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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긷는 마을 2(강의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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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긷는마을메일보내기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8.08.24 23:06 조회수 5,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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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긷는 마을 2
채빈


  시 긷는 마을로 마음 앞세우고 총총 따라오신 시객님들의 걸음, 걸음들을 환
영합니다. 오늘 새로 오신 분 계신가요? 아, 저 쪽에 계시는군요. 그리고 이 쪽
에도.^^ 여기 아늑한 곳에 자리한, 이제야말로 마을다워진 시 긷는 마을이 들썩
이도록 뜨겁게 환영합시다. 우리들의 시 긷는 이야기들이 호호호, 껄껄껄 새어
나가서 뭇 객들의 고단한 걸음들을 단걸음으로 불러들이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시객님들! 큰일 났어요. 제가 지금 거의 제 정신이 아니라서 이 시간
을 이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거든요. 왜냐고요? 너무 신이 나서요.^^ 많이들 기
다리셨지요? 특히, 일등으로 제출하신 나야나 님. 숙제를 내드리고 은근히 걱
정했는데, 재능을 엿보게 하는 시객님들의 첫 작품들을 대하며 얼마나 흐뭇했
는지 모른답니다(명강의에 명작품인가요?^^). 이렇게 빼어난 시조들을 쓰실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어디다 내놓아도 결코 빠지지 않을 수작들을 들여
다보노라니 어찌나 기특하고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운지(정말 첫 작품들 맞나요? 
어째 믿어지지가 않아서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요 야무진 녀
석들. 아마도 습작 시절 응모된 작품들을 심사하시던 선생님의 마음도 저와 같
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개 처음 시를 쓰시는 분들에게서 발견되곤 하는, 
주제와 소재들을 연결시키는 테크닉이 서툴러서 무의미하게 나열하는 미사여구 
식 구성이 한 분에게서도 발견되지 않아 얼마나 고무적이었는지요. 
  보편적으로 ‘시조’ 하면 고시조를 떠올리게 되고, 현대 시조에 대해 잘 모르
기 때문에 현대 시조를 접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조를 써 보라 하면 고시조풍으
로 쓰려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초, 중, 종장 전체가 다 그렇지는 않다 하
더라도 어미(용언, 곧 동사와 형용사의 어간에 붙어 여러 가지 형태로 바뀌어 
문법 관계를 나타내는 부분)등의 처리에서 상투적인 고시조의 냄새를 풍기기도 
합니다. 예컨대, ‘하노라’, ‘어떠리’ 등에서 ‘…노라’, ‘…리’의 
결구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고시조에는 대부분 제목이 없기 때문에 현대시조
에도 제목이 없는 줄로 아는 분들도 계시지만, 현대시조에서 제목은 필수랍니다.^^ 
  우선 제목 붙이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목은 그 내용이 요약된 상
징일 수도 있고 중심 소재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제목은 그 작품을 집약적
으로 나타내 보이는 구실을 하며 독자와의 첫 대면이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제
목을 붙이는 특별한 요령 같은 것은 없으나, 대체적으로 제목을 먼저 결정하고 
쓰는 경우와 작품을 다 쓴 다음에 결정하는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전
자는 비교적 주제(중심 사상)를 통일성 있게 전개해 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
는 동시에 내용이 한정될 수도 있는 약점을 지니고 있으며, 후자는 풍부한 내용
을 광범위하게 다룰 수 있으나 자칫 통일성을 잃을 우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점에 유의하여 제목을 붙이시기 바랍니다.
  아직은 자신의 작품을 들여다보기가 어려우시겠지만, 제가 시객님들과 함께 
한 숙제를 한 번에 완성하지 않고 두 번이나 수정한 것은 시객님들께 퇴고의 
중요성을 일깨워드리기 위해서입니다(몇 분은 벌써 눈치를 채고 수정하셨지만
요^^). 쓰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하나하나 차근차근 살펴 보아야 합니다. 
가장 적합한 단어를 사용했는지, 단어들을 제 자리에 놓았는지, 불필요하게 중
복되는 단어는 없는지, 각 장은 함축된 의미를 모순되지 않게 연결시키고 있는
지, 리듬을 방해하는 단어는 없는지, 전체적으로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았는지, 
문법에 맞는지(의도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등.
  저는 시론보다는 실제로 써 보는 것을 중요시 합니다. 그래서 좋은 시를 쓰
기 위한 3다를 권합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작품들을 많이 읽어 보고, 통찰력
과 상상력을 활용하여 내 목소리(개성)를 내기 위해 많이 생각해 보고, 시를 
배우며 한 작품 건지기 위해 많이 써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를 쓸 때는 항
상 사전을 옆에 놓고 쓰시기 바랍니다. 안다고 생각하는 단어도 꼭 확인해 보
시기 바랍니다. 잘못 습득된 단어를 올바로 알고 바르게 사용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습득된 단어의 개인적 편견에 의해 다른 사람이 제대로 
사용한 단어를 잘못 판단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전이 다 정확하고 충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저는 컴퓨터에서는 ‘네이버 
국어사전’, ‘야후 국어사전’, ‘다음 국어사전’을 ‘즐겨찾기’에 넣어놓고, 
그리고 컴퓨터 밖에 있는 ‘새 우리말 큰사전’을 서로 비교하며 사용하고 
있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제출하신 순서대로 숙제검사를 하겠습니다.^^ 총 7분이 참
여하셨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많이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
다. 시 긷는 마을은 시를 아끼고 사랑하며 시와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분들을 
위해 항상 열려 있습니다.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셨거나 시 긷는 마을을 뒤늦
게 아시게 된 분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가을을 소재로 쓰신 글이 여러 편 눈에 띄는군요. 먼
저 나야나 님의 작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시심이 마른 가지 수줍게 다가가서
  원가지 부여안고 회춘을 기다리네
  시심도 신앙 같아야 단물 되어 흐르리
  <나야나 님의 ‘마른 가지’ 전문>

  시심과 신심을 중의적으로 함축한 ‘마른 가지’는 전체적으로 막힌 데 없이 
리드미컬하게 흘러가고 있군요. 시심과 신심, 이 양자 합일의 촉매 ‘단물’이 
아직은 수줍게 원가지에 다가가서 회춘을 기다리는 마른 가지에(제가 볼 때는 
마른 가지가 아니라 벌써 단물이 들고 있는 가지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연
둣빛 고운 싹을 틔울 것을 확신합니다. 욕심을 부리자면, 종장의 결구 ‘흐르리’
에서 알 듯 모를 듯 풍기는 고시조의 냄새를 없앴더라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
을 것이라는 아쉬움입니다. 하지만 첫 작품이고 보면 이것은 제 욕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트란다비야 님의 ‘모기장’은 해학시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모기가 무서워서
  쳐놓은 모기장에
 
  모기가 너무 싫어
  돈 주고 쳐놨는데

  나란히 잠들었다오.
  오늘도 헌혈했네.
  <트란다비야 님의 ‘모기장’ 전문>

모기장을 치고 자던 어린 시절의 여름, 그 잊혔던 계절을 회상하며 배시시 
웃음 짓게 하는 시로군요. 초장의 ‘모기장에’에서 ‘에’를 빼고 ‘모기장’으로 하
면 중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요. 시객님들이 쓰신 대부분의 시조에서 글자수
를 과도하게 의식한 흔적이 보이는데, 너무 기본 틀에 맞추면 답답한 느낌마저 
들기 때문에 3, 4, 3, 4에 맞추려고 얽매이지 말고 한두 자씩 가감하여 자연스럽
게 쓰시기를 권합니다. 이제 겨우 첫발을 내딛으셨는데, 앞으로 습작 과정을 통
해 터득하게 될 터이지만 쓰시는 부담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기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정도로 성공시킨 것만으로도 훌륭하지요. 

  머나먼 길을 달려
  당신께 왔습니다
 
  생화를 사지 못해
  내 쓰던 향수 뿌려
 
  그리운 당신 가슴에
  내려놓고 웁니다
  <도애란 님의 ‘사모곡 1-조화(造花)’ 전문>

  고려가사의 ‘사모곡’처럼 절절한 노래인 도애란 님의 ‘사모곡’, 어머니는 모든 
이의 정신적 고향이기 때문에 늘 그리움을 유발합니다. 타향살이에 지친 삶은 
고향(어머니)의 품에 안기고 싶어하지요. 생존 여부를 떠나서 우리에게 그리움
내려놓고 안길 수 있는 어머니의 품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요? ‘사
모곡’은 이러한 이점(利點)을 대동하고 체험의 설득력으로 독자들을 정신적 고
향으로 인도하고 있어 감동이 배가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장의 ‘달려’와 중장
의 ‘못해’, ‘뿌려’가 얽혀 있어 리듬을 방해하기 때문에 ‘뿌려서’등으로 풀어 
주면 좋겠습니다. 이것도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지만요.^^

  낙수 님의 ‘9월 연가’는 9월의 정경을 수채화의 터치처럼 그려내고 있네요.

  봉숭아와 입맞춤한
  옥이 손톱 샘이 나서

  연지첩 찾아 들고
  거울 앞에 앉은 9월

  소녀 적
  꿈 못 잊고서
  두근대는 가슴들
  <낙수 님의 ‘9월 연가’ 전문>
 
  봉숭아와 연지첩이 꿈을 매개로 9월의 가슴을 새로운 설렘으로 두근거리게 
합니다. 빛 바랜 향수가 아닌, 희망의 연가로. 

  ‘연지첩 찾아 들고
  거울 앞에 앉은 9월’

  내 목소리(개성)를 내고 있는 이런 표현에선 좋은 시를 낳기 위해 고뇌한 흔
적과 역량이 보입니다. 처음엔 좀 어색했던 부분이 몇 번의 퇴고를 거쳐 수작
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낙수 님의 시를 보면 퇴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
지요?
 
  박지연 님의 ‘뒷마당’을 보시겠습니다.

  살포시 노랑나비
  입 맞추고 날아가면
 
  수줍은 수선화는
  불그레 달아올고
  
  연못 속 
  물고기들은
  소곤소곤 흉본다
  <박지연 님의 ‘뒷마당’ 전문>

  봄날의 이야기들이 정겹게 녹아 있는 시입니다. 노랑나비의 입맞춤에 불그레
달아오른 수선화, ‘달아오르고’를 ‘달아올고’로 재밌게 표현하셨네요. 수선화의
전설을 상기시켜 주는 연못, 그 속에서 흉보는 물고기들마저 소곤소곤, 정감이
묻어납니다. 아마도 카스다 속 ‘시 긷는 마을’을 중의적으로 표현하신 듯^^ 노
랑나비는 아무 일 없다는 듯 팔랑팔랑 날아가고 있건만, 수선화도 천연스레 웃
음 머금었는데 괜스레 붉어지는 내 마음.^^ 뒷마당에 만드신 연못과 수선화의
뒷얘기, 그 유연함과 정겨움처럼 기대에 부응하는 ‘시 긷는 마을’이 될 것 
같네요.
 
  한뫼 님의 ‘가을 들녘’에선 풍요로운 계절이 손을 흔들고 있네요. 

  누우런 가을 들녘
  열매들 고개 숙여

  여무는 무거움이
  날마다 더해간다

  들녘은 손을 저으며
  나를 따라 하라네.
  <한뫼 님의 ‘가을 들녘’ 전문>

  저희 집은 전원주택이라서 밖에 나가 조금만 걸으면 가을의 들녘과 만날 수 
있답니다. 곡식과 열매들의 결실을 위해 내려온 가을 햇살이 따갑게 마중 나오
지만, 부신 마중이지요. 

  ‘들녘은 손을 저으며
  나를 따라 하라네’

  중장까지의 아슬아슬한 무게가 종장의 손짓을 만나 생기를 찾았네요. 어쩌면
보편적인 정서로 인해 밋밋해졌을지도 모를 ‘가을 들녘’이 종장의 출현으로 어느
정도 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장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지요.
‘누우런’은 가을 들녘을 연상시키기보다는 좀 어두운 색채감을 주기 때문에 가을
의 새 맛을 느끼게 하는 다른 말로 바꾸면 ‘가을 들녘’이 한결 살아날 것 같습니
다. 

  마지막으로, 임태용 님의 ‘가을 그리기’입니다. 

  파란색 세상얼굴 가을 빛 그려지고
  땀 모아 영근 곡식 에헤야 풍년 들녘
  마음 속 푸르름까지 가을은 익어가고
  <임태용 님의 ‘가을 그리기’ 전문> 

  누가 그리는 가을의 그림일까요, 마음 속 푸르름까지 가을이 익어가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시인화가? 시객님들의 마음도, 그리고 제 마음도 가을 빛으
로 그렇게 익어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초장의 ‘세상얼굴’을 ‘세상얼굴에’로, 
하면 불분명했던 대상이 분명해지기 때문에 그림이 뚜렷해진답니다. 토 하나가 
있고 없고에 따라 이렇게 맛이 달라지는 걸 보면서, 토 하나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신중하게 다루어야 할 책임이 시를 쓰는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단시조 한 수씩 지어오는 숙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음 주에 다시 뵐 때까지 감기 조심하세요(저는 어젯밤에 큰 아이가 숙제
해야 한다고 컴퓨터를 차지하는 바람에 오늘 꼭두새벽부터 시객님들의 숙제 검
사하느라 벌써 감기에 걸렸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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