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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PMM선교사 박종석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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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땅을 밟다 


   참으로 멀고도 험한 길이었다. 비행기로 인천에서 카타르 도하까지 10시간

도하에서 우간다 엔테베 공항까지 5시간 그리고 자동차로 엔테베 공항에서 움바라라 함영식 선교사 집까지 5시간 

그리고 콩고 국경까지 3시간 30 콩고 국경에서 부템보까지 2시간 30 부템보에서 브니아까지 7시간 도합 33시간을 일주일 동안 걸려서 목적지인 (kibari ituli mission)대회에 도착했다

이것이 아프리카의 경험이다


   6 전에 짐바브웨 서승복 선교사의 초청으로 충청합회 5명이 교회 3곳을 건축해 주기로 하고 짐바브웨 여러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후원금을 건네주고 돌아오는 길에 리빙스턴이 활동했던 빅토리아 폭포에서부터 잠비아와 탄자니아와 케냐를 버스로 선교여행을 했다. 참으로 힘든 길이었다

어려움은 말로 형용할 없을 정도였다. 수많은 어려움을 같이 했던 5명은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호형호제 하며 가까이 지내고 있다. 아마도 호흡이 마치고 생명이 마치는 그날 까지  함께 공유 있는 아름다운 추억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는 아내와 함께 아프리카에서 아름다운 선교 경험담을 만들 차례이다. 어디 좋은 것들만 있겠는가. 모든 것이 눈물과 기쁨이 교차하고 절망과 희망이 섞인 것이리라

지금 우리는 이미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있다.


   물도 전기도 없는 방에서 밤새 구토와 설사를 반복하던 아내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눈물겨운 미역국을 끓여 주던 그래도 하나님이 모든 것을 견디게 주셨던 밤은 페이지를 장식하기에 넉넉하다. 구지 표현 하자면 어디 이뿐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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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훗날 구둘장이 있는 따뜻한 아랫목에서 자녀손들을 불러 모아 놓고 도란도란  함께 나눌 귀한 추억들을 상상해 보면서 입술에 잔잔한 미소가 감돌게 한다

하늘 생명강가에서 영원토록 회상할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콩고선교사로 오기 5개월은 수많은 질문들로 홍역을 치렀다.

애들을 어쩌고? 나이가 몇인데컴퓨터를 다룰 알아야 하는데? 언어를 배울 나이가 아닌데? 후원금을 계속 물어다 줘야 하는데? 치안이 안정되지 않은 곳인데? 각종 전염병(말라리아, 장티푸스, 콜레라, ) 가득한데 최근엔 에볼라까지? 전기도 물도 공급해 주지 않는다는데? 인터넷도 된다는데? 한국에서도 일이 많은데 아프리카까지?...


 그렇다! 나이도 많다. 아이들도 떼어 놓고 가야 한다(첫째는 군입대중, 둘째는 대학생). 많이 보고 싶을 게다. 운동이나 자연을 벗하는 일을 좋아한 나에게 컴퓨터는 이방인이었다. 영어도 묻어 둔지 20년이나 되었다. 전염병도 치안도 모두 취약하다. 물도 전기도 안락한 한국에 비하면 불편하다. 인터넷 사정도 정말 보니 되는 것이 너무 많다. 모든 절망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계속해서 가야한다는 생각은 어디로부터 일까


  벧세메스로 가는 소가 젖먹이 송아지를 뒤로 두고 가게 힘은 어디로 부터인가? 15장에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말씀이 계속해서 떠오르게 하셨다


편안하고 안락한 모든 문화생활을 버리고 떠나기로 결심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다. 롯에 부인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있었다.

   아브라함에게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라고 부르셨을 그는 묻지도 계산해 보지도 않고 순종했다. 2 양옥집과 수세식 화장실을 사용할 있는 문화생활을 버리고 늦은 나이에 떠났다. 그에 비하면 얼마나 부끄러운 믿음인가!


많은 고생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함께 하기로 결심한 아내에게 너무 감사하다.

25 필리핀 아이아스(AIIAS) 공부하러 때도 묵묵히 함께 했던 아내이다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불평 없이 살림을 살아 주었고 아이들도 키워 대학까지 보냈다. 이제는 여유롭게 살고 싶었을 텐데... 


   한국에서 지금껏 20 목회를 했다. 교회 건축을 , 영어 선교원, 아동 그룹홈 복지시설 운영, 각종 전도회, ... 

한번 쯤은 은퇴하기 다른 나라에서 목회를 하고 싶었다. 같은 시간과 같은 에너지를 투자해서 결과를 얻을 있는 목회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선택하게 곳이 콩고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대단한 도전이다. 어려운 선교사의 길이기에 많은 기도의 후원과 응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도 부족한 나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계실 모든 분들을 생각 분에 넘치는 사랑을 어찌 갚아야 할지 다만 고개 숙여 감사 따름이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감당할 있으리라 믿어주고 보내주신 합회와 연합회 그리고 북아태지회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로써 콩고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이미 계획을 세워 놓았음을 믿는다. 일을 이루게 하시든 작은 일을 허락하시든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리라. 배는 그저 선장이 인도하는 대로 움직일 뿐이다. 다만 주님의 심장으로 백성을 품고 주님의 손이 되어 이들을 섬기며 주님이 걸어가신 것처럼 십자가의 길을 걷다보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리라 믿는다. 앞서 가시는 성령님의 섭리를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설레이고 기쁜 일인가!!!!

지금도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크고 놀라운 섭리들을 발견하고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깊고 넓은 선교여행을 시작해 보자. 

비젼을 꿈꾸며 콩고에서 다윗이 주님과 함께 수많은 성을 넘고 승리 것처럼 주님과 함께 있게 날아보련다

아름다운 많은 열매들을 하늘 곳간에 드리는 그날을 기대하며....


콩고PMM선교사 박종석 

congo30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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