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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문인들이 추천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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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돌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9.28 19:38 조회수 6,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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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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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이 뽑은 가장 좋은 시로 문태준(文泰俊·35·불교방송PD) 시인의 ‘가재미’가 선정됐습니다. 도서출판 작가(대표 손정순)가 시인·평론가 120명에게 지난해 문예지에 발표된 시 가운데 가장 좋은 작품을 선정해 달라는 설문조사를 한 결과입니다. 문 시인은 지난해에도 시 ‘맨발’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가재미’는 말기암 환자에 대한 기억속 장면들이 언어의 표면으로 서서히 인화되는 순간을 채록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입니다. 두 눈이 한쪽에 몰려 붙어있는 가자미(‘가재미’는 경상도 사투리)는 목전에 다가온 죽음만을 응시하는 환자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문 시인은 “어렸을적부터 고향(김천시 봉산면 태화리) 마을에서 같이 살다가 작년에 돌아가신 큰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바탕이 됐다”며 “고인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느라 (시 쓰는데) 굉장히 고통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가재미

  -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름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겨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현대시학’ 2004년 9월호)



꼭 지

  -문인수-

 

독거노인 저 할머니 동사무소 간다. 잔뜩 꼬부라져 달팽이 같다.

그렇게 고픈 배 접어 감추며

生을 핥는지, 참 애터지게 느리게

골목길 걸어 올라간다. 골목길 꼬불꼬불한 끝에 달랑 쪼그리고 앉은 꼭지야,

걷다가 또 쉬는데

전봇대 아래 그늘에 웬 민들레꽃 한 송이

노랗다. 바닥에, 기억의 끝이

 

노랗다.

 

젖배 곯아 노랗다. 이 년의 꼭지야 그 언제 하늘 꼭대기도 넘어가랴

주전자 꼭다리처럼 떨어져 저, 어느 한 점 시간처럼 새 날아간다.

 

 <시작 노트>

 

꼭지. 눈물이 핑 돌도록 배고픈 이름이다. 딸 그만 낳게 해달라고, 제발 아들 하나만 낳게 해달라고 빈, 부적처럼 갖다 붙인 이름이다. 넷이고, 다섯이고, 내리 딸만 낳은 집안의 막내딸 이름엔 이 ‘꼭지’가 많았다. 태어나 전혀 환영받지 못한 태생, ‘꼭지’들의 삶의 환경은 보릿고개, 초근목피 같은,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지독한 가난 그 자체였다.

 

지금은 아무도, 달동네에서도 ‘꼭지’를 낳지 않는다. 현재 나이 50대 중반 이하에선 아마도 딸, ‘꼭지’가 없을 것이다.

 ‘꼭지’들의 팔자가, 그 노후인들 풍성하게 활짝 열렸겠는지. 아버지 복 없는 년은 남편 복도 없고 결국 아들놈 덕도 못 본다는 속설, 그런 한탄이 우리네 늙은 딸들한텐 있다. 동사무소 가는 저 ‘꼭지 할매’는 젊어 한 평생 ‘주전자운전수’노릇을 했다. 저런 한의 꼭지, ‘꼭다리’, 끄트머리가 이 시대에 아직 우리와 함께 숨쉬고 있다.

 

   현대 문학 7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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