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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선입견에 가렸던 환한 미소 / 이영희(李英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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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재림문학이름으로 검색 작성일2009.09.25 10:28 조회수 6,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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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에 가렸던 환한 미소 / 이영희(李英姬)

정말 참기를 잘했다. 그 때 나는 공중의 한 점 구름이 떠가는 순간을 인내했던 것뿐이었는데 그 뒤쪽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은 것 은 너무 과분한 보상이었다.

새삼스레 내가 무슨 옷 타령을 할까만은 안식일이 닦아오면 많지 않은 옷가지 중에서 교회에 입고갈 옷 문제로 작은 고민에 빠진다. 매양 같은 차림세의 옷을 입자니 따분하기도 했다. 간혹 시간을 내서 이름난 의류 매장에 들려보지만 요새 나오는 옷들은 거의 모두 내 체형과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으며 어렵사리 골라놓고 봐도 어색하고 불편할 것 같은 생각은 가시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남들은 유행에 한참 뒤떨어진 옷이라고들 말하겠지만 오래된 옷이나마 새로 세탁을 해서 깨끗하고 단정하게 입고 나가는 편이 내겐 오히려 편안하고 어울릴 것 같았다.

성큼 옷을 챙겨 집 가까운 곳의 세탁소엘 갔다. Good morning. Can I help you? 중년의 동양인 남자가 건성의 인사말과 상용 말이 뒤섞인 응대를 해왔다.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살은 사람이 아니면 발음에서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금방 식별할 수 있다. 약간 웃음을 머금고 “안녕하세요.”하고 나는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도 “아 한국분이 시군요”라는 말과 함께 용건을 들을 자세를 취했다. 나는 들고 간 옷을 카운터에 내려놓으며 음식물을 흘려 생긴 얼룩을 내보였다. “이 얼룩들이 깨끗이 질까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세탁할 필요가 없겠는데요.” 나직한 톤으로 그의 의견을 구했다. 그랬는데 그는 금세 표정을 확 굳혔다. “한국 사람들은 꼭 이런 식으로 먼저 따져요. 세탁을 해보지 안했는데 어찌 지고 안 지고를 알겠어요. 그래서 한국 사람하고는 거래하기가 싫다니까요.”

황당했다. 그것은 파타임 점원이 해서도 안 되는 말이었다. 불을 지른 사람은 그쪽인데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애써 감정을 억누르면서 “미안합니다를 연발했다. 부지부식간의 낭패를 간신히 묘면 하 듯 주춤거리며 돌아 서려는데 어느새 그는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옷을 낚아채듯 들고 가는가 싶더니 안쪽에서 물 뿌리는 소리를 냈다.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그 다음을 생각할 계려도 없었는데 그는 물기로 얼룩덜룩한 그것을 들고 나와서 얼룩들이 지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손님을 봐가며 먼저 그런 식으로 기를 꺾는 수법을 쓰는지는 몰라도 내심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시위를 떠난 화살을 거둬들이는 것 보다는 찾을 일시를 꼭 확약하는 다짐을 받고 참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좀 전에 있었던 일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그 사람에겐 내가 처음 보는 손님인데 왜 그렇게 면대를 하는 걸까? 그의 말마따나 한국 사람하고는 거래하기가 싫었던 걸까? 설마 자기를 백인 우월단원으로 착각해서 그러지는 않을게고... 그러면서도 그의 삶의 현장에서 체득한 말이라면 한국 사람들의 성정을 조금은 알고 있는 나로서는 더러 집히는 구석도 없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그 일로 인해 내내 모욕감을 떨칠 수 없었고 서글프고 우울했다. 세탁소에서도 씻어지지 않는 우리 동포들 마음속의 그 얼룩들은 무슨 세제를 써야 하얗게 씻어질까? 차라리 내 옷을 도로 찾아서 갖고 왔더라면 이리 마음 쓰이지는 않을 터인데 말이다.

하루를 넘기는 것이 그렇게 더뎠다. 다음날 나는 무언가를 보이겠다는 심산으로 약속한 정시 정각에 맞춰 세탁소에 들어섰다. 아직 이른 아침 시간이라 다른 손님들은 없었다. 그 사람은 무슨 서류를 긁적거리다 말고 얼른 몸을 움직였다. 하루 만에 확 달라진 분위기에 나는 또 한 번 어리둥절했다. 상체를 조금 굴신한 그의 목례와 환한 미소는 유연한 동산의 능선 위에 불끈 솟아오른 보름 달이였다. 도저히 그의 음성은 아닐 것 같은 달빛에 촉촉이 젖은 저음이 내 귀를 혼동 시켰다. “옷이 참 잘됐습니다. 어제는 제가 나이 드신 분께 실례를 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정중한 사과에 이어 그는 뭇지도 않은 세탁소에서 있었던 몇 토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미국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있으면 훗날 고소를 할망정 남의 업소에서 체면 없이 소란을 피우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사소한 것에도 꼬투리를 잡고 남의 업소에서 고래고래 언성을 높이는 사람은 대개가 한국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게 어찌 들어나 마나해도 괜찮을 남의 일이겠는가. 청명을 시샘하는 구름 몇 조각은 수시로 몰려왔다간 곧 흩어지곤 할게다. 그러나 구름에 가렸던 시간은 잠시이고 더 많은 시간동안 우리는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는 내가 자기 말에 귀 기울려주고 있음을 놓칠세라 마음속에 담고 있었던 말을 털어냈다. 가끔 실랑이가 있는 업소이긴 해도 더러웠던 옷을 세탁해가서 잘 차려입고 다니는 사람을 보면 자기 마음도 그 옷처럼 깨끗해지고 싶었다고 했다. 또 그 때처럼 때를 지운 보람을 느낄 때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일이 별로 흠모 받을만한 직업은 아니지만 하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 이라고 했다. 뜻밖에 듣는 진솔한 말이었다. 나도 속에 담고 있은 몇 마디를 이었다. 불쾌했던 그의 첫 인상과 그 때 굳힌 선입견의 앙금을 훌훌 턴다는 말과 더불어 그의 건전한 생각이 변치말기를 당부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나라꽃 무궁화처럼 한국 사람은 은근과 끈기의 민족이라고 말하지만 그와 나를 포함한 대다수는 그것 못지않게 겉만 보고 사람을 한부로 속단하거나 처음의 잠간을 참지 못하는 성정이 있다. “뚝배기 보다 장맛”이란 선인의 지혜를 되새겨봐야 할게다.

깨끗하게 손질된 옷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 발걸음이 그렇게 가뿐할 수가 없었다. 그랬는데 그것도 잠깐. 멈칫멈칫 내 뒤통수를 잡아끄는 듯 했고 무언가를 빠트리고 온 듯 허전했다. 그 때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 내 모난 성정이 한마디 쏘아붙이고 그 옷을 찾아들고 나왔더라면 어쩔 뻔 했나. 마른 땀은 이럴 때 나는 것 일게다. 사실 나는 그 때 “용기보다 인내가 더 어렵다”는 말을 실천하고 져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순간을 참게 해주신 크신 분의 은혜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면서 “후유”하고 모았던 숨을 불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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