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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교 봉지 팔던 고아 소년,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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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82, 마지막 침례식이 있던 날. 이싸(Issa)는 전도회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침례도 받지 않았다. 며칠 동안 당혹스럽고 실망스런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마치 오랫동안 교제하고 결혼까지 약속한 남자가 결혼 당일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은 것만 같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결혼이 취소되고, 당황하는 하객을 돌려보낸 후, 얼마 동안은 이싸를 만날 수가 없었다. 시장에서 마주쳐도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지... 왜일까... 물어볼 수 없는 질문만 머릿속에서 왱왱 맴돌았다.>

작년 이맘때쯤 썼던 저랑 결혼해 주실래요?’의 이싸(Issa) 이야기를 기억하시는지요? (클릭하시면 이싸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http://www.egw.org/zboard/315071)

 

시장에서 검은색 비닐봉지를 팔아 생계를 꾸려가던 착한 고아 소년, 이싸와의 만남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몇 차례 함께 교회에 가고, 대전도회에 이싸를 초대하는 것. 거기까지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친구인지라 가끔 만나 밥도 먹고, 스와힐리어로 번역된 예언의 신도 건네고, 안부도 묻곤 했었지요. ‘교회 가자는 말만 빼고는요.

 

그런데 한 달 전, 다라(Dalaa) 산맥을 넘어 키쿰비(Kikumbi)라는 선교지에서 맞은 안식일 아침, 이싸에게서 느닷없이 오랜만에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저희와 함께 교회에 가고 싶다는 내용으로요. 1년 만에 교회 가자고 온 첫 연락. 저는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습니다. 마치 이별을 통보했던 옛 애인에게서 다시 만나자는 연락을 받은 여자처럼 말이지요.

 

저희는 그 다음주, 마사이 마을에 있는 로시르와(Losirwa) 교회로 가 이싸와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고작 교우 대여섯 명이 앉아 있는 작은 예배소였지만 찬미 소리만큼은 우렁차게 마을을 울렸습니다. 차 목사가 빛과 소금에 대한 말씀을 마친 후, 손님으로 교회를 찾은 이싸가 짧게 간증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요.

 

이싸의 입에서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간증이 흘러나왔습니다.

 

“4년 전, 소코쿠(Soko kuu)에서 처음 차 목사님 부부를 만났을 때만 해도 예수님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희망의 소리통신과목을 공부하며 차근차근 성경을 배우게 되었고, 안식일이 진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각 시대의 대쟁투를 읽으면서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요. 곧 침례를 받고 싶습니다. 저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입니다.”

 

미미 니 사바토 야 카니사 라 와어드벤트스트(Mimi ni Sabato ya kanisa la Waadventist, 저도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인입니다).’라는 마지막 말이 제 귀에 꽂히는 순간, 속에서 뜨거운 감동이 몰려왔습니다. , 바로 1년 전, 얼마나 실망이 컸었나요. 마음이 착 가라앉으며 한동안 어찌할 줄을 몰랐었지요. 그러나 드디어 이싸를 신랑 되신 예수님께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니, 제가 아니라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끈질긴 구애와 애절절한 사랑이 결국, 한 사람을 하나님 보좌 곁으로 끌어당긴 것입니다.

 

지난 안식일인 829, 드디어 이싸는 침례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탄자니아에 와서 선교지가 아닌 시장에서 우연히 만나 4년여 동안 우정을 나누었던 친구에게 베푸는 첫 침례식이었습니다. 더 많은 영혼을 주께 인도하지 못해 부끄럽습니다만 오랫동안 사귄 친구를 하늘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차도록 행복한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획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국 방문을 마치고, 지난 6월 말 탄자니아로 출국하기 직전, 한 집사님께서 저희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는데 써달라며 건축헌금을 손에 쥐어주셨지요. 탄자니아로 돌아와 어떤 지역을 개척해야 할지 기도 중에 있었는데 마침 이싸가 사는 마을인 올길라이(Olgilai)에 우리 교회가 단 한 곳도 없어 인근 지역교회인 세케이(Sekei)에서 분교를 내기를 원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때 마침, 올길라이 마을의 첫 재림교인이 된 이싸가 침례를 받게 된 것입니다.

 

20년 후를 조용히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다시 찾은 탄자니아. 많이 변하고 발전했어도 저희가 살았던 시간 속, 옛 모습들이 곳곳에 정겨움으로 남아있을 탄자니아 올길라이 마을. 이싸는 번듯한 가게 사장님으로(검은 봉지를 팔던 소년 이싸는 곧 장사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또 올길라이 교회의 수석장로로 바쁘게 교회를 오가며 마을의 존경받는 음제(Mzee, 장로)가 되어 있겠지요? , 생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집니다. 이싸의 아내는 잠언에 나오는 현명한 여인으로 안식일이면 교과공부를 지도하는 교사가 되어 있을지 모르지요. 적어도 4명이 넘는 이싸의 자녀들은 열심히 공부하며 선교사가 될 준비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올길라이 교회에는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이 가득하고, 마사이 부족이 많은 이 마을엔 선창과 후창으로 이어지는 찬미 소리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한 영혼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그 영혼을 통해 마을 전체를 구원하시려는 그분의 원대하신 계획을 찬양합니다.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그 날, 이싸 그리고 올길라이 사람들과 함께 그 찬양대 석에 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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