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 그것이 알고 싶다- 양배추 팀의 진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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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중순, 탄자니아 남부에 위치한 키비둘라(Kibidula)라는 지역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일주일 간, 동중앙아프리카지회(East Central Africa Division, ECD)가 주최하는 개척대 캠포리가 열리기 때문이지요. 이번 캠포리에는 탄자니아에서만 4천 3백 명, 바로 이웃 나라인 케냐에서 4천명, 그 외 부룬디, 르완다, 에디오피아, 우간다 등 9개 나라에서 3천 명 등 모두 11,000여 명이 넘는 거대한 인원이 참가했습니다.
대다수의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다보니 우여곡절도 많았는데요. 특히 우간다에서 출발한 한 교회 개척대 팀은 국경을 넘자마자 도로 자기 나라로 돌아갈 뻔 했답니다. 중량이 말도 안 되게 초과되어 어른이건 아이건 계량대(weighbridge) 초소 앞에서 모두 내려야 했던 것이지요. 사람 수는 그렇다 치고 진짜 문제는 지붕 위 잡다한 짐에 있었습니다. 일주일간의 생필품, 옷가지, 텐트, 각종 조리도구, 무게가 족히 10킬로도 더 나가는 현지식 숯 전용 버너에 엄청난 식기류들, 마지막으로 50명이 넘는 인원이 먹을 일주일치 식량까지! 정말 버스가 짜부라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습니다.
빡빡머리 초소 직원은 20,000,000실링(미화로 약 1만 불)을 휘갈겨 쓰고는 당장 벌금을 내고, 오던 길로 되돌아가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모두들 벌벌 떨고 있는 그때, 한 개척대 선생님이 잔 다르크처럼 앞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주의회 의사당(State house)에서 근무한다는 그녀는 비상연락망을 통해 요웨리 무세베니(Yoweri Museveni) 우간다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대통령은 그 즉시 존 마구풀리(John Magufuli) 탄자니아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지요. 마구풀리 대통령의 ‘보내라’는 간략한 하달을 받은 그 빡빡머리 직원은 차렷 자세에 경례까지 붙이며 우리의 자랑스러운 개척대 대원들을 환송하더랍니다.
그렇게 도착한 허허벌판의 캠포리 장에는 각 나라의 깃발 아래로 연합회 혹은 합회 별 지역교회 이름이 담긴 수십 장의 플래카드가 펄럭였습니다. 그 구획 안으로 어마어마한 수의 텐트가 질서정연하게 설치될 예정이었지요. 물론 화로대나 식수대 같은 기본적인 시설마저 없어서 주변의 나뭇가지를 꺾어다 간이 선반을 만들고, 빨랫감을 널어 둘 기둥을 세우고, 텐트 주변으로 물이 내려가도록 고랑을 파는 등 간단한 중노동은 필수였지만 그래도 개척대는 개척대였습니다! 아프리카의 여느 아이들처럼 은도(Ndoo, 양동이)를 들고 물을 뜨러 가면서도, 깜깜한 저녁마다 의자도 없는 큰 운동장에서 스와힐리어, 영어, 불어 이렇게 3개 국어로 통역되는 말씀을 들으면서도 불평하는 기색 하나 없었습니다. 오히려 유일한 동양인인 우리를 둘러싸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천진함과 불편함을 잘 이겨내는 모습이 기특했습니다.
캠포리가 마친 후, 한가득 감동을 안고서 아루샤로 올라왔는데 생각지도 못한 문자 한 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방가타(Bangata)의 양배추 값을 가지고 반장 이마(Imma)가 먹튀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섯 일꾼의 품삯 3개월 치를 하루아침에 가로챘다는 얘기인데, 이건 정말 최악의 시나리오였습니다.
신학 공부를 위해 부게마(Bugema)에 가 있던 사역자는 방가타로 복귀하자마자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양배추는 교회의 프로젝트인 만큼 수확은 모든 사람의 참석 하에 함께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독려했으나 사건은 대낮에 코 베이듯 일어났습니다. 양배추 팀의 반장이었던 이마가 용달트럭을 빌려 말도 없이 두 밭을 모두 해치운 뒤 나머지 밭도 몰래 팔아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대담무쌍한 일이 일어나다니... 세 밭의 양배추는 도합 2,382개. 개당 800실링에 넘겼다 치더라도 자그마치 2백만 실링(우리 돈으로 약 100만원)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받는 월급 열 달치에 가까우니 결코 작은 돈이 아닌 것이지요.
서둘러 방가타로 가보니 다섯 명의 양배추 팀원들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데 표정들이 다들 말이 아닙니다. 모두들 홀로 자녀를 키우거나, 다른 밭의 품앗이로 소일거리를 하는 등 막막한 지경에서 시작한 프로젝트라 유달리 기대가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역자는 현재 이마의 소재를 파악했으니 먼저 경찰에 신고하고, 반드시 찾아서 모든 돈을 돌려받겠다며 전의를 훨훨 불태우고 있네요.
여기서 잠깐, 방가타에 사는 메루(Wameru) 부족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들은 받은 그대로 되갚아 주는 사람들로 유명합니다. 지난 2000년, 보복심이 강하고, 폐쇄적인 메루 사람들을 향해 새사람으로 거듭나기를 강권했던 한 목사님의 설교가 마치자 그 날 저녁, 교회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부족 전체를 모욕했다는 이유에서였지요. 1800년대 후반, 메루 부족을 타깃으로 삼았던 외방 선교사가 처음으로 순교를 당한 곳도 바로 이 방가타 지역이었습니다. 따라서 팀원들을 대상으로 이런 비열한 행동을 저지른 이마는 공동체의 보복을 당할 위험이 컸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역자는 상심한 교우들의 장단을 맞추며 ‘이마 찾기 대작전’에 돌입한 상황이었습니다.
도둑을 잡겠노라고 경찰서를 들락날락거리며 낯선 동네를 뒤져야하는 상황. ‘잡자, 신고하자, 기필코 받아내자’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제 1의 방법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용서하세요.’ 쫄쫄 굶고, 속으로 억울함을 참아내며 성자라도 된 듯 제 2의 방법을 택할 것인가. 아님 달리 새로운 방법이 있는가.
그때 남편이 말했습니다. “자, 여기서 이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건 뭘까?” “그야 물론 돈이지.” 두 말 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이마가 과연 그 돈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돌려줄까?” “그건 불가능” 전,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아, 그럼 이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 주는 건 어때?” 같은 답을 동시에 외친 저희 두 사람은 양배추가 끝난 지금, 어떤 작물을 심을 때인지 물었습니다. 브로콜리! 소우기가 시작되는 현재 1월은 브로콜리를 심을 때라는 것입니다. 양배추보다 두 배는 더 비싼 고급 작물. ‘그래,
양배추 프로젝트처럼 씨앗과 비료를 다시 제공하고, 팀원들의 마음을 복수가 아닌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어떨까. 온 마을이 지켜보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과연 저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가 이마를 잡아다가 혼쭐을 내고, 평생 지울 수 없는 ‘범죄자’의 딱지를 붙일 것인가. 아니면 언제 돌아오던 하나님의 신원하심을 기다리면서 브로콜리 밭에 갑절의 복을 주시길 구할 것인가.’
그날 저녁, 은하와 은총이에게 그간의 상황을 설명한 후 물었습니다. “얘들아, 이럴 때 너희라면 어떻게 하겠어?” 아이들은 어렵다는 듯, 잠시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런 답을 주더군요. “그렇다고 모든 교인들이 도둑 취급을 하면 이마 오빠가 다시 교회 나오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은총이의 답변에 은하 역시 이마의 국선변호사라도 된 듯 “이마 오빠가 그렇게 팔고 가버린 것도 어떤 이유가 있을 텐데 물어보지도 않고 ‘너, 왜 도둑질했어!’하면서 끌고 오면 정말 기분 나쁠 것 같아요.”하고 말했습니다. 전 흠칫 놀라며 “그래, 엄마도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셔서 일이 잘 해결되었어.”라고 설명을 마친 후, 무릎을 꿇고 이마와 양배추 팀,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습니다. 잠시 후, 눈을 떠보니 아이들 둘 다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엄마도 울었어요?”하고 물었습니다. “왜 울어?” 했더니 “예수님이 우리를 용서해 주신다는 게 너무 감사해요. 우린 이렇게 죄를 짓는데도 예수님은 일부러 땅에 내려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게 너무 슬퍼요. 정말 죄송해요.”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용서는 보복의 DNA를 가진 메루 사람들, 특히 양배추 팀원들의 마음속 그리고 열 살 쌍둥이의 마음 안에 그 누구도 부술 수 없는 징검다리를 놓았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은혜의 보좌로 가는 다리 말입니다.
이 저녁, 부디 이마가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합니다. 터벅터벅 마을 어귀에 들어설 때 잘 자란 브로콜리 밭에서 모두들 편안한 마음으로 그를 맞아줄 수 있기를... 그리고 누구라도 다시 식구가 될 수 있는 방가타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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