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 국경, 1,100명을 만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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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에서 잡히다
이곳은 케냐와 국경을 마주한 탄자니아의 나망가(Namanga) 이민국 초소. 치과 물품이 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앞에 두고 미국 의료진과 이민국 직원 사이에 신경전이 한창입니다. 탄자니아 식약청(TFDA)이 요청한 다수의 약품목록과 기부 증명까지 진즉 보냈건만, 입국 당일까지도 약품 사용 허가를 받지 못한 상태. 다행히 며칠 전, 미리 입국했던 미국의 1진 의료팀과 왈덴스국제학교 팀은 엉뚱한 비자 문제와 음식물이 들어있던 빨강색 상자가 걸려 용케 입국장을 빠져나왔습니다. 이제 마지막 팀인 미국 2진 의료팀만 무사히 국경을 넘으면 되겠는데 ‘허가증’없이 약품 반출을 꺼리는 이민국 직원을 상대로 밤새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낯선 이국땅, 그 차갑고 어두운 사무실 앞에서 피곤과 싸우며 간절히 기도드린 결과였을까요? 결국, 의료진들의 아프리카 방문 목적 등 계속되는 설득 끝에 마음을 누그러뜨린 직원들은 새벽 1시 반이 되어서야 창고에 던져 넣다시피 했던 약품 두 상자를 꺼내주었습니다.
- 사진 위부터 1진으로 들어오셨던 미국 의료진 첫 팀, 가운데 왈덴스국제학교 팀, 맨 아래는 2진으로 들어오셨던 미국 의료진(입국 사진이 없어 출국 사진으로 대신했습니다)
허가가 안 나오다
7월 6일, 첫 의료팀이 도착한 바로 다음 날 아침, 연합회로부터 기가 막힌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다르에스살람에 위치한 보건부(Ministry of Health) 관계자의 말인즉슨, 탄자니아를 찾은 저희 의료진이 이번 의료 전도회를 위해 허가를 받으려면 의사당 500달러씩을 추가로 다시 내야하고(이미 받은 노동 허가는 말짱 도루묵이라는 것입니다), 각 의료진의 학위 증명 역시, 탄자니아대학당국(Tanzania Authority of University)의 검증 절차를 통과해야 하며 이 일에만 앞으로도 한 달 이상이 소요될 예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무슨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는지.
본 의료 전도회 계획을 탄자니아 연합회에 알린 것이 올해 1월 초. 연합회 행정위원회 결의가 난 것이 올해 4월, 그리고 5월에는 이미 이민국으로부터 단기 노동 허가까지 받은 상황이었습니다. 지금쯤이면 의료행위건 약품 사용이건 간에 모든 허가가 나오고도 남을 시점인데 처음부터 허가를 다시 신청해야 된다니요. ‘이미 의료진들이 저희 집에 와 계시다구요. 내일 모레면 전원이 다 들어오신단 말이에요.’ 그 누구에게도 쏟아낼 수 없는 답답한 가슴과 깊은 한숨, 자책감 그리고 흘러내리는 눈물만이 어두움처럼 저를 짓눌렀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방법은 단 하나, 현지 의사가 전체적인 의료팀을 이끌고 외국 의료진이 협력하는 체제는 가능하다는 말뿐이었습니다. 전도회 나흘을 앞두고 이제 어디에서 현지 의사들을 구한다는 말입니까.
사파리를 가시는 1진 의료팀을 배웅해 드린 후, 진료 장막 등 시설물을 설치하기 위해 음불룽구(Mbulungu) 지역을 찾았습니다. 땅에 핀을 박고, 그늘막을 치면서도, 제 주위로 몰려드는 마사이 아이들을 바라보면서도 머릿속은 온통 ‘과연 이 전도회가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불안과 염려로 가득했습니다. 연합회 보건부장님과 합회 보건부장님께 전화를 드려보았지만 ‘난 지금 버스 안이에요. 다시 전화하세요.’ 혹은 ‘당장 의사를 구한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라는 부정적인 답변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도 저 멀리 흙먼지가 자욱한 뙤약볕 아래, 진료 장막마다 모기장을 두르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보. 우리 어떻게 하면 좋아요. 지금 그 텐트 모기장(진료소 벽을 두른 모기장) 달고 있을 때가 아니라구!!’ 버럭 말을 꺼내놓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잠잠히 듣고 있던 남편은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기다리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잖아. 분명히 이 일을 이루시지 않을까?’ 나직이 한마디만을 건네고는 다시 스테이플러로 모기장을 박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희 편이신거죠.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해 주시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저에게 믿음을 주세요. 하나님 살아 계심을 보게 해주세요.’
- 의료 전도회를 위해 약품을 준비하는 전대원들
1시간마다 꼬꾸라지는 첫 환자와의 조우 그리고 허가가 나오다
허가증 하나 없이 7월 10일 일요일 오후, 저희는 모든 대원들과 함께 전도회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30인승 버스와 저희 차량 두 대도 모자라 트럭 한 대를 따로 빌려야 할 정도로 가져간 약품이며 짐의 양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소식을 들으신 레쿤다요(Lekundayo) 연합회장님의 발 빠른 주선으로 협업을 위해 꼭 필요했던 현지 의사 두 명, 마깅가(Maginga) 선생님과 음부가(Mbuga) 선생님 역시, 연이어 도착을 했습니다.
다음날인 11일 월요일 아침. 8시 전까지 허가에 대한 확답을 주시겠다던 보건부장님으로부터도 여전히 소식이 감감한데 의료진 텐트 앞으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허가가 없어 약품도 나누어 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미 달라달라(Daladala, 공중버스)며 바자지(Bajaj,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해 또는 30km를 걸어 속속 환자들이 밀려오고 있었습니다. 한 환자가 다급히 의사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1시간마다 꼬꾸라지고 넘어지는 바람에 얼굴 곳곳이 상처로 가득한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핏기를 잃은 얼굴과 입 밖으로 흘러내리는 침, 안쓰러움과 두려움을 안고 의료진을 쳐다보는 그의 가족들이 저희 의료전도회의 첫 내원 환자였습니다. 김의호 내과 전문의께서는 불법(?)으로 약상자 하나를 건네며 그의 손을 꼭 잡아주셨습니다. 첫 날, 늦은 오후까지 등록처를 거쳐 안과, 내과, 재활 치료과, 드레싱 룸, 병리과 텐트를 찾은 93명의 환자들은 말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지만 외국에서 온 형제, 자매들로부터 친절한 사랑의 돌봄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그 날 밤,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시간. 참으로 무력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그 시각에 하나님께서는 아주 특별한 섭리로 허가가 나오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전도회를 치루는 지역이 속한 바바티 주(Babati District)의 고위 관료가 짧은 신청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의료 전도를 승인해 준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승인을 위해 거쳐야 하는 관계 부서의 모든 관료들이 전부 재림교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최종 허가증에 사인을 해준 주 정부 행정 관료(Regional Administrative Secretary)인 마스위 씨(Mr. Maswi)도 주 정부 보건 관료(Regional Medical Officer)인 순구와 박사(Dr. Sungwa)도 심지어는 정부에서 파견해 전도회 기간 내내 저희와 함께 있었던 간호사도 모두 재림교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성경의 에스더 왕후처럼 이때를 위하여 이 분들을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건 아니었는지. 참으로 사람의 눈으로는 가장 절망스러운 때에 그러나 한편으로 가장 절실히 하늘을 붙들 수밖에 없는 그 때에 미리 세우신 종들을 통하여 허가를 받게 하심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이었는지요. 다음날 아침, 허가가 나왔다는 소식에 모든 대원들은 감사와 안도의 숨을 내쉬며 합법적으로(?) 처방전대로 약을 주고, 진료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 전도회 풍경, 환자가 기다리는 동안 보건교육을 진행하였고, 등록(혈압 및 당 체크)을 마친 후 각 진료소로 이동하였습니다
1,100명, 진료환자 3,000명을 넘어서다
그 다음날부터는 아침 6시 반부터 100여명 이상이 진료 장막 앞으로 모여들기 시작해 하루 평균 300명씩 진료를 받았습니다. 7월 15일, 금요일까지 총 1,100명이 번호표를 받아 등록을 마친 후 진료소를 찾았고, 처방전을 들고 부스를 옮겨가며 안과, 치과, 혹은 내과를 찾은 인원을 모두 합하면 5일간, 총 3,000명 이상이 진료를 받았습니다.
많은 현지 환자들의 입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 힘들긴 하지만 일단 의사를 만나면 환자의 말을 잘 들어주고, 말라리아 등 여러 검사를 해주는 것으로 들었어요. 그래서 버스비를 빌려 7시간을 꼬박 왔습니다.’ ‘어제부터 와서 하룻밤을 자고, 오늘 아침 일찍 다시 왔어요. 내가 사는 곳은 킬리만자로 부근인데(전도회 장소에서 5시간 거리) 그 곳에서도 이곳 소식을 들을 수 있었어요.’ ‘질서정연한 이동 종합병원 같습니다.’ ‘탄자니아에서는 구할 수 없는 최고급 약품을 무료로 나누어 주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40km를 걸어오느라 기운이 다 빠졌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진료를 마친 후 기도해 줘서 정말 고마웠어요. 눈물이 다 나더라고요.’하는 생생한 이야기들을 전해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경찰은 그동안 병명이 뭔지도 알지 못한 채, 고통에 시달리며 병원을 순회하느라 2백 만 실링(경찰의 네 달치 월급) 가까이 썼는데 이곳에 와서 의사를 만나고, 몸이 다 나은 것 같다며 연신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7시간을 왔다는 한 할아버지는 천식 때문에 수년 간 잠을 이루질 못했지만 처방받은 약을 먹은 후, 처음으로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다는 간증을 들려주었습니다.
치과를 찾은 환자만도 89명이나 되었는데요. 처음엔 허가 문제로 인해 먼지 나는 교회 바닥 위에 도구를 올리고, 나무로 만든 접이식 침대 위에서 발치에 열중하는 안숙영 선생님과 현지 의사 요나지(Yonazi) 선생님을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수요일부터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민진구 보건소(Minjingu Dispensary)를 이용할 수 있게 되어 더 많은 환자들을 안정된 환경 가운데 돌보시는 모습을 보고 조금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을 찾았던 많은 환자들은 불소 침착에 썩은 치아로 인해 오랫동안 아픈 이를 달고 사느라 힘들었지만(치아 12개를 한꺼번에 발치한 환자도 있었을 정도) 두 분의 헌신적인 진료로 인해 성가신 이를 제거하고 자유롭게 음식을 씹을 수 있게 되었다며 모두들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32명이 침례를 받다
지난 4월 20일, 일기장에 이런 글을 썼었지요.
7월 전도회
감독 및 총연출: 하나님
주연 배우들: 현지 교회와 사역자들 그리고 구도자들
조연 배우들: 미국 의료진과 한국 왈덴스 팀
말단 직원들: 차성원, 최송화
감독 되시는 하나님께서 하루의 일정을 알려주시고, 해야 할 일을 지정해 주시면 야구 모자 눌러쓰고, 운동화 신고 뛰어 다니며, 팔 걷어붙인 채 일하는 말단 직원처럼 그 날, 그 날 최선을 다해 감독이 하시는 말씀을 이행하자. 대작(大作)을 무대에 올리시는 분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실테니...
입국하는 대원들과 약품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허가가 나오지 않아 몇날 며칠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이 계속 되자 처음엔 하나님이 과연 우리 편이신지조차 헷갈렸습니다. 그러나 일주일간 의료 전도회를 치르며, 진료에 찾아왔던 낯익은 얼굴들이 침례를 받는 마지막 안식일을 맞으며 저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시간과 방법대로 온전히 이 모든 일에 우리 모든 대원들과 함께하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독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그 지휘봉을 놓으신 적이 없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사단은 미국 2진 의료진의 출국 하루 전날마저도 멀쩡했던 차가 밀밭으로 직진하는 상황을 만들어 위험에 처하게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생명싸개로 보호하셔서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게 도우셨습니다. 마지막까지 마음과 몸에 쉼을 드리지 못해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저립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강을 잃지 않도록 저희 모두를 붙들어 주셨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 그래도 가장 즐거웠던 식사시간!
- 매일 저녁, 하루 일과를 마치며 예배를 드리고, 다음 날을 준비하는 회의를 가졌습니다
- 안식일 오전에는 지역 아동들을 상대로 성경학교를 진행했습니다
- 마지막 안식일, 32명의 침례자들과 함께, 교회에서 준비하신 바구니도 선물로 받았습니다
미비한 준비에도 불구, 전도회 기간 내내 찾아오는 모든 환자들을 위해 헌신적인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던 등록처에 서태근 선생님과 안인숙 간호사님, 드레싱 룸에 안형운 선생님, 내과에 김의호 선생님과 마깅가 선생님(Mr Maginga), 그리고 음부가 선생님(Mr Mbuga), 병리과에 성백길 교수님과 라비에스 간호사님(Mrs. Rabieth), 안과에 송영완 선생님, 심장의학과에 박정식 선생님, 재활치료과에 이진영 선생님, 치과에 안숙영 선생님과 요나지(Yonazi) 선생님, 그리고 약국의 박성애 선생님에 이르기까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과 협력해 주셨던 그 겸손하신 열정에 정말 가슴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모든 진료소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숙달된 조교들로서 간호사, 치과 조무사, 원무과 직원, 안내 도우미, 성경학교 교사 등 선교 현장이 필요로 하는 모든 역할에 능수능란하게 도움을 주었던 21명의 청년들, 영재, 은혜, 영은, 찬희, 의진, 의민, 정근, 주은, 주혜, 윤성, 하연, 민재, 상균, 지현, 주안, 시화, 동민, 도윤, 현빈, 채현, 동연, 그리고 어린 꼬마 선교사 은하, 은총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 어린 청년들이 없었다면 의료 전도회 내내 종합 병원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란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루샤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준비한 스와힐리어 소책자를 복습하며, 연신 찬양을 하던 참으로 세상과 구별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왈덴스국제학교의 학생들, 이 친구들을 인솔하고 지도해 주신 김석운 목사님께도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각 진료소의 의료진과 돕는 청년들
이어, 오랜 시간동안 함께 전도회를 준비해 주셨던 현지교회 음불룽구의 교회 재직들, 한 달이라는 전도회 기간 내내 각자의 집을 떠나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레바부(Lebabu), 호세아(Hosea), 에네아(Enea), 주마(Juma), 사무엘(Samuel)과 같은 평신도 사역자들, 마마 올라(Mama Oola) 외 여러 통역자들, 음식을 준비해 주셨던 마마 음부왐보(Mama Mbwambo) 외 여러 마마들, 음토 와 음부(Mto wa Mbu) 교회의 합창단과 설교를 맡아주셨던 기도시(Gidosi) 목사님, 마지막까지 한 마음으로 일해준 만델라(Mandela) 등 모든 현지 사역자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전도회 전부터 두 차례 이어졌던 특별기도 모임을 시작으로 모든 대원들과 함께 전도회를 함께 해주셨던 기도부대 대원 분들, 오남교회 새벽기도회와 교문리교회 안나기도반, 그리고 우리 모든 가족 모두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탄자니아에서 만난 하나님
‘저에겐 저를 돌아보게 하는 정말 좋은 선교 여행이었습니다.’ - 안** 님
‘제 삶에 큰 획을 긋게 된 이번 여행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박** 님
‘제 삶에 분수령 같은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 박** 님
‘어릴 땐 사모가 되는 것이 두려웠었는데 목회자 가정을 꾸려보고 싶은 새로운 꿈이 생겼어요.’ -의*
‘아프리카라 사실 아무런 기대 없이 왔어요. 그런데 침대에서 자고, 매일 1병의 물을 마실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어요.’ -영*
‘작은 일이었지만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기뻤어요.’ -은*
‘매일 매순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느꼈어요.’ -정*
‘에이즈로 죽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는데 있는 동안 에이즈에 안 걸리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동*
‘흙바닥에서 침낭깔고 자는 줄로 알았는데 침대에서 자서 좋았구요. 맛있는 것도 많이 먹어서 감사했어요.’ -동*
‘탄자니아 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어요.’ -주*
여러 대원들의 짤막한 간증을 끝으로 글을 줄이려 합니다. 음불룽구 의료전도회를 통해 침례를 받은 32명의 영혼들이 앞으로도 그들의 삶 속에서 뿌리 깊게 하나님을 체험하고, 하늘까지 이를 수 있도록 많은 기도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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