지만

   우리아을 죽이고 사울의 왕자들을 죽게 하고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칠만의 백성이 온역으로 죽게 한 것 보다 요압의 이유가 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그 당시는 태평시대가 아니고 전시와 마찬가지로 혼란한 시대였다. 

  

   요압이 아브넬을 죽인 것은 세 가지 이유일 것이다.

   첫째는 성경의 기록대로 그의 동생 아사헬을 아브넬이 죽였기 때문이다.

   그는 동생 아비새와 함께 동생의 시신 앞에서 복수를 약속했다.

   그는 군인으로 전쟁터에서 그와 마주쳐 그를 죽였으면 좋았겠지만 

   급변하는 상황은 그가 더 이상 전쟁터에서 만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둘째는 요세프스의 기록에 의하면 

   다윗이 아브넬에게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으로 삼을 것이 분명하기에 그를 죽였다.

   그렇게 된다면 요압은 결코 동생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고

   사울과 함께 그들을 그렇게 죽이려고 쫓아 다니던 아브넬이 군대 장관이 된다는 것을

   그는 결코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셋째는 나의 생각으로는 처음에 언급한 것과 같이 

   자기의 주군에게 칼을 겨눈 자를 그는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아브넬이 자기의 주군을 자기의 이익 때문에 배반하고 다윗을 주군으로 삼는다면     

   언제 다시 변절하여 자기와 다윗 왕을 배반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압살롬도 아마사도 그는 그러한 이유로 그들을 죽였을 것이다.

   군인의 자부심은 자기의 주군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이다.


5. 요압의 신앙?

   하나님 앞에 다윗이 지은 교만의 죄악 중에 가장 큰 것 중에 하나는 

   다윗이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 때 요압은 다윗에게 이렇게 충언하였다.

   기록을 보면 다윗에게 충언할 수 있는 신복은 선지자 나단과 요압뿐이었다.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삼하24:3)


   그는 군대장관으로 다윗의 하나님을 통해 전쟁의 승리는 수효에 있지 않음을 배웠다.

   

6. 아도니야의 반역과 요압

   만약에 요압이 아도니야와 모의를 하여 다윗에게 반역을 할 의도가 있었다면

   그는 그의 군대를 동원하여 압살롬처럼 다윗에게 칼을 겨누었을 것이다.

   그는 다윗이 솔로몬에게 왕 위를 넘겨주고 그에게 기름 부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아도니야를 왕 위에 세우려고 그의 군대를 동원하여 다윗과 싸우지 않았다.

   그는 그의 주군의 마음을 잘못 읽었기 때문에 그에게 용서를 빌듯이 단 뿔을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그의 부하 부니야에게 죽임을 당했다.

   제사장 아비아달이나 요압이 다윗 왕의 마음을 읽지 못한 것에는 다윗의 책임이 있다.

   이 때 다윗의 나이가 거의 칠십에 이르렀고 그의 국정능력이 쇠퇴하여 졌다.

   모든 이에게 다음의 왕 위 계승자는 아도니야로 생각되어졌다.

   아도니야는 그 자신이 왕이 된 것처럼 행동하였으나 다윗은 말리지 않았다.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 없었더라."(왕상1:6)


 7. 다윗의 유언과 요압의 죽음

    다윗의 유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황당한 유언이 아닐 수 없다.

    정치적인 이유로 용서가 없는 복수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윗이 의인일까? 다윗이 선인일까? 철저한 정치가의 모습인 다윗을 본다. 

    특별히 요압을 이야기 할 때 아도니야를 따랐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오랫동안 그의 마음에 가지고 있던 요압에 대한 증오를 보이고 있다.

    평생을 그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은 충복 요압에 대한 증오이다.

    앞에서 간단히 언급한 아브넬과 아마사의 죽음을 이유로 충복 요압이 죽어야 한다.

    아마도 그의 곁에서 우리아의 살인 사건에서 부터 모든 다윗의 정치적인 것을 

    상세히 알고 있는 그는 죽어야 할 것이다.

    나는 오늘날 이러한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면 정치가 다윗을 주군으로 모시지 않는다.

    그러나 충성스러운 용장 요압은 다윗을 모실 것이며 

    그는 기꺼이 주군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을 것이다. 

    한마디로 토사구팽의 이야기이다.


결언: 요압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아버지이시다"이다.

      아마도 그는 이스라엘 역사의 현장에서 여호와를 아버지처럼 섬겼을 것이다.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주군으로 모셨기 때문이다.


좋은 안식일 보내세요.


2010년 11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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