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장식 십자가 / 김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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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 십자가 / 김명호
십자가 위에는
두 팔을 벌리고
무릎을 약간 굽히고
머리를 숙인
예수가
힘없이 매달려 있다.
금목걸이 끝에
금으로 만든 십자가상이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인의 목에서 대롱거린다.
뾰족탑 위에는
피 없는 십자가가
고독하게 서서
낯선 풍경에 질린 듯이
휘휘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예배당에는
피 흘린 뜻을 외면한
교인들이
자기는 살려놓고
십자가로 예수만 죽이고 있다.
십자가에는
못 박는 망치소리 사라졌고
찢어진 몸에서
분출하는 피도 없다.
겟세마네의 피땀,
가시관의 찔림,
골고다 길 발자국마다 떨어진 핏자국,
갈보리의 망치 소리, 이것들은
옛날에 일어났던 사건으로 여겨질 뿐
정교한 순금 사슬에
장식용으로 부(富)를 뽐내는
십자가는
세월에 죽은 교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서울문학 신인상 시 등단. 미주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입상
시집 : ‘들풀’. 묵도의 여행. ‘약속 외는 아무것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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