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긷는 마을 3(강의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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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긷는 마을 3
채빈
오늘도 시 긷는 마을에 오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새로 오신 분들이 곳곳
에서 기대감을 반짝이고 계시는군요. 이 처음 반짝임을 결코 잃지 마시게 되기
를 바랍니다. 이제 겨우 3번째인데 하나를 가르쳐 드리면 열을 키워내는 여러분
의 명석한 열정에 힘입어 시 긷는 마을의 열매들이 탐스럽게 영글어가고 있습
니다. 단물을 즐기실 날이 머지않아 보입니다.
아직 이른 감이 있지만, 오늘은 연시조를 맛보도록 하겠습니다. 장강의 흐름
을 익히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작은 냇물 다스리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장강의 흐름을 욕심내다 보면 금방 흐름을 잃고 맙니다. 더 넓게, 더 깊
이, 더 멀리, 흘러가기 위해서는 처음 흐름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절대로
간과하지 마실 것을 당부, 또 당부합니다. ‘처음 흐름’이란, 단수를 지을 때 익
히셨던 압축과 묘미입니다. 단수에서 두 수, 세 수로 쌓아올리다 보면 압축이
풀어진다거나 상이 흩어진다거나 표현이 평이해지는 등의 현상이 나타나기 쉬
운데, 이 점을 염두에 두시고 한 수, 두 수 차분히 쌓아올리시기 바랍니다. 습
작 시절의 제 시조를 소개합니다.
가을 산책
머언 차비를 하고
길 떠나던 사람들이
대합실(待合室) 모퉁이에서
깨어나고 있는 새벽
갈꽃들
상한 몸으로
날 부르고 있구나
별들이 다 가버린
풀잎만 무성한 하늘
두 다리로 선 부끄럼을
무엇으로 달랠까
층계(層階)를
올려다보며
목발 짚고 선 아이
심사평:작품에 있어 안정감을 보인다는 것은 그 작자가 이미 어느 수준에 올
라와 있음을 뜻한다. 금주엔 그 같은 안정세에 접근하고 있는 작품이 띄었다.
이들 대부분이 두 수 내지 세 수의 연시조로서 자기의 개성까지를 보이려 하고
있었다. “가을 산책”은 두 수 일편인데 계절과 삶을 보는 눈이 상당한 수준을
느끼게 한다. 바꾸어 말하면 시안(詩眼)이 싱싱하고 건강하다. ‘대합실 모퉁이에
서 깨어나고 있는 새벽’ ‘별들이 다 가버린 풀잎만 무성한 하늘’ 등에서 역량을
엿보게 한다.(이상범)
다음엔 중앙 시조 백일장 8월 차하 작품을 보시겠습니다.
가을산
산자락 들쭉날쭉 고리 물고 흐르는데
모두들 초록으로 밑그림 그려놓고
자 이제 시작해보자, 화려한 그 변신을
색색이 알록달록 수놓는 듯 펼쳐지고
넉넉한 몸체에는 흥에 겨운 단풍 무리
한 몫 한 쑥부쟁이꽃 우쭐대며 서있네
<금순희>
심사평:현대시조는 오늘의 정서를 대변하는 목소리여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
데 응모된 작품의 상당수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고답적인 소재와 고루한 생각
들에 얽매여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는 도덕 교과서가 아니다. 자연을 대상으
로 하더라도 새로운 서정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겨울 숲을 “퓨즈가 나
간 집”으로 볼 수도 있으며, 꽃은 버려진 타이어 안에서도 피어난다. 생명의 가
열한 몸짓을 어찌 낭만적으로만 형상화할 수 있을 것인가. 금순희씨의 가을산은
가을산의 흥취를 흥미롭게 그려낸 작품이다. 정적인 배경을 동적으로 바꾸는 서
정의 힘이 돋보인다. 같이 보낸 다른 작품들은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
다.(유재영, 이지엽)
도애란 님의 요청대로 띄어쓰기에 대한 규정을 매회 조금씩 올려 드리겠습니다.
기본적으로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써야 합니다.
제41항 조사는 그 앞말에 붙여 쓴다.
꽃이, 꽃마저, 꽃이나마, 꽃처럼, 꽃이다(‘이다’를 띄어 쓰는 분들이 더러
계신데 이는 조사이므로 붙여 써야 합니다.) 등
제42항 의존 명사(것, 수, 만큼, 이, 바, 지)는 띄어 쓴다.
아는 것이 힘이다. 나도 할 수 있다. 먹을 만큼 먹어라. 아는 이를 만났
다. 네가 뜻한 바를 알겠다. 그가 떠난 지가 오래다.
하지만 때로는 조사로 사용되어질 때도 있기 때문에 주의하셔야 합니다.
명주는 무명만큼 질기지 못하다.
쓰는 법을 잘 모르실 때에는 사전을 참고하시고, 홈의 오른쪽 옆구리에 보면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가 있습니다. 고유명사나 신조어 같은 것을 분석
해내지 못하고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은 못 되지만 비교적 우수한 검사기
이니 '즐겨찾기’에 넣어 두고 애용하세요.
그럼 지금부터 숙제 검사를 하겠습니다. 세상에… 숙제를 한 편씩만 내라고
했는데도 숙제하기 신나서 2수씩, 3수씩 지어 선생님 갈등 생기게 하는 학생들
은 아마 시 긷는 마을 학생들밖에 없을 겁니다.^^ 여러분들의 열심에 감동하여
젖 먹던 열정으로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그럼 가장 위에 놓인 박지연 님 것부터…
한 번만 봐 주이소
내 아이 살려야 혀
무정한 단속반에
박살난 꿈 포장마차
먼저 간
야속한 님아
우린 어찌 살라요
<박지연 님 ‘어떤 민들레’ 전문>
언젠가 TV 뉴스에서 목격한 적이 있는 삶의 현장을 잘 포착하셨습니다. 고향
의 언어들로 절규를 주워 담아 놓아서 민초들의 아픔이 더 애절하게 닿아옵니다.
비록 박살난 꿈이지만 꿈 조각들을 주워 맞춰 주며 꿈을 살려내는 것이 시를 쓰
는 우리들의 몫이지요. 싱싱한 시안을 가지신 박지연 님 계속 정진해 주세요.
하늘이 아파해요
비눈물 천둥기침
하늘이 좋아해요
해웃음 달별얘기
하늘이 사랑하나 봐요
무지개꿈 예쁘게
<박지연 님 ‘하늘 사랑’ 전문>
박지연 님 숙제는 두 편이네요. ‘하늘 사랑’은 ‘어떤 민들레’와는 대조적인 분
위기의 동시조입니다. 하늘의 변화를 의인화하여 하늘 사랑으로 감정이입했지요
? ‘비눈물’ 혼자 있었다면 좀 밋밋해졌을 초장이 천둥기침의 등장으로 활기를
얻었네요.
다음은 도애란 님의 연작 시조 사모곡 2-패션쇼입니다.
색색의 옷감들이
줄지어 서 있는 밤
틀 소리 드륵드륵
완성된 사랑의 작품
딸들은 모델이 되어
신명나는 패션쇼
<도애란 님 사모곡 2-패션쇼 전문>
어머니의 사랑 짓는 솜씨가 시를 짓는 따님의 솜씨와 어울려 읽는 이에게도
신명나는 패션쇼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군요. ‘색색의’라는 시어가 잃어버린
유년의 기억에 드륵드륵 틀 소리를 내고 있어 흑백 사진이 아닌 칼라 풀한 동
영상으로 점점 생생해집니다. 바래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은 먼지 앉은 세월마
저 재단하고 순진무구한 어린 시절의 패션쇼 무대로 독자들을 이끌고 계시네
요.
다음은 ‘9월에게’를 보실까요?
가을문 여는 너
내 마음도 열어
시심 깊은 샘 곁에
오래도록 세우네
행여나 빠질까 봐서
조바심 난 내 영혼
<도애란 님 ‘9월에게’ 전문>
뚝딱 숙제 두 편을 마치고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는 도애란 님의 모습이 조
금은 얄미우면서도 웃음 짓게 하지요? 아마도 조바심은 예감하고 있을 거예요,
시심의 깊은 샘 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나야나 님도 두 편을 지으셨군요. 아니, 나야나 님은 이 두 편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시아람이 쏟아져 주체를 못하고 계신 듯합니다. 모두들 열정들이
넘쳐나셔서 오히려 제가 쩔쩔맬 지경이지요. 시를 가르치면서 이렇게 신나 본
적은 없답니다. ‘가을 하늘 속에서’는 이 격발되는 힘에 의해 시가 일신우일신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초장의 ‘탱탱한 바다 건반/도 치면/레미파솔’은 빼어
난 상상력입니다. 가을 하늘에서 바다를 연상해내고 다시 바다에서 건반을 연
상해내는 공감각적 구조 속에서 가을 하늘은 부신 절정을 이룹니다. 그 파란
색체 속에 숨어 있는 무지갯빛은 탐구의 눈빛에게 계속적으로 호기심을 유발
하고 있어 시가 구미를 당깁니다.
탱탱한 바다 건반
도 치면
레.미.파.솔.
파아란
마을마다
무지갯빛 숨어 있다
보일 듯
감추어진 길
아이 되어 걷고 있는
<나야나 님 ‘가을 하늘 속에서’ 전문>
가을을 걷는다
설익은 마음으로
님께서 부르시는
노래 따라 밟으면
철없는 가슴 한 켠에
수줍스레 영그는 시
<나야나 님 ‘9월의 소녀’ 전문>
‘9월의 소녀’에서는 수줍음 속에 살짝 감추어져 있지만 시에 눈을 뜨는 감
동이 새어나오고 있습니다. ‘철없는 가슴 한 켠에/수줍스레 영그는 시’ 참 보
암직한 열매로군요.
바닷물 쪽 마시고 높아진 창천아래
뭉게구름 피어올라 덩덕쿵 춤을 추니
참으로 9월 하늘은 부시도록 빛나네.
<임태용 님 ‘9월 하늘’ 전문>
임태용 님의 ‘9월 하늘’도 시각과 청각의 공감각적 표현으로 가을을 그리고
있어 가을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바닷물 쪽 마시고’에서는 하늘의 크
기가 가늠되면서도 개구쟁이 아이의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어 재미를 더
합니다. 뭉게구름이 ‘덩덕쿵’ 춤추는 것을 보셨나요? 흥겹고 개성이 돋보이는
단수입니다.
새벽을 앞세우고 안개숲 헤쳐갈 때
드러난 저 모습은 눈 비비는 지리산
내 님도 사랑 만들며 대문 향해 서 있네.
<임태용 님 ‘사랑 만들기’ 전문>
‘사랑 만들기’에서 ‘새벽을 앞세우고’,‘눈 비비는 지리산’으로 표현이 점점
거듭나고 있습니다.
거기에 원 걸었네
언제나 대답 올까
기다려 기다려도
다물어진 님의 입
이러다 해 바뀌어도
나 몰라라 하시려나
그 자리는 너무 넓고
내 소원은 가냘픈가
오늘도 하늘 향한
눈망울 애달픈데
굵직한 빗줄마다에
사랑한단 사연이
<오근석 님의 ‘하늘’ 전문>
오근석 님, 시 긷는 마을에 신입하심을 축하합니다. 시 긷는 마을에서는 단
시조를 쓰고 있는데 연시조를 지으셨군요. 아직 낯이 설어 안내를 못 보셨을
수도 있으니 한 번 봐 드릴게요^^ 하늘에 원 걸고 애 태우는 마음이 잘 나타
나 있네요. 숨 막힐 듯 단절되고 정적인 분위기를 답서, 빗줄기의 동적인 분
위기로 터놓아 비로소 숨통이 트이고 해갈되는 카타르시스를 체험케 합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나만을 생각하면
심장이 뜀질치고 가슴이 파도치는
그대의 열정적 사랑 영원토록 기리리
<재림성도 님 ‘님의 사랑 고마워’ 전문>
재림성도 님의 신입을 환영합니다.^^ 새 얼굴을 만나는 것은 반갑고 기쁜 일
이지만, 슬며시 떠나는 분이 생기면 어디 가서 찾을 길 없어 안타깝기 그지없
으니 당찬 각오 틈틈이 벼려 주시기를 기회에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님의 사랑 고마워’에서 ‘심장이 뜀질치고’, ‘가슴이 파도치는’이라 하여
사랑이 역동적으로 잘 표현되었습니다. 그런데 종장에서 ‘영원토록 기리리’라고
응수했기 때문에 다소 맥이 빠진 듯합니다. 종장은 초, 중장을 살려내기도 하고
죽게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을 전에 드렸었는데 재림성도 님은
늦게 오셔서 못 들으셨겠네요. 조금만 더 깊은 곳에서 사유를 길어 올리시면
훌륭한 시조를 지으시게 될 것 같습니다. 용기 내시기 바랍니다.
아이반 프랜시스 이젠 또 진이란다
발달된 일기예보 혜택이 무엇인가
요기서 포올짝 뛰는 깨금발 피신일 뿐
어제의 보금자리 사라진 폐허 위에
너 이제 무엇으로 새집을 지으려나
주님께 영원한 기업 지어주기 부탁해
<무궁화 님 ‘태풍’ 전문>
반갑습니다, 무궁화 님!^^ 금주엔 새 얼굴들이 많이 보이네요. 시 긷는 즐거
움 속에서 계속 뵙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무궁화 님도 연시조를 지으셨군요.
단시조의 무대에서 태풍과 일기예보, 인간의 유한성으로 신의 능력을 조명하기
엔 무리였나 봅니다. 연시조를 쓰신 걸 보니. ‘요기서 포올짝 뛰는 깨금발 피신
일 뿐’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태풍을 다스리시는 조물주와 대조적 이미지로 귀
엽기까지 한. 그런데 둘째 수 종장, ‘부탁해’의 마무리는 좀 어색합니다. 인칭을
통일하거나, 무리하게 생략한 어미를 살려 보세요.
다음은 트란다비야 님의 ‘가을 일박’입니다.
우수수 빗소리에
자잘자잘 말소리로
어느새 잠든 밤,
소리 없이 맞은 아침.
물먹은 쪽빛 하늘
마음도 하늘 닮아.
<트란다비야 님 ‘가을 일박(一泊)’ 전문>
한참 동안 나타나지 않아 애를 태우시더니만, 청량한 공기와 시린 하늘로 목
욕시킨 시를 데리고 오셨군요. 그래서 그런지 시가 또랑또랑한 걸요. ‘우수수
빗소리에/자잘자잘 말소리로’에서는 ‘우수수’와 ‘자잘자잘’이 대조를 이루어 재
미있습니다. 동화 속 풍경 같은 중장, 후반부에서는 초장과 대조되어 비 갠 아
침 고요한 감동을 열고 투명한 가을 노래가 들려올 듯합니다. ‘물먹은 쪽빛 하
늘’ 마음 파랗게 물들이는.
가을비에 젖은 一葉
천 길 벼랑 떨어지네
이슬 맺은 玉구슬은
내 님 실어 보낸다고,
수많은 길목 휘돌아
떠나가는 一葉片舟
<노파 님 ‘추심(秋心)’ 전문>
이제 보니 노파 님도 오셨군요, 환영합니다. 우리 함께 어울려 목청껏 하늘
에 닿는 노래를 불러 봅시다.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벌써 가을비에 젖어 천 길
벼랑으로 낙하하고 있군요. 추심이 짙게 묻어나는 단수입니다. 중장과 종장의
연결이 무리하게 느껴져서 ‘,’을 사용해 봤습니다. 중장 같은 단어의 사용-이슬
맺은 옥구슬은-은 자칫 미사여구의 나열에 빠지기 쉬우니 주의하시기 바랍니
다.
가을 하늘 별들은
엄한 음악 선생님
밤 수업 마친 벌레들
관현악 합주 시켜 놓고
구경 온 나마저 붙잡아
한 곡조 시키고 만다.
<낙수 님 ‘가을 노래’ 전문>
마지막으로 낙수 님의 ‘가을 노래’를 살펴보시겠습니다. ‘가을 하늘 별들은/
엄한 음악 선생님’ 이것은 낙수 님의 목소리네요. 가을 하늘 별들을 보고 엄한
음악 선생님을 연상하는 사람은 아직 낙수 님밖에 보지 못했거든요. 가득 머금
었을 별 선생님 눈웃음 때문에 농땡이치고 싶어하는 가을벌레들 꼼짝도 못하고
감동을 합주하는 진풍경이 그려집니다. 게다가 구경 온 작자마저 붙잡아 별, 풀
벌레, 작자가 이룬 조화-가을밤의 인상 깊은 정경이군요.
이상으로 숙제 검사를 마칩니다. 모두들 참 잘했어요, 꾹꾹!!^^ 다음 숙제는
연시조 지어오기입니다. 추석이 끼어 있기 때문에 일요일까지 제출하셔야 할 것
같아요. 송편 하하 깔깔 빚어 드시고 다음 주 건강하게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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