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런 일이} 간호과장의 눈물 / 박혁석(전 영부인 주치의) > 글동네

사이트 내 전체검색

글동네

{그 때 그런 일이} 간호과장의 눈물 / 박혁석(전 영부인 주치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재림문학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10.02 11:25 조회수 8,084
글씨크기

본문

126494184AC677172E4E74

간호과장의 눈물 / 박 혁 석

1960년 후반 어느 금요일 오후 나는 Dr. Rue 의 부름을 받고 그의 진찰실 밖에서 서성대는 몇 사람의 환자를 밀치고 그의 진찰실 문에 노크를 했다.
평소 보다 달리 출입문이 잠겨 있었다. 문을 열어 주는 사람이 그 방 간호원이 아니고 Grace Kim(안경휘 간호과장 RN 이하 Grace 로 함)이었다. 방에 들어선 나는 놀랐다. 평소에 성낸 얼굴이 없는 Dr. Rue가 무서운 표정으로 딱딱한 회전의자의 뒷받침에 등을 딱 붙이고 왼쪽 팔을 책상 위에 펴놓고 바른쪽 팔은 무릎위에 놓고 있었는데 무릎위에 놓은 손가락이 떨리고 있었다. 하얀 얼굴은 상기되어 홍조로 변하였다.
"Dr. Park 말 하시오" 하고는 유리창을 통하여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보이는 것은 상록수에 앉아 있는 참새 몇 마리가 일광욕을 즐기면서 지저귀고 있었으나 Dr. Rue의 거동으로 보아 이 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Dr. Rue의 책상 바른편 벽장에 기대여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있는 간호과장(미국인 RN 미혼녀 이하 Dinsmore로 함)은 나를 보더니 흐느끼며 내손을 붙잡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Dinsmore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40대 초반의 백인 RN으로 서울 위생병원 간호과장으로 부임한지 이듬해이었음으로 병원의 사정이나 직원들과의 인화 관계도 익숙했을 때였다. 물론 간호사들로부터는 존경을 받는 처지이고 나와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Dinsmore는 내가 담당한 산실에서 심한 환자가 특히 산후 출혈환자가 있다고 보고 받으면 당장 달려오는 성격이며 의료봉사 정신이 통철한 간호선교사였다. 전직 미국인 젊은 간호과장에 비교해서 너무나 훌륭하고 감복할 정도이다. 혹 지도자 자리에 계신 분들은 손 하나 대지 않고 위세만 부린 사람도 있었으나 Dinsmore는 직접 위험하거나 큰일에는 자진 간섭하였다.
여러모로 존경을 받고 더구나 고참 미국 RN인 간호과장이 그 큰 눈에서 뚝뚝 떨어진 눈물이 내 손등을 적시고 있었는데 나는 당황하기도 하고 민망하기도하여 어쩔 줄 모르고 멍하니 출입문 옆에 서있었다. 눈치 빠른 Grace가 자기가 쥐고 있던 휴지를 건네주며 손등에 떨어진 눈물을 닦으라는 눈짓을 해주었다. 나는 손등의 물기를 닦으면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생각해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세 사람이 문을 잠가 걸고 나를 호출하였을까? 특히 여러 가지 정상으로 미루어 볼 때 필경 나에 대한 어떤 일이 있었다고 한다면 아마도 오전 중에 끝마친 수술환자에게 불길한 일이라도 생겼을까? 아니면 어떤 종교적인 범죄자라도 있는 것일까? 등 등 생각하니 심장의 고동 때문에 양쪽 귀의 고막까지 진동하고 있었다.

그 순간 옆을 슬쩍 보았더니 Grace도 눈물을 닦고 있었다. 아마도 Dinsmore에 대한 동정의 눈물일 것이다. Grace는 태평양 전쟁 종전 전에 상해 SDA 계통 간호학교 출신이며 영어가 잘 통하여 미국 선교사들에게 인기였으며 미국인 RN이 나오기 전에는 간호원장 및 간호학교장을 겸임 했었다. 또 그녀는 아들 원일을 사랑하여 자신의 한쪽 신장이 없는 형편이지만 당신의 뼈를 깎아 아들의 척주 병을 치료받게 해주며 최고의 모성애를 베풀었다. 그리고 그는 간호사의 본분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장기간의 간호사 생활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타의 모범이었고 간호학계에 적지 않은 공적을 끼친 일들이 세상에 알려져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67년도에 간호사 최고의 영예인 ‘나이팅게일상’까지 수상하였다. 따라서 Grace는 SDA 내에서 안경휘(Grace의 한국 이름)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누구나 결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Grace는 다년간 윗자리에 있었고 업무집행에 있어서 규정대로 적용하고 예외는 없다는 식이었기 때문에 관계 되었던 자들에게는 감정이 있을 수 있을 것이고 잠재적인 경쟁자들에게서 원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Rue나 Dinsmore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얻고 있는 그 자리는 까 딱 없었다. 이러한 Grace마저 울고 있으니 사건은 심상치 않다고 생각되었다. 이 방에는 지금 남자 두 사람 여자 두 사람이 있는데 두 사람은 울고 있고, 한사람은 성난 얼굴로 유리창 밖만 내다보고 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멍하니 요동하는 가슴을 진정 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나는 깊은 숨을 한 번 내쉬고 나서 다음에 전개될 장면을 기다리자 라고 마음먹고 허리띠에 힘을 주고 양 다리로 빳빳이 서서 떨리는 가슴을 달래고 있었다. 실내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런 사항을 두고 ‘폭풍전야’ 라는 말로 표현 할 수 있겠다.

이 사건 전날 목요일, 나는 ‘강옥순’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이유도 없이 무조건 자기가 있는 곳으로 들어와서 이야기를 들으라는 것이었다. 마침 매주 목요일은 나의 정규적인 Afternoon off duty day여서 점심 후 곧 출발 하였다. 그래서도 좀 이상한 것은 보통 때면 정비서(여 수석 비서)를 시켜서 나에게 전화를 걸게 하고 자기가 수화기를 받아 통화하였으나 오늘은 직접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고 또 이유도 물어보지 말고 들어와 들으시오 라는 것이 이상하였다. 하여간 나는 병원 앞 큰길에서 택시를 타고 곧장 큰집 정문에 도착하였다. 이미 연락된 것이지만 언제나 중무장한 보초의 경례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현관까지 도착 하였다. 다른 때면 여비서가 안내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번만은 남자비서가 안내 하는 것도 좀 달랐다.
나는 강옥순씨 거실에 들어가 그녀와 마주앉았다. 여기서 康玉淳 이란 令夫人의 가명이다. 이후 가명 대신 ‘사모님’이라고 명명하기로 하겠다. 사모님은 그 형제 중에 자궁암 환자가 한 사람 있었다. 이것에 대하여 사무님은 매우 염려하고 정기 암 초기검사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당시 위생병원에는 검사실 시설이 불충분하여 조직검사나 세포검사는 대학병원 검사실로 보내게 되어 그때마다 사모님의 검사 물은 강옥순이란 이름으로 기재 되었으므로 병원 내에서나 대학병원 검사실에서도 사모님의 검사물이라고는 알 수 없었다. 사모님은 한국산 인삼차를 내 놓으면서 말을 시작하였다. 주인이 4-5일 지방으로 떠날 것이니 내 자신 좀 이상한 점이 있으므로 Dr. Park이 말한 조직 검사를 받겠어요. 하면서 겸하여 숙제인 간단한 부인과 수술도 하겠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막상 사모님의 결심을 듣고 나니 당황하였다. 사모님은 국소 마취로 간단히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설명을 하느라고 진땀을 흘렸다. 여기에 사모님은 좀 어려운 요구가 있었다. 그것은 “절대 비밀”이 첫째이다. 이것은 특히 언론기관을 따돌린다는 것이 최고의 목적이다.
그리고
1. 입원실은 삼등실로 하되 혼자 있게 하고 극히 외딴 방으로 하라.
2. 의사는 Dr. Park 외는 아무도 출입하지 말고 다른 의사들에게 이 일을 발설하지 말라.
3. 간호사는 두 사람, 독 간호사(Private Nurse)를 쓰되 정숙하고 말없는 사람을 택하라.
4. 별실문은 자물쇠를 채우고 필요 외의 출입을 금지하며 내가 원하기 전에는 누구도 들어오지 않게 하라.
5. 창문을 완전히 잠그고 외부로부터 들려다 볼 수 없게 해 달라.
6. 식사는 병원 일반식사로 족하다.
이외는 일반적인 사항은 절대 비밀이 보장 되는 한, 병원 규칙에 따르겠고 상황의 변화가 있을 때 마다 Dr. Park이 상의 해 주기 바란다.

나는 남아있는 찻잔에 비춰진 희미한 내 얼굴을 보았다. 어쩌면 안경을 통하여 찻잔에 비친 나의 놀란 눈은 마치 매에 쫓긴 까투리의 눈과도 같고 빙판에 넘어진 황소의 눈과도 같고 포수의 총소리에 놀란 노루의 눈과도 같아 보였다. 사모님의 이러한 요구에 놀란 나는 눈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고 힘을 주고 앉아있는 엉덩이 근육이 빳빳해 지는 감각을 느꼈다. 나는 태연한척 옷소매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남아있는 인삼차를 한꺼번에 마셔 버렸다. 사모님의 말씀의 대 부분이 가능하지만 다만 병실에 자물쇠를 채운다는 것은 좀 곤란 할 듯싶습니다. 라고 말 했다. 그러면 24시간 간호사를 문 앞에 세워 사람들의 출입을 막을 수 있을까요? 하고 반문 하는 것이었다. 사모님의 이런 요구조건도 걱정이지만 또 다른 하나는 병원 규칙상 수술 전에 반드시 보호자의 동의서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어떡하나? 간단한 처치들은 이곳에서 했건만 이번만은 다르다. 나는 병원으로 돌아오는 택시 속에서 얼마나 심사숙고 했는지 시간의 흐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손님 다 왔어요.” 라는 기사의 소리에 창밖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더니 병원 주차장 남쪽 끝에 와 있었다.
나는 곧 Rue를 만났다, Rue는 내가 급하게 단독 면담을 요청한 것과 평소와 달리 ‘노트’를 들고 들어간데 대하여 보통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자리를 옮기자고 하면서 옆방 좁은 방으로 들어갔다. “Dr. Park 그래 무슨 일이요?” 라고 물었다. 나는 노트를 펼치면서 사모님에 대한 수술과 그녀의 요구조건을 일일이 설명하였다. Rue는 잠시 생각하다가 “Well we can do" 라고 하였다. 나는 Rue가 "No"라고 하면 사모님과의 약속이 무너질 뿐 아니라 이 수술은 내가 추천한 수술인고로 도의적인 책임도 져야했다. 세상에는 나 보다 더 훌륭한 교수 선배 산부인과 의사들이 많으나 사모님 눈에는 내가 한국 제일의 산부인과 의사라고 믿어진 그 마음도 섭섭한 유감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Rue의 찬성에 안도의 숨을 몰래 몰래 쉬었으며 당장 환호하고도 싶었으나 참았다. Rue는 Gown을 벗어놓고 목공실에 다녀왔다. 고 장로(CA 거주- 가든 그로브 교회출석)로 하여금 입원실 출입문 자물쇠에 대한 것을 상의 하고 온 듯하였다. 그리고는 나 보고 112호(특실)나 115호실(특실)로 준비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모님의 의견을 존중하여 본관 아래층 북쪽 구석에 있는 110호실을 지정하고 Rue의 지시에 따라 병실 출입문에 자물쇠를 만들고 열쇠 3개중 2개를 나에게 주고 하나를 자기 호주머니에 넣었다. 이로서 제일 큰 문제라고 적정하였던 출입구 문제가 해결 되었고 다음은 간호사 선정 문제이다.
Rue는 자기 진찰실로 나를 부르고 곧 간호과장 Dinsmore를 불렀다. 그러나 그녀는 부재중이었다. 수간사의 말에 의하면 외출 하였다는 것이었다. Rue는 할 수 없이 부 간호원장 격인 Grace를 불렀다. 영문을 모르고 달려온 Grace도 매우 당황하는 모습을 엿보였다. Rue의 지시를 받은 Grace는 나에게 귀속 말로 속삭거렸다. “Dr. Park 간호사는 누구로 할까요?” 나는 사모님이 원하는 간호사 상(모습?)을 이야기 했다. 결국 Grace는 나의 추천을 참고하여 다음 두 사람을 특별 간호사로 결정 하였다. 1)Joyce Park(캐나다 토론토 교회출석)과 2)Vivian Chung (CA 거주/ 나성중앙교회 출석)이다. 나는 곧 이들에게 주의 사항을 전달하고 VIP에 대한 예절 방식도 설명하였고 그중 제일 중요한 것은 타 간호사들(간호과장, 수간호원 포함)은 절대 출입금지이고 환자의 Care가 끝나면 출입문을 꼭 잠그고 나올 것을 당부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출입문 열쇠 하나를 넘겨주었다.
나는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목요일 저녁 사모님을 입원 시켰다. 굳이 저녁시간을 이용하여 입원하게 한 이유도 사모님의 간청에 의한 것이다. 그녀는 자기를 숨기기 위하여 보초들이 서성대는 정문을 지나친 후, 관용차는 돌려보내고 택시로 바꿔 탔다. 밝은 대낮보다 희미한 전등이 비치고 있는 때가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주장을 그대로 실천 한 것이다. 한편 사모님과의 약속이 착착 맞춰지므로 나는 두 특별간호사를 지휘하는 ‘특전 부대’ 부대장 격이고 Rue는 참모총장 격이라고나 할까. 비밀은 엄격히 지켜짐으로 Rue와 나만 이 VIP의 실체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수술 전에는 Grace나 특별 간호사들도 알지 못하였다. 서무실이나 병원 내에서 누구나 알 수 없던 이유는 그 VIP의 이름이 ‘강옥순’인 까닭이었다.
말 많고 정보통인 검사실 홍균 마저도 거 참 이상한데? 수술 후 그 VIP를 병실로 옮길 때 슬쩍 보았는데 얼굴은 사모님 같은데 Chart에는 강옥순으로 되어있고 특별간호사 두 사람만 왔다 갔다 하고는 그 병실 가까이에는 누구도 얼씬 못하게 한단 말이야! 얼굴이 사모님과 비슷한 여자가 없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고참 간호사 몇 분은 “저분이 최은희씨가 아닌지 몰라요, 며칠 전에 그녀가 Dr. Park 진찰실을 다녀갔거든” 등으로 수군거렸다. 상황이 이 정도이니 일단 사모님의 원대로 보안은 잘 된 듯싶었다.
예정대로 수술은 잘 끝마쳤고 마취가 풀리지 않은 상태의 사모님은 병실로 옮겨졌다. 특별 간호사들은 수술 후 처치를 마치고 그 방을 잠그고 간호사실에 대기 하고 있었다. Rue와 나도 안심하고 미소를 교환했다. 수술은 금요일 아침 일찍 하였고 진찰실과 입원실 잔무를 처리한 나는 안식일 준비를 시작하였다. 그 당시 대부분의 직원들이 그랬지만 일주일에 한 번 청량리 목욕탕에 가는 것을 즐겼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모님의 상태를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청량리로 나갔다. Rue는 시내 미국 대사관으로 갔다. 그런데 사건은 이제 부터이다.

삼육동학교 기지엔가 다녀왔다는 Dinsmore가 110호실 밖을 지나서 식당 쪽으로 가다가 병실에서 나는 신음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Dinsmore는 곧 병원으로 들어가서 신음소리가 나던 그 방을 열라고 했다. 그러나 병실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Dinsmore는 머리를 끼우뚱거렸다. 참 이상하다 이 병원에서 제일 좋은 특실인 112호실과 115호실에도 자물쇠는 없건만 어제 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Dinsmore는 병동 책임 수간호사를 불렀다. 이 방문을 열라고 명령하였다. “저에게는 Key가 없어요. 이방에는 Dr. Park과 Private Nurse만 출입하게 되어 있어요.. 라고 대답하였다. Dinsmore는 더욱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Private Nurse, 내가 모르는 Private Nurse가 어디 있나? 그래 Dr. Park이 어디 있나?” “외출 했어요” 그럼 Private Nurse를 불러오라고 호통 쳤다. Vivian과 Joyce가 간호과장 Dinsmore의 명령에 따라 방문을 열었다.
실내는 잘 정돈 되었고 Side Table 위에 잘 정리된 병상 일지가 놓여 있었다. 실내 공기가 좀 탁하였을지 모르나 사모님의 몸에서 풍기는 향수 냄새가 싫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Dinsmore는 불편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사모님의 하얀 발길에 채여 내려 드리워진 홑이불을 정돈하면서 마취로부터 깨는 환자의 간간이 흘러나오는 신음소리에 몹시 신경을 쓰고 있은 Dinsmore는 환자의 호흡수와 맥박을 재 보고는 환자의 서맥(Bradicardia)을 트집 잡았다. 간호사를 나무랐지만 그것은 내가 지시한 Demeral 50mg q 3-4 hrs PRN이라는 것을 실천한 간호사의 잘못은 아니었다. 다만 마취가 깨기 전에 보통 있을 수 있는 신음소리가 아픔을 호소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너무 빨리 진통제(Demeral)를 주사한 것인데 그래봐야 Chart상에 두 번밖에 주사한 일이 없다. 이것으로 생명의 위험은 없다고 알고 있으며 환자 자신은 아주 편안한 것이다. 이것 역시 초상으로 잘 한다는 간호사의 배려라고 보고 있다. 만일 VIP가 아니었다면 수술 후 아프다고 고함을 질러야 Demeral 한 대 들어가는 것이지만 이 경우는 달랐다. Dinsmore 는 소매를 걷고 낭하를 왔다 갔다 했다. 그의 가죽신 발자국은 마치 시골 아낙네들의 다듬이 소리같이 들리고 뚱뚱한 허리에 둘러 입은 검은 스커트의 바람은 조용한 금요일 오후, 파리 모기 한 마리 없는 깨끗하고 상쾌한 본관 넓은 복도 공기를 어지럽게 하였다.
상기된 그녀는 옆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Grace에게 화살을 던졌다. 왜 내가 모르는 Private Nurse를 결정했느냐 고 힐문을 하였다. 나는 Rue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하고 Grace는 얼굴이 빨개졌다. 심각하고 무서운 Dinsmore의 눈빛에 백색의 얼굴이 더 하얗게 보였다. “Rue의 방으로 가자, 하고는 Grace와 같이 발걸음을 빨리 하며 무어라고 입속으로 중얼 거렸다.
나는 청량리를 다녀와서 곧 사모님 병실로 갔다. 사모님 하고 불러 보았다. 사모님은 눈을 뜨고 가는 목소리로 수고했소. 라고 하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 방문을 나오자 간호사들로부터 Dinsmore의 소동을 자세히 들었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하고 아래층 도서실로 내려갔다. 의자에 앉아 10분도 못 되어 Rue의 호출을 받았다.
내가 Rue의 진찰실에 들어갔을 때는 Rue와 Dinsmore 간의 언쟁의 폭풍은 지나간 때였다. 맥 빠진 소싸움의 마지막 round 같은 이 장면의 주인공은 Dinsmore이고 상대 주역은 Rue이다. Grace와 나는 조역인 셈이다. 주인공 Dinsmore는 흐르는 눈물을 억제하기 위하여 눈을 감고 이를 악 물었으나 눈물은 코로 흘러 콧물이 되어 흐르고 있으니, 100명 가까운 간호사들을 통솔하는 간호과장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기지가 빠른 Grace는 휴지를 공급하기에 바빴다. 보나마나 대사의 내용은 주인공이 왜 VIP 간호사 배치를 나 모르게 했느냐가 대체적인 줄거리였을 것이다. 거기에 부대적인 부사나 수식어가 많이 붙었을 것이고 여기에 대하여 상대역인 Rue는 너를 처음부터 찾았지만 네가 없었지 않았느냐? 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 말이 계속 해서 물레바퀴처럼 돌고 돌았을 것이다.
내가 그 방에 도착 했을 때는 긴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창 밖에는 참새 부부가 사랑이야기를 종알거리면서 잠자리를 찾아 처마 밑을 휘휘 날라 다니고 있었다. 이제 막을 내릴 때가 되었다. 약삭빠른 Grace가 “내가 잘못했어요.” 라고 Miss Dinsmore 에게 사과했다 이에 따라 나도 Miss Dinsmore 내가 잘 못했어요 라고 사과하였다. Dinsmore는 우리 두 사람의 사과를 들은 후 차차 정상으로 돌아오는 듯하였다. 때 마침 안식일을 알리는 찬미가가 확성기를 통하여 병원 옥상 쪽에서 은은하게 들려왔다.


<후속 담>
그 후 사모님은 3박4일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일요일 아침 일찍 퇴원 하였다. 나는 강옥순(사모님)의 Chart를 정리하고 그의 병실로 불려갔다. ‘이것 하나는 Rue에게 또 하나는 Dr. Park의 것이니 받으시오’ 하면서 ‘청와대’라고 찍혀진 봉투 2개를 주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을 받고 ‘두둑한 수고비로구나’ 하고 솔직한 마음에서 기뻤다. 손가락으로 봉투를 만져 추측 컨데 이 묵직한 봉투 하나 속에 나의 한 달 월급의 두 배는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흐뭇한 마음이 보이지 않는 미소로 번졌다. 그 동안 택시 값도 한번 못 받았는데 잘 됐다 하고 힐끗 힐끗 전후 사방을 보면서 단숨에 Rue의 진찰실에 들어갔다. “Dr. Rue 이것을 사모님이 줍디다.” 하고 Rue의 책상위에 놓았다. Rue는 봉투의 두께로 보아 그 속에 돈의 액수가 크다는 것을 짐작하고 약간 놀라는 눈치였다. 그는 조용히 자리에 앉더니 책상위에 있는 청진기의 꼭지를 만지작거리면서 깊이 생각 하는 듯하다.
아마 이 봉투 두개 다 나를 주면서 네가 수고 많이 했으니 네가 가져라 할 것이다. 하고 나는 김칫국물부터 먼저 마시고 멍하니 그의 뒤에 서 있었다. “Dr. Park 이 돈을 성육원(위생병원 직속 고아원)으로 보냅시다.” 나는 놀랍고 아쉬운 표정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봉투 하나는 내 것이요. 라고 할 수도 없었다. 낙심된 발걸음은 Rue의 방을 떠나기 싫었지만, Rue 의 제안에 양보하고 나의 진찰실로 돌아왔다.
중략―
회고하면 Dr. Rue는 정의와 박애정신으로 의료사업을 위하여 한국 땅을 선택, 그의 평생(38년)을 위생병원 원장으로 일하였다. 수많은 환자들을 치료함은 물론이고 특히 1951년 한국전쟁 1,4 후퇴당시 SDA 신자들을 제주도까지 피난시켜 그의 헌신적인 활동에 교인들 모두가 감복하여 우리 교단에서 Rue를 현대판 모세라고 까지 칭송하였다. 그는 은퇴 후 미국 서부 Portland 소재 초라한 자택에서 검은 고양이 한 마리를 친구로 소일하였다는 것이다. 그는 주안에 잠든 후 유언에 의하여 화장했다고 한다.
지나고 보면 인생은 “한 주먹 바람을 쥐었다 놓는 것 같고” 참으로 헛되고 또 헛된 것이다. (구약성경, 전도서 1 : 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pyright © KASDA Korean American Seventh-day Adventists All Right Reserved admin@kasd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