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긷는 마을 1(강의 시리즈)
페이지 정보
글씨크기
본문
이것은 4년 전 9월, <시 긷는 마을>을 처음 시작할 때의 강의 시리즈(총 15회)입니다.
습작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올립니다.
시 긷는 마을 1
채빈
누구나 시인이 되는 계절 9월에 보채는 꿈을 데리고 시 긷는 마을로 찾아오신
여러분은 벌써 천혜의 영감을 따 놓으신 분들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시 긷는
마을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 벌려 환영합니다. 그런데 제가 부탁드린 자신감의
옷을 입고 오셨지요?(둘러보니 다들 입고 오셨군요.^^)
그럼 이젠 긴장감을 내려 놓고 편안한 눈빛으로 인사 나누시기 바랍니다. 신선
한 여러분의 눈빛을 대하고 있자니 저도 막 용기가 솟아납니다.
저는 1981년, 중앙일보의 ‘겨레시’ 짓기 운동(1주일에 1회씩 독자 투고된 작
품을 선해서 심사평과 함께 내보냈음)이 시작되던 때로부터 4번째 투고하여 처
음으로 실리는 감격을 맛보게 되었지요. 그 첫 작품이 바로 이것입니다.
6월이 오면
뻐꾸기 피울음 속에
소복한 아카시아
바람은 6월의 늪을
먼발치로 스치는데
개울 가
달맞이꽃은
전설 베고 잠들었다
그 때 심사평이 이랬지요. 윤연옥 씨의 ‘6월이 오면’은 6.25를 배경으로 깔끔하
게 짜여진 시조라 하겠다.(김제현)
단시조만치나 간결한 심사평이었지요. 하지만 시조가 뭔지도 모르던 제가 열정
으로 도전하여 얻어낸 것이어서 여간 기쁜 것이 아니었지요. 83년 가을 전국 백
일장에 최고상으로 입상되기까지 샘터나 여성 중앙 같은 잡지(중앙일보 심사위원
8분이 돌아가며 심사하였음)에도 투고하며 꾸준히 쓰고 배웠지요. 지금은 등단하
기도 쉽지만 그 당시는 문인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문학을 제외하고는 등단하려
면 2회 추천을 거쳐야 했고, 초천을 받은 후 2년을 더 정진해야 천료작을 내밀
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국 대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면 그런 절차 없이 등단
의 자격이 주어졌습니다. 저는 월간문학에 군침이 당겼지만 월간문학으로 등단하
면 의무적으로 문인협회에 가입해야 한다기에(회비가 부담이 되어서^^), 시조 전
문지인 시조문학으로 등단을 했습니다. 습작 시절 가장 칭찬을 많이 받았던 단시
조를 소개합니다.
걸음을 멈추고
햇살 쪼르르 달려간
유치원 담벼락에
아침을 열어 놓고
동그마니 앉은 아이,
골똘한
저 눈빛 속에
터질 듯한 가을 하늘
심사평:금주엔 단수로서 가작과 본보기가 될만한 작품들이 많았다. 기뻤다. 왜
시조에서 단수를 중요시하는가. 이 짧은 시조형태는 곧 시조의 기본형이기 때문
이다. 따라서 이 단수를 성공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두 수, 나아가 보다 긴 연
시조도 가능하게 된다. 또한 시의 생명은 가장 짧은 언어 속에 가장 많은 내용과
의미(감동)가 함축되어야 한다는 시의 첫걸음으로 보아도 단수의 생명과 의미는
더욱 자명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다. ‘걸음을 멈추고’는 어디서 보았음직한 것인데
참으로 잘 포착했다. 가을을 단수에 담되 이토록 깜찍하고 정겨울 수가 있겠는가.
어느 한 구석 허술한 데가 없이 3장이 모두 똑 고르다. 모름지기 단수는 이런 거
라고 말해 주고 싶다. 압축과 묘미를 아울러 얻은 수작. 칭찬해 주고 싶다.(이상범)
그때 심사를 하셨던 이상범 선생님은 심사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제 시조를 애
지중지 품에 넣고 다니다가 시조 모임에 가기만 하면 꺼내서 읊으셨다고 합니다.
제자 사랑이 이쯤이고 보면 그런 제자 한 번 되어 볼만하지요? 저도 애지중지 품
에 넣고 다니며 자랑할 만한 작품을 만나게 되면 원이 없겠습니다.^^ 여담으로,
제 작품이 나가고 나면(주소도 함께 나갔음) 전국 각처에서 독자들로부터, 그리고
문학 지망생들과 선배들로부터 편지가 수북이 날아와 쌓이곤 했었는데 불행히도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답니다.^^
여러분께 습작 시절의 제 얘기를 들려드리는 것은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께도 꿈을 드리기 위함이며, ‘막연한 시 쓰기’에서 해방시켜드리기 위함입
니다.
존경하는 그 선생님은 늘 혹평이 아닌 호평을 하셨지요. 습작 시절 활동하던
‘중앙시조문우회’에서 중앙일보 심사위원 중 한 분씩을 초빙해 지도를 받을 때도
그 분은 회원들이 잘못 표현한 것을 들추어내서 지적하기보다는 잘 된 표현을 찾
아내 칭찬해 주셨지요. 동냥은 못 줄망정 쪽박은 깨지 말랬다고, 칭찬할 것이 없
으면 그냥 침묵을 하셨고요. 제가 그 당시 시조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심사위원
8분에게 두루 인정을 받으며 전국 백일장에서 최고상을 수상하고, 전도유망한 신
인으로 클 수 있었던 것은 그 분의 칭찬 덕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중서부의 한 대학에 탁월한 문학적 재능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 모여서 만
든, 예비 시인, 소설가, 수필가들의 문학 모임인 ‘스트랭글러스’와 그 모임에
필적할 만한 활동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문학에 재능을 가진 여학생들의 문학 모임
인 랭글러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탁월한 스트랭글러스에서는 작품에 대한 칭찬
은 전혀 없었고, 창작보다는 비평 활동에 치중하게 되었으며 그 도가 점점 지나
쳐서 회원의 자존심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잘 된 작품도
냉혹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랭글러스에서는 비평은 아주 완곡하게 하고 작품
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격려해 주는 데 주안점을 두어서 비평다운 비평이 전혀 없
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잘것없는 작품이라도 그 중에서 잘 되고 칭찬해 줄 만한
부분을 찾아내 칭찬해 주었습니다. 20년 후에 대학 동창회가 파악한 졸업생들의 활
동상을 보았더니 빛나는 문학적 재능을 자랑했던 스트랭글러스 회원들은 문단에
단 한 명도 이렇다 할 만한 이름을 내지 못한 반면 칭찬해 주고 격려해 준 랭글러스
회원 중 여섯 명 이상이 유명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제 선생님에게서 이어 받은 칭찬과 격려의 바통을 다시 문학의 후배들에게
이어 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지적할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하고 비평보다는 칭찬
과 격려를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제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좀 놓이십니까? 이만하
면 믿음을 가지고 도전해 보실 만하지요?^^
제 시가 비교적 압축이 잘 되어 있는 것은 시조로 기초를 닦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시 터도 시조로 닦아 놓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제 습작 시절의 얘기를
들려드린 두 번째 이유입니다.
어떠한 형식적 제약을 거의 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시를 자유시라 합니다. 주로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현대시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위에서 보여 드린 시,
시의 구조나 리듬에 있어서 일정한 형식적 제약을 받는 시를 정형시라 하는데, 자유
시는 내재율을 가지고 있지만 정형시는 외형률을 가지고 있어 시의 운율을 잘 이해
하지 못하는 분들이 운율을 익히는데 유용합니다. 그래서 우선은 단시조로 여러분이
보다 쉽게 시에 접근하실 수 있도록 도우려 합니다. 이의 없으시지요?
시조를 쓰려면 우선 시조의 형식부터 익혀야겠지요? 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이 모
여서 단시조를 이룹니다. 이 단시조가 연하여 이룬 시조를 연시조라 하는데, 연시조
에서는 이를 ‘수’라고 합니다. 한 수, 두 수, 세 수…. 이를테면, 자유시의 ‘연’
에 해당된다고 하겠습니다. 다음엔 단시조의 글자수를 살펴봅시다.
초장:3, 4, 3, 4
중장:3, 4, 3, 4
종장:3, 5, 4, 3
여기서 한두 자씩은 가감해도 되지만 종장의 첫 구는 반드시 3자로 해야 합니다. 예문
을 한 번 보실까요? 편의상, 습작 시절의 제 시조로 하겠습니다.
9월에
초장
청자 빛(3) 하늘 향해(4)
갈 벌레(3) 피리 불면(4)
중장
맨살의(3) 가락마다(4)
푸른 물이(4) 넘쳐나고(4)
종장
눈 시린(3) 고추잠자리(5)
사립문을(4) 맴돈다(3)
중장의 '푸른 물이'를 제외하고는 기본적 글자수에 충실한 시조입니다. 종장의 첫 구라
함은, ‘눈 시린’ 이 부분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유시도 그렇지만, 특히 시조에 있어서
종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종장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초장과 중장이 살아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기 때문입니다(위의 예문 참조).
여기를 클릭하시면 홈피 <시 긷는 마을>로 이동합니다
여기를 클릭하시면 홈피 <시 긷는 마을>로 이동합니다
- 이전글시 긷는 마을 2(강의 시리즈) 08.08.24
- 다음글님의 맑은 우물 08.08.16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