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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무샤베 다니엘은 한국의 홍장로님이 후원하시는 사역자 입니다.
그의 선교지는 수도 캄팔라(Kampala)에서는 7~8시간,
저희가 사는 음바라라(Mbarara)에서는 3시간 정도 걸리는
루꾼지리(Rukungiri)라는 타운에 속한 시골 마을입니다.
남서우간다대회에 속한 지역들 중 최근 루꾼지리의 선교열은 눈에 띄게 높습니다.
물론 무샤베 다니엘의 노력과 헌신이 숨어 있음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처음 무샤베가 저희와 일하게 되었을 때
그는 말도 없었지만 미소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영어를 하지 못하는 것이 말이 없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였지만
눈에 띄게 침울한 표정이 늘 마음에 걸렸습니다.
또한 그의 옷은 닳고 허름했습니다.
시골에서 우리가 사는 타운으로 나올 때
보통은 집에 있는 옷 중 깔끔한 옷을 골라 입고 나옵니다.
시골에서 도시로 나오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무샤베는 그런 것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저런 것을 이유로 저희는 과연 그가 사역자로서의 일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방문하고 난 이후에 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역과는 별개로 힘든 삶을 살고 있었는데
그의 아내는 심장병을, 큰 아들은 간질을 앓고 있었습니다.
한 가정에 한 사람만 아파도 신경이 쓰이는 일 일텐데
그에게 큰 힘이 되어 주어야 할 아내와 장남의 중병은
가장인 그에게 큰 염려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우간다에서 심장병과 간질을 앓는 다는 것은
평생 약을 먹어 악화되지 않도록 유지만 겨우 할 뿐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또한 매일 약을 먹어야 한다면 약값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열심히 사역자의 일을 감당하고 있었는데
전도회를 통해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 건축에도 열심을 내는 등
교인들은 그의 사역에 감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부족한 약값이나 음식들을 자진해서 돕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 무샤베의 가족에게 기적같은 기회가 왔습니다.
한국의 뷰티풀 하트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심장병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 기회가 처음부터 그의 아내 플로렌스를 위해 마련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샤베와 같은 사역자인 무힘보의 딸을 돕기 위해 준비를 하던 중에
플로렌스 사모에게도 기회가 가게 되었는데
정작 도움을 받기로 했던 무힘보의 딸은
말라리아로 한국에 가보지도 못하고 어이없이 죽게 되었고
덤으로 함께 가기로 했던 플로렌스 사모만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여권을 만들고 비자를 만드는 일들이
우간다의 보통 행정과 다르게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아슬아슬했지만 여권발행이나 비자 등이 모두 제 시각에 준비가 된 것도
역시 하나님의 도우심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 티켓 역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두 배 가까이 되고 좌석도 없던 것이
극적으로 구할 수 있게 되는 등 플로렌스 사모가 한국으로 가는 날까지도
하나님의 도우심은 계속 되었습니다.
우간다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대략 20여개입니다.
부족마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같은 우간다 사람들이라도
다른 부족과의 대화는 영어로 소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플로렌스 사모는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자기 부족 사람 이외의 사람과는 의사소통을 할 수 없습니다.
수술에 대해 설명하거나 수술 후 증상을 설명할 수 없어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어서 안산단원병원에서
수술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통역을 찾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수술 과정을 준비하는 중에
뷰티풀 하트의 대표이신 김영미 집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우간다에서 한국으로 박사과정을 공부하러 간 모세 목사님의 사모님이
마침 안산에 살고 통역을 도와줄 수 있다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우간다의 언어가 많은 것을 안 저희는
정말 플로렌스 사모가 쓰는 언어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아야만 했습니다.
20여개의 언어 중 어떤 것을 사용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에 있는 자넷 사모와 통화 후 같은 부족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적절한 사람을 미리 준비해주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자넷 사모는 우간다에서 간호사로 일을 했었기 때문에
의사선생님의 어려운 의학용어도 잘 이해하고
한국인과 다른 흑인 체질에 대해서도 이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적임자였습니다.
여러 사람의 도움과 노력으로
드디어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한국으로 가기위해 여행을 하면서
난생처음 수도인 캄팔라도 가보고 비행기도 타보았습니다.
기내식을 받을 때마다 감사해 했고 화장실 사용법이나
문 여는 방법 등도 생소해 했기 때문에 설명해주어야 했습니다.
심장이 약해서 비행 중에 혹시 건강이 악화될까 걱정을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아무 탈 없이 잘 도착하도록 지켜주셨습니다.
한국에 도착해서는 김영미 집사님을 만났고
그때부터 출국할 때까지 집사님이 언니처럼, 엄마처럼 보살펴주셨습니다.
낯선 사람들과 낯선 환경, 수술에서 오는 통증 등
플로렌스 사모에게는 모든 것 하나 쉽지 않았습니다.
피부가 검어서 간호사들이 혈관을 못 찾아
주사바늘로 찔리기도 여러 번 했을 정도로 모든 것이 다른 환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소식을 듣고 여러 교회에서 찾아와 기도와 용기를 주셨고
필요한 수술비를 모두 마련할 수 있도록
여러 곳에서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셨습니다.
안산상록수교회 집사님들께서 돌아가면서 병실을 지켜주시고
음식도 보내고 가족처럼 플로렌스 사모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특히 상록수교회 김병희 집사님은 낮에는 직장 일을 하고
밤에는 피곤한 몸을 쉬러 집에 가지 않고 병실로 와서
플로렌스 사모와 함께 자고 간호를 해주셨습니다.
후에 플로렌스는 본인은 침대에서 자고
집사님은 바닥에서 자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어머니도 그렇게까지 나를 보살펴 주지 않았는데
본인을 위해 맨 바닥에서 주무시는 모습을 보며
큰 사랑을 느끼고 감동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심장 판막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판막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약을 먹어야 합니다.
수술 전에는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서서히 하기 위해 약을 먹었지만
지금은 인공판막이 제 역할을 하도록 약을 먹어야 합니다.
이런 플로렌스 가족을 돕고 싶어하는
김영미 집사님과 상록수교회 집사님들은 약을 평생 사줄 수는 없으므로
자체적으로 수입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의논하다가
염소를 사서 주기로 했습니다.
염소는 아무데서나 잘 자라고 일 년에 두 번 새끼를 낳는데다가
우간다에서는 염소의 수요도 높아서 약값을 대기에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수술 후 플로렌스 사모는 우간다로 무사히 돌아와서
그리웠던 남편과 다시 만났습니다.
건강뿐만이 아니라 한국 성도님들이 주신
정성스런 선물도 큰 가방 한가득 가져왔습니다.
가기 전에는 홀로 남겨져 일과 가사 일을 병행해야 하는
남편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워 눈물지었었는데 이제는 환한 미소로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암염소 7마리와 아기염소 2마리를 전달했습니다.
우간다로 돌아오고 저희는 수많은 감사인사를 받았습니다.
플로렌스 사모의 가족뿐 아니라 그 소식을 듣고 기도하고 있던
모든 교인들이 한 생명을 살려준 것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진심으로 감사를 전해왔습니다.
한국의 많은 성도님들을 대신하여 저희가 그 감사를 잘 받았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기도로, 성금으로, 직접 보살핌으로 도움을 주시고
사랑을 보여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아내 없이, 엄마 없이 살수 밖에 없었던 한 가족이
이제는 기쁨과 안정 속에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무샤베도 미소 가득한 얼굴로 저희를 만나러 옵니다.
저희는 그의 미소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발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그리고 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무샤베 사역자와 플로렌스 사모 가족을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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