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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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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2년 2월 서울 병원 원목실에서 나름 재미있게 

목회 초년을 지내는 중 갑자기 가평 예배소로 발령

을 받았다. 부끄럽기도 하고 곤란해 하고 있는데,


당시 교문리 교회를 섬기시던 조병혁 목사님께서 

제게 오셔서 부임 전에 가평 예배소와 춘천 교회에

인사를 가 보자고 하셨다. 돌이켜 보면 사려 깊으신 


선배님의 아량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3월 1일 부로

부임을 해보니, 손분선, 김애자, 박승례, 임모친 댁이

단촐하게 예배를 드리고 계셨다. 우선 어른 예배 전에


어린이 예배를 시작했다. 박인숙, 김선임, 김윤정, 선일

종진, 종임 그리고 교회 앞 골목에서 아이들을 모셔다

앉혀놓고, 찬양과 손놀이도 가르치고, 성경 이야기를


해 주면서 애들이 30여명으로 불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자전거를 타고, 박 할머님 댁에 방문을 갔더니

종진이가 야, 예수님 오신다! 그래서 나도 깜짝 놀라서


주변을 돌아 봤더니, 제가 당시에 인준 목사였는데, 목

사님 오신다를, 예수님 오신다로 엉겁결에 잘못 말을

한 것이었다. 아뭏든 한 달 정도만에 어린이 예배가


살아났다. 어린이 예배가 살아나면서 애들 엄마, 아빠

들이 따라 나오기를 시작했다. 농촌 지도소를 다니시

던 한재평 선생님 내외, 읍 사무소 얼굴 마담 이윤정님


가평 운전 교육대 박 주임 상사님이 손분선 집사님 부

군이셔서 그 부대에서 복무 중이던 신현철 박사님 아

들 신경천, 조휴정, 김치호 사병들이 교회를 나올 수 있


도록 해주셨다. 두 달, 세 달 만에 방안이 꽉 찼다. 어느

날 합회에서 들어오라고 해서 갔더니 20만원을 주면서

교회 마루에 부납문을 해 달고서 우선 예배를 드리라고


그러신다. 얼마나 좋은지? 자고 일어나면 교인이 매 안

식일 늘어났다. 안식일 오후에는 군인 형제들이 학생반

지도를 해 주었다. 동균이 순자 은종이 그 숫자도 금방


불어났다. 사슴의 동산, 김영웅 소장님, 대성리 홍성기

장로님, 엄소리 유인석 평신도 지도자님, 신천리 이현

숙 집사님 들도 모두 헌신을 해 주셔서 일년에 봄, 여름


가을, 침례식을 하는데 30, 40명 씩을 주었다. 그래서

저희는 다른 교회 국수 삶아 먹을 때, 군봉사부에서 쌀

을 대줘서 밥을 해먹고는 했다. 그리고, 인근 춘천 교회


에서도 전도회나 특별 집회를 하면 오라 그러시고 청년

기도주일 강사도 하라 그러시며 엄보석 목사님께서 후

견인 역할을 잘 해 주셨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돌이켜


보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2년을 정말

정신없이 바쁘고, 신바람 나는 목회를 하다가 목회 5년

차 봄 연합회 총회에서 방년 29세의 나이로 안수를 받


았다. 그 당시 지방 합회에서 함께 안수를 받았던 분들

중에서는 환갑이 가까운 분들도 계셨다. 그렇게 교회

가 달궈졌을 때 교회 건축 1차 헌금을 하고 다음 해에


저희는 서울 영어학원 교회로 부름을 받게 되었다. 돌

이켜 보면 참 어린 나이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순수하고

진실한 열정 하나로 작은 교회가 그야말로 똘똘 뭉쳐서


충성을 다하려 했었다. 그러다가 후임으로는 권혁우

목사님, 그리고 김진원 목사님께서 교회를 지으셨다.

그런다. 그렇게 정든 교회를 지금은 은퇴를 하신 엄사또


와 김재신 장로님께서 지키고 계신다. 제일 초창기 부터

기도와 눈물로 그 기초를 닦아주신 손분선 집사님 가정

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어린시절 저의 젊음과 정열을


정말이지 뼈를 갈아 묻었던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섣습니다. 물론 주께서 함께 하셨지만, 십자가 사랑, 보

혈의 공로를 인하여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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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ooklee님의 댓글

no_profile Jewookle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돌이켜 보면 첫 사랑은 서울 동부 교회였다. 둘째는
서울 병원 원목실, 그 세째가 가평 교회였다. 그런데
뼈를 갈아 넣어서 그랬는지? 합회에서 오라고 하시

며 돈 봉투를 주시는데, 정말이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아직도 눈물이 난다. 그런 열정으로
영어학원과, 서울 봉화 교회와  강릉 중앙 교회를

섬겼다.  아,  그런데  그렇게 정든 교회를 정말 속이
상해서 어느  날 갑자기  깨끗하게  정리하고 접었다.
그리니!  얼마나 속이 상하는지? 그래서 아직도 그

못다픈 한을 기도로 말씀으로 짧은 신변 잡기로 풀어
내고 있다.  주께서  원하시면 어느 날 인가는 모든
눈물을 내 눈에서 씻어주실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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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ooklee님의 댓글

no_profile Jewookle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실은 그 지역이 선교가 잘 안되는 곳으로 잘못
소문이 나는 바람에 저도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불과 몇 달 사이에 소문이 쫙 퍼지면서 청평 109

치과 병원에서 성영주 대위님께서 김숙희 집사와
(한삼 23회)동창 애들 둘을 데리고 나오셨다. 그러
자 북면사무소 공중보건 의사 김제등 선생님께서

또 애들 둘을 데리고 교회를 나와서 헌신의 불꽃이
되어주셨다. 교회를 쉬고 계시던 김갑수 소장님도
나오셔서 열심히 선구자가 되어주셨다. 그걸 뭐

어떻게 제가 찾아 다닌다고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정말이지 누구한분 힘 안들이고, 또
경반리에서 환자분도 여럿이 나오셔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병 고침도 받으시고?  저도 노 총각으로
갔다가 결혼도 하고, 5개의 지구 교회들을 매달 방문
하며 격려를 했었는데, 다들 얼마나 탄탄한게 협력

이 잘 됐는지? 얼마 전에 그 당시 엄소리에 계셨던
이무송, 문부흥 부부께서 전화를 하셔서 그 때가
너무너무 그립다고 연락을 해 주셨습니다. 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이런 것이었구나? 그러면
서 그 시절 저희가 대형 거울을 선물해 드렸다는데,
그 당시 차편이 없었는데,  어떻게 그 큰걸 가지고

오셨냐고 그래요?  사실은 벌써 40년 전의 얘기라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사랑은 때로는 기적을 만들
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그런 추억들이 저희를 기쁘게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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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wooklee님의 댓글

no_profile Jewooklee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목회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영성이다. 영성은 어디서 오는가?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역사이다.

개신 교회가 말씀 중심으로 변화하는데
저희 교회는 인터넷과 AI로 노선을 갈아
타고 있다. (설교중에 고백을 한다.)

기도 -  솔직히 영적 생명선 인줄을 알지만
저희 SDA 교역자들 중에서 하루 2시간
이상 기도 하시는 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개신교회는 금요 철야, 월요 산기도, 40일 금식
그러니, 능력의 비교가 되는것 같다. 거기서
타락을 하면 교회는 무너진다. 그게 상식이다.

디모데 전서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
하여 지는니라."  이렇게 충성을 다하다 보면
성령께서 임하시는 것은 선물이다.  교인들도
그걸 알고 몰려든다. 우리에겐 언제 성령의 계절
이 올지?  앞이 깜깜이다. 오늘이 그 날이다.

회개와 자복으로 주 앞에 무릎을 꿇으면 그는 자비
하셔서 우리의 무릎을 펴주시고, 사랑으로 안아 주
시며 은혜의 성령을 더하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 날이 오늘 입니다. 저희는아론과 훌이 모세의 좌
우에서 팔을 들어 보좌를 했던 것처럼, 저희는 그
권능의 팔을 들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목 사 님,

힘을 내세요!  목사님이 살아야 백성이 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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