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 청년, 두개골 함몰(?), 호남합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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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찾아온 한국 청년
제가 사는 도시 아루샤(Arusha)에 오락가락한 전기 상태가 계속 된지도 어느덧 4개월째입니다. 처음엔 아침 6시 15분부터 저녁 6시 15분까지 12시간은 꼬박 꼬박 전기를 공급받았는데 두어 달이 지난 다음부터는 낮 시간엔 아예 전기를 구경조차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밤 중 도둑처럼 슬그머니 들어왔다가 몇 시간 만에 홀라당 나가버리는 전기. 그런데 요 며칠 반짝, 희한하게도 전기가 들어오던 어느 오전이었습니다.
“아, 여보세요? 사모님, 저, 청량리 교회에서 오후 순서 쓰셨을 때 옆자리에 앉았던 청년입니다.” 오랜만에 배터리가 그득한 노트북을 켜 번역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 한 통. 이야기인즉슨, 지금 아는 후배가 아프리카 여행 중에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이라는 도시에 있는데 내일 오후 1시, 케냐 나이로비에서 중동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놓칠 것 같다며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내용이었습니다. 내일 비행기를 타려면 지금쯤 아루샤에 있어야 하고 늦어도 오후 2시, 나이로비로 가는 셔틀버스에 올라야 하는 상황. 내일 비행기를 타려면 지금이라도 나이로비 행 항공권을 구입해 비행기로 가는 방법 외엔 없었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청년은 잘 알겠다면서 조심스레 “그런데, 사모님. 제 후배가요. 아프리카 여행 열흘 만에 녹다운 된데다 경비도 바닥이 난 것 같아요. 이대로 아프리카를 떠나면 후회가 많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는 “그럼 혹시 내일 아루샤로 올라오라고 하면 어떨까요. 중동행 티켓을 포기해도 된다면요. 저희도 곧 선교지를 방문할 예정인데 함께 가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25살, 터키를 여행할 때 예상치 못한 현지물가 때문에 여행 일주일 만에 경비가 떨어진 적이 있었지요. 그때 거리에서 만난 한 친구의 호의로 한 달여 동안 그 친구 집에서 머물며 진짜 터키를 경험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예정대로 여행을 이어나가는 것보다는 누군가의 따뜻한 위로와 손길이 더 절실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저녁 8시, 저희 부부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야구 모자를 눌러쓴 공태영 청년을 집으로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로는 특별히 비빔밥 정식을 준비했습니다. 정식이라 해봐야 미역국, 비빔밥, 김치에 반찬 몇 가지, 과일 몇 조각뿐이었지만요. 샤워를 마치고 나온 태영 청년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순식간에 허겁지겁 모든 그릇을 싹싹 깨끗하게 먹어 치웠습니다. 이틀 내내 프링글스 감자칩만 먹었다면서 ‘정말 감동적인 식사’라며 엄지척을 해주더니 ‘여태껏 먹어본 밥 중에 제일 맛있는 밥’인만큼 자기 전 일기장에다도 쓸 거라고 하더라고요. 마치 외국에 있다 이제야 고국을 찾은 막내 동생을 맞은 가족처럼 저희 모두는 그렇게 편안한 저녁을 함께 보낸 후, 다음날, 마람보(Malambo) 교회를 향해 먼 길을 나섰습니다.
- 식사를 마친 태영 청년
약 1년 전, 롤리온도(Lolliondo) 지역장이신 음곤자(Mgonja) 목사님께서 아루샤를 찾아 오셨었지요. 마사이(Masai)와 손조(Sonjo) 부족들이 사는 마람보(Malambo)라는 지역에 평신도 사역자를 파송하고 교회를 건축하는 일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미 전도종족을 위한 개척이 여러 군데에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다시 먼 오지로 새로운 사역자를 파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고향 호남합회 홈페이지를 둘러보던 저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탄자니아 선교자금 마련 도농 바자회/ 식당"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지요. 2014년 도농 페스티벌에 호남합회 여성협회에서 주관하는 바자회와 식당의 수익금을 탄자니아 교회 건축 선교자금으로 사용하시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소식이었던지요. 이번에도 주인공은 하나님, 일일이 알지 못하는 순간순간마다 찬찬히 그러나 섬세히 일하고 계셨던 결과였습니다. 추운 겨울, 호남삼육중고등학교 운동장 한편에서 사랑이 가득한 칼국수 350그릇을 팔아 보내주신 수익금과 이화영 여성협회장님의 민화 전시회 수익금, 김가일 목사님과 영광 교회 성도님들의 후원금, 그리고 호남합회의 도움으로 저희들은 마람보 교회 부지를 구입하고 곧 건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두개골 함몰(?), 그래도 살아남다!
그리고 드디어 1년이 지난 2015년 10월 17일 안식일, 거의 완성된 마람보 교회 방문을 위해 길을 나선 것입니다. 마람보 방문은 그 어느 교회 방문보다 설레고 행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세워진 오지의 개척교회에서 보낼 첫 안식일이라는 사실에 무척이나 고무적인 안식일 아침이었지요.
가는 내내, 마람보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한 울퉁불퉁 자갈밭이 유난히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차체와 사람은 심각하게 흔들렸지만 오지에 있는 사역지를 방문할 때면 늘 있는 상황이기에 묵묵히 갈 도리 밖에는 없었지요. 그러다 바로 앞, 약간 깊게 파인 얕은 구덩이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순식간에 온몸이 차 지붕을 향해 튕겨져 올라가더니 내부 천장에 용접된 철근 중앙을 향하여 머리 정수리가 정통으로 탁, 맞고는 내려왔다 다시 한 번 위로 솟구쳐 올랐습니다(저희 차량은 하드탑(Hard top)으로 차 지붕을 열 수 있는 형태라 내부 천장에 굵은 철근 구조물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순간, ‘교통사고로 머리가 깨져 죽는구나.’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얼마나 아픈지 한동안은 온 팔로 머리를 감싸 안고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 만졌을 땐, 이마와 턱만 심하게 아팠었는데 사실, 정수리에 1cm 가량이 함몰된 것처럼 움푹 들어가 있더라고요(지금도 만져보면 소분화구가 있습니다). 그래도 죽지 않고, 두개골이 함몰되어 뇌가 다치지 않은 게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스런 일인지요. 정신을 차리고 난 직후, 셀프 기억력 테스트 차원에서 ‘어제 뭘 했지? 나는 누구? 여긴 어디?’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스스로 답도 잘했고, 지금 이렇게 글까지 쓰고 있는 걸 보면 전 멀쩡한 게 분명합니다. 악어가 득실거리는 호수를 건너고, 전갈이 스킨십을 건네는 나무판자에서 자야 했던 1800년대 선교사들에 비하면 머리가 움푹 들어간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멀쩡하게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마람보교회 가는 길
탄자니아에 세워진 우리 교회
한국에서 그런 사고가 났다면 근처 응급실로 직행하는 것이 순서였겠지만 지금은 병원은커녕 약국조차 없는 황량한 땅을 통과하여 교회로 가는 중. 띵한 머리로 드디어 마람보에 들어섰을 때, 시내 한 가운데 우뚝 세워진 교회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작년 방문 후, 처음 보는 교회였습니다만 보자마자 모두가 외쳤습니다. “와, 우리 교회다.” 정말 우리 교회가 바로 그곳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한국의 고향 성도들께서 지원해 주신 우리 교회. 작년, 개척 초기에만 해도 예배 장소가 없어 나무 아래서 예배드리던 10명 남짓이었던 교우들은 어느덧 30명으로 늘어 있었고, 교회 부지 바로 앞에 위치한 마람보 중학교(Malambo Secondary School)에 근무하시는 두 분의 교사(교인) 덕분에 선생님을 따라 교회로 인도함을 받은 중학교 학생들도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조금 야위었지만 힘차게 예배를 인도하는 크리스토퍼 사역자와 처음 보는 와중구(Wazungu, 외국인)를 곁눈질로 힐끗 힐끗 살피며 슬며시 미소를 보내는 교인들을 보는 순간 아프고 힘들었던 제 마음은 보들보들 녹아 내렸고, 가슴엔 감동과 감사로 가득 찼습니다. 예배가 마친 후엔 마람보 개척 후, 처음으로 5명의 교우들이 침례를 받았는데요. 교회 밖, 외벽을 사용해 함께 만든 작은 침례탕에서 마사이 아주머니 한 명, 마마(Mama) 한 명, 그리고 마람보 중학생 3명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작년, 이곳 교회 개척을 위해 저희를 처음 찾아오셨던 음곤자 목사님께서는 “마람보 사람들은 조그만 이단 교회인 줄 알았던 마람보재림교회가 이토록 멋지게 세워지는 것을 보고 모두들 기적이라고 한 마디씩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한국에 계신 후원자들께 꼭 인사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마사이들과 손조 부족들의 땅, 마람보에 아름다운 교회를 건축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위대하신 스토리텔러(Storyteller) 하나님, 그리고 이 아름다운 사역에 동참해 주신 고향합회와 여성협회 임원분들, 협력해 주신 모든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마람보 전역에 사는 모든 부족민들이 참 진리요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도록 변함없는 관심과 많은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태영씨는 아프리카 여행을 시작하며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여행 중에 꼭 한번이라도 천사를 만나게 해주세요.” 마람보 방문을 마친 후, 일정을 바꾸어 잠비아(Zambia)로 내려가던 날 아침, 태영씨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제 기도에 응답해 주셨어요. 전 천사를 만났습니다. 감사합니다.”
여행 중 낙심에 빠져 있던 청년의 삶 속에
안식일 아침, 머리가 깨질 뻔했던 선교사의 삶 속에
그리고 복음이 간절했던 오지의 부족들의 삶 속에
오직 하나님께서 기이하신 방법으로 개입하시고 간섭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불철주야 선교지와 선교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시는 분들의 간절한 기도로
부족하나마 이러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며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날마다 이러한 하나님을 더 많이 경험하고 더 많이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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