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 새벽에 찾아온 이민국 직원, 그리고 침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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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7일, 아루샤(Arusha)에서 350km 떨어진 키쿰비(Kikumbi)라는 사역지 방문을 하루 앞두고, 연합회장님의 비서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습니다. 장장 4개월을 기다려왔던 워크 퍼밋(Work permit, 노동 허가)이 드디어 발급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노동 허가는 2년마다 갱신이 필요한데 저희 비자는 올해 4월 2일로 만료되어 근 한 달이 넘도록 본의 아니게 불법 체류자 신세로 살고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올해 2016년, 존 폼베 마구풀리(John Pombe Magufuli, 이분의 이름 한 가운데는 특이하게도 폼베, 즉 술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라는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탄자니아 시민은 각자 자신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합시다!”, 즉 "하파 카지 투(Hapa Kazi tu! 이곳은 오직 일!)"라는 슬로건을 내걸기 시작했습니다. 아루샤 시내 곳곳은 곧, “Hapa Kazi Tu”라는 문구로 도배가 되었고, 저희는 간혹 일이 많을 때마다 현지인들과 함께 “하파 카지 투”라며 우스갯소리를 주고받곤 했지요.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는 탄자니아 거주 외국인들이 비자를 받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탄자니아에도 충분히 엔지니어들이 있는데 왜 엔지니어에게 비자를 줘야 하냐며 특정 국가 엔지니어에게는 비자 발급을 거절하는가 하면, 탄자니아에도 목사가 많은데 왜 굳이 선교사가 필요하냐며 실제로 루터교 소속 선교사에게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등 괜한 트집을 잡아 이유 없이 거절 혹은 지연시키는 사례가 많은 상황이었습니다.
- 탄자니아 대통령 마구풀리님의 사진과 "하파 카지 투" 슬로건
그러던 차, 저희 가족의 비자가 발급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늦은 오후,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 이민국에서 연합회 쪽으로 보내준 새 워크 퍼밋의 복사본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았습니다. 지난 2012년, 처음으로 탄자니아를 밟은 후 어느덧, 세 번째 퍼밋을 갱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2년간의 사역도 넉넉하게 허락해 주셨음에 참으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소중한 복사본을 봉투에 고이 담아 차량 조수석 앞 서랍에 넣은 후, 다음 날 사역지로 출발했습니다. 여권에 새로운 비자가 찍히려면 아루샤 이민국에서 다시 며칠이 더 소요될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7시간의 여행 끝에 도착한 코로그웨(Korogwe). 하룻밤을 잔 후, 안식일 아침을 맞았습니다. 이제 이곳에서 1시간 반만 이동하면 키쿰비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아이들을 깨우고, 빨리 식사를 마쳐야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둑새벽, 게스트하우스 복도를 걸어오는 한 무리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이 방 저 방을 두드리기도 하고, 누군가를 찾는 듯 한 그들의 발소리가 멈춘 건 바로 복도 맨 끝 방, 다름 아닌 저의 방이었습니다. “똑똑똑” 이 새벽, 낯선 게스트하우스에서 나를 찾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간밤, 이 숙소에서 무슨 범죄라도 일어났나? 삐걱, 조심스레 문을 열었습니다. 대뜸 “이민국에서 나왔습니다.” 하며 코앞으로 신분증을 내미는 남자. 아차! 어제 오후, 체크인을 할 때 ‘여권번호’를 쓰는 란을 비워놨던 것이 퍼뜩 생각났습니다. 외우지 못하는 여권번호 대신 운전면허번호라도 적으려고 했는데 그만 깜빡 잊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비자와 여권을 보여 줄 수 있는지 물어보는 그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한 후, 한달음으로 주차장까지 달려가 조수석에 넣어놓았던 복사본을 꺼내들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이민국 직원 두 명은 그새 1층 로비에 앉아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꼼꼼히 복사본을 훑어보던 한 직원은 “당신의 거주 및 노동 허가가 떨어진 지역은 오로지 아루샤 뿐인데 왜 탕가(Tanga Region)에 내려와 있습니까? 탕가에서는 일하면 안 된다는 것을 모릅니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호라, 그렇다면 전 전혀 문제가 될 게 없었지요. 왜냐고요? 그날은 안식일이었으니까요. 저는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재림교인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 경배하는 안식일이구요. 전 이곳에 예배를 드리러 왔지 일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제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다소곳이 서 있던 게스트하우스 주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부연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이곳 탕가에도 안식일교회가 여럿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오늘이 쉬는 날입니다.” 이 말을 들은 이민국 직원은 복사본을 돌려주며 이렇게 신신당부했습니다. “오늘 예배가 끝나는 즉시 아루샤로 올라가야 하고, 절대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 날 아침, 저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우리 모두를 구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안식일이 곤경에 처할 뻔했던 저희 가족을 구한 것입니다. 사실 이민국 직원을 마주한 일은 탄자니아 거주 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사역지 가는 길에 비자 복사본을 챙긴 것도 그 날이 처음이라는 것이지요. 지난 4년간 한 번도 비자나 여권 복사본을 챙겨서 다닌 일이 없었습니다. 아루샤를 벗어나 먼 지역으로 여행하기도 수차례였는데 그때마다 빈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지난 4년간 상황 파악을 전혀 못하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 날 아침 만약 복사본을 안 가져왔다면? 아니, 그 전날, 비자 발급이 안 된 상태였음에도 불구 평소처럼 출발했다면? 복사본이 있었다 하더라도, 만약 그 날이 안식일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생애 최초로 아프리카 유치장에서 색다른 그러나 조금은 끔찍한 경험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 뜨끔했던 안식일 오후, 저희는 무사히 키쿰비 교회에 도착해 30명의 귀한 영혼들에게 침례를 베풀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 지역은 케냐와 접경으로 본래 케냐의 최대 부족 중 하나인 캄바(Kamba) 부족이 탄자니아에 이주해 둥지를 튼 마을입니다. 따라서 식민지 시대 아랍의 영향을 받아 거주민 대부분이 이슬람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 타 무슬림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구주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캄바 족 모두가 기독교가 전혀 낯설지 않은 케냐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전도회를 통해서도 세 명의 캄바 부족원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 가운데 올해 27살인 자페리 아미리(Japhery Amiri)라는 청년이 저에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마을에 마스지드(Masjid, 스와힐리어로 회교사원)라고는 딱 하나 뿐인데 쉐헤(Shehe, 스와힐리어로 이맘Imam, 즉 사원의 예배 인도자)도 안 계시고, 코란은 아랍어로만 되어 있어 늘 진리에 목이 말라 있었습니다. 그런데 2주 전, 재림교회에서 전도회를 시작하고 난 후,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예수님에 대해 듣게 되었어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부르시고, 사랑하시고, 구원하신다는 말씀이 제 귀에 꿀처럼 달았습니다. 기독교의 쉐헤이신 알파요(Alphayo) 사역자(자페리 청년은 키쿰비 재림 교회의 사역자를 자기 동네의 유일무이한 이맘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가 저희 집을 방문해 성경을 펴서 해석해 주었는데 말씀마다 진리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저는 성경을 통해 알라(Allah,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으므로 오늘 침례 받기를 원합니다.”
- 침례를 받은 캄바 출신 무슬림들,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자페리 청년입니다.
마을 아래 위치한 작은 강가에서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을 받은 자페리 청년, 그리고 29명의 영혼들이 침례를 받는 장면은 그야말로 감동이었습니다. 차 목사가 한 팔을 높이 들어올리고, “자페리, 니나쿠바티자 콰 지나 라 바바 나 므와나 나 로호 음타카티푸”(Japhery, ninakubatiza kwa jina la Baba na Mwana na Roho Mtakatifu. 자페리, 나는 그대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푸노라)고 말한 후, 자페리 청년을 물속에 담그면 모여 있던 모든 성도들은 즉시 입을 맞추어 “자페리 우메파타레오. 지나야펜다 음빙구니. 투타 임바 나 말라이카 투키피카 음빙구니.”(Japhery, umepata leo. Jinayapenda mbinguni. Tutaimba na malaika tukifika mbinguni. 자페리, 오늘 당신은 침례를 받았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늘에 이를 때, 천사들과 함께 찬양할 것입니다.)라는 아름다운 찬양으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 찬양은 한 사람, 한 사람, 그리고 마지막 사람이 침례를 받을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 키쿰비 교회 그리고 강가에서 이루어진 침례식
침례식 후, 키쿰비의 교인들에게는 가족별로 10개의 정수 항아리를(후원해 주신 영산교회에 감사를 드립니다), 침례를 받은 캄바 청년들에게는 성경책을 1권씩 선물로 나누어 주었습니다(박정희 집사님 감사합니다).
- 침례식 후 항아리 정수기와 성경책을 나누어 드리는 장면
지난 2013년 8월, 캄바 족과 더불어 키쿰비 마을의 주 거주자들인 삼바(Samba) 족과 마사이(Maasai)족과 함께 복음을 나눌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변함없이 이 지역 선교를 위해 사역자를 지원해 주고 계신 노귀환 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가족과 떨어져 오지에서 오직 개척에 헌신해 온 알파요 사역자를 통해 지난 3년 간, 76명의 귀한 영혼들이 침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 알파요 사역자 가족
캄바와 삼바, 그리고 마사이 부족 모두가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영광의 왕으로 재림하실 예수님을 뵈옵는 그 날까지 견실한 믿음 위에 굳게 서도록 많은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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