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강남 학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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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병원에서 가평 교회로 발령을 받았을 때도
참 기가 막혔지만, 가평 교회가 막 기지개를 켜려
는데, 서울 영어학원 으로의 전임은 참 더 참담했다.
무슨 귀뜸을 좀 해 주든지? 영어라는게 하루 아침
에 후딱 이뤄지는 상품이 아닌데, 순진한 어린양이
제물이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아뭏든 환영 만찬은 용산 미8군 Navy club 에서
피자와 오렌지 쥬스를 실컷 마시며 시작을 했다.
영어 수업과 신자 집 가정 방문을 하면서 일년이
돼 갈무렵 영동 영어학원 원목으로 인사 이동이
있었다. 가서 보니까 청담동은 최고 부자 동네에다
최고 엘리트들이 모이는 빛이 번쩍이는 곳이었다.
그런데, 한창 영동 개발이 잘 되던 시절이라 그런지
영어 학원도 나날이 번창을 했다. 그런데, 장소가
청담동 시장 골목인데다, 여름에 장마가 지면 하수
가 무릎까지 차 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고급
동네에서 최고 엘리트들과는 안 어울리니 강남구청
옆 남경 빌딩으로 이사를 가겠다고 기획안을 올렸다.
이사회의 승인이 떨어지며, 학원은 1985년, 1986,
1987년 두달에 한번씩 등록을 받으면 현금 1억씩
본원에 입금을 시켰다. 그러니, 그 당시엔 그게 분명
황금 알을 낳는 그야말로 황금 어장이었다. 어떤
학생은 청와대에서 청량리보다는 강남이 물이 좋다
며 그쪽으로 나오던 수강생이 노소영이었다.
어쩌다 보니 어리버리에서 이제는 아무거시 하면
목표에서 120% 초과 달성을 해내는 보증 수표로
어른들 사이에서 인식이 되면서 필리핀 Seminary
로 수학을 떠나게 된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여름
방학 때 삼육대학에서 목회자들을 위한 Extention
School 이라 그래서 대학원 학점을 수강해서 적립
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있어서 별 어려움 없이 master
Degree 를 받을 수 있었다. 1988 올림픽이 개최가
되면서 영어 교육에 대한 절대적 필요 덕택에 학원
사업은 어디든 삼육의 이름으로 지팡이만 꽂아 놓아
도 잘되던 시절 귀국 후 춘천 학원을 개척하라는 명
을 받고 처음에 선교사 2명이서 200명의 학생으로
시작을 했는데, 연부년 성장을 해서 학생 선교사 5명
이서 500명의 학생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그때 마침
파로 광장에 EMI 라는 5층짜리 단독 건물이 매물로
나왔다. 본원에 상신을 했고, 연합회 이사회 결의를
거쳐서 아마 10억 정도에 매입을 하기로 했는데,
박종호라는 부로커가 왠지모를 방해 공작으로 매입이
무산이 되었다. 아마, 그 건이 성사가 되었더라면 저는
명실상부한 춘천 SDA의 상당한 입지를 다질수 있었
을 것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기관 사역은 깨끗히 접고
일선 목회로 회귀를 하기로 하였다. 그게 1992년 겨울
이었다. 추운 겨울에 태어나서 그런지? 인생의 모진
시련은 늘상 찬 바람이 불면 시작이 되었다.
- 다음글성장하는 교회의 특성 26.04.18
댓글목록

Jewooklee님의 댓글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아무나 손만 들면 가는게 아니었다. 저는 그저
부르심을 따랐을 뿐인데, 우여곡절들이 많았다.
그러나, 솔직히 전후 사정을 아무것도 모르는체
겸손하게 친절하게 맡겨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
려 했고, 주께서 은혜를 더하셔서 별 대과 없이
학원을 최고의 시설과 최적의 장소에서 가장 적
합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역할을 했었다.
저는 지금도 가끔씩 삼육 영어학원이 경영 적자
라는 말을 들으면 이해가 잘 안된다. 양질의 교
육 환경과 최고의 강사진으로 기도로 시작을
하는데, 망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을 한다. 뭔가
시대적인 착오가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
이라도 최고의 교육 환경으로 개선을 하고, 학원
이 잘되는 곳으로 옮겨가서 믿음으로 운영을 하
면 지금도 잘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이형진, 김현민 아주 명석한 경영
전문가들도 못하는 걸 보면 뭔가 문제가 있는가?
싶다. 하나님의 사업의 흥황을 위하여 간구드린다.


Jewooklee님의 댓글
그런데, 좀 안타까웠던 것은 저희가 영동 학원 교회로
가면서 전자 배터리 사업을 하셨던 고영호 장로님께서
잠실 교회로 옮겨가셨다. 그래도 화양동에서 원식과
원애가 꾸준하게 청년반을 지켜주었다. 그리고 사실
춘천 학원을 개척 할 때는 이재권 장로님께서 허가 및
개원 모든 준비를 다 맞아서 해주시고, 교육청과의
관련 모든 업무를 담당해 주셨다. 또 그 당시 춘천 MBC
와 강원일보 감사셨던 김남수 장로님께서 매주 제 사무
실에 찾아오셔서 동무를 해 주시고, 강원일보에 칼럼도
쓰게 해주시고, 춘천 MBC 장학 큐즈에 저희 학원 강사
들을 모시고 가서 영어 문제를 출제하고 통역도 하도록
해주셔서 학원 발전 뿐만 아니라, 제 개인적으로도 유익
하고 유쾌한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다. 그런
어른들이 계셨기에 EMI 건물을 살 수 있었더라면, 꽤나
입지를 넓힐수 있었다. 그리고, 본원 원장이신 한 목사님
께서도 막국수를 얼마나 좋아 하셔서 유포리 산골 막국수
매달 한 두번씩은 대접을 해드렸다. 그런데, 저는 목회자
인데, 기관으로 돌다보니 영성이 떨어져요, 그리고 한 원
장님께 같은 고향분이고 해서 직언을 해 드렸더니 그만
싫어하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저의 제언을 좀 경청해
주셨더라면 화를 좀 모면 하셨을텐데, 그래서 저는 목회
로 나왔는데, 곧 다시 연합회 행정위원으로 또 만나게
되었다. 그 때 저는 아무런 말씀도 드리지 않았다. 그러
다 저는 누님의 초청으로 New York 으로 이민을 왔다.
제가 아마 조금 더 있었더라면, 영동 지역에서는 바람
막이를 해 드렸을텐데, 좀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워낙
민심이 험악해서 그렇지, 연합회 이전 project가 실현
됐더라면, 저희 교단은 거대한 성장과 발전을 이룰수도
있었고, 이단 시시비비에서도 벗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러니, 성장과 발전의 그 앞에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영어학원 경영도
지지부진한 문어발식 보다는 잘되는 곳에 집중적으로
최첨단 시설, 최고의 실력과 친절로 수강생들을 모시면
수강생들의 발길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든
다. 등록할 때 수강생들을 100m, 200m 씩 길게 줄을
세워 놓고, 밤을 새우게 하고, 낮에는 햇볕을 가릴 그늘
도 없이, 밥을 먹거나 말거나 그야말로 재래식 횡포를
부린것은 상당히 미개하고 몰상식한 대접를 했다는
생각이든다. 빵과 두유라도 좀 나눠드리고 그 때 정성을
다 했어야 하는데, 참으로 우리가 잘못을 했다. 그리고
는 길게 줄을 세워서 등록을 시키는 것을 자랑처럼 여
겼으니, 돌이켜 보면 제가, SDA가 그렇게 우매할 때도
있었다. 그건 절대 자랑이 아니니 다시는 그러지 말아요!
그분들이 SDA가 상대할 수 있는 최고 지성인들이요,
Elite 집단이었는데, 저희가 정말 잘못을 했다. 그 다음
제가 목회로 나왔지만, 세계 어디를 가도 그만한 지성과
SKY 학력을 가진 지성을 만날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황금같은 기회를 너무 아쉽게 그냥 흘려보내고 말았어요?
그렇게 몰려들었던 최고의 지성과 열정의 Elite 님들을
상대로 돈도 벌고, 복음도 마음대로 전할 수 있었던 황금
어장을 잃어버리고 있다니? 아버지 저들을 구원해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