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 엄마, 오남교회 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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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에서 사역을 한지도 어느덧 6년째가 되었습니다. 지난 2012년, 아직도 생생한 기억 하나. 낯선 땅에 도착하여 첫날을 보내고 맞은 아침, 어디선가 훌쩍 훌쩍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방과 거실을 잇는 좁은 복도 벽에 구몬 학습지 선생님이 주신 ‘한글읽기표’ 차트를 붙여놓았는데 일찍 잠에서 깬 은하와 은총이가 그 읽기표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한국말을 보니까 눈물이 막 나와.”하면서요. 당장 부엌 식기가 아무것도 없는 터라 아이들을 겨우 달래어 연합회 식당으로 내려가 그 날 아침을 해결했는데요. “Hi!" 인사를 건네는 연합회 직원들의 식판을 쓱 훑어보고는 “엄마, 영어빵 말고 한국밥 먹고 싶어. 한국엔 언제가?” 했던 아이들이 올해로 만 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때론 들쥐들이 우글거리는 땅 위에 텐트를 치고 자고(그날 밤, 저는 밤새 찍찍거리는 소리에 한숨도 못 잤습니다만, 아이들은 “여기 쥐가 있었어요?”하며 기지개를 켜더군요), 물이 없는 광야에서는 식구별로 작은 컵 하나씩 가지고 이도 닦고, 손발도 씻고(아직까지는 체구가 작아 끄떡없습니다), 마사이 교우들이 건네는 밥도 맛나게 먹고(사실 어른인 저도 자세히 보면 뭔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데다 야릇한 냄새마저 풍기는 그 양철 혹은 플라스틱 그릇 앞에서 잠시 망설일 때가 있습니다), 집으로 찾아온 낯선 이웃의 아기에게 선뜻 아끼던 장난감을 내밀거나 바라바이크 친구들을 끌어안고 하루 종일 뒹굴며 노는 아이들(그런 날은 정말 탄자니아로 귀화한 듯합니다). 어느 날, 밤 9시쯤 되었을까요. 사역지에 늦게 도착하여 “은하, 은총아. 힘들지” 했더니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괜찮아요. 우린 선교사니까.”하며 되레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사실 탄자니아에서 안식일이면 아이들은 늘 뒷전에 방치되기 마련입니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오지의 선교지들을 방문하여 교우들을 만나고, 침례식을 베풀고, 사역자들의 고민들을 듣다보면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눈에 띄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지붕만 있거나, 창문이 없는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면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미세먼지가 잔뜩 들어가 뻑뻑해진 눈을 비벼야 할 때도 많지요. 그런 날은 집으로 오자마자 윗도리부터 양말까지 신속히 탈의해야 합니다. 온 몸이 먼지샤워로 도배가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예배 후에는 배고파하는 교우들을 위해 빵과 음료수, 과자와 사탕 등을 챙겨가곤 하는데요. 예전엔 다 나눠 주고 나면 정작 은하와 은총이가 먹을 것이 없어 제 옷자락을 붙잡고 억울함을 호소할 때도 많았습니다. 요즘엔 조금 컸다고 아예 자기네 것을 먼저 손에 빼들고 그 다음부터 간식을 지급(?)하기 시작합니다(언젠가 한 손엔 자기가 먹을 식빵을, 다른 한 손엔 나눠줄 식빵 봉지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가관이긴 했습니다).
그런 은하와 은총이에게 가끔 방문하는 모국에서의 안식일은 그야말로 신세계 그 자체입니다. 깨끗한 도로를 지나 교회에 도착하면 밝은 조명 아래 화사한 분위기가 그들을 맞이하고, 말끔하게 차려입은 교우들과 친구들이 인사하며 100% 이해되어 귀에 쏙쏙 들어오는 한국어 설교와 개척대 프로그램, 게다가 예배 후에 공짜로 주는 뷔페 음식까지... 오죽하면 한국에서 ‘오남교회’가 제일 좋다는 말을 아직도 입에 달고 삽니다. 오남교회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함께 어려서부터 방문하곤 했던 교회지요. 지금도 안식일 아침만 되면 으레 “오남교회 생각난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그리움을 쏟아내곤 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저희 부부는 특별한 일로 선교지를 방문해야 하는 날 외에는 매 안식일, 가까운 교회를 정해 고정 출석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그토록 그리워하는 오남교회, 그곳에서 즐겨 참여하곤 했던 ‘개척대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로 했지요.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방가타(Bangata)교회입니다. 방가타는 와메루(Wameru, 메루산에 사는 부족)와 마사이(Maasai)부족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올해 2017년, 처음으로 개척을 시작한 곳입니다. 작년 김주연 집사님과 강경수 목사님의 도움으로 교회를 건축한 후, 김기곤 목사님의 후원으로 호세아 필립포(Hosea Philipo)라는 헌신적인 사역자를 올해 1월부터 파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개척 첫 달에는 방가타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봉지 팔던 청년 이싸(Issa, 시장에서 만난 친구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뒤 침례를 받은 이싸 기억하시지요?)와 사역자가 집집을 방문하여 처음 사귀게 된 청년 4명, 이렇게 5명만이 유일한 교인이었습니다만, 개척 8개월이 지난 지금, 방가타 교회는 35명의 교인이 모이는 어엿한 예배소로 성장했습니다. 그동안 16명의 새로운 영혼들이 침례도 받았구요. 특별히 이 교회는 숫자는 적지만 어린 아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점이 특징인데요. 저희는 성장하고 있는 이 신생교회와 협력하여 오후 개척대 프로그램을 시작하기로 한 것입니다.
드디어 지난 8월의 마지막 안식일. 저희는 아침부터 분주히 교회 갈 채비를 했습니다. 은하와 은총이는 자신들이 마치 개척대 선생님이라도 된 듯,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오카리나(나무로 만든 이 아기자기한 오카리나는 남원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박은미 집사님이 후원해 주셨습니다)와 싸인펜, 간식거리를 직접 챙기며 남다른 관심을 보이더군요. 드디어 오전 예배가 마치고, 교회에서 준비한 마칸데(Makande, 딱딱한 옥수수와 콩을 찐 요리)를 먹고 난 저희 가족은 입이 근질근질해져 ‘투안제!!!’(Tuanze!, 어서 시작합니다!!!)하고 교우들을 재촉했습니다.
첫 개척대 모임은 6살부터 13살까지의 11명의 어린이들로 구성이 되었는데요. 먼저, 탄자니아 아이들도 곧잘 따라하는 ‘싹트네’ 노래로 순서를 시작했습니다. ‘싹트네~ 싹터요~ 내 마음에 사랑이’ 노래 다음에 이어지는 ‘후~’ 즉, 씨앗이 날아가는 듯한 이 표현을 ‘뿅’ 소리로 바꾸었는데 아이들은 저마다 손가락으로 서로를 가리키며 키득키득 즐겁게 따라 불렀습니다. 짧은 첫 기도 후, 본격적으로 오카리나를 가르쳐 주기 시작했는데요. 먼저 가져간 싸인펜으로 각자의 오카리나에 이름을 적어 주었습니다.
네개의 구멍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단순한 오카리나인데도 아이들은 제각각 구멍을 반쯤만 막거나, 애써 앞에서 설명을 해도 ‘투투투’ 제멋대로 불어대는 등 도통 가르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처음 만져보는 악기가 내는 소리가 신기한지 ‘도레미파’로 이어지는 음계에 점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오카리나로 할 줄 아는 곡이라고는 ‘떴다 떴다 비행기’ 뿐이라 연습이 마쳐갈 쯤 불러주었더니 조그마한 소리로 “메리 해드 어 리틀 램(Mary Had a little lamb)"이란 가사로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연주에 앞서서 팔을 넓게 펴며 ‘은데게’(Ndege, 비행기)에 대한 노래라고 목청 높여 설명했던 제 자신이 무색하게 느껴졌지만 어쨌든 첫 오카리나 수업이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모든 순서를 마친 후, 간식을 먹다말고 “우푼디세 윔보 닝기네”(Ufundishe wimbo ningine. 다른 노래도 가르쳐 주세요)하는 아이들에게 다음번 시간을 기약했습니다.
한국에서의 개척대처럼 풍성한 프로그램이나 다양한 먹거리를 접할 수는 없을지라도 모쪼록 은하와 은총이, 그리고 11명의 방가타 개척대 대원들 모두가 앞으로도 쭉 행복한 안식일을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훗날, 유년 시절을 되돌아볼 때 ‘오남’과 ‘방가타’, 두 교회 모두 모든 아이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으로 기억되길 기도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방가타 교회 개척을 돕고 있는 호세아 필립포(Hosea Philipo) 사역자는 탄자니아 선교 간증집인 ‘하쿠나 마타타’ 책 수익금의 두 번째 수혜자로써 금년부터 우간다의 부게마 대학(Bugema University)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2015년에 출간되어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았던 ‘하쿠나 마타타 쌍둥이네 이야기’ 수익금은 목회자가 되고자 하는 오지의 평신도 사역자들의 신학교 학비를 지원하는데 쓰이고 있는데요. 첫 번째 수혜자인 조셉 마리앙게(Joseph Mariange) 사역자와 같이 인-서비스 프로그램(In-Service Program, 1년에 두 차례, 3개월씩 학교를 방문하여 공부하는 인텐시브 과정)을 통해 앞으로 3년 간 신학을 공부할 예정입니다. 1년 중 적어도 8개월 이상은 방가타 교회를 돌보며 사역과 학업을 병행하게 되고, 호세아 사역자의 부재 기간 중에는 쉬리마(Shirima)라는 새 사역자가 교회를 맡을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방가타 교회와 개척대 모두 아름답게 성장해 나가도록 기도해 주시고, 키공고니(Kigongoni), 로시루와(Losirwa), 키오가(Kioga), 그리고 방가타(Bangata) 교회에 이르기까지 지난 6년간 네 군대의 개척지를 헌신적으로 돌보았던 호세아 사역자의 학업을 위하여 앞으로도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엄마, 방가타 교회도 좋아요!”하는 그 날까지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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