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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의 말씀 (미주재림문학회장 김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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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미주재림문학 편집주간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9.12 08:31 조회수 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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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의 말씀

                         김종혁 (미주재림문인협회 회장)

“신약은 구약의 열매요, 구약은 신약의 줄기이다. 신약은 꽃이요 열매이기 때문에 보기에 아름답고 좋다고 하나, 그러나 이것을 맺게 한 것은 구약의 뿌리와 줄기이다” (우찌무라 간조).

미주 재림문학의 사명이 바로 미주 재림 신자들이 뿌리와 줄기가 되는 신앙을 바탕으로 꽃을 피워야 하는데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꽃의 봉오리부터 정성껏 가꾸어 갈 책임이 미주 재림 성도들의 몫이라고 해야 하겠습니다.

창간호가 종간호로 끝나지 않고 제2집을 발간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게 될 것은 재림 신앙인들의 긍지를 엿보게 해주었습니다. 미주 재림문학의 존재 이유를 새삼 실감하면서 독자들의 성원에 보답하게 된 것을 감사히 생각합니다.

미주재림문인협회는 비영리 단체이며 작품으로써 재림 기별을 동포 사회에 나누는 전초역을 감당하고자 합니다. 일선에서 수고하시는 목회자들을 받들어 절대적인 후원자가 되어야 하겠고, 세파에 흔들리는 형제들을 향해 정확한 지표를 알리는 등대 역을 맡고자 자부하고 나섰습니다. 이 협회를 후원하는 독지가의 세금 혜택도 드리게 되겠고 미주 “재림문학”지에 원고가 게재된 분에게는 전원 미주재림문인협회 회원으로 영립하기로 하고 활발한 작품 활동의 장을 열어드리게 될 것입니다. 또한 미주와 한국 문단에 등단하여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추천해드리게 될 것입니다.

뜻있는 그리스도인 모두의 요람으로 활용하게 되겠으며 필요하다면 유명한 문단과의 교류도 시도할 것입니다.

미주재림문인협회는 6명의 발기인으로 시작해서 운영위원 12명이 머리를 맞대고 고락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 위원들 거의가 미주와 한국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기에 재림 문인들 전방에 서게 되겠습니다. 회원 56명과 독자 1,000여명의 무대가 펼쳐져있습니다.

편집의 요령은 첫 부분에는 순수한 창작 문예 글들이 실리겠고 뒷부분에는 신앙경험들 그리고 당면한 오늘의 생활 모습이 주류를 이루어 신앙인의 믿음의 지혜(?)를 나누는 교두보가 되고자 했습니다. 항상 우리 곁에서 인도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확인하는 장(場)으로 승화시켜 가기를 기대합니다.

시 또는 시조 부문에는 빛나는 시혼을 발휘하고 있는 문금숙님이 지도할 것이고, 수필 부문에는 그 부문의 고지에 우뚝 서있는 박봉진님이 맡았습니다. 평론부문은 교육자요 철저한 국문학자인 민병효님의 손을 거치겠고 생활수기 부문은 미래에 정통한 신학자인 김명호님의 감수를 받게 될 것이고, 콩트와 그 외의 부문은 소설가로 정평이 나있는 한만선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재림문학의 핵심 부문 (제1집)을 오근석님께서 심혈을 기울이셨고, 제2집은 박봉진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영감의 글은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시기를 분별하지 못하고 있으며.... 멸망은 강한 회오리바람처럼 다가오고 있다”

일찍이 한국에서 10여 년 전 재림 문인들이 일어났습니다. 재림문학은 미주 이민 역사 100년, 이민가족 250만 명 텃밭 중심에 서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사명을 새롭게 가다듬어 “회오리바람처럼” 밀려오는 “멸망”을, 붓을 세워 지켜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늦게나마 미주에서도 “참된 교육은.... 문학적 재능을 경시하지 않는 다는....”(ED 225) 교훈을 진지하게 재음미할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인간의 정신은 조화 있게 계발될 수 있기 위하여 영적인 훈련과 마찬가지로 문학적인 훈련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문학적 훈련 없이는 사람의 각종 신뢰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온전히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FCE 255,256)

우리 함께 생각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영감의 글 가운데 “깨어라! 깨어라!.... 준비하라! 준비하라!....” 이 외침은 150년 전부터 들려온 소리가 아닙니까. 재림 신자들이 자고 있습니까? 졸고 있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하늘을 향하여 손을 놓고 있다는 말입니까? 왜 이런 경고의 소리가 소리로 끝나지 않고 유념해야 하는 “기별”로 다가와야 하는 것입니까?

자칫하면 세계 경제의 요란한 소용돌이 속에서 지나치기 쉬운 점을 경고하는 것이 아닐까요?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자” 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까? “세미한 음성을 들을” (왕상 19:12) 수 있는 귀 곧 거센 경제 파동의 아우성 속에서도 “세미한” 성령의 음성을 가려낼 수 있는 귀가 필요하다는 경고가 아닙니까?

모세는 시내산에 있는 반석 틈에서 (출 33:22) “세미한 그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였고, 엘리야도 모세의 “그 동굴은 그의 교실이고 여호와는 그의 교사였으므로” (PK 168) 우뢰와 천둥이 지나간 후의 “세미한 음성”을 따라 순종의 길을 걸었었다.

우리에게 “깨어야 하고 준비해야 하는” 과제는 오늘의 소란함이 아니라 “여호와의 세미한 음성”을 들리도록 깨어야 함이요, 스스로의 동굴을 준비하라는 다급한 절규가 아니겠습니까?

얍복강 강변의 야곱이 말세를 만난 우리의 모습이라 한다면, 너와 나는 스스로도 인간의 옷을 벗고서야 참 이스라엘이 되는 것을....

여호와의 손에 매어 달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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