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단 수필} 낮의 꽃 패션푸룻 / 박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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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꽃 패션푸룻 / 박봉진
담벼락에 패션푸룻(Passion Fruit) 넝쿨을 올린 것은 잘한 일이다. 그 전에는 담쟁이 넝쿨이 있었던 자리다. 단감 대추 레몬 아바카도 등 이십 여종이 되는 과목들의 배경과 잘 어울린다. 옛 고향집 분위기로 집 주변을 가꾸려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앞뜰은 관상수 위주로, 뒤뜰은 과목위주가 된 것이다. 담쟁이 넝쿨은 낙엽을 지우기 때문에 겨울철 담장은 민둥산처럼 을씨년스러웠었다. 그러나 패션푸룻은 상록 줄기식물인 것이 더없이 고맙다.
패션푸룻의 꽃은 참 희한하다. 줄기와 잎사귀는 꼭 야생 하늘수박 같다. 그러나 꽃은 낮에만 피고 밤에는 오므린다.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속은 희나 두툼한 연녹색 꽃받침 다섯 장에다 얇은 흰색 다섯 장을 곁들인 것은 꽃의 내구력을 위한 디자인이리라. 그 위엔 가느다란 국수면발을 가지런히 모아놓은 것 같은 보라색 레이스. 그리고 당그래 모양의 노란 다섯 수술에다 또 제일 위층에는 연록의 셋 암술, 사층 꽃의 조화가 정말 기막히다.
열매도 일품이다. 전에는 패션푸룻 쥬스를 자주 샀었다. 향료보다는 진액에 길들여졌는데 뭐하려 다시 사겠는가. 열매를 많이 보려면 한 겨울에 근간줄기 위를 바싹 손질해주고 그 다음 새순들은 자르지 말아야 한다. 열매는 댓살 아이 주먹만하지만 익을수록 초코렛색이 되고 스스로 꼭지를 물려 낙과를 자초한다. 낙과는 통조림 공정을 거친 거와 같기에 잘 간수했다가 반 갈라서 끓인 물에 타 씨 채로 음미해야 맛과 멋의 진수가 느껴질 것이다.
한 줄기 식물을 보고도 적재적소란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패션푸룻 한 그루만 심으면 웬만한 집 담장은 삼년이면 다 뒤덮어질게다. 그것의 효용가치를 따진다면 일석이조 아니 그 이상이다. 패션푸룻은 염치없이 땅과 공간을 많이 차지하려 들지 않는다. 다른 초목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담장을 푸름으로 채운다. 게다가 꽃과 열매까지 얹어주니 이보다 더한 적임이 있겠는가. 패션푸릇처럼 분수를 알고, 빈곳을 채우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수필과 비평’ 신인상등단. 세계재외동포문학 대상. 한미에피포도예술문학 대상.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 및 이사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및 국제펜클럽 회원. 수필집 ‘언제나 내 마음 바다에 살아’ 외
담벼락에 패션푸룻(Passion Fruit) 넝쿨을 올린 것은 잘한 일이다. 그 전에는 담쟁이 넝쿨이 있었던 자리다. 단감 대추 레몬 아바카도 등 이십 여종이 되는 과목들의 배경과 잘 어울린다. 옛 고향집 분위기로 집 주변을 가꾸려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앞뜰은 관상수 위주로, 뒤뜰은 과목위주가 된 것이다. 담쟁이 넝쿨은 낙엽을 지우기 때문에 겨울철 담장은 민둥산처럼 을씨년스러웠었다. 그러나 패션푸룻은 상록 줄기식물인 것이 더없이 고맙다.
패션푸룻의 꽃은 참 희한하다. 줄기와 잎사귀는 꼭 야생 하늘수박 같다. 그러나 꽃은 낮에만 피고 밤에는 오므린다.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속은 희나 두툼한 연녹색 꽃받침 다섯 장에다 얇은 흰색 다섯 장을 곁들인 것은 꽃의 내구력을 위한 디자인이리라. 그 위엔 가느다란 국수면발을 가지런히 모아놓은 것 같은 보라색 레이스. 그리고 당그래 모양의 노란 다섯 수술에다 또 제일 위층에는 연록의 셋 암술, 사층 꽃의 조화가 정말 기막히다.
열매도 일품이다. 전에는 패션푸룻 쥬스를 자주 샀었다. 향료보다는 진액에 길들여졌는데 뭐하려 다시 사겠는가. 열매를 많이 보려면 한 겨울에 근간줄기 위를 바싹 손질해주고 그 다음 새순들은 자르지 말아야 한다. 열매는 댓살 아이 주먹만하지만 익을수록 초코렛색이 되고 스스로 꼭지를 물려 낙과를 자초한다. 낙과는 통조림 공정을 거친 거와 같기에 잘 간수했다가 반 갈라서 끓인 물에 타 씨 채로 음미해야 맛과 멋의 진수가 느껴질 것이다.
한 줄기 식물을 보고도 적재적소란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패션푸룻 한 그루만 심으면 웬만한 집 담장은 삼년이면 다 뒤덮어질게다. 그것의 효용가치를 따진다면 일석이조 아니 그 이상이다. 패션푸룻은 염치없이 땅과 공간을 많이 차지하려 들지 않는다. 다른 초목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담장을 푸름으로 채운다. 게다가 꽃과 열매까지 얹어주니 이보다 더한 적임이 있겠는가. 패션푸릇처럼 분수를 알고, 빈곳을 채우는 사람이 될 수는 없을까.
‘수필과 비평’ 신인상등단. 세계재외동포문학 대상. 한미에피포도예술문학 대상. 재미수필문학가협회
회장 및 이사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및 국제펜클럽 회원. 수필집 ‘언제나 내 마음 바다에 살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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