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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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은 그의 말년경에 5권의 성서를 써 후세에 전하고 있습니다.
1세기 말 90년에는 요한 1,2,3서를, 95년에는 요한계시록을, 성서시대의 마지막
책으로 96년에는 요한복음이 기록되었으며 그 2년 뒤인 98년에 요한은 세상을
조용히 떠났습니다.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날을 보내고 말년시대에 글을 썼을까? 하는 의문이 있지요.
그 글의 선택의 여지는 사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주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계 1:1절)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사도 요한의 글 중 ‘요한계시록’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현존하는 최초의 헬라어 사본에는 ‘요한의 계시’라고 되어있는데 헬라어 단어
apokalypsis(아포칼립시스)는 ‘묵시’(apocalypse), ‘계시’(revelation)의 뜻이
있으며 ‘미래를 벗기는(들처 내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한국의 경우 1950년대만 해도 요한계시록’을 ‘묵시록’이라는 표제로 출판된 성경
을 가지고 있었는데 60년대에 이르자 표제가 바뀌어 계시록이라 하고 1956년에
벌써부터 출판된 성경에는 ‘요한계시록’으로 수정 출판되어 나왔습니다. 이를테면
이제 ‘묵시록’이라 하지 아니하고 성서공회가 ‘요한계시록’이라고 수정보완하여
출판되었습니다.
요한의 기별에 있어서 ‘아포칼립시스’란 암묵적인 묵시 보다는 나타내 보이는
계시 , 열어서 보이는 계시로써 ‘공개’하고 ‘계시’한다는 의미로 정확해 진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상의 책명이 ‘요한의 묵시록’ 보다는 ‘요한의 계시록’이라고 하는 것이 합당한
것은 ‘계시록은 인봉된 책이 아니다’(사도행적 584) 라는 의미가 더 적중한 것이며
계시록 기별의 최고봉인 세 천사의 기별과 같이 계시록은 열어서 만민에게 보이고
같이 알고 알아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데 직결되는 선포적인 목적을 가진 책이라는
것입니다.
계시록 기사에 있어서 사도 요한이 ‘나 요한’이 기록했다는 방식의 자신의 뜻을
계시록 본문 중에서 밝히고 있습니다.(계 1:1, 4, 9, 22:8 참조) 또한 계 21:1, 2,
3절에 나타난 것을 보면 절마다 상단에 세번이나 ‘나’라고 밝히고 있는데 속히
전해져야 할 긴박한 기별 탓에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복음선포는 선포자와 그 기별이 명확하고 선전적이고 선포적이어야 하는 것입
니다. 그래서 계시록의 기별의 성격은 기별서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이 기별의 선포가 시급하고 중하다는 기별인 것입니다.
옛날 그 시대의 관습으로는 기별은 그 기별을 들고 뛰어가 전하고 또 전달받으면
다시 뛰어가 전하는 선포식 알림과 기별이었습니다. 요한의 계시록 복음서의
성격은 선포식 복음서입니다. 신학적인 깊은 연구 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기별서
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의 기별이 전파될 때 사람의 기별이면서도 하늘을 날며 전파하는
천사의 사명처럼 빠른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재림교회에서는 성경의 의도대로 세 천사가 전하는 기별 처럼
속히 온 세상에 계시록의 기별이 선포되어야 하는 기별로 나타내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중한 참고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독교사적인 연구에 의하면 이렇게 시급하게 전파되어야 할 계시록의 복음이
한참 브레이크가 걸린 식으로 그 선포가 오랜 세월 동안 지연된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왜 그러할까요? 16세기 종교개혁자 말틴 루터는 계시록은 잘 알 수 없는 책으
로 표명한 바가 있었다고 합니다.
말틴 루터의 종교개혁정신을 이어받은 개신교는 그의 영향을 이어받아 그렇게
도 긴급하고 주요한 기별을 뒤로 한 채 계시록연구를 등한히 한 채 지내 온
세월이 지금까지 이르는 오랜 세월입니다.
왜 말틴 루터가 요한계시록을 그렇게 취급했을까요?
루터는 신학자인 동시에 종교개혁자입니다. ‘루터에게 있어서 성경의 문자적
의미는 중요했다. 그는 문맥의 의미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많은 점에
있어서 그는 해석자에게 항상 존재하는 위협, 즉 풍유적 해석을 피하였다.’
계시록은 성경 다른 책들과는 달리 상징적인 것들과 내용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말틴 루터에게는 계시록의 많은 상징적인 표현들이 당시의 잘 알 수
없는 성서적으로 이해되지 않고 위에서의 말씀처럼 풍자적인 것으로 여겨졌을
그의 취향을 짐작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그를 따르는 자들과
교단교회들로 부터 점차 계시록의 연구와 기별선포가 지체되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 오늘날의 주요하고 중요한 계시록 기별의 선포는 지체되지 아니하고 속히
선포되고 전해져야 하는 기별이라는 이 사실을 먼저 인식하고 이해하는 일부
터 이루어지고 속히 전파되는 기별이 되어지게 해야 한다는 사실이 재림교인
에게 주어진 막중한 사명이라고 하는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명백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라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 다음글사사 시대처럼 말씀이 희귀할 때에 2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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