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 할아버지네 이사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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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날
오늘은 멜리요(Meliyo) 할아버지네 집을 지어드리는 날. 어째 해가 쨍쨍 비춰야 할 건기인 요즘,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댁으로 올라가는 길, 할아버지, 할머니가 드시기 편하도록 바나나와 찐 카사바를 조금씩 샀습니다. 호세아(Hosea) 사역자와 마을의 장정들, 그리고 주변의 꼬맹이들까지 웅성웅성, 거사를 앞두고 모두들 조금씩 들떠 있는 표정으로 할아버지 댁 앞에 모여들 있습니다.
‘호디, 호디’(Hodi, hodi, 계세요?) 반쯤 열린 할아버지 댁에 발을 들여놓으며 어두운 보마(Boma, 마사이 가옥)안을 들여다보니 할머니, 저를 보시자마자 ‘음토토 양구’(Mtoto yanga, 내 새끼 왔는가)하시며 손등 위에 그리고 제 얼굴에 족히 열 번은 넘게 뽀뽀를 해주십니다. 할아버지도 이빨 빠진 입을 훤히 벌리시며 반갑게 손짓 하시네요. 가져간 바나나를 까서 손에 쥐어 드리니 멜리요란 이름답게(마사이어로 멜리요란 ‘말이 많은 사람’이란 뜻이랍니다) ‘나 펜다 히 은디지 사나. 이나온게자 은구부.’(Napenda hi ndizi sana. Inaongeza nguvu, 나, 이 바나나 정말 좋아한다구. 이걸 먹으면 힘이 나요.) 침까지 튀기시며 연거푸 바나나 세 개를 해치우십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집을 지을 차례.
남편은 마을사람들이 이미 편평하게 다져놓은 집터로 가서 노란색 줄과 수평기를 이용해 집의 네 기둥이 될 자리의 각 지점이 수평을 이루는지 확인합니다. 그리고는 이미 파놓은 구멍 안으로 파이프를 하나씩 세웁니다. 옆에 서있던 장정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커다란 나무를 가져다가 파이프가 잘 고정되도록 위에서 쿵쿵 내리찍습니다. 아, 저 네 개의 파이프는 지난 7월, 미국의 의료진과 왈덴스 팀이 왔을 때 진료소에 썼던 파이프를 가져다 재활용하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들의 접수를 받던 등록처의 기둥이 결국에는 멜리요 할아버지 집의 기둥으로 쓰였네요.
사각기둥이 완성되자 이번엔 벽 역할을 하게 될 기다랗고 날씬한 나무들이 운반됩니다. 옆에서 한참동안이나 ‘음중구’(Mzungu, 외국인)를 빤히 쳐다만 보고 있던 아이들도 이번엔 무릎을 꿇고, 저마다 자그마한 손으로 구멍을 파느라 열심입니다. 다 파진 구멍자리마다 가로로는 나무 몸통이 하나씩 촘촘하게 세워지고, 세로로는 ‘미안지’(Mianzi, 전통 탄자니아 가옥의 벽을 세울 때 쓰는 가는 대나무줄기)가 두 겹 세 겹씩 겹쳐지며 벽을 완성해갑니다. 집의 바깥쪽과 안쪽으로 두 번씩 대나무줄기를 따로 따로 엮는 것은 그 사이사이마다 흙을 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우기에는 물이 스며들지 않고, 건기의 짱짱한 날씨에는 통풍이 잘되는 전통 탄자니아집이 완성됩니다.
가만있어보자, 이 시각, 우리 멜리요 할아버지는 뭘 하고 계실까요? 구경 나온 아이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어린 동생을 들쳐 업은 언니가 동무와 신나게 손놀이를 하는 동안 할아버지의 온 신경은 집 짓는 현장에 가 있습니다. 며칠 전 가져다 드린 양말을 거꾸로 뒤집어 신으신 채 빼꼼히 밖을 내다보는 할아버지.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소년처럼, 지난번엔 한 움큼 집어 드린 사탕을 양말 안, 가득 넣고 하나하나 빼 드시더니, 오늘은 그 양말을 뒤집어 신고 계시네요. 몇 발자국이면 닿을 거리인데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한발자국도 뗄 수 없는 할아버지. 마음속으로는 벌써 골백번도 지어보셨겠지요. 평생 단짝 할머니와 함께 편히 누울 수 있는 내 집을. 얼른 달려가 나무도 박고, 벽도 세우고, 지붕도 내 손으로 씌우면 좋으련만 생각하시겠지요. 내 집을 손수 짓고 싶은 이 터의 주인, 주인으로서 말입니다.
똥벽을 바르다
탄자니아 가옥의 기초와 벽, 그리고 지붕 공사가 남자들의 몫이라면 벽 안팎으로 똥벽을 바르는 미장일은 온전히 여자들의 몫입니다. 물론 이따금씩 보기 드물게 마사이 가장들이 아내를 돕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만, 대체로 흙, 물, 바나나 잎, 그리고 소똥을 걸쭉하게 섞어 펴 바르는 일에 남자들이 참여하는 법은 없습니다. 며칠간 남자들이 세워놓은 구조물 미장 공사를 위해 이번엔 멜리요 할머니의 친구들이 다 모였습니다.
은도오(Ndoo, 보통 가게에서 기름을 담아 파는 플라스틱 통인데 물을 지는 용도로 쓰기 위해 마마들이 공짜로 얻거나 싸게 삽니다)를 머리에 이고 하나둘씩 앞마당으로 모여드는 마마들. 어떤 마마는 물, 또 어떤 마마는 소똥이 가득 들어 있는 논도를 머리에서 내리고는 마당 한 켠에 쫙 쏟아 붓습니다. 그리고는 그 온갖 것(?)이 뭉쳐져 있는 미장 재료를 두 발로 다지기 시작합니다. 되직하게 최대한 찰기 있게 똥과 흙을 밟아대는 마마들. 군청색이 감도는 소의 배설물에서는 존재를 알리는 악취가 순식간에 주변을 장악합니다.
그런데 어, 요 봐라, 어른인 저도 머리에 이기에는, 아니 한 번도 정수리에 놓아본 적이 없는 그 은도오를 이번엔 꼬맹이들이 하나씩 이고는 할머니 일을 도와줍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작은 아이는 통의 절반만, 큰 아이는 통의 3/4를 똥으로 혹은 물로 채우고는 부지런히 재료를 나르기 시작합니다. 그 모습에 놀란 제가 카메라 가방 앞에 넣어 두었던 사탕을 주며 ‘와토토 와주리 사나’(Watoto wazuri sana, 와, 니들 정말 대단한데!)하며 폭풍칭찬을 해주자 똥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다시 흙길을 달려 내려갔다 다시 논도를 지고 올라와 부어 놓는 일을 무한 반복합니다. 마사이 아이들은 매우 어릴 때부터 집안일을 돕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숯 냄새가 메케한 부엌에서 불을 피우는 법부터 배우고, 남자아이들은 하루 종일 땡볕에서 양을 치고 소를 돌보는 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입니다. 어른들이 일을 할 때도 마냥 보고만 있지 않습니다. 뭐라도 나르고, 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합니다. 참 기특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사이 아이들의 유년기.
자, 이제 마마 차(Mama Cha)인 저도 합세할 차례. 바바(Baba, 남자)가 아닌 마마인 이상 꿔다놓은 보리짝 마냥 그저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카메라 가방을 내려놓고, 오는 길에 사가지고 온 고무장갑부터 꺼내 들었습니다. 되직한 똥냄새가 계속하여 코를 찌르는데 손으로는 도저히 못 만질 것 같습니다. 혹시나 혼자만 끼냐 할까봐서 고무장갑을 아홉 개나 사갔는데도 마마들은 절래 절래 고개를 흔듭니다. 안 낀다네요. 아니, 어떻게 저 똥을 맨손으로 만집니까? 장갑을 끼어 좋은 건 알겠는데 마사이 마마들이 왜 안 끼는지도 알 것 같습니다. 확실히 손에 감각이 더디네요. 어둔하고, 자꾸만 흙이 떨어집니다. 잘 뭉쳐지지가 않습니다. 한 마마 곁에 바짝 붙어 어떻게 하나 살펴보니 별로 어려운 것 같지도 않은데... 그저 똥 반죽을 한 손에 올려놓고는 이리저리 한 번 더 치댄 후 벽에 쭉 펴 바르면 되겠는데... 왜 난 이리도 잘 안 되는 것일까요? 그래도 이 장갑만큼은 절대 사수! 그냥 내 방식대로 하지 뭐. 그랬더니 어디선가 수군수군 소리가 들려옵니다. ‘히 마마 하웨지 카비사’(Hii mama hawezi kabisa, 저 여자 정말 할 줄 모른다. 진짜 못하네.) 흥, 그러든가 말든가.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마마 차가 아닌 바바 차(차 선교사)는 마마도 아닌데 너무 잘한다고 칭찬 세례를 받고 있는 게 아닙니까? ‘시다이 날렝, 모란!’(Sidai naleng, Moran! 정말 잘하고 있어요, 마사이 전사! -모란: 성인식을 치른 마사이 남자에게 부르는 호칭)
남편은 그냥 똥 재료를 한 번에 들어 올린 후 눈덩이 뭉치듯 조물조물 뭉친 다음 홱, 공 던지듯 벽에 던져 펴 바르고 있습니다. 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 따라해 보니 이게 웬걸, 똥 벼락 맞기 십상이네요. 후드득 머리 위로 떨어지는 똥들, 급기야 안경테에까지 떨어져 식겁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도 웃고, 저도 웃고, 마사이 마마들도 웃고. 멜리요 할아버지 네를 돕는 손길들 너머로 에헤라디야 밝고 환한 기쁨이 퍼져 나가는 순간입니다.
- 아줌마들의 미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꼬마와 미장하는 모습입니다
드디어 집이 완성되었어요!
창문과 문도 달고, 첫 미장은 되직하게, 두 번째 미장은 최대한 미끈하게 모든 공사를 마친 날. 할아버지네 가구를 보러 갔습니다. 가구라 봐야 방 사이즈에 꼭 맞는 할아버지, 할머니 침대 각각 1개, 매트리스 각각 1개, 그리고 베게와 베게 커버(할아버지는 회색, 할머니는 보라색) 각각 1개, 마지막으로 힘 펄펄 내시라고 호피무늬 이불까지 각각 1개. 왜 모든 게 각각이냐고요? 전통 마사이들은 부부가 한 방을 쓰는 일이 없답니다. 남편과 아내는 따로 방을 가지고 있고, 출산 계획이 있을 때만 합방을 한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네 작은 집도 반으로 갈라 중간에 벽을 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속으로는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있나요? 마사이 문화에 따라야지요.
집을 짓던 첫날처럼 랜드 크루저 지붕에 침대를 싣고, 할아버지 집 앞에 내리자 그동안 함께 했던 장정들, 마마들, 꼬맹이들, 모든 건축 동료들이 혀를 동그랗고 말고는 ‘오로로로로’(마사이들이 행복할 때 내는 소리) 기분 좋은 환영을 해줍니다. 저희도 모르는 새, 어느덧 이사를 완료하신 할아버지네. 할머니는 아예 세간들을 챙겨 새집에 들여놓고는 볕드는 집 앞에 앉아 계시네요. 오늘도 어김없이 손등에 뽀뽀를 해주고, 꼭 안아주시는 할머니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침대를 들여놓고, 비닐도 뜯지 않은 새 매트리스를 위에 깐 후, 베게와 이불을 놓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누워보세요. 소년소녀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편안하게 자리에 누우시는 두 분을 보며 눈동자 안으로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탄자니아 사역 5년 만에 가장 보람된 순간. 이제는 잠자리에 누워도 할아버지 부부가 맘에 걸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일을 위해 같은 마음으로 애써주신 정윤철 집사님, 박시님 집사님, 김영아 집사님, 박옥자 집사님, 그리고 집을 위해 도움을 주신 정덕인 집사님과 강철 집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옛 집을 허물고, 작은 터 위에 새 집과 새 닭장을 선물할 수 있도록 지난 한 달 동안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 할아버지 가족을 진짜 많이 사랑하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멜리요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탄자니아 이웃들의 손때와 한국 이웃들의 사랑이 가득한 집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건강하게 사세요. 그리고 오늘 밤도(지금 탄자니아 시각 밤 10시 51분입니다) 편안히 주무세요.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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