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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긷는 마을 4(강의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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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긷는마을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9.15 10:08 조회수 5,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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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긷는 마을 4
채빈


  추석 맛있게 빚어 드셨는지요. 괜한 소동으로 타향에서 쓸쓸히 그림의 추석
을 드셨을 분들께는 송구한 마음입니다. 
  이번 주엔 연시조를 쓰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거듭되는 퇴고에도 포기
하지 않고 혼신을 다해 저력을 길어 올리신 분들께 칭찬의 박수를 보내 드립
니다. 아울러, 마음은 원이로되 걸음이 약하여 따라오다 넘어지신 분들께도 
안타까움 저미는 격려의 박수를 보내 드립니다. 
  산문을 시처럼 행만 바꾸어 놓는다고 해서 산문이 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는 상식이나 통념으로는 코드화 되지 않는, 통찰과 상상력을 이미지, 은유, 
상징의 붓으로 형상화한 세계입니다. 훌륭한 시를 쓰기 위해서는 인식 방법
의 새로움과 범위의 확장이 선행되어야 하고 성찰이 요구됩니다. 통찰과 깊은 
사색이 없이는 좋은 글을 생산해 내기가 어렵습니다. 시 창작에서 통찰보다 
더 중요한 정신 활동은 상상력입니다. 상상력은 논리를 초월한 사고입니다. 
통찰에서 얻어진 비과학적 진실을 구체화하고 체계화하는 힘입니다. 훌륭한 
시인이 되려면 이 통찰과 사색을 통해 길러진 시적 진실(비과학적 진실)을 상
상력으로 구체화 체계화하고, 이것을 다시 참신하고 의미 있고 창조적인 이미
지나 은유 혹은 상징 등으로 형상화해야 합니다. 
  그러면 중앙 시조 백일장 7월 차상으로 당선된 ‘화첩 기행’을 보시겠습니다.

새로 펼친 화선지에 헐벗은 나무 대여섯
오두막집 찾아가는 가파른 오솔길과 
갈기를 세워 달리는 능선도 그려 넣다.

눈 위에 또 눈이 내려 잠시 붓을 멈춘다. 
여백마다 채워 넣던 풍경들이 지워지고 
지나 온 길과 길들이 하얗게 드러눕다. 

길가에 내려서서 눈발 속을 헤집는다
눈사람 하나 없는 까마득한 망망대해 
속마저 젖은 사내가 소실점으로 서 있다.

눈 멎고 햇살 들자 길들이 다시 걷는다
수묵으로 남은 화판 연둣빛 대담한 터치
붓 자국 스칠 때마다 풀잎들이 일어선다. 
<김종훈 님 ‘화첩기행’ 전문>  

  심사평:김종훈씨는 시의 짜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화첩 기행’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순서
에 맞춰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확장 은유(두 개 이상의 보조관념의 연결)를 
잘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확장 은유는 하나의 은유로 되어 있는 단편적인 
단순 은유보다는 시상을 유기적으로 잘 연결해 주고 밀도 있는 묘사를 가능
하게 한다는 점에서 큰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의할 점은 시를 만드는 
데 치중한다는 느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작품들은 잘 짜여진 
시는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감동의 울림을 수반하는 데는 인색하다.(유재영, 
이지엽)

  다음은 띄어쓰기로 넘어갈까요.
제43항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는 띄어 쓴다.
   한 개  차 한 대  금 서 돈  소 한 마리  옷 한 벌  열 살  조기 한 손  
   연필 한 자루  버선 한 죽  집 한 채  신 두 켤레  북어 한 쾌
다만,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나 숫자와 어울리어 쓰이는 경우에는 붙여 쓸 수
있다. 
   두시 삼십분 오초  제일과  삼학년  육층  1446년 10월 9일  2대대  16
   동 502호  80원  10개  7미터
제44항 수를 적을 적에는 ‘만(萬)’ 단위로 띄어 쓴다.
   십이억 삼천사백오십육만 칠천팔백구십팔, 12억 3456만 7898
제45항 두 말을 이어 주거나 열거할 적에 쓰이는 다음의 말들은 띄어 쓴다.
   국장 겸 과장  열 내지 스물  청군 대 백군  책상 걸상 등이 있다  이사장 
   및 이사들  사과, 배, 귤 등등  사과, 배 등속  부산, 광주 등지
제46항 단음절로 된 단어가 연이어 나타날 적에는 붙여 쓸 수 있다.
   그때 그곳 좀더 큰것 이말 저말 한잎 두잎

  이제 숙제 검사할 시간이네요.^^ 
  나야나 님의 ‘점’은 통찰과 사색이 깃든 착상입니다. 

  까마득히 머어언 
  추억의 시작이다

  빛 바랜 사진첩 
  얄궂은 웃음들도

  너 하나 태어났기에 
  오늘을 만들지

  아내의 목덜미 곁 
  수줍게 박혀 있는

  잴 것 달아 볼 것도 
  달랑 없는 자세로

  내 거라 그저 말하는 
  그 의미가 바로 너다

  긴 터널 줄자 빼듯 
  더 많이 달리고

  원통처럼 부풀린 
  자랑일랑 넘쳐도

  끝내는 
  네 작은 곳이 
  새로운 마침의 무덤
  <나야나 님의 ‘점(點)’ 전문>

  점이 사람을 포함한 삼라만상의 시발지요 종착지임을 추억의 빛 바랜 사진
첩으로부터 끌고 와서는 다시 아내의 목덜미에 수줍게 박혀 있는 점으로 축
소시켰다가 무한 개념으로 확대합니다. 그러다 한없이 커가려는 점의 욕망을 
결국은 마침의 무덤으로 빗질해 줍니다. ‘달랑 없는 자세로’와 같이 이해하기
에 무리가 가는 표현을 좀더 구체화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태초의 새신랑 
  임마누엘 대공(大公)되어

  수줍은 지구처녀 
  "신부"라 불러줄 때 

  까아만 술람미 여인 
  신데렐라 되었소 

  하늘은 껍질 벗고 
  땅으로 씨 뿌리던 밤

  우주도 숨 고르며 
  문구멍 너머 엿볼 때

  미문(未聞)의 힘찬 태동은 
  이미 시작이었소

  온 땅을 일구어라 
  대지를 품어라 

  고운 님 뜻 받들어 
  하얀 옥토 이불 펴고

  반길 이 다시 오시는 밤 
  새로 쌓을 만리장성 
  <나야나 님 ‘신(新) 창세기’ 전문>

  ‘신(新) 창세기’도 ‘점’에 걸맞는 제목입니다. ‘수줍은 지구처녀’, 
‘우주도 숨 고르며/문구멍 너머 엿볼 때’는 돋보이는 터치입니다. ‘창조
와 재창조를 다루었는데 셋째 수의 초장과 중, 종장의 급전환이 호흡을 
가쁘게 합니다. 이 외에도 다작을 낳으셨지만, 보다 진지하고 참신한 언어를 
길어 올리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나야나 찰리라니 나와 같은 동명이고
  애란 님 삼육시절 몇 년도라 일컬으소
  채빈 님 고향 물은즉 천안이라 동향일세
  <찰리 님 ‘군더더기 말’ 전문>

찰리 님의 ‘군더더기 말’을 시 짓는 마을의 정감을 위해 올려 보았습니다. 
이 첫 걸음들이 모여 화기애애한 마을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나무라지 
않을 테니 찰리 님도 용기를 내 보세요.^^
 
  빨간 드레스 입은
  안트리움 발레리나

  장독 뚜껑 무대 위에
  한 다리로 서 있다가

  연주곡
  울려 퍼지자
  조명 차고 춤을 춘다

  심금(心琴) 울려주는
  마음의 대사로

  마지막 인사인 양
  혼신(渾身) 다한 열연(熱演)

  침봉(針峯)에
  찔려야 하는
  아픔마저 잊은 채
  <도애란 님 ‘꽃의 왈츠’ 전문>

  눈뜨는 봄날에
  당신을 만난 후

  여름이 노래할 때
  화관(花冠)쓴 내 인생

  가을로
  가는 길목에
  기도소리 훠이훠이

  힘없는 타작마당
  노을 속을 걷던 날

  짓밟힌 소명(召命)안고
  피눈물로 뒹구네

  차가운
  겨울 들판엔
  타다 남은 짚 한 줌
  <도애란 님 ‘겨울 허수아비’ 전문>

  도애란 님은 시 긷는 마을에서 가장 질문이 많은 학생입니다. 훌륭한 선생
님은 질문이 많은 학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신의 체험을 통해 터득하고 실
천하는 아주 영특한 학생이지요.^^ 그리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결코
퇴고의 불꽃을 꺼뜨리는 법이 없는 학생이랍니다. ‘꽃의 왈츠’와 ‘겨울 
허수아비’는 귀감이 될 만한 퇴고의 산물입니다. 마음껏 칭찬해 드리고 싶습
니다. 
  ‘꽃의 왈츠’는 꽃꽂이 감상에서 얻은 소재, 장독 뚜껑 수반을 무대로 하여 
안트리움꽃의 독무를 안무하고 있습니다. 둘째 수 중장과 종장은 ‘마지막 인사
인 양/혼신(渾身) 다한 열연(熱演)/침봉(針峯)에/찔려야 하는/아픔마저 잊은 
채’ 작자가 이같이 시작(詩作)에 임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어 감동의 침봉에 
찔리게 합니다. ‘겨울 허수아비’는 모태 신앙을 만나 중학교 때 침례를 받고 
주님과 결혼해 사단의 유혹을 훠이훠이 쫓아버리며 인생을 살았지만 추수의 
날 타작마당에 결실이 없음에 괴로워하는 모습, 쓸모없어진 허수아비를 태워
버린 재림의 심판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허수아비 인생처럼 되지 말자는 
주제로 허수아비를 의인화하여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기도소리 훠이
훠이’가 이 가을 인상 깊은 몸짓으로 들려오는 듯합니다. 

  긴긴밤 휘몰아친
  광란의 폭풍잔치

  어미 잃은 새둥지에
  아기 새들 울음합창

  새싹들
  놀란 눈으로
  고개 들고 엿본다

  뜨거운 햇살 아래
  찬란한 생명잔치

  새싹들 키 자랑에
  꽃들은 기쁨합창

  어린 새
  여윈 몸으로
  고개 숙여 잠든다
  <박지연 님 ‘해 그림자’ 전문>

  가을이 풀벌레 되어
  초롱 달에 등불 켜면

  별들을 악보 삼아
  찌르르 목청 돋우며

  애달피
  못 잊어하는
  노래로 살래요

  가을이 햇살 되어
  붉은 옷 단장하면

  바람을 구두 삼아
  또르르 춤추며

  그리움 
  찾아 떠나는
  설렘으로 살래요
  <박지연 님 ‘가을 연가’ 전문>

  박지연 님의 ‘해 그림자’와 ‘가을 연가’도 여러 번의 퇴고를 거쳐 완성한 
작품입니다. 다들 처음 체험하는 장강의 위기를 퇴고를 통해 가까스로 흘러가고 
있음에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해 그림자’는 폭풍이 지나가고 난 후의 여름 
숲을 배경으로 한창 생명이 태어나고 쓸쓸히 꺼져가는 인생 골목들을 해와 그림
자의 대비 효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둘째 수 종장의 연결이 좀 걸리지만 첫
째 수에서 등장한 장면이라 이해에 무리는 없으리라 봅니다. 작자의 통찰의 깊
이를 엿보게 하는 시입니다. ‘가을 연가’는 연가의 목소리를 내고 있군요. 
‘가을이 풀벌레 되어/초롱 달에 등불 켜면’, ‘바람을 구두 삼아/또르르 춤추
며’는 돋보이는 대목입니다. 

  무더워 쩔쩔맨다
  어디다 하소할까
  이같이 무더운 줄
  몰랐던 아리조나
  그래서 살러 왔다간
  가버리나 9월에

  그렇다고 떠나요
  9월 후 10월이면
  산산한 바람 일고
  하늘엔 별들 총총
  떠난 걸 후회할거요
  이 9월이 분기점
  <오근석 님 ‘9월’ 전문>

  오근석 님의 ‘9월’, 아리조나에 가 보진 못했지만 그 더위를 체감하진 못
한다 할지라도 시의 수은주에 의해 그 더위가 어느 정도는 전해지네요. 별들 총
총한 아리조나의 10월은 어떨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전체적으로 리듬이 조금만 
더 자연스러워진다면 잘 읽히는 시조가 될 것 같습니
다. 용기를 내세요.^^

  생시(生時)에 물려받은 밭떼기 한 마지기.
  무엇을 심었나 무엇을 거뒀나
  나 닮은 잡초만 듬성듬성 나 있다.

  세상 밭을 일구던 어부를 만났다.
  새 농사는 새 밭에서 지어야 한단다.
  거친 손 힘을 주어 밭을 뒤엎는다.
  <트란다비야 님 ‘새 밭’ 전문>

  트란다비야 님의 ‘새 밭’입니다. 트란다비야 님도 연시조의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시게 되었군요. 정말 밭을 일구고 가꾸는 일이 장난이 아니지요
? 믿음밭도, 연시조밭도. 그런데 요즘은 불경기라 어부도 밭을 일구나 봅니다.
^^  ‘거친 손 힘을 주어 밭을 뒤엎는다.’에선 트란다비야 님에게서 솟아나는 
의지의 힘줄이 보이는 것 같아 덩달아 제게서도 힘이 솟아납니다. 다른 곳의 운
율은 잘 되었는데 종장의 두 번째 구는 5자 이상(보통은 5~6자)이어야 하거든
요. '잡초만', '힘을' 요 부분 말씀입니다. 

  철없이 낳은 아이
  탈 없이 커준 아이
  살같이 흘러가 버린 삼십이 년 세월아

  젖 먹던 모습 위로 
  다시 보는 네 자태는
  내 핸 듯 전혀 네 해인 아름다운 여인아
  <무궁화 님 ‘딸’ 전문>

  무궁화 님의 ‘딸’은 철없이 낳아 키우느라 고생이 만만치 않았으련만, 젖 
먹던 모습 위로 훌쩍 키를 넘긴 세월이 뭉클하게 만져지는 시조입니다. 초장이
라고 해야 할지 중장이라고 해야 할지 아무튼 한 장이 빠졌는데 그 한 장을 
완성시키셨더라면 감동적인 연시조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음엔 꼭 성공하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힘내세요.^^


  휘영청 밝은 달이 왜 뜨는지 모르고
  내 고향 산천마저 까맣게 잊었는데
  추석 명절 말들 하니 어색하기 그지없네

  하루 품삯 받아들고 끼니 걱정 하는 탓에
  한숨 섟인 신음소리 온 밤을 채우건만
  잊어버린 사람들이 내 마음을 휘젓누나

  가자가자 어서 가자 어여 가서 만나보자
  어이하여 타향 멀리 이리저리 헤메던가
  목메어 외쳐 봐도 이 가슴만 터지누나 
  <진 님 ‘추억이 되어버린 날들’ 전문>

  마음을 저미는 진 님의 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삶의 버거운 
짐을 여기다 부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로 짐을 나눠 지고 격려하며 가는 이
마을이 되기를 열망합니다. 시조는 초장:3, 4, 3, 4 중장:3, 4, 3, 4 여기에다 
종장까지도 3, 4, 3, 4였다면 밋밋한 시조가 되었을 텐데, 종장에 버선코와 같
은 3, 5, 4, 3의 감칠맛을 낸 것을 보면 우리 선조들은 맛(멋)을 아는 분들임
에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시조의 감칠맛은 종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시조로 시 긷는 마을을 연 목적은 보다 쉽게 자유시에 접근하
는 방법을 알려드리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혹 시조의 글자수가 정통 시조에 맞
지 않거나 한 장이 빠졌다고 해서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
은 시조를 쓰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해서 제 격식대로 하고자 합니다. 

  돌 제단  피운 불에  희생양  불태우니
  그 냄새  솟는 연기  천지를  진동하네
  어찌해  하늘에서는  냄새 좋다  하시나
 
  한여름 적막 깨는 개구리 울음 같이
  여기서 저기서도 통곡의 회개 소리
  기이해 하늘에서는 노랫소리 곱다네
 
  이 세상 이긴 자여 새 몸에 새 옷 입고
  하늘에 당도하여 반가운 상면하세
  하나님 하시는 말씀 내 백성아 반갑다.
  <가을 님 ‘하늘소망’ 전문>

  마흔셋 글자 위에 색동옷 입혀보고
  한 마디 마디마다 차곡한 마음곳간
  삼장의 어엿한 모습 희열 범벅 내 기도

  골고다 돌산 위에 뿌려진 님의 생명
  이웃을 사랑하라 새로이 태어나라
  짧은 말 깊은 메아리 시인 같은 우리 님
  <가을 님 ‘득도입문’ 전문>

  다음은 가을 님의 ‘하늘소망’과 ‘득도입문’입니다. 단시조를 뛰어넘어 연
시조에 처음 입문하셨는데 두 수 모두 비교적 운율이 매끄럽네요. ‘하늘소망’
에서는 아이러니한 공감의 맛이 납니다. 아버지 같은, 어머니 같은 님이 아닌 
시인 같은 님은 분명 가을 님의 님이실 것입니다. 마흔셋 글자 위에 색동옷을 
입혀도 보고 짧은 말 깊은 메아리 시인 같은 우리 님을 만나도 보며 새로이 
태어나고 있는 가을 님의 희열범벅이 보입니다. 입문의 길이 훤히 트인 듯한.^^

  二七道 돌아와서 얻은 게 무엇인가
  중생의 허전함이 오늘 뿐이던가
  업보는 뉘 탓이리요 한평생의 윤회라
  
  天國문 極樂문이 반나절 길이건만
  天父의 생명 끈 얼마나 모질기에
  빈 객사 풍경 소리에 서러이 잠드는가
 
  六道를 깨우치고 속세에 드리우니
  육도에 비추이는 십자성 밝은 불빛  
  윤회도 돌무덤에서 부활하는 환희라.
  <노파 님 ‘중생’ 전문>

  노파 님의 ‘중생’은 27도와 6도의 심오한 도를 다루고 있군요. ‘윤회도 돌
무덤에서 부활하는 환희라.’ 이쯤 되면 노파 님이 닦으신 도의 경지가 어느 정
도인지 가늠이 되네요.^^ 이 심오한 통찰을 참신한 이미지로 형상화 했더라면 
정말 빼어난 시가 되었을 텐데, 도에 치중한 나머지 구태에서는 부활하지 못
한 것이 아깝습니다. 

  설화(說話) 섞어 반죽하여 정(情)으로 소를 넣고
  송엽 위에 곱게 뉘어 단성(丹誠)의 불 지피니
  연돌로 오르는 향취 추억 안고 춤춘다.

  열 오른 송병 시루 엄마 사랑 뿜어내면
  목 빠진 아이놈은 부엌문턱 넘나들고
  모심(母心)도 조급해져서 솥뚜껑을 여닫는다.

  색색의 멋쟁이들 목욕재계 시킨 후에 
  기름으로 단장하고 채반에 올려 내니
  달님도 넋을 잃은 듯 은빛 침을 흘린다. 
  <낙수 님 ‘송편’ 전문>

  낙수 님의 ‘송편’은 처음 쓰는 연시조 같지 않게 운율을 잘 다스리고 있습니
다. 그래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설화(說話) 섞어 반죽하
여 정(情)으로 소를 넣고’나 ‘연돌로 오르는 향취 추억 안고 춤춘다.’나 
‘달님도 넋을 잃은 듯 은빛 침을 흘린다.’ 모두 빼어난 가구(佳句)입니다. 
송편 한 접시 맛있게 비우고 내놓은 빈 접시에 또 무얼 담아 주려나 기대를 해 
보면서…^^

  저수지 끝자락에 자리 편 푸른 연근
  뻘이불 덮어쓰고 시궁창 물 들이켜도
  키워낸 생명 마디에 만족하며 서 있네

  가느다란 몸뚱어리 서너 마디 키우다가
  썩어져 거름 되고 자라난 곳 무덤 돼도
  훌훌훌 시간 벗고서 미련 없이 떠나네.
  <임태용 님 ‘연근 예찬’ 전문>

  마지막으로 임태용 님의 ‘연근 예찬’입니다. 운율이 몇 마디 연근처럼 미끈
하게 뻗어나가고 있군요. '저수지 끝자락에 자리 편 푸른 연근/뻘이불 덮어쓰고 
시궁창 물 들이켜도'에서는 수행 중인 연근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키워낸 생명 마디에 만족하며 서 있네’, ‘훌훌훌 시간 벗고서 미련 없이 떠
나네.’성스럽기까지 한 이 순응의 자태에 마음의 옷깃을 여밉니다. ‘사라져
가며’는 ‘떠나네’와 같은 의미라서 ‘시간 벗고서’로 수정해 보았습니다.
  수작을 낳았던 9월의 뒷모습도 벌써 저만치로 멀어져가고 있습니다. 9월을 
보내고 10월을 맞이하게 될 한 주일도 건강하시고 숙제 월요일까지 제출하는 
것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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