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선교 유장로님과 함께 한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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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012년 2월 말, PMM 선교사로 아프리카 땅을 처음 밟던 날이었다. 피곤에 지친 몸으로 케냐 공항에 내려 경유비자를 발급받고, 수화물을 찾은 후 검색대를 다시 한 번 통과한 뒤에야 입국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느라 힘들었지요? 은하, 은총아. 이리로 와라. 짐 들어 줄게.” “누구신지...” 말끝을 흐리고 어리둥절해 서 있는 우리 가족을 마중 나오신 분은 다름 아닌 유재훈 장로님이셨다. 유 장로님의 안내를 따라 동중앙아프리카지회(ECD)에서의 하룻밤을 무사히 보내고, 다음날 아침, 나이로비-아루샤 간 국제셔틀버스에 올랐다. 나이로비의 심각한 교통 체증에 꼼짝없이 1시간이 지체된 후에야 버스터미널에 사정하여 겨우 올라탈 수 있었다. 휴... 그제야 유 장로님께서 손에 꼭 쥐어 주셨던 비닐봉지를 풀어 보니 식구별로 야채 샌드위치, 삶은 계란, 그리고 주스가 하나씩 들어 있었다. 선교사 가족을 마중하고, 또 배웅하기 위하여 차가운 새벽, 빵에 잼을 바르고, 어제는 공항까지 달리셨을 장로님을 생각하니 목이 메어 먹을 수가 없었다. 장로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 선교지, 에쉬케쉬(Eshkesh)를 방문하다
이곳에서 보내드리는 선교 소식에 늘 “사랑하는 차 목사님!”으로 시작되는 메일로 격려해 주시고, 대추 농사의 이익금은 가난한 학생들 학비에 보태라 보내주셨던 유 장로님께서 지난 6월 5일, 처음으로 탄자니아를 방문하셨다. 보자마자 두 팔을 한껏 벌리시고는 꼭 껴안아 주시는 장로님. 두 번의 말라리아로 인해 잃어버린 청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케냐의 BMW 사업을 돌보시고, 이렇게 국경을 넘어 탄자니아까지 방문해 주신 노장의 단단함과 따뜻한 가슴에 순간 감사드렸다.
장로님과 함께 탄자니아의 첫 개척지인 에쉬케쉬를 찾았다. 지난 6년간 바라바이크 부족 교회인 에쉬케쉬(고승석 장로님 지원)를 필두로 주변 지역인 기데루(Gideru-하자베 부족, 권옥애 집사님 지원)와 도망가(Domanga, 김창준 집사님 지원) 그리고 야이다 치니(Yaida Chini-수쿠마 부족, 최정연님 지원) 세 곳에도 새로운 교회가 함께 개척되었다. 오늘은 손님을 모시고 가는 날일뿐만 아니라 북탄자니아연합회장이신 레쿤다요 목사님께서도 오지의 교인들을 처음으로 방문하시는 날인지라 특별히 네 개 교회의 연합예배를 계획하였다. 교회 안은 250명의 교우들로 가득 찼다. 며칠 전, 미리 예약해 놓은 트럭으로 꼭두새벽부터 각 지역의 교우들을 에쉬케쉬 교회로 데리고 온 덕분에 시간에 맞춰 예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왼쪽부터 자코보 사역자, 차 선교사, 유재훈 장로님, 레쿤다요 연합회장님, 그리고 북동부합회 마요 선교부장님
- 유 장로님의 간증 시간
-레쿤다요 연합회장님의 설교 시간
하자베 부족은 하자베어로, 바라바이크 부족은 바라바이크어로, 수쿠마 부족은 스와힐리어로... 각 교회 찬양대의 특창이 울려 퍼지는 예배당은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6년 전만 해도 이곳엔 하나님을 모르는 원시부족으로 가득하지 않았는가. 다큐멘터리에서 튀어나온 듯 생경한 사람들, 그 틈 속에서 너른 땅을 바라볼 때마다 과연 이 사역이 가능할까, 텐트를 찢어버리고 경계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이들을 과연 구주께로 인도할 수 있을까 되묻던 때가 무색하리만큼 지금, 에쉬케쉬는 작지만 옹골찬 재림마을(Adventist Village)이 되었다. 어린이들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오전 수업을 통해 기본적인 철자와 연산을 익히고, 젊은이들은 새로운 주축이 되어 사역자와 집집방문에 나서며, 마마들은 든든한 집사로서 교회 모든 일에 활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번 안식일 대잔치에 소를 잡고, 수백 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이분들이 있어 가능했다! 그간 냉담한 시선으로 선교사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마을의 추장과 와제(Wazee, 어르신들) 역시, 이제는 우리 교회 가장 열렬한 지원군이 되었다. 마을에 필요한 일이 있으면 먼저 선교사와 상의하여 해결하는 등 이제는 이방인이 아닌 공동체의 일원으로 아니 마을의 번영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동료(rafiki, 스와힐리어로 친구)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간 쌓인 신뢰가 이제는 수평적인 관계를 넘어 교회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경배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정말이지 뿌듯하고 감사하다.
- 즐거운 식사시간
-에쉬케쉬 교회 앞에서 온 교우들과 함께
그 날 저녁, 에쉬케쉬는 쉬이 자리를 뜨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교우들은 처음으로 치러진 연합예배와 생전 처음 대면한 교회 최고 지도자(탄자니아는 지도자에 대한 숭앙심이 대단하다), 그리고 멀리서 오신 손님 덕분에 꽤 흥분한 듯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느라 곳곳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땅거미가 내려앉은 광야엔 다시 손님을 태우려는 짙푸른 트럭만이 시간을 재촉하고 있었다.
사역자, 자코보(Jacobo) 이야기
현재 에쉬케쉬엔 ‘자코보’라는 이름의 새로운 사역자가 일하고 있다. 자코보는 에쉬케쉬와 동시에 개척했던 또 다른 바라바이크 부족 사역지인 엔다게우(Endagew)의 첫 열매이다. 지난 2013년, 개척 초기 엔다게우의 조셉(Joseph) 사역자는 살 거처를 찾다가 집을 구하지 못하여 당분간 자코보와 같은 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본의 아니게 재림교회의 복음전도자와 한 방에 거하며 안식일 진리를 배우게 된 자코보. 그는 당시 다니던 고등학교의 ‘오순절교회학생모임’의 리더였다. 그는 ‘도대체 이 낯선 사람은 누구야?’ 속으로 반문하면서도 성경구절로 짚어주는 진리의 광맥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학창 시절 몸담아 온 교회를 한순간에 떠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일요일엔 오순절 교회를 안식일엔 엔다게우 교회를 순례하던 어느 주일 아침,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오순절 교회 마당에 발을 들이자마자 온 몸이 뻐근뻐근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아무래도 그 날은 예배를 다 드리지 못할 것 같아 서둘러 교회당을 빠져나왔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몸의 통증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리고는 귓가에 울리는 쟁쟁한 목소리, ‘안식일을 기억하라.’ 참 신기한 경험이었다. 자코보는 그 길로 조셉 사역자를 찾아갔고, 엔다게우 교회 첫 침례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8년, 자코보는 에쉬케쉬의 사역자가 되었고, 신앙의 스승인 조셉 목사님(당시 엔다게우를 돌보던 조셉 사역자는 <하쿠나 마타타> 책 수익금과 김민자 집사님의 도움으로 지금은 우간다의 부게마 대학에서 신학과 마지막 학기를 이수 중이다)의 조력을 받아 활동 중이다.
사역을 시작한지 6개월 만에 자코보 사역자는 5개의 성경 모임을 인도한 결과, 14명의 귀한 영혼들에게 침례를 베풀 수 있었다. 아침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 수업을, 오후에는 집집방문을, 저녁에는 젊은 청년들을 위한 성경 수업을, 매주 금요일에는 찬양대를 조직하여 대예배 특창을 지도하며 광야 교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에쉬케쉬 침례식
작열하는 광야 한 가운데 세워진 에쉬케쉬 교회는 지나가는 부족들의 쉼터이기도 하다. 나무를 지고, 물동이를 이고 가는 아낙네들이 잠시 목을 축이고, 우갈리(ugali, 옥수수 반죽)라도 함께 나누어 먹는 공간이 바로 에쉬케쉬 교회 사택. 사택의 작은 부엌은 사역자 부인의 사역지나 다름없다. 아직 미혼인 자코보가 결혼을 서두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집안의 장남인 자코보만 바라보는 시골 부모님에게 결혼을 의지하는 것은 무리일 터. 자코보는 얼마 전,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며 결혼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원래는 6월 9일 연합 안식일, 결혼예배를 겸하여 드리려 계획 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미뤄져 이번 주 일요일(6월 24일) 목사님 앞에서 결혼 증서를 주고받는 약식 결혼을 치르기로 했다.
그래도 기본적인 살림살이와 양복 한 벌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자코보 사역자와 함께 아루샤 시내에서 양복 한 벌을 맞추고, 집에도 들러 한국에서 가져온 몇 가지 셔츠와 양복, 부인의 옷을 맞출 키텐게(Kitenge, 드레스 등을 해 입을 수 있는 천) 한 장을 건넸다. 그리고 사역자의 소식에 축의금을 붙여주신 친정어머니의 후원금도 함께 건넸다. 결코 우연이 없는 하나님의 섭리는 엔다게우 시골 마을의 소년을 사역자로 부르시기 위해 당신의 종을 앞서 그 집으로 보내셨다. 부부가 헤쳐 나갈 광야의 사역, 나아가 재림교회 목회자를 꿈꾸는 자코보 사역자의 소원 또한 하나님께서 넉넉히 이루어 주시길 기도드린다.
- 자코보 사역자의 결혼 준비 하는 날, 양복점 그리고 사택에서
생강차
에쉬케쉬로 출발하던 날 아침. 연신 기침을 하시는 장로님께 보온병 한 가득 생강차를 넣어 드렸다. 점심 도시락을 싸고 있는데 “친딸도 이렇게 해주진 못할 거야.”하시며 부엌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이셨다. 이번엔 내가 장로님을 힘껏 끌어안고, 볼을 부비며 가녀린 어깨를 다독여 드렸다. 그 안엔 세어진 머리카락에 딱딱한 어깨, 떨리는 손, 그리고 마른기침을 삼키는 내 아버지가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어버이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식이건만 애면글면 오늘도 머리를 조아리며 복을 빌어주실 부모님 생각이 절로 났다.
- 유장로님 케냐로 떠나시는 날 아침
며칠 후, 장로님은 아루샤-나이로비 간 셔틀버스에 올라 다시 케냐로 가셨다. 우리 동료 인간들은 ‘따뜻한 손’을 붙잡을 필요가 있고, ‘자비가 넘치는 가슴’에 기댈 필요가 있다(실물 388). 아프리카에서의 첫 날, 잊지 못할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셨던 장로님께 감사를 드린다. 또한 광야의 오지 사역을 위해 자비가 넘치는 가슴을 열어주신 많은 후원자 분들께도 이 시간을 빌어 감사를 드린다. 다시 시작되는 안식일. 잔잔한 은혜의 물결이 하늘을 사모하는 모든 분들과 함께 하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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