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반도 끝자락 산마루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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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살았다.
세월 굴레 구르다 만학 오년 마닐라 남쪽 까비떼에서 돌아와
빈털터리 걸친 그대로 내려갔었다.
팔순 부모님 시골 계시고 외아들은 대학 기숙사 가고
불혹 끝나도록 이룬 것 없어 모아 베풀 가진 것 없이
마음 시린 바람 일어 몸 아픈 이들 있는
산맥 끝 바닷가 마을 아늑한 휴식처 병원으로 갔었다.
사택 방하나 싱크대 책상 겸 식탁
텅 빈 창 밖 바랜 빛 수평선 바라보며 삶의 갈피 깊숙이 스며들었다.
몇 켤레 신 옷가지 책 댓 박스 가지고 낮에 날아간 새들의 하늘 그리워
미명과 심야를 별 헤는 휘파람 불어 지나며 빙긋이 명상 안으로 젖어 들었다.
스러지는 포말에 지친이들 그 애수의 눈빛이
매일 보인 소망마저 꿈 돼 깰까 서글픈 햇살 부신 가을 나절 그윽이
지는 꽃 나래 세는 뜰 앞 벤치에 앉아 승화하는 슬픔으로 날아올랐다.
옮겨 놓은 종려나무 잎 끝 매마름인양 잠시 흔들리다 평온을 얻는
먹고 마시다 무너진 육신 남용일까 만용일까 무리한 오용일까
이것저것 시도하는 나으려는 꿈 내거니 들이거니 입으로 스스로 무덤을 파는
끝없는 갈망 떠도는 바람일 뿐 인생은 흘러가는 구름임을 추억 하였다.
아이 엠 에프 거친 후유증에 인륜도 잃어 여염 떠나 지은 병지고 날을 등지고
머리에 인 상처 난 가슴 해변 헤매는 애타는 얼굴 멍든 영혼 생각하였다.
쉴 곳 찾아 떠밀려 세상 사방 끝으로 온
봉화산 자락 섬들 안은 외로운 요양 병동에서
그들은 그들대로 나는 나대로 그들은 투병으로 나는 위로로
서로의 형편 알기도 전 그냥 만났다.
몇 나라 사람들도 가끔 와 응어리 풀고 진실한 눈물 흘리는 생명의 기쁨
놀라운 시간 감격의 공간 지구 동편 작은 땅 이 끝에서
생애의 이 편 막다른 길가 저 끝까지 우리는 끝은 보러 모두들 그리 만났다.
기억 기슭에 지피어 난 낡은 향수는 생사를 초월한 소원의 향로에 살라
애소로 토해 후련하게 눈시울 뜨거운 노래로 하고
옛날 앞날 아울러 잊어버리려 파도에 닳아 둥그런 몽돌이 되어
아린 현실 묵묵히 받아드리는 만발한 순수 여운의
여수반도 끝자락 산마루 마을에서
일 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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