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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회의 칼럼을 쓰면서-좌파(진보)와 우파(보수)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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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와 우파에 대해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막 10:37)


좌파와 우파의 기원이 불란서 혁명 이전 불안한 정쟁으로 시작됐다.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 대표들은 불란서 왕 루이 16세의 왼쪽에 앉았고 

기득권을 원하는 성직자나 귀족들은 왕의 우편에 앉아 회의를 진행하였다.

그러한 연유로 그 후부터 좌파나 우파라는 정치적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 후 불란서 혁명으로 시민들이 정권을 잡고 루이 16세를 처형하였다.

결국 불란서 혁명으로 좌파가 권력을 잡은 것이다.

그 후 인류 역사의 권력 투쟁에서 좌파와 우파는 그들의 이념을 실행하려고 투쟁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극우, 우파, 중도, 좌파, 극좌등으로 분화되면서 발전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투쟁을 통해 이론으로 무력으로 그들의 입지를 굳히려고 한다.

일종의 좌파와 우파의 정치권력 투쟁으로 결론지어가고 있다.

적어도 정치 현장에서 좌파와 우파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바람직한 일이다.

좌파의 이념으로 시작한 북한과 같은 나라는 아예 진정한 좌파는 없고

모순적으로 기득권을 사수하는 이상한 우파만 존재하고 있다.  


참으로 재미있는 일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이 왕으로 임하실 때

그의 아들들을 좌편과 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의 아들들의 정치적 위치를 확고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예수의 나라에 아들들의 정치적 위상을 요구하는 무지한 어머니의 이기적인 사랑이다.

우리는 흔히 좌파라든가 우파라든가 하는 정치적 개념을 종교적 환경 가운데 적용한다.

물론 종교적 영역에서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좌파적인 일이나 

관료 정신을 가지고 조직의 안전을 최고로 하며 

점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우파의 생각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을 좌파나 우파 혹은 진보나 보수라는 정치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만약 우리가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등 정치적 이즘으로 기독교를 본다면

우리의 기독교적 사고에는 큰 문제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는 우리 주위의 사물을 그리고 인간의 관계등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아야 한다.


정치적인 현장에서는 좌파와 우파가 그들의 정강이나 이념을 실행하기 위해

선거에서나 혁명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고 한다.

물론 종교적인 현장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들이 역사적으로 일어났었고 

그리고 지금도 총회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그들에게 주는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분명히 방법론적으로 종교적인 영역에서 좌파(진보)와 우파(보수)는 달라야 한다.

정치적 현장에서는 좌파와 우파는 자기의 정치적 이념들의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비정상적인 수단을 정당화하여 권력을 쟁취한다.

그러나 종교적인 현장에서 좌파(진보)와 우파(보수)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단 한가지 그리스도의 영광이 그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변화를 요구하는 좌파(진보)는 그 변화의 시작이 자기에서 시작해야하고

현상을 유지하려고 하는 우파(보수)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을 버려야 한다.

좌파(진보)의 미덕은 이론이나 주의(이즘)보다는 실천에 있고

우파(보수)의 미덕은 고집과 아집보다는 듣는 귀와 열린 마음에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에서는 좌파와 우파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 곧 서로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칼럼에서 나는 종교적인 영역에서는 진보적인(좌파) 입장을 견지하고

정치적인 입장에서는 보수적인(우파) 입장을 견지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이율배반적인 이념과 논리의 빈곤인지 모르지만 

내 삶에서 종교와 정치적인 영역을 바라보면서 균형을 찾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교회 안에 변화를 요구하는 많은 칼럼을 썼지만

나의 견해와 상반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 변화를 위해 분열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들은 어쩌면 나의 다른 자아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 좌파(진보)와 우파(보수)는 어떠한 사람들인가 생각해 보았다.

분명히 진정한 좌파는 왼 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게 사랑하는 사람들이고

진정한 우파는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 손이 모르게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김균 선배님의 말처럼 상대방의 왼 쪽은 곧 나의 오른 쪽으로 서로 마주보게 된다.

매일 부부가 서로 마주 보고 살고 있듯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살고 있다.

싸우면서 정이 들고 한 몸이 되는 부부의 관계처럼 말이다.

우리 교회에서의 좌파(진보)와 우파(보수)는 부부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 섬기는 부부들처럼.....


좋은 안식일 보내세요.


2010년 10월 30일 안식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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