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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실란트로 유감 / 김평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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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림문학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9.17 17:15 조회수 9,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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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란트로 유감 / 김평웅

실란트로(고수)는 미나리과에 속하는 향채로 주로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즐겨 먹는 채소이다. 내가 처음으로 실란트로를 경험한 것은 20여 년 전 한 멕시코 식당에서였다. 톨티야를 찍어 먹는 살사(양념)에 섞여있었는데 한번 먹어보고는 그 냄새가 너무 역해 집 사람과 나는 월남 식당이나 멕시코 식당엘 가면 실란트로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만 골라 시켜먹었다.

실란트로의 맛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나는 빈대 냄새와 같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 피난길에 빈대에 물려 밤새 고생한 적이 있는 나는 그 비릿하고 역한 냄새와 함께 기억되어서인지 실란트로는 도저히 먹지 못할 음식으로 젖혀 놓게 되었다.

집사람과 나는 서로 성격도 판이하게 다르고 취향도 틀린데 38 년간 살아온 우리는 서로 많이 닮았고 동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냉면과 육류를 좋아하고 집사람은 생선 요리와 짠 반찬을 좋아한다. 갓 시집와서 임신을 했는데 입덧을 꽤 하는 편이었다. 아내를 잘 모르는 때여서 무엇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지 몰라 그저 뭐 먹고 싶은 것 없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지금도 가끔 자기는 입덧이 심해 잘 먹지 못해 고생하는데 어머니와 나는 그 추운 겨울에 국수를 삶아 김치 국에 말아 후룩후룩 잘도 먹더라고 볼멘소리를 할 때가 있다. 냉면이 뭐가 그렇게 맛있느냐며 음식점에 가서 냉면을 시키는 것이 제일 아깝다고도 했다. 그러던 사람이 언젠가부터 냉면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좋아할 뿐만 아니라 냉면을 잘 만들어 주위사람들이 음식점 어느 냉면보다 더 맛있다고 말할 정도가 되었다.

반면에 나는 젓가락이 가지 않던 짠 반찬도 좋아하게 되었고 생선 요리도 잘 만들 정도가 되었으니 기적에 가까운 변화가 일어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뿐 아니라 나는 모험을 좋아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인데 집사람은 직장을 좀처럼 바꾸러 들지 않으며 매사 꼼꼼하고 틀림이 없다. 내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것도 집사람은 오랫동안 속상해 하거나 걱정을 한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서로가 중간 정도에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런 우리가 아직까지 전혀 동의하거나 일치하지 못하고 극명하게 반대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실란트로에 대한 생각이다. 나는 아직도 역해서 싫어한다. 사람들이 왜 그런 것을 먹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집사람은 언젠가부터 실란트로 먹는 법을 배워 지금은 잘 먹는다. 아니 잘 먹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좋아한다. 일부러 실란트로를 사서 그것만으로 쌈을 싸 먹는다. 맛이 향긋한 것이 좋다며. 나는 실란트로가 닿았던 상추에서도 그 특유의 빈대 냄새가 나서 싫은데 한 입 가득히 입에 넣고 와작와작 씹으며 먹는 모습을 보면 마치 전혀 모르는 딴 사람이 내 앞에서 밥을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이 우리 부부를 가리켜 서로 많이 닮았다고 한다. 얼굴이 닮았고 성격도 비슷하다고 한다. 심지어 생각까지도 같을 때가 많아 우리가 생각해도 정말 많이 같아졌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부부가 오래 살다 보면 성격과 취향 그리고 입맛까지 하나가 되는 것이라며 은근히 자랑하기도 했고 이런 면에서 자부심을 갖기도 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없다.

실란트로 때문이다. 실란트로에 대한 유감이 많으나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사람이 오래 같이 살다 보면 자기 생각이 상대방의 생각과 항상 동일할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기 쉬운데 그러한 생각이 큰 오산일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요즘 어쩌다 멕시코 식당에서 살사를 곁들여 먹을 때면 그전처럼 그렇게 역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더니 집사람은 좋은 징조라고 한다.
희망이 있다나.….

                                           '한국수필' 신인상 등단,  재미수필문학가협회 이사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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