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 나, 테레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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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쉬케쉬의 가브리엘(Gabriel) 사역자가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종종걸음으로 맞으러 나갔습니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깡마른 사역자 부부, 광야에서 입던 그대로 털 잠바를 껴입고 땀을 뻘뻘 흘리는 아이들, 가지런히 세워둔 때묻은 여행가방 두 개. 시골에서 갓 상경한 이 순진한 가족의 들뜬 표정 안에 이번 송년회(Retreat)에 대한 기대와 약간의 흥분이 서려 있네요. 사역자 부부의 큰 아들인 파라자(Faraja)는 이틀에 걸친 기나긴 여정에도 “마마, 투키피카 아루샤, 투나웨자쿠오나 네마 나 자와디(Mama, tukifika Arusha, tunaweza kuona Neema na Zawadi? 엄마, 우리 아루샤에 도착하면 네마랑 자와디 만날 수 있죠?”라고 열 번도 넘게 물으며 꿋꿋이 참고 올라왔다고 하네요. 은하은총이와 파라자는 에쉬케쉬에 다녀올 때마다 아쉬움에 눈물 콧물 흘리는 그야말로 절친한 사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기간에도 녀석들은 찰떡같이 붙어 다니며 나무 위를 기어오르고, 사방팔방 뛰어 다니며 신나게 놀았습니다.
일주일에 딱 한번 다니는 버스가 마침 일요일에 있어 화요일 송년회에 맞춰 올 수 있었다는 마람보(Malambo)의 크리스토퍼 사역자(Christopher) 가족. 이번에 모이는 65명의 전체 사역자 가족 가운데 최연소 참가자인 이 집의 4개월 된 막내는 허리춤에 들쳐 안고, 4살짜리 큰 애는 아빠 손을 잡고, 진흙탕에 빠진 버스가 나오기를 4시간이나 기다렸다, 이틀 만에 겨우 아루샤에 도착했다고 하네요. 집으로 갈 때도 목요일이나 되어야 버스를 탈 수 있다니 보통 여행이 아니지요? 그래도 오랜만에 나선 서울(?) 나들이에 저마다 숨기기 어려운 행복한 웃음꽃이 송송 묻어납니다.
볏짚 오두막에서 3년간 홀로 지내는 사역자, 교회에 딸린 작은 방, 좁다란 침대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자는 사역자, 달빛 아래 웅덩이에서 겨우 몸을 닦는 사역자의 가족들을 볼 때마다 마음 한켠이 아리고, 죄스러웠습니다.
단 하룻밤이라도 깨끗한 침대에서 편안히 잘 수 있다면, 단 한 끼라도 매캐한 연기(숯이나 장작불로 인해) 없는 곳에서 먹을 수만 있다면, 단 한번이라도 샤워꼭지에서 나오는 물로 시원하게 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2013년, 제주선교대회를 마친 모든 PMM 가족들은 지회가 제공한 최고의 쉼과 가족 간의 여행이라는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지회 안팎에서 일하는 선교사들과 만나 대화도 나누고, 수족관에서 커다란 돌고래도 보고, 아프리카에서 그렇게나 먹고 싶었던 한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던 그 하루.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고(그래서 혼자가 아니고), 나와 같은 동지가 여럿 있고, 격려해 주는 그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힘이 되던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감사했던 시간들이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사역자 가족들에게도 꼭 한번 이런 오붓하고, 편안한 충전이 필요하다 싶었는데 드디어 올해 12월 12일 그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정말이지 준비하는 내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들뜨고, 행복했습니다. 더 주고 싶고, 다 주고 싶어 무척이나 기다려졌습니다. 먼저 “Reach the Unreached, Enter the Unentered”(가자, 미개척지로!)라는 탄자니아 PMM 선교 표어를 새겨 넣은 단체 티셔츠를 맞췄습니다. 그리고 몇 가지 게임을 곁들인 소규모 체육대회와 번호추첨용 경품도 준비하고, 열 네 가정 가운데 오지에서 살고 있는 열 가정을 위한 2박 3일간의 숙박도 예약을 모두 마쳤습니다.
행사 당일, 북동부탄자니아합회(North East Tanzania Conference)의 임부장님들인 이지코(Ijiko) 합회장님을 비롯하여 은구사(Ngusa) 선교부장님과 갓선(Godson) 청지기부장님께서 세미나와 함께 리더-사역자 간의 간담회도 이끌어 주셨는데요. 사역자들은 그간의 고충을 교단의 지도자들에게 털어놓았고, 합회장님은 사역자들의 노고와 헌신을 치하하며 합회차원에서 도울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시겠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특별히 이 날은 전직 WWC(World Wide Church)의 목회자로서 재림교회의 기별을 받아들이고 침례를 받은 엘리카나 냐루(Elikana Nyaru)라는 분이 저희 행사에 참여해 주셨는데요. 냐루 목사님은 롤리온도(Loliondo)에 있는 자신의 개인 부지를 교회에 헌납하고, 저희와 함께 사역자로 일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분의 사역의 길을 열어주시길 연이어 기도했습니다.
- 가운데 사진에서 왼쪽에 웃고 계신 분이 냐루 목사님이십니다.
오전 행사가 마치기 전, 사역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리며 준비한 상장을 수여하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최고의 설교자(Best speaker), 최고의 웃음상(Best smiler) 혹은 최고로 오래 참는 목자상(Best patient shepherd)과 같이 독특한 상장 제목에 이어 해당 사역자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어쩜, 저 사람이 딱이야~”하는 큰 웃음과 환호성이 교회 안을 가득 울렸습니다. 부부가 함께 나와 상장을 받는 모습에 보는 이들이 모두 흐뭇했습니다.
- 상장 수여 하는 장면과 합회 임부장님들, 왼쪽부터 선교부장님, 합회장님, 청지기부장님이십니다.
준비된 점심 식사를 마친 후엔 단체 티셔츠로 갈아입은 65명의 가족들이 교회 앞 잔디밭에 모두 모였는데요. 내리쬐는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커다란 천막이 있어 식사도 하고, 오후 프로그램도 시원한 그늘 밑에서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 천막도 어딘가에서 빌리려면 족히 $200은 지불해야 하는데요. 다행히 은지로(Njiro)교회 앞마당에 며칠 전부터 튼튼한 천막이 쳐져 있었습니다. 바로 전 안식일, ‘손님초청의 날’을 치렀기 때문이었지요. 웬일인지 일별로 무섭게 가격을 매기는 천막 대여 회사에서 천막을 수거해 가지 않고 며칠 째 그냥 놔둔 것입니다. 교회 담임 목사님께 문의하니 ‘아직 거기 있어요? 그럼 그냥 쓰세요.’하시기에 12월 12일, 하루 종일 그 천막을 무료로 사용했는데요. 우리 사역자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13일, 언제 거기 있었냐는 듯 천막이 깔끔이 치워진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행사 중 만난 하늘의 깜짝 선물이었지요.
게임은 젤 먼저, 각자 컵에 물을 담아 멀리 떨어진 양동이에 물을 부은 후, 두 팀 가운데 어느 팀이 물을 많이 담았는지 확인하는 ‘물 나르기’로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역자의 아내들이 그렇게 날쌔고 빠른지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온갖 방해 공작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민첩하고 신속하던지... 나이든 사역자든 지켜보던 아이들이든 한 마음이 되어 목청 높여 응원한 결과, A팀이 승리를 거뒀습니다. 연이어 아이들 간의 경기에도 자기 엄마를 향해 싱긋 웃음을 날리며 조마조마하게 컵을 옮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대망의 경품 추첨 시간! 아루샤에서 4시간 떨어진 합회로 당일, 다시 돌아가야 하는 합회장님께서 ‘경품만은 꼭 하고 싶다!’ 하시기에 아쉽지만 체육대회는 두 경기로 마무리 짓고, 번호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경품은 밀가루, 빨래 비누, 과자, 슈카 혹은 키텡게(옷감), 각종 학용품 뿐만 아니라 태양열 전지 세트, 중고 카메라, 중고 스마트폰, 라디오, 자전거 그리고 LG LED TV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이 순식간에 TV로 쏠리는 것을 볼 수 있었지요. 심지어는 청지기부장님까지 “나는 오직 TV!"를 외치셔서 진행하는 동안 ”이번 번호가 맞으신지요?“ 농담어린 질문을 건넸는데 결국 앙증맞은 한국산 캐릭터 양말을 타게 되어 모두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또 번호를 부를 때마다 예를 들어, 40번 대가 나오면 스와힐리어로 40을 뜻하는 ‘아로바이니'(Arobaini)를 외치고 나서 다시 41, 42, 43에 따른 1, 2, 3을 아로바이니 뒤에 붙이게 되는데 진행을 하던 차목사가 자꾸만 아로바이니 한 후에 한참 뜸을 들이자, 진짜 번호표 40번을 가지고 있던 레바부(Lebabu) 사역자가 자꾸만 번호표를 흔들며 앞으로 튀어 나와 꿀잼을 선사했습니다.
- 결국 캐릭터 양말을 타신 청지기부장님^^
- 한국에서 가져온 친정어머니의 중고 스마트폰이 열심히 기도한 엘리샤 사역자의 부인에게 전달되는 순간!
신기하게도 선물은 도시에 사는 사역자와 오지에 사는 사역자들에게 꼭 필요한 대로 돌아갔습니다. 물건을 자주 들일 수 없는 오지의 사역자들이 태양열 전지 세트라든가 1년은 충분히 먹고도 남을 설탕 22kg짜리 한 포대, 혹은 통신사별 핸드폰 충전 바우처 묶음(오지에서는 잘 안 터지는 지역들이 많기 때문에 보통 사역자들이 에어텔, 할로텔 등 두 개 이상의 심 카드를 이용하는데 번호를 입력하면 금액만큼 충전할 수 있는 바우처)를 타간 것입니다. 옆에 앉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선물을 허락하신 거라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나 사역자 아내들의 활약이 컸는데요. 엘리샤(Elisha) 사역자의 아내는 행사가 있기 이틀 전, 핸드폰 액정이 깨져 고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경품 중에 스마트폰이 있는 것을 알고는 점심 먹기 전부터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고 해요. 스마트폰은 놀랍게도 엘리샤의 부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맨 마지막, TV를 놓고 두 명의 사역자 아내들이 경합을 벌였는데 결국 가장 멀리서 온 크리스토퍼 사역자의 아내가 당첨되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아루샤로 오는 버스 안에서 부부가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내년에는 월급에서 5천 실링(한국돈으로 2천 5백원)씩이라도 모아서 꼭 텔레비전을 하나 삽시다.” 부부의 작은 대화를 엿들으시고, 응답하신 하나님, 참 멋지시지요?
행사를 마치기 직전, 몇 주 전 미리 예약해 둔 아이스크림 팔러(Parlor, 상인)가 도착했습니다. 재미난 자전거 점포, 모여든 아빠들은 가족별로 아이스크림을 고른 후 저마다 앉아 땀을 식히며 맛나게 먹었습니다. 쉐레헤(Sherehe)! 그야말로 흥겨운 잔칫날과 같았던 하루를 마감하며 저희 모두는 단체 사진과 감사 기도를 끝으로 모든 행사를 마쳤습니다.
지난 6년 간, 이 훌륭한 가족들과 함께 귀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좋으신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재정적으로 이 행사를 치룰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신 최재우 형제님, 강철 집사님, 그리고 김종식 장로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경품에 보탤 수 있도록 선물 꾸러미를 챙겨 소포로 보내주신 캐나다의 천사 같은 집사님들께도 이 시간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뿐만 아니라, 사역자들의 식사를 위하여 저희 집 뒷마당에서 160명 분량의 네 끼 식사를 책임져 준 아델라(Adela)를 비롯한 여러 손길에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롯지(lodge)에서 묵는 열 가정을 위해 저녁이면 도시락을 싸서 나르고, 다음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먹을 수 있도록 만다지(탄자니아 도넛)까지 만드느라 밤늦게까지 정말 수고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 한 분으로 풍성하게 채움을 받았던 아프리카 사역의 현장에 오늘도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나의 명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라.”(수 13:6) 여호수아는 늙었고,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은 많은데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에게 먼저 땅을 나눠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개척되지 못한 80여개의 미전도종족이 연약한 선교사 앞에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 모든 일들을 이루리니 너는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라.” 새해에도 앞서가시며 영혼들을 소생시키실 하나님을 조용히 뒤에서 따르는 선교사로 살고 싶습니다.
2017년의 마지막 선교소식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연말도 평안하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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