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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 님 월간 <스토리문학> 2008년 9월호 신인상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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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긷는마을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9.15 13:55 조회수 6,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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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하늘을 푸르게 빗질하는 비상의 날갯짓이 유난히 우아해 보인다 
했는데,
이미 시조로 역량을 인정 받으셨던 현암 님이 자유시 부문에 응모하여
‘사과 한 쪽을 입에 물며’ 외 2편으로 <스토리문학> 9월호 신인상에 
당선되셨습니다.
기쁨을 함께 나누며 맘껏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과 한 쪽을 입에 물며


묵은 사과 한 쪽 입에 무니 알이 밴 
너의 아득한 오월이 씹힌다
톡 쏘는 신맛이 추려낸 유난히 
서글펐던 5. 18의 봄,
믿었던 것들 빛고을 혼에게 배반당하고 
설마에 이성이 찔려 분별 또한 잃었었다,
타인 같은 붉은 시선을 벗기면 
끈적대는 모멸감과
혀끝을 태우던 고립무원의 적막,
봄을 씹을 때마다 까칠한 기억과 
냉기 도는 상념(想念)이 입천장에 달라붙는다
제 부모를 겨눈 충혈된 총부리에
미워할 수 없는 몽둥이에 
피 흘리고 멍든 천륜과 인륜, 우린 잠시 
남남이 되었었다, 해를 넘길 때마다 
삭지 않은 분노가 쓴 목에 걸린다
망월동 망자(亡者)의 침묵이
산자의 가슴에 신열[身熱]을 뿜는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뼈 울음에
억장(億丈)이 무너져 내린다
동족(同族)에게 찍힌 이념의 붉은 반점, 
목 부러진 정의가 아무느라 
열병을 앓던 금남로의 거리는 
깊이 팬 골 속에서 민주의 씨를 발라내고는
새 살 돋아난 흉터를 통해 모진 희망을 본다 


비단잉어의 꿈


쉰 번이 넘는 추위 속에 첨벙대던 안양천엔
물고기 비늘처럼 떨어진 은빛 세월이 수북하다
비쩍 마른 이른 오후 풀죽은 갈대들의 초겨울 
각질처럼 눌어붙은 후회와 아쉬움을 붙든 채
다 굵어진 머리를 가누지 못해 고개를 흔든다
흙탕물이 부유했다 가라앉은 세월 밑으로
숨바꼭질하는 비단잉어의 꿈이 자맥질하는 동안 
잣나무에 걸린 석양(夕陽)이 눈을 치켜뜨고 있다


색소폰의 눈물


슬픈 눈을 가진 
테너 색소폰의 동체가 
‘천년바위’의 음계를 
한 모금 들이키고 있다
오선지 위에 걸려 있는 
음표의 정상과 골짜기
은빛 세월을 공유한
삶의 큰 한숨과 작은 숨 
단조의 애절한 선율에 
인생이 연주되고 있다
우울한 곡조가 비켜간 
세월의 꿈을 담았는지
평범한 가슴을 누르며
살아온 의미를 되묻고 있다
제 갈 길 모르는 오랜
무명 연주자들의 애환과
구릿빛 설움이 담긴 
가을 악보를 넘길 때마다
저들의 눈가엔 고인 
달빛 눈물이 반짝이고 있다 

<당선소감>

대학시절에 교지에 기고한 몇 편의 자유시를 써보았던 기억 밖에는 남아있지 않은, 너무 
오랜 방치 속에 나의 시상(詩想)은 몇십 년이나 묵은 밭처럼 버려져 있었다. 시조를 
통해 최근에 시를 쓰게 되고, 시조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한 이후 운율의 구속으로 표현이 
자유롭지 못해 자유시를 쓰는데 늘 한계를 느껴왔다. 그러나 자유시를 본격적으로 습작
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글 스승 채빈 선생님의 격려로 단련해온 글들이 오늘에야 작은 
열매로 보답을 받았다. 아직 많이 부족하고 부끄러운 글이다. 그러나 이제 묵은 내 시상
(詩想)의 밭을 갈아엎고 묵은 가슴을 열어 세상의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내고 싶다. 꽁꽁 얼어붙어 있던 마음에 시를 창조하는 일이 
기쁨이 되도록…. 뽑아주신 스토리문학의 심사위원님들과 지도해주신 채빈 선생님, 그리고 
격려를 아끼지 아니한 시 긷는 마을의 글 친구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과거를 통한 새로운 희망 모색>

시에는 사회 순화의 기능, 수신제가의 기능, 보전의 기능, 사회고발의 기능 등 여러 가지 
기능이 있는데 이 시는 고발의 기능에서 발원하여 사회순화 기능을 넘어서 바야흐로 도약의
기능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람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에만 열광한다. 남대문이 
전소되었다거나, 중국 쓰촨성 대지진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거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몇 개 딴 일 등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만 6.25 전쟁이라든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아픔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따지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독도의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일본에서 망언이 나올 때는 부르르 끊는 냄비처럼 화를 내다가도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세상 사람이 다 잊는다 해도 우리 지성들, 특히 문인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 시는 
수신제가, 즉 정신적 기능이 강하다. 이 작가처럼 지속적으로 일깨우면서 새로운 희망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받았다. 함께 보내온 시들의 소재를 보아 다양한 글을 
쓸 수 있는 훈련이 된 작가로 보인다. 이 작가처럼 시와 시조의 실력을 모두 겸비한 시인은 
그리 많지 않다. 아무리 잘 쓴 시라할지라도 재미 요소가 적으면 독자에게 외면 받을 수 
있음을 명심하면서 써나간다면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작가로 본다. 능력 있는 작가를
만나는 기쁨에 감사한다.     
(심사위원: 배인환 지성찬 김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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