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단 수필} 밤의 꽃 야래향 / 박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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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 하순, 여름은 옅어져 가고 있는데 밀려온 어둠속의 밀도는 황홀했다. 바닷가 방조제에 앉아 있던 나를 밀물에 실어 둥둥 떠올렸다고나 할까. 그 경지로 이끈 근원이 궁금했다. 열린 창문으로 차 들어오고 있으니 앞뜰에 나가보면 알 일이다. 나는 왜 거기에 있는 소철과 장미와 관상수 몇 그루만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업둥이 자식일수록 귀한 자식이어야 하는데, 말은 늘 그리했으면서도 실제는 그러지 못하다니-.
두 해전, 한 문우로부터 채 한 뼘도 안 되는 어린 묘목 두 그루를 얻었다. 꽃 향 그윽한 야래향(Night Blooming Jasmine)이라고 했다. 교우하는 우리의 마음도 늘 그렇기를 바라며 좀 정성을 드렸다. 화분에서 노지로 옮겼음은 물론이거니와 반그늘에서 햇볕 바른 곳으로 이주도 했다. 뿌리가 튼실해져 원만한 곳이면 적응해서 살아갈 것 같아보였다. 지난 정초, 한 그루를 앞뜰 창가 그러니까 드라이브웨이 너머에 옮겨 심었었다.
수세가 왕성하여 가지의 방향을 가리지 않고 마구 도장했다. 막되게 자라는 아이처럼 상록 속성수라서 그럴까. 불과 이년, 내 가슴께쯤 커버린 나무는 둥치도 가지도 잎사귀도 온통 초록 일색이다. 나무나 꽃 모양새로 친다면 수형이니 화사하다느니 하는 말을 올릴 처지는 못 된다. 길쭉한 잎사귀 사이사이에 붙어있는 가느다란 연두색 미니 꽃. 낮엔 작은 붓끝 모양을 오므리고 밤엔 앙증맞은 트럼펫 같은 꽃잎을 펴서 그윽한 향을 불어낸다.
누가 불렀었나, 그 ‘예라이썅’ 노래는. ‘야래향’이 달맞이꽃 이미지와 뒤섞이면 어쩌지. 무슨 짱이거나 고급 차를 타고 화려한 몸치장이어야 행세하는 세상. 밤에는 나비도 벌도 안 오는데 야래향은 비단옷 입고 밤길 걸으려는 게 아니다. 누가 눈여겨봐주지도, 깊은 속을 알아주려고도 안는다. 진품은 어둠에 묻혀 외면당하기 일쑨가 보다. 꽃을 꽃으로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을 탓해 무얼 하랴. 진향을 알고 가까워진 사람에게만 야래향의 향기는 진동해 질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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