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 한 번에 한 번씩, 한 사람을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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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 4시쯤, 수업을 마친 은하와 은총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한 3주쯤 되었을까요? 식탁 앞에 앉기만 하면 느릿느릿 달팽이처럼 수저를 뜨는 은총이기에 ‘엄마, 배에서 부글부글 소리가 나요.’해도 ‘저 녀석, 또 밥을 남기려나 보네.’싶어 ‘얼른 먹어.’ 오히려 눈을 부라리며 엄포를 놓곤 했었는데 며칠 전, 기어코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자다 말고 일어나 매트리스까지 다 젖도록 양껏 토를 하더니 아침에 끓여 준 죽을 먹으면서도 토하고, 소금물을 마시면서도 토하고, 급기야 신발장 앞에서도 비어있는 위장에서 꺼이꺼이 토사물을 끄집어내고 말았습니다. 병명은 장티푸스. 열까지 나는데다 때맞춰 쌍둥이 제 언니까지 함께 토를 하는 상황, 잠복기를 견디고 있던 아이들에게 그저 먹으라고만 윽박지르던 제 자신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이틀을 꼬박 앓던 아이들은 요즘 읽고 있는 ‘재미있는 성경 이야기’ 8권, 제 1편의 ‘가장 위대하신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생각났는지 아픈 배를 움켜쥐고도 ‘예수님, 야이로의 딸을 고쳐주신 것처럼 저도 도와주세요(등장하는 병자들 중에서도 야이로의 딸이 제 또래라고 생각했는지 가장 좋아합니다).’하며 열심히 기도하더라고요(한국에서 인도에서 그리고 캐나다에 함께 기도해 주신 가족들 그리고 지인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신기하게도 다음날 아침, 토란대를 무치고 감자를 살살 볶아 고슬고슬하게 밥을 지어 주었더니 고맙게도 잘 먹고, 말끔히 나은 사람처럼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났습니다. 응답도 응답이지만, 너무 빠른 회복에 의아한 생각이 들어 ‘너, 장티푸스 환자 맞니?’ 물어봤더니 은총이 왈, ‘엄마, 저 이제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 꺼에요.’ 하더라고요. ‘무슨 말씀을?’ ‘예수님을 믿으면 낫는다는 말씀이요.’하고는 씩 웃어보였습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하루가 시작되어 어제 오후, 공부를 무사히 마친 아이들을 집으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아픈 사이 밀려 있는 숙제도 봐줘야 하고, 점심 때 절여놓은 배추 세 포기도 버무려야 하고, 애들 샤워도 시켜야 하는데 전기가 나가 있으니 물을 데워야겠군.’ 하며 머릿속 가득 해야 할 일을 한참 그리고 있는데 ‘엄마, 우리 집에 누가 와있어요.’ 하는 것입니다. ‘누구지?’ 집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세 아이들. ‘저런, 쟤들이 또 왔구나.’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원치 않는 방문객을 쳐다보았습니다.
사라(Sarah), 바라카(Baraka), 그리고 제니퍼(Jennifer). 레마라 영어교실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은 끄덕하면 저희 집에 옵니다. 아니, 아예 자기 집 드나들 듯 합니다. 용건도 그때그때 다릅니다. ‘학비가 없어요.’ ‘우리 아빠가 엄마를 때려요.’ ‘시험인데 교과서가 없어요.’ 어제 찾아온 목적은? ‘다음 주 월요일이 개학인데 공책이랑 신발, 책가방 좀 사 주세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니들 부모도 아니고 이모도 아니고 고모도 아닌데, 아니 너희들은 내가 얼마나 바쁜지도 모르니? 무슨 이런 일로 또 왔어, 증말!’ 순간 뽁작뽁작 기어오르려는 짜증이 나올 틈도 없이 몸을 일으키며 인사하는 아이들에게 저도 모르게 ‘잠보!(Jambo)’하고 ‘은조오니(Njooni, 들어와)’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조용하게 제 마음을 다독이시는 한 분을 떠올렸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번에 한 번씩, 내 앞에 마주한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사랑 없는 제게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세워지는 교회 앞에서 성장하는 교인들 속에서 침례 받는 영혼들 사이에서 전 사랑 많은 선교사인양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지를 벗어난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 치열한 삶 속에서 마주하는 내 앞의 탄자니아 사람들에게 전 어떤 사람일까요.
자동차, 사람, 염소, 자전거, 오토바이가 함께 달리는 아루샤(Arusha) 시내의 좁은 도로에서 급히 끼어드는 달라달라(Daladala, 이곳 시내버스) 운전자에 고함치지 않기, 그 와중에도 밉살스럽게 엄지 척을 들어 올리는 그에 대하여 오히려 미소 지어주기.
서민들이 가장 애용하는 NMB(National Micro-financing Bank) 은행 안, 기껏 줄에 서 있다 이제야 내 차례를 맞았는데 자기가 먼저 왔었다고, 흰 눈동자를 번득거리며 새치기(?)하는 사람에게 삐죽이지 않기, 오히려 인자한 표정으로 앞에 서라 손짓하며 자리를 내어주기.
토마토 한 소도(Sodo, 바구니)에 찌그러진 것, 무른 것, 덜 익은 것, 그리고 찰진 것, 큰 것, 잘 익은 것을 골고루 들키지 않게 넣고 있는 주인아줌마를 바라보며 한 마디 하지 않기, 오히려 바보 손님 마냥 넉넉히 계산하기, 그리고 ‘많이 파세요’ 축복 하며 떠나기.
미국의 한 장로님과 메일을 주고받다 장로님께서 손수 그리신 그림 한 점을 보게 되었습니다. 케냐를 방문하셨을 때 차를 타고 지나다 그저 생경하게 눈에 잡혔던 걸인을 기억하여 그린 그림이었습니다.
“고목 밑에 앉아 있는 갈 곳 없는 노인.
저녁노을이 드는데
동리 앞 노점 장터,
장사꾼들이 모두 상품을 치운 빈 자판대 앞에서
전 재산 양은 냄비 하나와 윗주머니 양은 조각을 수저로 대신하여
오늘 밤은 어디서 자야하나?
주름 잡힌 얼굴에는 지난날과 오늘의 설움이 가득 차 있고
기쁨과 행복한 표정마저 잊은 채
한 푼 적선하시죠!
말조차 꺼내기 힘들어 무덤덤하게 내 차를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마저 흐려져 있다.”
메일은 이렇게 마쳤습니다.
“그런데 난 왜 이분에게 저녁 한번 드시라 대접할 돈을 주지 못했을까.
그림 속에는 나의 후회와 돕지 못한 손이 아쉽고 자책하는 마음으로 남아서
이 그림을 그리며 몇 번이고 후회의 눈물 때문에
눈이 흐려져 그림을 중단하곤 했지요.”
거리에서 시장 바닥에서 도로에서 그리고 삶의 곳곳에서
한 번에 한번씩, 마주하는 그 사람을 사랑하기 그리고 친절하기.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온전히 보내기.
주님과 함께 그렇게 하기.
저희 집을 찾아왔던 사라와 바라카, 그리고 제니퍼는 동생들 책가방까지 가득 챙겨 들고, 룰라랄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모레쯤 또 한 번 찾아오겠지요. 신발과 공책을 받으러...
그때는 더 기쁜 표정으로 환하게 아이들을 맞으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예수들을 꼭 안아주렵니다. 아무 불평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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